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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는 또 다른 이유로 덧차원이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혀 온 문제 중에 위계의 문제(hierarchy problem)라는 것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어찌 보면 참 쓸데없는 일에 많이 고민한다. 위계의 문제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그런 문제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자연계에는 네 가지의 힘이 알려져 있다. 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그리고 강한 핵력이 그 넷이다. 중력과 전자기력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힘들이다. 약한 핵력은 핵붕괴와 관련된 힘이고 강한 핵력은 핵자들을 원자핵으로 강하게 묶어 두는 힘이다.
중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 힘들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Standard Model)으로 구축되어 있는데 대략 양성자 질량의 약 1천배 정도 되는 에너지까지 잘 들어맞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에너지에서는 중력의 효과가 극히 미미하다. 중력의 효과가 나머지 세 힘과 비등해지려면 그 에너지가 양성자 질량의 약 10,000,000,000,000,000,000배에 이르러야 한다. 이 에너지를 플랑크(Planck) 에너지라고 부른다. 중력과 표준모형 사이에 왜 이런 거대한 에너지 갭이 존재할까 하는 것이 바로 위계의 문제이다. 지난 글들에서 소개했던 힉스 질량의 안정화를 위한 미세조정의 문제는 위계 문제를 조금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서 근본적으로 위계 문제에 다름 아니다. 이 위계의 문제는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을 괴롭혀 왔으며 현재 학계가 처한 가장 시급하고도 긴박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중의 하나이다. 반면에 그런 만큼 이 문제는 새로운 물리학의 장을 열어젖히는 데에 큰 공헌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초대칭성이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도 초대칭성이 이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