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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 신비로운 과학세계

[펌] 세상은 몇 차원인가(덧차원에 대하여..)

minjpm 2009. 4. 23. 17:07

달걀을 깨지 않고 노른자만 꺼낼 수 있을까? 글쎄, 세기의 마술사라는 데이비드 카퍼필드라면 혹시 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우리가 4차원 공간에 살고 있다면 이 마술 같은 일을 손쉽게 해치울 수 있다. 인간은 3차원 공간에 사는 생물이라서 4차원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직접 느낄 수는 없다. 다만 2차원과 3차원 사이의 관계로부터 더 높은 차원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종이에 원을 하나 그려놓고 그 안에 동전을 놓는다. 2차원 평면인 종이 위에서 동전을 움직여 원 밖으로 빼내려면 동전은 반드시 원주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2차원에서는 동전이 원주를 건드리지 않고 원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러나 동전을 3차원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으면 얼마든지 원주를 건드리지 않고서 동전을 빼낼 수 있다. 만약 2차원적인 생명체가 있어서 종이 위에서만 살고 있다면 이 생명체의 눈에는 동전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다시 엉뚱한 곳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2차원 평면을 3차원 공간으로, 종이 위의 원을 달걀로, 그리고 동전을 노른자로 대체하면 4차원의 공간이 어떻게 달걀을 깨지 않고 노른자를 꺼낼 수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4차원 공간을 느끼면서 넘나들 수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그는 노른자를 4차원 방향으로 움직임으로써 달걀을 깨지 않고 노른자를 꺼낼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3차원보다 더 높은 차원일수도 있다는 생각은 꽤나 오래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좌표로 통일하여 시공간 4차원을 주창했는데, 여기서는 공간이 여전히 3차원에 머물러 있다.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에 살았던 칼루자(Theodor Kaluza)와 클라인(Oskar Klein)은 시공간이 5차원일 가능성을 제시했었다. 칼루자-클라인 이론에서는 공간이 3차원이 아니라 4차원이다. 이렇듯 3차원에 부가적으로 덧붙여진 차원을 덧차원(extra dimension, 부가차원, 초차원, 여분차원)이라고 한다. 칼루자와 클라인이 덧차원을 생각한 이유는 적어도 달걀노른자를 빼내는 것보다는 좀 더 고상했다. 그들은 중력과 전자기력을 5차원 이론으로 통합하려고 했었다. 대략 1919년에서 1926년 사이의 일이다.

 

 

덧차원에 관한 고민이 새로워진 것은 초끈이론 때문이었다. 초끈이론은 그 이론이 자체적으로 모순이 없으려면 시공간이 10차원이어야 함을 예견한다. 우리는 4차원 시공간에 살고 있으니까 덧차원이 6차원이나 되는 셈이다. 덧차원이 이렇게 버젓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어떻게든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깃줄을 예로 들어 보자. 아주 멀리서 보면 전깃줄은 기다란 1차원의 곡선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면 1차원인 줄 알았던 전깃줄이 일정한 굵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굵기는 전깃줄의 길이 방향과는 수직을 이루면서 새로운 차원을 하나 형성하고 있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전깃줄의 차원이 가까이에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더 자세히 보면 전깃줄의 다른 차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도 이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초끈이론이 맞다면 원래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은 10차원(1차원의 시간과 9차원의 공간)이다. 그러나 6차원이 매우 좁은 영역에 말려들어 있다면 우리는 4차원의 시공간만 감지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멀리서는 1차원의 전깃줄만 보이는 것과도 같다. 6차원의 덧차원을 보려면, 마치 전깃줄에 가까이 다가가듯이, 공간 자체를 들여다보는 해상도를 높여야 한다. 높은 해상도는 매우 높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현존하는 입자가속기들로는 어림도 없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또 다른 이유로 덧차원이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혀 온 문제 중에 위계의 문제(hierarchy problem)라는 것이 있다. 물리학자들은 어찌 보면 참 쓸데없는 일에 많이 고민한다. 위계의 문제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그런 문제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자연계에는 네 가지의 힘이 알려져 있다. 중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그리고 강한 핵력이 그 넷이다. 중력과 전자기력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힘들이다. 약한 핵력은 핵붕괴와 관련된 힘이고 강한 핵력은 핵자들을 원자핵으로 강하게 묶어 두는 힘이다.

 

중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 힘들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Standard Model)으로 구축되어 있는데 대략 양성자 질량의 약 1천배 정도 되는 에너지까지 잘 들어맞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에너지에서는 중력의 효과가 극히 미미하다. 중력의 효과가 나머지 세 힘과 비등해지려면 그 에너지가 양성자 질량의 약 10,000,000,000,000,000,000배에 이르러야 한다. 이 에너지를 플랑크(Planck) 에너지라고 부른다. 중력과 표준모형 사이에 왜 이런 거대한 에너지 갭이 존재할까 하는 것이 바로 위계의 문제이다. 지난 글들에서 소개했던 힉스 질량의 안정화를 위한 미세조정의 문제는 위계 문제를 조금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서 근본적으로 위계 문제에 다름 아니다. 이 위계의 문제는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을 괴롭혀 왔으며 현재 학계가 처한 가장 시급하고도 긴박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 중의 하나이다. 반면에 그런 만큼 이 문제는 새로운 물리학의 장을 열어젖히는 데에 큰 공헌을 해 온 것도 사실이다. 초대칭성이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이유도 초대칭성이 이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1998년 미국의 알카니-하메드(N. Arkani-Hamed)와 디모포울로스(Savas Dimopoulos), 드발리(G.R. Dvali)는 덧차원이 위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들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ADD모형으로 알려진 이론은 4차원 시공간에 덧차원이 달랑 붙어있는, 매우 단순한 구조이다. 이 모형에서는 덧차원의 공간 자체가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흡수해 버림으로써 플랑크 에너지를 양성자 질량의 천배 정도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그 이듬해 미국의 리사 랜들(Lisa Randall)과 라만 선드럼(Raman Sundrum)은 1차원의 덧차원으로 위계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다. RS모형으로 알려진 이 이론에서는 ADD에서와는 달리 덧차원인 제5공간이 심하게 굽어 있다. 그 굽은 정도가 5차원 공간을 따라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되어 있어서, 제5공간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두 점에서의 물리량이 매우 다른 값을 가질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높은 에너지의 세계와 낮은 에너지의 세계가 굽은 제5공간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리사 랜들은 최근 가장 주목 받는 여성 물리학자로서 그의 저서 <숨겨진 우주>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덧차원 모형은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지만 표준모형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 가을 다시 가동될 유럽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에서 덧차원의 신호를 잡아낼 수 있을지도 큰 관심거리 중의 하나다. 덧차원이 있다면 자연의 근본상수인 플랑크 에너지가 그렇게 천문학적으로 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천문학적으로 큰 숫자가 불편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요긴할 때도 있다. 어떤 현상들은 플랑크 에너지만큼 높은 에너지를 얻어야만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마치 아주 무거운 바위로 두더지 구멍을 막아 둔 것과도 같다. 두더지가 바깥세상으로 나오려면 큰 에너지를 발휘하여 자기 집 입구를 짓누르고 있는 커다란 바위를 들어 올려야만 한다. 만약 덧차원이 있어 실제 플랑크 에너지가 그리 크지 않다면 비교적 낮은 에너지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다. 문제는 높은 에너지에서만 일어나는 일들 중에는 낮은 에너지에서 일어났을 때 흥미로운 경우도 있지만 재앙(이론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을 몰고 오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블랙홀도 그런 경우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