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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초자연 현상과 기-염력,텔레파시,기,초능력,귀신,

minjpm 2009. 4. 30. 16:51

초자연 현상과 기

라이얼 왓슨 Lyall Watson은 그의 저서 “Lifetide” 앞부분을 베니스의 다섯 살 짜리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클라우디아라는 이 소녀는 공의 안과 밖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 4차원 공간에서나 가능한 일을 클라우디아는 테니스 공을 잠시 손으로 만지작거림으로서 `펑'하는 가벼운 소리를 내며 간단히 뒤집어 놓는 것이다. 왓슨은 이 소녀가 나이에 비해 침착하고 집중력이 강하다는 인상과, 하루 저녁에 여러 차례 같은 시범을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염력, 텔레파시 등의 초자연 현상에 대한 사례보고는 그러한 현상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사례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 다양함이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조건(신뢰성과 재현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과학적인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것이다. <유일무이>한 현상에 대하여서는 과학도 전혀 대책이 없으니까 말이다.

왜 초자연 현상은 그처럼 다양한 것이며, 재현성이 약한 것일까?
기존의 물리량들에 새로운 물리량으로서 <식과 기>를 도입하였으므로, 초자연현상이 <식과 기>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 일단 당연할 것이다. <식과 기> 가설을 초자연 현상들에 적용하여 가설이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자.

 

 

 

<염력(念力)>

염력은 기일 것이다. 앞서 딘 대린의 “염력은 의식으로부터 물질로 정보가 이동하는 현상”이라는 말씀을 드렸다. 정신력으로 강철 스푼을 휘게 만드는 염력은 의식이 발휘하는 기의 작용일 것이며, 텔레파시는 의식들 사이의 교감일 것이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유리 겔라처럼 강철 스푼을 휘게 만들 수 있다면 염력은 벌써 당당하게 과학의 한 분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염력의 강도는 사람마다 너무나 차이가 나는 것이며, 유리 겔라처럼 염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이다. 또한 염력 즉 기는 의식에 의해서 발휘되는 데, 의식은 그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하다. 물론 명상이나 선으로 수양이 깊은 사람이라면 별 문제이겠지만,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의식은 감정 등 그 상태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므로, 염력(기) 역시 기복이 있어서 육체적인 힘처럼 일정하지 못할 것이다.
염력으로 강철 스푼을 휘게 하고 심지어 부러뜨리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생각해보자. 스푼의 재료인 스텐리스 강(stainless 鋼)은 강철 중에서도 그 강도가 매우 높은 고급 강철이다. 스텐리스 강제 스푼을 휘거나 부러뜨릴 수 있는 세기의 힘을 사람의 연약한 육체에 가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손가락이나 뼈 정도는 쉽게 부러뜨릴 것이다. 하물며 심장이나, 더 연약하고 부드러운 뇌는 어떻게 될까? 내 가까운 사람 중의 한 사람도 강철제 스푼을 휘게 할 수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서 벌벌 떨어야 하지 않을까? 기가 염력 즉 힘이라면 기공사의 기 공격을 어떻게 방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아직까지 염력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신빙성 있는 보고는 없다. 왜 그럴까?

1994년에 우리 나라에서 학계와 공동으로 공개 염력 실험을 한 일이 있었다. 그 실험에서 기공사가 스푼의 손잡이 끝을 쥐고 흔들면서 염력을 보내어 목 부분을 부러뜨린 후 그것을 분석한 결과, 부러진 면의 철 분자들이 외부의 힘에 의해서 약해지고, 그 약해진 부분에 흔들림에 의한 반복 응력(應力)이 가해져서 그 응력에 의하여 피로(疲勞) 파괴된 것 같았다고 그 결과가 보고되어 있다(한국정신과학학회 논문모음. ꡒ기와 21세기ꡓ에서 발췌 인용).

스텐리스 강철 스푼을 불과 600회 정도의 흔들기로서 부러뜨릴 수 있을 만큼 그 분자의 결합 구조를 약하게 만들 수 있는 염력은 무엇일까? 그 보고서는 ꡒ앞으로 염력에 의해 어떻게 소재가 연화(軟化)되는지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ꡓ라고 끝맺음으로서 나의 궁금증만 부풀려 놓았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그 기를 파동에 비유한다면 제각기 다양한 고유의 진동수와 진폭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강철의 철 원자들은 격자형태로 결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온도에 해당하는 운동에너지로써 진동하고 있다. 그 진동수에 공명하는 염력(기)을 원자에 가하면 공진 효과가 일어나서 그 원자들은 고열을 받는 것과 동일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 공진의 진폭이 계속 증폭되어 한계를 넘으면 단단한 강철 스푼도 약해지는 것이다. 금속원자는 결합력이 강한 금속결합으로 일종의 결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공진 현상을 이용하면 금속결합력보다 훨씬 더 작은 힘으로도 결합을 해체 또는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공진 현상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부러지는 부분의 모든 원자들의 진동 위상을 동일하게 맞춰주어야 한다.
내가 알기로 염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해서 누구나 강철 스푼을 휘거나 부러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강철 원자의 진동수에 공명할 수 있는 진동수의 염력을 발휘하려면 아마도 기의 세기에 따라서 수련이 필요한 것 같다. 이처럼 부드럽지만 기가 가득한 사람의 신체조직보다, 물리적 강도는 수십 배 더 강하지만 일정한 진동수로 단순 진동하고 있는 강철 분자는 염력에 의해 쉽게 변형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인체의 조직도 강철 원자와 마찬가지의 열 진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공진 주파수의 기를 보내면 상하게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현상이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인체조직은 외부의 기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생각하는 것이다. 최면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차가운 물체를 피부에 갖다 대면서 `아주 뜨거운 물체'라고 암시를 주면 피부가 화상을 입는다는 사례는 자신의 기가 암시에 의해서 자신의 피부에 화상을 입힌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므로, 기는 자신을 보호할 수도 있고 또한 외부의 기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물질 특히 생명체는 자신의 기로서 주위에 일종의 보호막을 형성한다는 것이 기에 뛰어난 사람들의 생각이다. 기의 근원이 식, 정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생각이다. 그러나 지금 필자는 기의 존재 그 자체의 입증을 목표로 하고 있는 바, 그러한 기의 고차적 작용까지를 인정 내지 도입하기는 논리적으로 다소 비약이 있을 것 같아서 삼갈 뿐이다. 일단 현 단계에서는 염력의 현상과 <식과 기> 가설이 그러한 현상들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물리법칙에 위배됨이 없이 설명할 수 있는지 만을 살펴보겠다.

아마도 기는 서로 `기가 맞는' 기가 있는 것 같다. 기공의 용어로서 동기 감응(同氣感應) 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의 예에서는 기를 진동으로 비유했는데, 어떤 작용이 서로 간섭하여 공진하기도 하고 상쇄될 수도 있는 현상이 바로 진동이다. 또한 이것은 소립자와 상호작용 - 모든 물질과 힘의 근본적 성질이 입자-파동 양면성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기 역시 그 성질이 파동의 본질적 정의와 일치한다. 스테인리스 강제 스푼을 부러뜨리려면 우선 철 원자들의 진동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하고 그에 맞는 공진 주파수의 기 파동을 낼 수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약간의 수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씀 드린 것이다.
위에서 말씀 드린 `기로서 사람을 공격하기 어려움'의 이유가 “생체의 기 보호막”이 아니라, 주파수를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 때문일 수도 있다. 생체의 조직은 금속과 달리 수 많은 종류의 분자들의 집합체이므로 그 분자들의 열진동의 주파수가 균일하지 않다. 분자량이 수십만에 이르는 단백질 분자는 하나의 입자처럼 진동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공진시키는 일이 불가능할 것이다. ꡒ생체 기의 자기방어 능력ꡓ과 ꡒ공진의 곤란함ꡓ 중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기를 느끼지도 못하는 나로서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나의 생각에 의하면 <기>는 <식>의 작용으로서, 하나의 식이 다른 식에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이며, 그 자체는 물리적인 에너지가 아니다. 그러나 스푼의 금속원자에 전달된 기는 원자진동의 공진증폭을 가져오는데, 이것은 아무리 작더라도 물리적인 에너지나 힘이 가해지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여기서 두 가지의 가정을 생각할 수 있다.

1. <기>는 <식>이 다른 식에게 전달하는 정보인 동시에 식이 발휘하는 물리적인 힘이다.

2. <기>는 식의 정보전달 매체일 뿐이다. 스푼의 금속원자의 진동이 증폭되는 것은 원자가 매우 강한 의식으로부터 받은 정보에 의해서 자체의 내부에너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첫 째 가정은 기가 일종의 힘 또는 에너지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같은 것인데, 문제는 아직까지 <기의 세기>가 물리적으로 측정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기>는 물리적인 힘 네 가지(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 중 어느 것도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물리적인 힘이라면 아무리 미약한 힘이라도 충분히 측정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기>는 ꡒ제 5의 힘ꡓ이라야 하는데, 이 역시 `힘'이라면 물리적인 현상이며 측정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가 물리적인 힘의 형태로 측정되었다는 믿을만한 보고는 없다.
그리고 기가 힘이라면 그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다. 의식은 에너지가 아니다. 의식에서 물리적인 힘이 나올 수는 없다. 말씀드린 대로 의식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의해서 손실된 소립자의 식이 모여서 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에너지는 보존법칙에 따라서 보존되고 있으므로 의식은 <무형의, 비에너지적인 존재>라야 하니까 말이다. 의식이 <공간 에너지>를 꺼집어 내어서 사용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용 가능한 공간 에너지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현재 전혀 없다. 따라서 이 가정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두 째의 가정을 살펴보자. 이 가정에 의한다면 스푼의 금속원자는 기를 통해서 `의식의 정보'를 받고 그 지시에 의해서 진동하는데, 그 진동에는 물론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가 의식으로부터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면 자체에서 나오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염력'과 관련된 기적(氣的) 현상은 사실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내 판단으로서는 기가 힘(에너지)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지만, 염력으로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사례의 보고는 많다. 흔하게는 고장 난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든지, 드물게는 정신을 집중하여 컵 정도의 작은 물체를 들썩거리게 한다든지 등의 사례--그 중에서도 신뢰할 만한 보고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들은 강철 스푼을 휘게 하는 것을 원자의 열진동 공명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현상이다. 진동은 공진현상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극히 미약한 힘의 반복(진동)으로 큰 힘을 낼 수 있지만, 운동은 단 1회의 작용으로 물체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큰 물리적인 힘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위의 생각처럼 `식이 기를 통하여 대상 물체에 정보를 전달하고, 물체는 그 정보에 따라서 자체의 에너지를 변환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을 입증할 수 있는 실험 보고가 있다. (라이얼 왓슨의 “초자연 Supernature”, 박문재 역, 인간사, 1992.에서 발췌 인용)
벨파스트의 퀸즈대학 심리학자인 죤 벨로프 John Beloff의 아이디어에 의한 실험에 의하면, 방사성 원소(우라늄 질산염)의 자연 붕괴를 염력으로 촉진 또는 억제할 수 있었는데, 실험 데이터는 그 현상이 염력에 의한 것이 아니고 자연(우연)적인 것일 확률이 불과 일 조 분의 일이었다.
방사성원소의 붕괴는 지극히 안정되어 있으며,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을 뿐인 현상이다. 오래된 원자가 먼저 붕괴하는 것도 아니다. 인공적으로 붕괴시키려면 외부에서 적당한 에너지를 가진 중성자를 원자핵 내부에 쏘아 넣어야 한다. 더구나 기를 힘으로 가정한다면 붕괴의 촉진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억제는 불가능한 것이다. `상대의 힘(에너지)을 빼앗아 올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니까. 그러니 이 현상은 원자핵이 기를 통해서 전달받은 정보에 따라서 자신의 에너지를 증가시키기도 하고 감소시키기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웨덴의 공학자인 하콘 포월드 Haakon Forwald는 염력의 세기를 측정하기 위한 실험을 했다. 경사면의 상부 중심에서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 주사위를 굴려 떨어지게 하면서 주사위에 염력을 가하여, 주사위가 경사면의 중심선에서 벗어나는 거리를 측정하여 염력의 세기를 계산하려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주사위는 분명히 염력이 가해진 방향으로 움직여 중심선을 벗어났다. 그런데 그 벗어난 거리가 재료--즉 주사위의 무게에 전혀 비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염력(기)이 물리적인 힘 또는 그와 같은 성질의 작용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염력이 물리적 힘이라면 가벼운 것은 무거운 것보다 더 멀리 밀려갈 것이다. 따라서 그는 `주사위 각각에는 어떤 차이들이 있음이 틀림없으며, 주사위들 자체가 바로 힘을 작용시키는 에너지원이다'라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ꡒ염력은 원자 내부에 에너지 작용을 일으킬 수 있지만 거기에 에너지를 전달하지는 못하는 일종의 계전기(relay; 일종의 스위치. 전기의 계전기는 적은 전류로서 큰 전류를 제어하는 데 사용한다)에 속한다ꡓ라고 말했다. 이것은 나의 생각과 일치한다.

위의 스푼 부러뜨리기 실험보고서(한국정신과학학회)에서도;
ꡒ영국의 헤이스텟 박사는 염력에 의한 금속의 변형을 연구한 결과 ....... `재료 내부에서 국부적으로 용해가 일어나 질량 결손이 있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일어 날 수 없는 현상이다`라고 말했다ꡓ. 라는 인용이 있다. 그러나 ꡒ질량 결손ꡓ이 바로 질량 에너지의 방출인데, 그것이 측정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심스럽다. 왜냐 하면 부러뜨리는 정도에 필요한 에너지라면 질량으로 환산할 경우 너무 작아서 도저히 측정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1g의 질량은 3천만 KWh의 에너지에 해당한다. 이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다.) 다만 스푼을 부러뜨리는 에너지의 근원이 스푼 그 자체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점은 내 생각과 일치한다.

이와 같이 원자 또는 소립자가 자체에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에 대하여 가능성이 있는 이론적 또는 원리적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에너지에는 운동(열)에너지와 중력 및 자기장에 의한 포텐셜 에너지, 그리고 상대성원리의 <질량-에너지 등가;E=MC^2>에 의한 질량에너지가 있다. 이 중에서 포텐셜 에너지 또는 질량에너지가 진동을 위한 운동 에너지로 변환되어야 할 것이다. 포텐셜 에너지는 그 주위의 중력이나 전자기장이 변하지 않는 한 변하지 않으므로 제외시킬 수 있다. 그러면 남는 것은 질량 에너지뿐이다. 코난 도일의 소설 주인공 명탐정 ꡒ샬록 홈즈ꡓ의 원칙 -- ꡒ불가능한 것들을 모두 제외하고서 남은 것은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그것이 해답이다ꡓ라는 -- 에 의하면 질량 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일반적으로 질량 에너지가 방출되는 경우는 원자핵의 융합과 분열 때뿐이다(엄밀하게는 이것도 원자핵 결합의 포텐셜 에너지 차이가 방출되어 나오는 것이지만, 결국 질량의 차이로서 나타나므로 여기서는 ꡒ질량 에너지ꡓ라 표현하고 있다).
소립자의 질량은 일반적으로 그 정지질량을 말하는 것이다. 입자가 외부로부터 열이나 운동 에너지를 받으면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질량이 증가한다.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서 입자는 그 진동 즉 운동에너지가 영이 될 수 없다. 절대영도인 마이너스 273。K까지 온도를 낮추어도 입자는 진동한다. 이 진동을 ꡒ영점진동ꡓ이라 하며, 이런 성질 때문에 절대온도는 가상적인 한계점일 뿐, 실제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온도이다. 즉 `정지질량'은 가상적인 양으로서, 질량은 자체의 에너지에 따라서 변화하는 물리량인 것이다. 상대성원리에서 물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질량이 커지고, 속도가 광속에 달하면 질량은 무한대가 된다. 이처럼 운동 에너지 등의 부가적인 외부 에너지가 질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질량 에너지가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이 원자력 발전이나 핵 폭탄의 핵에너지인데, 문제는 운동에너지는 바로 질량 에너지가 되지만, 질량 에너지는 그리 쉽게 운동 에너지로 변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립자의 질량(정지질량)은 소립자의 근본적 성질 중의 하나로서 상당히 안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안정 또는 확정되어 있는 양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소립자의 본성의 총체라 할 수 있는 소립자의 <식>에게 그 질량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도록 <기>를 통하여 `지시'를 보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가장 쉬운 보기로서, 소립자의 위치, 또는 운동량을 나타내는 파동함수는 한 점(량)에 결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퍼져 있다. 이것이 관측 시에 수축하여 한 점(량)이 되며, 이 과정에 소립자의 식과 관측자의 식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 양자역학과 나의 견해이다. 그렇다면 소립자, 즉 물질의 질량 역시 일정 범위에 퍼져 있는 양이며, 이것이 필요(관측) 시에 일정량으로 수축(결정)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소립자의 질량 - 예를 들어서 전자 한 개의 질량이 9.1의 마이너스 31승 Kg이라는 것은 측정치의 평균값일 뿐, 이론적으로 그만한 양이 되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약간의 ‘퍼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훨씬 더 타당한 것이다.
또한 불확정성 원리가 이 생각에 대한 다른 이론적 근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이라면 에너지의 불확정 폭이 커진다'는 원리 말이다. 원자의 열 진동 주파수와 공명하는 주파수의 기로서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질량을 운동에너지로 변환시키도록 지시를 보낸다면 원리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 강철 스푼을 휘거나 부러뜨리는 정도의 에너지라면 그것을 질량으로 환산한다면 너무나 작은 양이라서 숫자로 표시할 수도 없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도의 양이라면 불확정성 원리에 의한 불확정량이나 비국소장 이론 등에서의 소립자의 시공간적 퍼짐량보다 더 작은 것이다. 아울러, 이 가정은 소립자가 어떤 자유도로서의 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식이 소립자 자신에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가정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ꡐ식ꡑ에 대한 나의 가정의 현상적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소립자가 자신의 질량을 스스로 운동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이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있다. 입자-반입자의 쌍소멸 현상이 그 근거이다. 입자와 반입자가 만나면 둘 다 소멸되면서 그 질량을 모두 에너지로 방출한다. 이 과정에서 외부의 작용은 없다. 소립자 자신의 성질이 그러할 뿐인 것이다. 소립자는 자신의 질량을 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성질도 소립자의 식의 일부임은 물론이다. 물질의 질량은 결코 고정된 일정한 값이 아니다. 사실 질량이 에너지로 변하는 과정은 원자력 말고도 우리 주위에 흔히 있는 것이다. 탄소가 산소와 결합(연소)할 때에 생기는 이산화탄소의 질량은 산소와 탄소의 질량의 합보다 극히 미소하게나마 작다. 그 질량의 차이가 열로서 나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에 다시 에너지를 주면 산소와 탄소로 분리되는데, 이때 물론 산소와 탄소의 질량의 합은 이산화탄소의 질량보다 크다. 실인즉 모든 에너지 변환은 질량의 변화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서 질량의 에너지 변환이 기에 의해서 임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위에서 예로 들은 연소과정 등에서의 질량-에너지 변환은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물리법칙에 의한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질량>이란 것에 대해서 좀 더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씀 드렸지만, 전자는 크기가 없는 점입자로서 취급된다. 그런데 전자는 분명히 전하와 질량을 가지고 있다. 어떤 크기의 전하와 질량이 시공간의 한 점(전자)에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이유로 생기는 문제점은 이미 앞에서 설명 드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으로 일본의 유가와 등이 제창한 비국소장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4차원 시공간이 제 5차원 방향으로 약간 ꡐ퍼져ꡑ있는 상태라 가정한다. 즉 시공간을 ꡐ확장ꡑ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4차원에서 전자의 크기를 줄 수 없으므로 5차원 방향으로 그 크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때 제5차원 좌표를 샤프하게 정하면 질량이 ꡐ애매모호ꡑ하게 퍼진 상태가 된다. 즉 질량이 딱 부러지게 정확한 값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서 질량은 운동량의 제5차원 성분(질량x광속도;mc)으로 표시할 수 있다. 수식적으로는 공간 3차원에 시간을 더하여 4차원, 여기에 다시 질량을 더하여 5차원이 아닌가 하고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을 정리하면 질량 역시 엄격하게 고정되어 있는 양이 아니라, 미소하게나마 오차(흔들림)가 있는 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소립자는 여건(다른 입자와의 결합, 기)에 따라 질량이 변화하고 그 변화는 에너지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기를 `제 5의 물리적 힘'이라는 현상과 일치하지 않는 무리한 가정을 배제하고서 염력의 작용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생각이 `상상' 수준의 가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 못된 것일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염력으로 강철 스푼을 휘어지게 하고 부러뜨리기도 하는 현상, 기가 힘으로서 측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정은 내 생각으로는 이것뿐이다.
소립자의 식에 기를 보내어서 소립자의 식이 자신의 질량을 에너지로 바꾸게 할 수 있다는 가정이 만약 틀리지 않다면, 여기서 미래의 에너지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석유와 석탄의 화석 에너지가 거의 고갈 상태에 와 있다는 사실은 인류의 미래에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새로운 유전의 발견과 채유기술의 발달로 가채 매장량이 1972년의 <로마 클럽 보고서>의 예상보다 대폭 증가하긴 했지만, 지구상의 석유가 고갈될 날은 그리 멀지 않았다. 우라늄을 연료로 하는 핵분열 에너지는 그 위험성뿐만 아니라 우라늄 역시 매장량이 그리 풍부하지 못한 것이다. 우라늄, 플로토늄 등의 핵연료 확보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일본은 일찍부터 플로토늄을 사재기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이 유럽으로부터 도입하는 플로토늄을 동해안 쪽으로 수송하려는 계획에 환경단체들이 일제히 반대 운동에 나섰던 일이 불과 얼마 전이다. 태양, 풍력, 조력(潮力), 지열(地熱) 등의 대체 에너지는 지구상에 소수의 인간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양밖에 안 된다. 현재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에너지원은 핵융합 에너지인데, 이 방법은 초고온에서의 플라즈마 제어가 너무 어렵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엄청난 예산을 소비하며 연구 실험을 계속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실현 가능성조차 의문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자들은 ꡒ50년쯤 후에ꡓ 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과학자들이 ꡒ50년쯤 후에ꡓ라고 말하는 것은 ꡒ불가능해 보이지만 혹시나.......ꡓ라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인 것이다.
약 10년 전에 ꡒ저온 핵융합ꡓ의 가능성이 발표되어 세계를 흥분에 휩싸이게 했었지만, 현재로서는 `잘 못된 실험'이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 때 저온 핵융합 연구에 달려들었던 많은 과학자 연구소들은 현재 거의 다 손을 들었다. 소위 `신과학'이라는 의사(疑似)과학에서 거론하는 `공간에너지'는 그저 공상과학(SF) 수준일 뿐이다. 현재 상태대로라면 불과 수십 년 이내에 인류에게는 대 파국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에너지 문제이며, 그 예측은 현재로서는 심히 비관적이다.
나의 `상상'이지만 기로서 소립자의 질량 에너지를 방출시킬 수 있다면 에너지 문제는 일거에 해결된다. 에너지의 해결은 자원, 환경 등 모든 문제의 해결을 의미한다. 자원의 부족은 순환 재사용으로, 환경은 엄격한 처리로서 현재의 기술로 충분히 가능한데 오직 그에 소모되는 에너지 비용만이 문제인 것이다.

 

 

 

 

 

<텔레파시>

텔레파시는 의식이 기를 통하여 상호 정보를 교환하는 현상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기를 감지할 수 있는 극히 예민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서로의 식 또는 기의 주파수가 공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무전기가 서로 주파수를 맞추어야 교신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귀신 등 사후식과의 교신도 텔레파시 현상에 속할 것이다.
식이 기를 통해서 물질 그리고 다른 식들과 상호 작용한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다. 그렇다면 비교적 쉬운 일일 것으로 보이는 텔레파시 현상이 왜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아마도 생명체의 의식은 자신의 육체(의 생체현상)와 너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서 다른 의식과의 상호작용이 어렵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의식이 고도로 순화되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전달되는 정보의 분량이 그리 만만치 않은 양이다. 우리 의식 속을 잠시 스쳐 지나가는 짧은 생각도 그 배경이 되는 부분--영상, history 등--까지 모두를 bit 수로 환산하면 적지 않은 양이다. 대개 간단한 도형의 전송을 텔레파시의 실험 대상으로 하는 이유가 그래서 이다.
<생체의 기 보호막> 설도 텔레파시가 일반적이지 못한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생체가 기 보호막이 없이 외부의 기에 노출되어 있다면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 때문에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가 생명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으려면 말라식에 의한 자기 보호 본능과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텔레파시를 수신하려면 기 보호막을 걷어야 하는데, 물론 그것이 그리 쉬울 리가 없다. 오랜 수련, 수도로서 정신이 지극히 맑고, 말라식의 자기 금제(禁制)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특이하게 기의 감응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도 가능할 것인 바, 보고된 사례는 대부분 그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한 실험 결과들이다.

현재까지 보고된(내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텔레파시의 실험 사례 중 가장 유명하고 신뢰할 만한 것은 1966년 4월 19일, 러시아에서 행해진 것이다. 과학자들의 감시 아래서 3000 Km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이 실험을 했는데, 금속 용수철을 ꡒ둥글고 금속으로 되었으며 빛이 나고 들쭉날쭉하며 코일같다ꡒ, 그리고 검은 플라스틱 손잡이를 가진 스크루 드라이버를 ꡓ길고 가늘며, 금속 플라스틱, 검은 플라스틱ꡒ이라고 전송되었다.(라이얼 왓슨의 “초자연).
기적(氣的) 능력이 고도로 발달된 사람에게 있어서도 텔레파시는 이처럼 쉽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의식은 생명유지를 위한 생리현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다른 의식과 기를 통한 교감능력이 미약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텔레파시 현상을 현실에서 응용해보려는 많은 연구와 실험들이 아직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기타 초능력과 기>

우리의 의식이 뇌 세포와 가장 밀접하게 작용할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뇌 세포는 자체적으로 전기 화학적인 작용으로 의식을 유지시키며 의식에 에너지를 공급할 것이다. 우리 뇌 세포는 물질은 물론 인체 내에서도 가장 기를 느끼기 쉬운 기관일 것이다.
대중 앞에 나서면 `기가 죽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에 대한 감각이 예민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들의 기를 집중적으로 받으면 심리적, 신체적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초능력이 공개적 과학적 실험으로 입증되기 어려운 이유는 실험 당사자뿐만 아니라, 실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기가 실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실험이 진행되는 긴장된 시간 동안에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기가 강해질 것이며, 그 기들은 비록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지만 당연히 실험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기들이 실험 대상에 집중된다면 더 강한 효과가 나오겠지만, 아무래도 실험 당사자, 즉 기를 발휘하려는 사람에게 집중될 것이므로 실험 결과에 부정적인 영향이 될 것이다. 더구나 실험 당사자는 기감(氣感)이 지극히 예민한 사람이므로, 주위의 기들이 자신의 기 집중에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기감이 예민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예는 점장이, 무당일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들은 바로서 무속인들은 상대방의 기를 느낌으로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전공보다는 무당에 대한 연구로서 더 유명한 서정범 교수는 ꡒ용한 무당들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동전의 숫자를 쉽게 알아맞힌다. 그러나 내 손안의 동전이 몇 개인지 나 자신도 모르고 있을 때에는 맞추지 못한다ꡓ라고 말한다.
사후식과 교감할 수 있을 정도로 기감이 발달한 사람들이 소위 ꡒ신들린 사람ꡓ이다. 그런 사람들의 능력을 보면 사후식은 살아 있는 의식의 무의식까지 교감하여 읽어 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후식도 미래를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식과 기도 물리법칙을 벗어나지 못할 것인 바, 미래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양자역학이 밝혀 낸 바 있다. 또한 인간의 의식이 자유의지를 가짐으로서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데, 어찌 사후식인들 앞일을 알 수 있을 것인가? 실재로 아무리 용한 복술인 무당들도 미래에 대한 예측의 정확도는 아주 낮다. 다만 수준이 높은 훌륭한 사후식이라면 사후식들의 `네트워크'에 축적되어 있는 데이터 베이스를 이용하여 어떤 사람의 `미래에 있어서의 경향'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어떤 사람의 업보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귀신>

불교에서는 사후에 영혼이 저승으로 가는 데 49일이 걸린다 한다. 말라식이 소멸되어서 생시와의 연결이 끊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 것이 49일인지 얼마인지 나는 모르지만, 그 기간은 우주식과 완전히 연결되는 데에 소요되는 시간이 아닐까? `저승으로 간다'라는 것은 `우주식과 연결된다`라고 생각한다. 우주식과 연결된 사후식이 괴롭고 어지러운 생시를 다시 돌아보거나 연연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을 몇 알고 있다. 물론 그 사람들이 헛것을 본 것인지도 또는 거짓말일런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내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뿐만 아니라 귀신의 목격담은 동서고금을 통해서 무수하게 많다. 귀신은 무엇일까?
불교, 그리고 일반적인 생각은 `저승으로 가지 못한 영(식)'이다. 즉 우주식에 연결되지 못하고서 외톨이로 떠돌거나, 연결이 미흡해서 우주식에 완전히 융합하지 못한 사후식일 것이다. 이런 식들은 생시--생명계 부근을 배회하리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이런 사후식들을 위해서 <천도제>를 지내는데, 천도제는 떠도는 사후식을 우주식과 연결시켜 주는 의식일 것이다. 그 원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를 모아서 사후식에 전해줌으로서 사후식의 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천도제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우주식에 접속되었다가 다시 떨어져 나오는 사후식도 있다. 그래서 얼마 후에 다시 천도제를 올리는 일도 있다.
ꡒ귀신들리는 현상ꡓ은 아마도 사후식이 살아 있는 의식을 어느 만큼 지배할 수 있는 경우일 것이다. 이렇게 되는 사람들은 의식의 힘 즉 기가 약해서 사후식의 `침범'을 받는 것이다. 무당들은 기가 강해서 사후식과 공존하거나 심지어 부릴 수도 있지만, 사후식보다 기가 약한 사람에게 사후식이 들어오면 그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사후식에게 있어서 살아 있는 인간(또는 동물의 사후식이면 같은 동물)의 뇌는 무척 그립고 부러운 곳이다. 특히 생시에 말라식이 -- 생에 대한 집착이 -- 강했던 사후식일 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귀신이 들리면 의식이 정상적으로 작용하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제사>

조상들의 사후식을 대상으로 하는 제사는 천도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물론 조상의 사후식이 우주식에 접속되지 못했다면 그 식을 달래어서 우주식으로 보내는 의미도 가지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우주식에 접속되어 있는 조상의 사후식에게 `인사'를 전하고 대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후손들이 조상들의 식을 통하여 우주식과 간접적인 연결 통로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주식은 `좋은' 식이니까 후손들에게 복이 될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서양인들은 조상 제사를 모시지 않지만, 우리보다 더 잘살지 않는가?'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물질적인 풍요함이 반드시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우리가 사후식의 네트워크에 접근하는 데는 우리의 의식과 가장 밀접하여 <동기 감응>이 쉬운 조상의 사후식을 통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임은 당연하다. 필자는 제사가 인간이 사후식의 세계로부터 좋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으며, 조상의 사후식에 살아 있는 인간의 기 에너지(물론 ‘정보’)를 공급해 드릴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의식(儀式)이라 생각한다.

 

 

<물질의 기>

기를 느끼지 못하는 주제에 내가 물질에 대한 기까지를 말하는 것은 좀 무엇하지만, 지금까지 말씀 드린 바, 기에 대하여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면 `아마도 물질의 기현상은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정도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나의 생각이 물질에 있어서의 기 현상과 일관성 있게 합치되는가 하는 검증의 의미로서도 필요할 것이다.
물질의 기는 의식의 기보다 훨씬 미약할 것이다. 그러나 기감(氣感)이 발달한 사람들은 모든 물질의 기를 느낄 수 있으며, 물질에 따라서 그 기의 느낌도 각각 다르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생물 특히 사람의 기는 비교적 느끼기가 쉽다. 그러나 물질의 기는 미약해서 느끼기 어렵다. 이런 현상은 생물과 무생물의 기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무생물의 기는 단순하다. 무생물과 생물의 차이는 그 조직구성의 복잡도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있는 것이다. 큰 바위나 산, 바다는 구성 입자들의 단순 모임일 뿐이지만, 생물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정교하게 조직화되어 있다. 즉 복잡계의 자기조직화 효과에 의해서 그 <식과 기>가 무생물 보다 훨씬 더 강한 것이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단백질은 그 분자량에 대략 수십만에 이른다. 그래서 `고분자'라 부르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바위나 흙의 단위 분자인 산화규소, 산화철 등은 분자량이 불과 수십 내지 수백에 지나지 않는다. 그 기본 분자량에서 벌써 만 배 정도의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흙의 분자들은 그저 `가까이' 있을 뿐인 데 비해서 생체의 분자인 단백질은 서로 복잡하고도 정교하게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식(기)적인 면에서 생체는 전체가 하나의 통합체이며 단위인 것이다. 이렇게 비교하면 그 분자량의 차이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된다.
산악인들은 산의 기를 느낄 수 있으며, 그 기는 산마다 제각기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기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비교할 수가 없지만, 아마도 사람의 기는 웬만한 산의 기보다 더 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처럼 생물과 무생물의 기는 차이가 있다.
산이나 바다의 기가 작은 바위나 시냇물의 기보다 강력할 것은 당연하다. 전체적인 기의 강도는 규모와 조직도에 비례할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무생물이며 크기가 작지만 기의 강도는 높은 것도 있다. 피라밋, 히란야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피라밋 형태가 그 내부 공간 특히 바닥 면으로부터 1/3 높이에서 특이한 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이 현상들은 잘 알려wu 있는 사실이지만, 라이얼 왓슨의 <초자연 Supernature>에서 몇 가지 사례를 인용하겠다.
1968년 미국과 카이로의 에인 샴스 대학의 과학자들이 백만 달러의 예산으로 ꡒ키프렌의 피라밋ꡓ의 내부구조를 공동 조사한 일이 있다. 그들은 피라밋을 투과하는 우주선을 측정하여 피라밋 내부에 공간이 있는가를 조사하려 했는데, 1969년 당시 최신의 기종인 IBM 1130 컴퓨터로 데이터를 처리한 결과, 피라밋을 통과하는 우주선의 양이 도무지 일정하지 않고 알 수 없는 패턴만을 나타내었을 뿐이었다. 이 조사단의 단장이었던 아므르 고헤드는 후일 인터뷰에서 ꡒ이 같은 현상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피라밋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어떤 힘--비의(秘儀), 파라오의 저주, 마법, 마술 등 당신이 무어라고 불러도 좋은 어떤 힘이 거기에는 존재한다.ꡓ고 말했다.

모양이나 형태가 그 안에서 일어나는 기능들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한 회사는 요구르트 균의 활동을 촉진시키는 용기의 형태로 특허를 받았고, 체코슬로바키아의 한 맥주회사는 맥주 통을 사각형으로 바꾸었다가 맥주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서 다시 원통을 사용한다.(이상 발췌 인용)

피라밋의 효과가 처음 알려지게 된 동기가 이집트의 쿠푸 왕의 피라밋 내부에서 죽은 고양이가 썩지 않고 미이라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 일이며, 그 사실에 흥미를 느낀 체코의 카렐 드르발이 모형 피라밋을 만들어서 여러 가지 물체를 대상으로 그 효과를 실험하다가, 무디어진 면도칼이 다시 날카롭게 재생된다는 사실을 알고서 특허를 얻었던 일이었다. 피라밋의 효과가 면도칼에만 나타나는 것이라면 다른 이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면도날의 강철은 결정을 이루고 있으며, 이 결정은 형태가 일그러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의 형태를 어느 정도 저절로 복원할 수 있다. 면도칼은 피라밋 내부가 아니라 아무 곳에라도 한 동안 버려두면 원래의 날카로움이 다소는 저절로 회복된다. 그러나 피라밋 내부에서 여러 가지 미생물의 배양 시험 결과 ‘어떤 효과’가 유의한 수준으로 인정된다는 실험 결과 보고는 많이 있다. KAIST, 한국정신과학학회 등의 실험 결과 보고에 의하면 피라밋 효과는 <목적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인간에게 좋은 미생물은 성장이 촉진되고 유해한 미생물의 성장은 억제된다. 만약 피라밋의 효과가 물리적인 힘의 작용의 결과라면 이처럼 `목적적'으로 작용할 수 없다. 어떻게 해서 피라밋은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복잡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 단순한 힘은 세균의 증식이나 억제라든지 면도칼의 재생 등 복잡한 작용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지능을 가진 존재가 발휘하는 의도적인 작업이 아니라면 달리 이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물론 피라밋의 효과가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 말씀 드리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근거로 나는 피라밋이 발휘하는 효과는 우주식의 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피라밋의 형태는 기에 민감하게 감응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형태일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어떤 구조, 형태'가 기의 작용에 관계된다는 사실을 통하여, 소립자들이 원자-분자--그리고 생명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기의 강도가 지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나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히란야나 십자가의 효과에 대해서는 확인할 만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만약 효과가 있다면 피라밋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피라밋 효과는 기의 본질이 ꡒ(의)식, 즉 정보의 전달 매체ꡓ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또한 기와 식에도 어떤 작용의 법칙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물리적인 힘이 `지능적'일 수 없듯이 기 역시 그 자체로서 `지능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피라밋의 효과는 분명히 아주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작용한다. 그것도 대체로 인간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말이다. 이 현상은 <우주식이나 사후식, 또는 의식이 피라밋의 형태를 통하여 그 내부의 물체에 기를 통하여 `지시'를 전달하고, 물체는 그 `지시'에 따라서 자체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식이 원하는 데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밖에 해석할 방법이 없다. 이와 비슷한 예를 우리는 생체 내의 단백질 분자의 뭉침에서 보았다.
그리고 피라밋의 효과, 기공사의 기가 미생물의 증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는 기가 물질보다 의식(미생물의)에 더 잘 전달될 수 있고 더 강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큰 절이나 성당, 교회 그리고 서낭당 등에서 우리는 경건한 기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우리의 선입감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한 장소, 건물에는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기의 형태로 서려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곳에 서려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기'가 아니라, 신도들의 의식(염원) 그 자체가 서려 있는 것이다. 물론 의식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서 그러한 장소에 서려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의 의식은 신도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러한 장소나 불상 등의 대상에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기는 단독으로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식과 기의 작용은 거리에 관계없다는 점을 한 번 더 환기시켜 드린다. 신도들의 의식이 그후에 어떤 이유로 그 장소, 대상에서 멀어진다면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경건한 기도 사라질 것이다. 물체에 기를 실어 보낼 수 있다는 기공사들의 이야기도 이와 동일한 이치일 것이다.
내 생각은 이와 같지만, `서려 있는 것'이 기일 가능성도 있다. 거듭 말씀 드렸지만, 나는 아직까지 기의 특성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물리학에서의 `에너지와 힘'처럼 일단 식과 기를 구분하여 정의하고 있지만, 그 둘을 굳이 구분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으며,
식과 기를 합쳐서 `의식을 가진 꼴림'이라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우주식의 경지를 `기의 집합체' 또는 네트워크라 하기에는 단어에 대한 선입감상 좀 무엇한 느낌이 있는 것이다.

 

 

 

 

<풍수 지리>

산이나 대지의 기는 비록 의식의 기처럼 조직적이지 못해서 약하겠지만, 그 크기의 규모가 거대한 만큼 무시할 수는 없을 정도일 것이다. 거듭 기를 느끼지 못하는 나의 신세가 부끄럽지만, 풍수지리의 기의 강도(强度) 자체는 사람의 의식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어쨌건, 인체에 기의 통로인 경락이 있듯이 산과 대지에도 기가 통하는 경락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땅과 물의 형태가 형태창조장과 유사한 작용(능력)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산과 대지의 기, 그리고 땅의 경락 등이 종합적으로 그곳에 거주하는 인간에게 기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 효과가 풍수지리설로 설명되는 작용일 것이다. 풍수지리학의 과학화에 노력하고 있는 최창조교수의 주장처럼 풍수지리는 기후와 물과 땅의 형태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상호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 사주(四柱), 점성술(占星術) >

나는 사주나 점성술 등을 믿지 않는다. 사실 사주 한 번 보러 간 적이 없으니 나는 대한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까지의 나의 생각이므로, 사주나 점성술의 효과가 있다는 가정 하에서 그 이치를 생각해보자.

지구의 생물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천체는 달이다. 그 다음은 해. 해의 중력의 영향은 달보다 훨씬 더 크지만, 그 변화의 차이가 달보다 매우 작아서 중력의 영향은 달이 훨씬 더 큰 것이다. 물론 태양은 햇빛을 보내주니까 전체적인 영향은 압도적으로 크다. 달과 해가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사주 四柱 즉 연월일시는 모두 해와 달과 지구의 움직임과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그 영향력은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그 사주풀이의 정확성은 별 개의 문제로 하고서 말이다.
이처럼 동양의 점술은 해와 달을 기준으로 하는데, 서양의 점성술은 이름 그대로 별자리를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천궁도란 것이 일년에 열 두 개니까 결국 달과 같다. 점성술은 사주의 1/4 에 불과한 것이다. 참고로 점성술의 신뢰성에 대한 실험으로서 믿을만한 것은 1959년 미국의 심리학자 버논 클라크 Vernon Clark의 실험인데, 세부사항은 생략하고, 결과가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우연히 그런 결과가 나올 확률은 1/100이었다. (Lyall Watson, ꡒSupernatureꡓ에서 발췌)

내가 사주에 대하여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어느 해, 어느 월, 어느 일, 어느 시가 어째서 10간, 12지, 5 행에 각각 대응하는가, 즉 어째서 금년이 경진(庚辰)년이며, 오늘이 신축(辛丑)일인가, 누가 정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처음 정할 때에 한 해, 한 달, 하루만 틀려도 `모든 운명의 역사'가 바뀌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어떤 해는 어째서 오행의 금(金)이 되며, 다른 해는 또 어째서 목이 되고 토가 되는가? 누가 언제 무엇을 기준하여 정했는가 이거다.
만약 사주가 신빙성이 있는 것이라면--실제로 사주만으로 매우 정확하게 점을 보아주는 사람을 나도 알고 있다--옛날부터 해와 달, 그리고 태양계 행성들의 운행에 따른 기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정한 덕분일 것이다. 옛날의 도사님들은 손가락으로 갑자을축을 세지 않고서 천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앞을 내다 볼 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풍수지리나 사주(천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은 결국 그런 것들의 기에 민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향력이 더 클 것이다. 기는 상호 작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