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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오페라교실 - 오페라 연출은 어떻게 할까?

minjpm 2009. 12. 7. 17:54

오페라를 작곡할 때 작곡가가 악상을 떠올리는 방식은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작곡할 때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극의 상황이나 등장인물의 개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본’이 눈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개 오페라 전곡 음반을 감상하거나 하이라이트 아리아 및 중창을 ‘귀로 들으면서’ 오페라 음악을 논하지만, 모든 오페라 작곡가는 작곡 초기부터 ‘눈에 보이는’ 무대를 염두에 두고 음악을 만들어냅니다.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지만, 눈으로 직접 무대를 보면서 들을 때 작곡가가 원래 의도했던 음악적 효과를 고스란히 전달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같은 작품을 보아도 연출에 따라 재미와 감동이 달라진다

4백여 년 전 이탈리아에서 오페라라는 예술 장르가 탄생했을 때 그 모범이 된 것이 ‘총체예술’인 고대 그리스 연극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음악만으로 오페라를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납득할 수 있습니다. 오페라는 문학, 연극, 성악, 기악, 무대미술, 무용, 의상, 조명, 기술 등 여러 분야를 종합한 예술이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오페라란 ‘음악 + 극’입니다. 그러므로 극 전체의 틀을 설정하고 가수들에게 연기와 동선을 지시하는 연출가는 음악을 맡고 있는 지휘자와 공동으로 공연 전체의 예술적 수준을 결정하게 됩니다.


백 년 혹은 2백 년 전에 만들어져 수천 번 되풀이 공연된 오페라 작품들을 요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에 찾아가 감상합니다.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아 극 속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을 뻔히 다 아는 경우에도 음악과 연기를 즐기기 위해 오페라 극장에 가는 것이죠. 극중 상황과 등장인물의 대사를 음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가 오페라 작품의 예술성을 결정하는 관건입니다. 그리고 똑같은 작품이라 해도 어느 성악가가 노래하고 연기하느냐에 따라 재미나 감동이 크게 달라지므로, 같은 작품을 여러 번 보아도 매번 새로울 수 있습니다.


 

 

 

오래 전 과거의 배경을 현대로 옮겨와 새롭게 재해석


뿐만 아니라 같은 오페라라 해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연출하느냐 무대를 현대로 옮겨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상자의 느낌은 180도로 달라질 수 있답니다. 베르디의 대표적인 비극 [라 트라비아타]는 잔뜩 부풀린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우아한 몸짓으로 움직이며 노래하는 전통적인 무대를 오랜 세월 지켜왔지만, 1970년대 이후로는 배경을 20세기로 옮겨놓은 현대적인 연출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05년 잘츠부르크페스티벌에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가 타이틀 롤을 맡고 연출가 빌리 데커가 상징주의적으로 연출한 프로덕션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 같은 비극 역시 연출가에 따라서는 무대를 완전히 현대로 옮겨놓기도 하지요. 최고 권력을 추구하다 파멸하는 인간상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는 극에 등장하는 마녀들이 한밤중에 도로를 청소하는 환경 미화원의 무리로 바뀌기도 합니다.


비극 오페라의 무대도 현대로 옮길 수 있지만, 특히 희극 오페라는 인간성의 기본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시대 배경을 바꿔 현대적인 방식으로 연출하기가 더욱 수월합니다. 비극의 주인공들은 고귀하고 품위가 있어서 남을 위해 진실을 숨기고 자신을 희생하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희극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욕구나 이기심을 숨기지 않고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려 애씁니다. 그처럼 동물적인 본성을 따르는 평범한 등장인물들은 관객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로 기능하며, 희극 오페라는 잘못된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비극에서 지켜지는 위계질서와 권위를 무너뜨려 관객에게 통쾌함을 안겨줍니다. 예를 들면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 [자니 스키키(Gianni Schicchi)]는 부자의 유산상속을 둘러싼 희극인데, 이야기의 배경은 13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이지만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의 재물에 대한 탐욕은 현대에도 여전히 설득력이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종종 이 오페라는 배경을 현대로 바꿔 공연됩니다.

 

 

 

 

극중 상황을 관객 개개인이 현재 살고 있는 현실에 대입할 수 있다는 것도 현대적인 오페라 연출의 매력입니다. 이런 효과를 높이기 위해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 같은 18세기 오페라의 배경을 아예 현대로 옮겨놓기도 합니다. 등장인물 중 백작은 유럽연합(EU)의 대사로, 바람피우는 남편 때문에 한숨짓는 백작부인은 러닝머신 위에서 운동하며 아리아를 부르도록 설정한 획기적인 연출방식도 있습니다.

 

 


외모가 중시되는 가수, 표현 수위의 한계에 도전하는 연출

1.지휘자보다 연출가!
1970년대 이전에는 가수 캐스팅이나 리허설 등 오페라 제작과정에서 가장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지휘자였습니다. 그러나 연극의 레지테아터(Regie-Theater: 연출가가 시대와 배경 설정을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연출가 중심의 무대) 개념이 오페라에 도입되면서 오페라의 중점이 음악보다 극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관록과 명성을 지닌 오페라 연출가가 지휘자보다 더 큰 결정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로버트 카슨, 피터 셀러스, 페터 콘비츠니, 안드레이 세르반, 데이비드 맥비커, 칼릭스토 비에이토, 빌리 데커, 요시 빌러 등은 전위적이고 도발적인 오페라 연출을 시도하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연출가들입니다.


2. 전방위 연출가의 출현
과거에는 성악이나 기악 전공자가 오페라 연출을 맡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위해 경험이 풍부한 연극 연출가나 영화감독에게 오페라 연출을 맡기는 일이 흔합니다. 그리고 건축이나 디자인 분야를 전공한 오페라 연출가가 늘어가면서, 무대디자인, 의상디자인, 조명디자인 등을 연출가 한 사람이 도맡아 하나의 컨셉트로 통일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3. 미니멀리즘(minimalism) 무대
전체적으로 무대는 텅 비어 있고, 사실주의적인 세트나 소품은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또 무대를 막마다 변환하지 않고 단일한 무대 구조물을 1막부터 공연 끝까지 사용하되, 장면의 분위기에 따라 조명의 색채나 소품 등을 바꾸는 단순화된 무대를 사용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4. 외모와 연기력을 중시하는 캐스팅
아무리 가창력이 뛰어나도 역할에 어울리지 않게 뚱뚱한 가수들은 더 이상 캐스팅 되지 않습니다. 무대 위에서 달리고 구르고 드러누워 노래하는 등 영화를 방불케 하는 빠른 움직임과 연기력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단련되지 않은 가수들은 오페라 무대에 서기 어렵습니다. 연출가의 과도한 연기 요구 때문에 자신의 성악적 기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거나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고 판단해서, 성악가가 그 프로덕션 참여를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5. 에로티시즘과 폭력성의 증가
관객의 지루함을 덜고 시선을 끄는 데 여전히 유효한 것은 에로티시즘입니다. 반라(半裸)의 또는 전라(全裸)의 연기자가 오페라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적어도 유럽에서는 이제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원래의 오페라 텍스트가 지니고 있는 시대적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해 하드코어에 가까운 폭력장면을 오페라에 집어넣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2003년에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연출한 ‘연출계의 도살자’ 칼릭스토 비에이토는 바람둥이 돈 조반니를 지옥불에 끌려들어가게 하는 대신 나머지 등장인물들이 돌아가면서 그를 칼로 찔러 죽이는 섬뜩한 결말을 보여주었습니다. 2008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돈 조반니]를 연출한 클라우스 구트는 자신의 [돈 조반니]를 스스로 ‘리얼타임 스릴러’라고 부릅니다. 귀족의 궁전이 아닌 숲에 사는 ‘노숙자’ 돈 조반니가 초반부터 배에 총을 맞고 공연시간 3시간 동안 죽음을 향한 레이스를 펼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돈 조반니는 지옥에 떨어지는 대신 자기가 죽인 기사장이 파놓은 무덤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런가하면 2008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바그너의 [파르지팔]에서 젊은 연출가 슈테판 헤어하임은 성배기사들의 장엄한 의식 대신 독일현대사의 파노라마를 무대 위에 구현했습니다. 오페라를 음악으로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무대 공연이나 오페라 영상물을 통해 극의 내용과 분위기를 이해한다면 오페라 음악의 이해가 훨씬 깊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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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숙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이미지 유니버셜 뮤직 제공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