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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형질전환 - DNA를 삼킨다?

minjpm 2010. 8. 25. 11:11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조선 시대 집안에 그늘이 드리운다. 애지중지 아끼던 어린 딸이 중병에 걸린 것이다. 백약도 소용없고 명의마저 고개를 젓는 상황. 부모의 속은 그야말로 타들어간다. 이 때 귀신을 부린다는 만신이 절망한 그들의 귀에 속삭인다. 동갑내기 다른 아이를 죽여 그 간을 내어 먹이면 아이가 살 수 있을 거라고. 평소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여겼을 터이지만, 지금은 아이의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시기. 부모는 제정신이 아니다. 결국 부모는 내 자식을 살리고자 남의 자식을 죽였고, 그렇게 하여 아이를 살려낸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살려낸 아이는 더 이상 내 아이가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어느 드라마의 내용이다. 여기서 부모에 의해 간을 먹은 아이는 간을 먹힌 아이에게 몸을 빼앗긴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아이의 혼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취한 병든 아이의 몸에 빙의되어 그 몸을 차지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식의 '빙의'를 다룬 이야기에 익숙하다. 억울한 죽임을 당한 영혼은 그 사무치는 원한을 풀지 못해 구천을 떠돌고, 자신의 한을 달래고자 타인의 몸을 점령해 복수를 자행하는 이야기 말이다. 이 때 원혼에 의해 빙의된 인물은 마치 다른 장르의 CD로 바꿔 넣은 플레이어처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새롭게 덧씌운 혼령의 특성이 전면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체의 육체에 다른 생명체의 특성이 끼어드는 현상은 현실에도 있다!

'빙의' 현상을 다룬 이야기에 익숙하다고 해도, 빙의가 실제로 일어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어떤 생명체의 육체에 다른 생명체의 특성이 끼어들어 이전에는 전혀 없던 형질이 발현되는 일은 현실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아니, 이제 우리는 이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고 있다.

 

우리는 무성생식을 하는 생명체들은 하나의 어미로부터 복사하듯 똑같은 자손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성생식은 번식 자체는 수월하나 유전적 다양성은 떨어진다고 말이다. 하지만 앞서 글(오늘의 과학 ‘접합’)에서 살펴보았듯, 무성생식으로 번식한다고 하여 이들 종이 모두 유전적으로 단일한 것만은 아니다. 이들은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 이외에도 '미생물의 섹스'인 접합을 통해 적극적으로 유전자를 주고받으며 유전적 다양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심지어는 다른 개체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이도 유전자를 받아들여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오히려 유전적 다양성과 번식을 분리할 수 없는 유성생식을 주로 이용하는 생명체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유전자 풀을 다양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형질전환, 새로운 터전을 찾은 DNA

미생물인 박테리아들은 접합을 통해 다른 개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유전자를 주고 받을 뿐 아니라,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다양한 DNA 조각들을 받아들여 이들을 마치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마냥 자기 DNA에 끼워 넣어 이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외부로부터 주어진 DNA를 받아들여 생물체의 유전적인 성질이 변하는 것을 형질전환 (Transformation)이라 한다. 형질전환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박테리아들이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여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사용한 전략인 것이다. 박테리아들의 오랜 비밀이 인간에게 밝혀진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피스와 에이버리, 형질전환을 발견하다

1928년, 영국의 세균학자였던 그리피스(Fred Griffith, 1879?∼1941)는 폐렴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인 폐렴구균(Pneumococcus)을 이용해 실험을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그리피스가 실험에 사용하던 폐렴구균은 S형과 R형 두 가지였다. 이 둘은 같은 종의 폐렴구균에 속하는 것들이었지만, S형은 점액을 배출해 콜로니(colony, 세균의 집합체) 표면이 코팅된 것처럼 매끄럽지만(Smoo th), R형은 점액을 배출하지 못해 표면이 거칠었기(rough)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상태였다.

 

이들은 겉모습만 다른 것이 아니라, 성향도 달랐는데 겉으로 보기엔 매끄러운 S형은 치명적인 폐렴을 일으켰지만, 거칠어 보이는 R형은 의외로 유순해서 R형에는 감염되어도 폐렴에 걸리지 않는다. 실제로 동물 실험 결과, 생쥐에게 각각 S(Smooth)형과 R(Rough)형 폐렴구균을 주입하면, S형에 감염된 생쥐는 폐렴에 걸려 얼마 못 가 죽어버렸지만, R형을 주입받은 생쥐는 폐렴에 걸리지 않는다. 

 

그리피스는 폐렴을 일으키는 것은 S형 폐구균이 만들어낸 독소가 아니라, 살아있는 S형 폐구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S형 폐구균을 처리해서 죽은 상태로 생쥐에 주입시키면 생쥐는 폐렴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피스는 이번에 S형 폐구균에 열처리를 하여 이를 완전히 죽인 뒤, 죽은 S형 폐구균을 독성이 없지만 살아있는 R형 폐구균과 섞어서 쥐에 주입해보는 실험을 했다.


형질전환 현상을 발견한 그리피스.
(Fred Griffith, 1879?∼1941)

 

독한 S형은 죽었고 R형은 살아있지만 독성이 없으니, 이런 경우 생쥐는 폐렴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는 뜻밖에도 모든 생쥐가 폐렴으로 죽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죽은 생쥐의 폐 속에서는 엄청나게 건강한 S형 구균이 발견되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이 결과를 해석하자면 이렇다. S형 구균은 죽으면 독성을 지니지 않게 되지만, 독성의 원인은 죽은 S형 구균 안에 여전히 남아 있어, 이를 살아 있는 R형과 섞었을 경우 죽은 S형 폐구균의 독성 정보가 R형 폐구균으로 옮겨가 해롭지 않은 R형을 순식간에 무서운 S형으로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이 지금까지 순했던 R형을 표독스럽게 바꿔버리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일까?

 

그리피스의 폐렴구균과 생쥐 실험. <출처: (cc) Madeleine Price Ball>

 

그리피스의 실험에 관심을 가졌던 미국의 세균학자 에이버리(Oswald Theodore Avery, 1877∼1955)는 S형 폐렴구균에서 얻은 추출물을 하나하나 분리해 이를 각각 R형 폐렴구균에 넣는 실험을 통해, 드디어 S형 폐렴구균의 DNA가 R형 폐렴구균으로 들어가서 순해던 R형에 독한 S형의 성질을 불어넣는다는 사실을 찾아낸다. 유전자에 의한 형질전환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이처럼 미생물들 중에는 생식세포가 결합하는 유성생식이나 접합을 통하지 않고서도 DNA 그 자체를 받아들여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 DNA는 비교적 안정한 편이기 때문에 세포가 죽은 뒤에도 파괴되지 않고 환경 속에 존재하다가 다른 세포로 들어갈 수 있으며, 몇 가지 조건이 맞으면 새로 들어간 세포 내에서도 형질 발현이 가능하다.

 

 

자연을 모방하다, 인공 형질전환

그리피스의 발견을 발전시켜, DNA가 형질전환의 원인임을 밝힌 에이버리(Oswald Theodore Avery, 1877∼
1955). 이 발견은 DNA가 유전물질임을 직접적으로
증명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


그리피스와 에이버리의 실험을 통해 DNA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형질전환에 대해 알긴 했지만, 그 자체가 인간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형질전환이 일어나는 기작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을 뿐 아니라,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조차 논란의 대상이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이후 이 분야에 대한 정보가 쌓이기 시작한다.

 

1950년대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내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에 못을 박은 뒤, 차례로 DNA 조각들을 이어주는 DNA 전용 접착제인 DNA 리가아제(DNA ligase), DNA의 특정 부분을 인식해 잘라주는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 DNA를 운반해주는 운반체(Vector)를 비롯해 세포 안으로 DNA가 든 벡터를 넣어주는 다양한 방법(DNA를 총알로 삼아 쏘기도 하고, 세포막 성분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주머니에 싸서 넣어주는 등)이 개발되면서, 미생물뿐 아니라 모든 생물체에 형질전환이 가능한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를 이용해 각종 의약품과 유전자 재조합 농산물(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 유전자 재조합 생명체(LMO, Living Modified Or ganism)들을 만들어낸 바 있다. 미생물들이 수 억 년 전부터 해왔던 일을 이제 인간이 따라 하는 것이다.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미생물의 무작위적인 DNA 유입에서, 인간에게 ‘유리하게’ 만든다는 목적을 가지고 모든 생명체의 DNA를 서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다시 앞서 말한 드라마로 되돌아가 보자.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가 아플 때마다 그렇게 안쓰러울 수 없다. 아이 대신 내가 아플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대신해주고 싶다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기에 죽어가는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부모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할 수 있는 일’뿐만 아니라, ‘할 수 있으되 해서는 안 될 일’이 분명 존재한다. 남의 자식을 죽여 내 자식을 살리는 일은 가능성이 있더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형질전환은 미생물의 유전적 다양성 확보를 위한 진화적 전략에서 인간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인위적 기술이 되었다. 최초로 유전자 재조합을 통한 인공 합성 인슐린이 개발된 것이 1970년대이고, 최초로 유전자 재조합된 농산물이 시장에서 팔린 것이 1990년대이다. 그리고 2010년 현재, 수십 종의 유전자 재조합 농산물이 공식적으로 유통되고 있고, 전세계 각국의 생명공학 실험실에서는 의료용으로, 혹은 실험용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유전자 재조합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처럼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이제 ‘할 수 있는 것’의 범위에 충분히 들어왔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 기술에게서 ‘할 수 있으되 해서는 안 될 것’의 범위를 정하는 일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통해 의약품을 만들고 영양 개선을 위한 시도를 하는 한편,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서 혹은 단순히 기발한 호기심만을 충족하기 위해 함부로 유전자에 손을 대는 일은 금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를 말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일은 자연계에서 미생물들이 해왔던 방식을 모방한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앞으로 하게 될 일들은 이제 전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례가 없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관습을 깨뜨리며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온 것으로 이어져 왔으니까. 하지만 이왕이면 섣부른 걸음보다는 신중한 전진이 낫지 않을까.

 

 

  1. 형질전환

    외부로부터 주어진 DNA를 받아들여 생물체의 유전적인 성질이 변하는 것을 말한다. 무성생식을 하는 박테리아 등이 유전자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20세기에 발견되었으며, 유전자 재조합의 기초적 원리이다.

 

 

 

이은희 /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등 많은 과학 도서를 저술하였고, 2003년에 과학 기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 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3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