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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림스키 코르사코프 - 세헤라자데

minjpm 2009. 12. 23. 17:47

원문에 들어있는 음악을 들으시려면, 본문 맨 아래 있는 원문가기 링크로 가셔서 들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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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른바 ‘러시아 5인조’ 작곡가 가운데 가장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으며, 특히 빼어난 관현악법은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음악가들의 찬탄을 받았다. 그 가운데서도 [세헤라자데]는 [스페인 기상곡] 및 [러시아 부활제 서곡]과 더불어 이른바 작곡가의 ‘3대 관현악곡’으로 꼽히는 걸작으로, 완숙기에 도달한 그의 관현악법이 실로 찬란한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이들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 이렇다 할 관현악곡을 작곡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 곡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단순히 관현악법 때문만은 아니다. 전곡에 걸쳐 짙게 배어 있는 이국적이고도 관능적인 오리엔트 정취와 단순하고도 호소력 짙은 선율미야말로 이 곡을 오늘날의 명성에까지 끌어올린 원동력인 것이다. 물론 이 곡이 누구나 아는 친숙한 이야기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일 것이다.

 

no 아티스트/연주  
1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 / 프리츠 라이너[지휘] &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듣기
2 칼렌다 왕자의 이야기 듣기
3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 듣기
4 바그다드의 축제 – 바다 – 난파 – 종결 듣기

2010년 1월 3일까지 무료로 전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잔인한 왕과 지혜로운 여인, 그리고 천하룻밤의 사랑

흔히 ‘아라비안 나이트’ 또는 더 적절하게 ‘천일야화’(千一夜話)라고 알려진 장대한 설화집이 정확히 언제, 누구의 손으로 작성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워낙 방대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오랜 세월에 걸쳐 아랍 세계 각지의 구전 설화가 모여 완성되었으리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고 어떤 이야기가 이 버전에는 있는데 저 버전에는 없는 등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버전을 관통하는 공통점도 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어느 잔혹한 왕과 지혜로운 여인의 천하룻밤에 걸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샤리아르라는 왕이 있었다. 젊었지만 어질고 지혜로운 왕이었던 그는, 어느 날 왕비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왕비를 죽여 버린다. 이후로 여자를 믿지 못하게 된 왕은 매일 밤마다 처녀를 데려다 동침한 후 이튿날 아침에 죽이는 나날을 반복하게 된다. 이 무렵, 한 대신의 딸 세헤라자데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탄식을 듣고 왕의 신부가 되길 자청한다.

 

그녀는 첫날밤부터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고, 왕은 그녀의 이야기 솜씨에 홀려 어느새 천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세헤라자데의 마지막 이야기가 끝났을 때 샤리아르 왕은 자신이 그녀를 진심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영원히 해로할 것을 다짐한다.


 

이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4악장짜리 대작 교향시를 이해하는 데 이런 이야기를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그의 의도는 특정한 줄거리를 음악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동양적인 분위기 자체로써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있었으니 말이다. 각 악장의 제목이 다소 애매한 것 역시 이런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를 통해 이 곡을 알게 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 배경곡으로 이 작품을 사용했는데 4분 남짓한 음악은 44분에 이르는 [세헤라자데]의 여러 주제를 솜씨좋게 편집한 곡이다.

 

 

 

광대한 화폭 위에 펼쳐낸 매혹적인 음의 팔레트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세헤라자데]를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1888년 초의 일이었다. 작곡가는 그해 6월 25일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곡의 초고를 완성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관현악 총보가 완성된 것은 7월 26일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곡과 병행해서 작곡한 [러시아 부활제 서곡]은 8월 20일에 완성되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당시에 실로 창작력의 정점에 있었던 셈이다. 작곡가는 이 곡에 착수하게 된 계기에 대해 특별히 밝히고 있지 않으나, 원래부터 환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또 젊었을 때 해군 장교로서 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녔던 경험 역시 작곡가에게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불어 넣었으리라고 추측된다.

 

1악장 -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
‘라르고 에 마에스토소’(아주 느리고 장중하게)로 지정된 서주에서 두 가지 주제가 등장한다. 맨 첫머리에 제시되는 위압적인 금관 주제는 샤리아르 왕을, 템포가 렌토로 바뀌면서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처연하고 애소하는 듯한 선율은 세헤라자데를 묘사한 것이다. 이 두 주제는 전곡에 걸쳐 등장한다. 이어지는 주요부를 여는 파도가 넘실거리는 듯한 선율은 별개의 주제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왕의 주제를 변형한 것이다. 머잖아 신드바드의 주제가 플루트로 조용히 제시되고, 다시 독주 바이올린이 세헤라자데의 주제를 화려하게 장식한 형태로 연주한다. 이후에도 왕과 세헤라자데, 신드바드의 주제가 서로 얽히면서 자유롭게 전개되어 나간다.

 

2악장 - 칼렌다 왕자의 이야기
‘칼렌다’는 이슬람의 탁발승을 말하는데 작곡가가 구체적으로 어느 이야기를 지목해 음악화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서주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세헤라자데의 주제를 연주한 뒤 바순이 탁발승 왕자의 주제를 연주한다. 이 선율을 익살스럽다고 묘사한 글이 많지만 개인적인 느낌을 밝혀도 된다면 차라리 애절하게 들린다. 이 주제가 여러 악기를 거치면서 점차 고조된 뒤 새로운 주제가 금관으로 힘차게 연주된다. 이 주제를 바탕으로 해 중간부가 다채롭게 전개된 뒤 다시 왕자의 주제로 되돌아가 화려하고 박진감 있게 마무리된다.

 

3악장 -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
현악기의 관능적인 선율이 샤리아르 왕과 세헤라자데의 사랑을 묘사한다. 중간부에서는 작은북의 독특한 리듬을 타고 경쾌한 주제가 클라리넷으로 연주된다. 최초의 주제가 다시 등장하고, 왕과 왕비의 주제를 거쳐 다시 중간부 주제가 재등장한 뒤 목관이 세헤라자데의 주제를 귀엽고 익살스럽게 암시하면서 끝난다.


 

 

4악장 - 바그다드의 축제-바다-난파-종결

이전 악장들의 여러 주제가 번갈아 가며 등장해 일대 축제를 벌이는 마지막 악장이다. 먼저 왕의 주제가 성급하고 퉁명스럽게 제시된 뒤 이를 무마하듯이 세헤라자데의 주제가 등장한다. 두 주제가 변형된 형태로 한 번씩 더 등장한 다음 악상이 일변해 급박하게 전개되는 리듬을 타고 바그다드의 축제가 펼쳐진다(도중에 탁발승 왕자의 주제도 나온다). 이어 1악장에서의 바다 선율이 더 큰 스케일로 펼쳐진 뒤 배가 난파하고 나면 2악장의 중간부 주제와 3악장 서두 주제(목관으로 연주된다)가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독주 바이올린이 세헤라자데의 주제를 약음으로 가녀리게 연주하고, 이어 저음현이 왕의 주제를 차분하게 연주한 뒤 양쪽이 어우러지면서 두 남녀의 진정한 결합을 알린다.

 

연주자들은 이 곡의 연주를 그리 반기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몇 개의 단순한 주제를 음색만 바꿔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은 고역이라는 이야기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아니나, 바로 그렇기에 이 곡이 위대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천하룻밤에 걸쳐 이어진 왕과 왕비의 이야기만큼이나 면면히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은 듣고 또 들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렇듯 어느 잔혹한 왕과 아름답고 지혜로운 아가씨의 사랑은 우리에게 세계 문학사상 불멸의 걸작뿐만 아니라 세월을 뛰어넘어 사랑받았고 앞으로도 사랑받을 음악도 남겨 주었다.

 

 

 

황진규
황진규 /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콰이어 앤 오르간>, <코다>, <라 무지카> 등 여러 잡지에 리뷰와 평론, 번역을 기고해 온 음악 컬럼니스트이다.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

이미지 TOPIC / corbis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16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