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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 아이들의 미소를 지켜 주소서

minjpm 2009. 9. 11. 12:35
뉴스: 이 아이들의 미소를 지켜 주소서
출처: 오마이뉴스 2009.09.11 12:34
출처 : 여행레져
글쓴이 : 오마이뉴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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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사 같으니... 메마른 땅 낡은 집에서 뛰쳐나오던 아이.


ⓒ 문종성


온두라스 국경을 지나면서 시작되는 오르막. 발열된 도로 위로 끈적끈적한 마찰을 빚으며 타이어가 굴러간다. 꽉 끼워진 헬멧에 더위가 파고드니 머리가 지끈지끈거려 채 20분도 못 가 병든 닭 마냥 축 처진다. 타는 목마름을 핑계 삼아 도로 옆 외로이 폐허가 된 낡은 교회 그늘 아래로 들어갔다. '철푸덕' 쓰러져 처량한 신세한탄하며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있을 때 철사로 된 경계선 뒤에서 호기심 어린 시선의 아이들이 나타났다.

달랑 두 가구. 그래서 서로 의지하며 우애 깊어 보이는 아이들. 비록 남루한 옷이지만 미소만은 향기롭다. 아이의 눈만큼 잠잠한 평안을 안겨주는 게 또 어디 있을까. 녀석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액정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깔깔거리며 또다시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마을과 격리된 삶을 살아 외부인을 경계할 만도 한데 자기들과 얼굴이 다른 웬 이상한 아저씨가 땡볕에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습이 어지간히 신기했나 보다. 너무 예쁜 미소를 숨기지 않고 보여줘서, 또 나를 멀리하지 않아 그 마음 담아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 아름답구나 잠시 그늘에서 쉬고 있을 때 만난 아이. 시원한 얼음물을 대접받았기에 가족과 동네 아이들에게 카라멜과 인삼차를 주었다.

ⓒ 문종성


'미치겠다, 환장한다'라는 격한 용어는 함부로 쓸 것이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 딱이다. 도무지 폭염과 도로 이외에 다른 것들은 나를 만나줄 생각조차 않는다. 무더위는 바람까지 말려버릴 듯한 기세다. 하지만 하늘은 언제나 고통의 보자기에 축복이라는 선물을 감싸 놓는다.

심봤다! 도로 옆에 수박 가게가 보였다. 허기도 졌겠다, 메마름이 극심하겠다, 당장에 한 통을 사서 그 자리에서 해치웠다. 그물 침대에서 신선놀음 하던 주인은 나를 보더니 그저 허허 웃는다. '대관절 식신이 빙의된 이 청년의 절박한 갈급함은 어떤 연유에선가?' 하는 표정이다.

입을 쓰윽 닦고는 그제야 헤벌쭉 만족한 웃음을 보이니 남자는 이것저것 물어온다. 그리고는 엄청난 은혜를 하사하는 황제의 위용을 갖추며 너그럽게 한 마디 건넨다. '자네가 먹은 수박은 내 선물로 받아두게'라며. 밥과 정에 굶주린 자전거 여행자는 그 자비로운 눈길을 바라보며 감격에 빠진다. 명백하게 그의 작은 배려는 다시 달려갈 힘이 된다.





▲ 수박 아저씨 게걸스레 수박으로 허기와 갈증을 달래는 나를 보더니 계산을 받지 않았다. 이런 작은 것에 더 큰 감동을 맛본다.

ⓒ 문종성


다시 얼마간 달려가다 도로 건너편에서 나를 보고는 장난을 멈춘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가볍게 인사하는 정도였지만 녀석들에겐 자기들에게 주는 관심이 특별했나 보다. 아이들이 손을 들며 깡충깡충 뛰었다. 자기네들을 봐달란 거다. 한 번 더 손을 흔들다 문득 아이들의 집을 봤다.

움막에 비견될만한 처참한 몰골. 전기며 수도조차 들어오지 않는, 게다가 차들이 세차게 지나는 위험한 도로 바로 옆에 지어진 단 한 채의 위태로운 거주지. 가난이란 단어를 누구보다 자주 만나며 여행길을 달려가는 중이지만 마주할 때마다 가슴에 돌을 얹는 기분이다.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과자나 비스킷 몇 개, 혹은 비상식량을 주는 것밖에 없다. 더 씁쓸한 건 내가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는지 단지 어쭙잖은 동정심으로 대하는지 분별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값싼 동정으로 자기만족이나 일삼는 천박한 여행자가 내가 아닐까 불안함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 오차타 아주머니 쌀음료 맛이 나는 시원한 오차타.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이 좋은 온두라스 상인들.


ⓒ 문종성


그런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내가 건네 준 미숫가루와 비스킷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표정을 짓고 있다. 작은 관심에도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게 참으로 놀랍고도 감사하기만 하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롤모델도 나왔는데 지속가능한 분배의 이상향은 이 가난한 나라의 시스템에서 뿌리내릴 수는 없는 것일까. 세상으로부터 사실상 무관심 격리된 아이들의 내일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함 그 자체다. 그저 사회 부적응자로 삐뚤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건 지나친 간섭일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부유한 아이들보다 잘 웃는 것 같다. 누리지 못하는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만족할 줄 알기 때문이리라. 부잣집 아이들보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사탕은 더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 더러는 알량한 욕심에 사고뭉치들도 있지만 빵 하나, 다 낡아빠진 매트리스, 지지직거리는 텔레비전…. 최소한 삶에 주어진 것에 소중함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 가슴이 아프다 반대편 도로에서 손 한 번 흔들었을 뿐인데 나를 보더니 뛰쳐나온 아이들. 전기도 물도 없이 살아가는 불편함은 나만 느끼는 것일까? 가방 구석구석을 뒤져 미숫가루와 비스킷을 주었다.

ⓒ 문종성


아이들을 뒤로 하고 돌아 나오는 길. 무엇보다 이 아이들이 주변의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길, 절대 자포자기에 매몰되어 떠밀리는 삶이 아니길, 지금의 순수한 미소가 커갈수록 스스로와 타인을 향한 분노나 증오로 바꾸지 않길 바라마지 않으며 마른 바람을 등지고 오르막을 거슬러 내달렸다.

'부디 이 아이들의 미소를 지켜 주소서.' 작은 기도와 함께.






'이 아이들의 미소를 지켜 주소서.'


ⓒ 문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