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pm(민제이피엠) 의 음악과 함께하는 삶~
SOUL CLAMP

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오페라 교실 - 오페라 음반 선택법

minjpm 2009. 12. 28. 12:08

며칠 전 어느 대학에서 오페라를 주제로 특강을 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한 학생이 다가와 질문을 하더군요. 오페라를 잘 알고 싶은데, 어떤 작품부터 영상으로 보면 좋겠느냐는 물음이었지요. 이왕이면 제가 첫손에 꼽는 작품부터 보고 싶다면서 그 학생은 ‘제일 좋아하는 오페라가 뭐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저는 서슴없이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Don Giovanni] 라고 대답했고, 그 학생은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돈 조반니]에는 수없이 많은 음반과 영상물이 있는데, 그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 보느냐에 따라 이 오페라에 대한 첫인상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래된 고전적 영상물로 처음 [돈 조반니]를 본다면 열악한 음질과 화질 때문에 러닝타임 세 시간 내내 지루함을 참아야 할 수도 있고, 또 도발적이라 할 만큼 현대적인 연출의 영상물을 보게 된다면(돈 조반니가 ‘잘생긴 젊은 귀족’이 아니라 현대의 마약중독자나 정신병자 혹은 노숙자로 등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이 작품의 내용과 주제를 완전히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돈 조반니] 뿐만 아니라 모든 오페라 작품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사실 처음 본 오페라 공연, 혹은 처음 본 오페라 DVD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 재미없고 지루한 예술’이라며 오페라를 평생 삶에서 밀어놓을 수도 있고, 첫눈에 반해서 그 순간부터 오페라와 평생 친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첫 오페라의 선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럼 오페라와 친해지려 할 때 공연, 음반, 영상물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 게 좋을까요? 이제부터 그 요령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음반 선택은 불멸의 고전 명반부터!


전곡음반

오페라를 무대극보다 음악 중심으로 즐기려 할 때는 전곡 음반을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오페라 전곡 음반은 각 작품의 연주시간에 따라 대개 CD 두 장 또는 세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CD와 더불어 작은 해설 책자가 들어있는데요, 작품 해설과 함께 리브레토(Libretto, 오페라 대본)가 실려 있는 소책자입니다. 전 세계 오페라 작품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오페라의 리브레토는 대개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 독일어 4개국어를 대조해 볼 수 있게 되어 있고, 원어가 러시아어, 체코어, 헝가리어 등인 경우에도 최소한 영어 번역본이 들어 있습니다.


 

리브레토

오페라에 사용되는 단어와 문장들은 대체로 쉽고 반복이 많기 때문에, 영어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리브레토의 영어 번역본을 따라가면서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극의 내용과 단어의 뉘앙스를 탁월하게 살려낸 음악에 절로 감탄하게 됩니다. 물론 원어인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 독일어를 이해하고 듣는다면 더욱 깊이 있게 매료될 수 있습니다. 오페라에 빠져들게 되면 오페라의 대표언어인 이탈리아어를 배우려는 욕구도 저절로 생겨나게 된답니다.


아리아 모음집

여러 오페라 속의 유명 아리아만 뽑아서 편집해놓은 컴필레이션 음반을 피해야 한다는 견해도 많지만, 실제로는 그런 아리아 모음집을 듣다가 아름다운 선율에 매혹되어 오페라에 입문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처음부터 한 작품의 전곡 음반을 선택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아리아 모음 CD를 하나 택해 반복해서 듣다가 그 중 특별히 끌리는 아리아가 있는 오페라의 전곡 음반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아리아 멜로디와 오케스트레이션

이미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고 관현악곡을 즐겨 감상한다면 베르디 후기 작품이나 바그너 음악극, 19세기 후반 프랑스 오페라나 현대 오페라 등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에 아직 익숙하지 않거나 기악보다 성악을 좋아하는 감상자라면 성악 멜로디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베르디의 대표 걸작들([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일 트로바토레] 등),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가 대표하는 벨칸토 오페라들([세비야의 이발사], [노르마], [사랑의 묘약] 등), 그리고 모차르트 걸작 오페라들([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부터 감상하는 것이 오페라와 친해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오페라 중에서도 아름다운 멜로디와 박진감 넘치는 관현악을 동시에 지닌 비제의 [카르멘]은 초심자에게 좋은 선택이 되겠지요.

 

불멸의 명반

녹음 기술은 갈수록 완벽해지지만 오늘날 활동하는 오페라 가수들 중에는 1950~70년대에 명반을 남긴 대표적인 가수들만큼 경묘한 창법이나 음색을 지닌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그래서 마리아 칼라스, 존 서덜랜드, 몽세라 카바예, 주세페 디 스테파노, 프랑코 코렐리, 루치아노 파바로티처럼 여러 배역의 이정표가 될 만한 성악가들이 주역을 맡은 과거의 명반부터 감상하는 게 좋습니다.


 

 

 

 

영상물은 가급적 최근 것으로!

공연 실황 또는 오페라 필름

오페라를 음악과 극으로 동시에 즐기고 싶다면 DVD로 제작된 공연 실황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오페라 필름을 찾아보면 됩니다. 그런데 영상물의 경우에는 선택의 기준이 음반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가수의 목소리에 초점을 두고 오페라를 감상할 생각이라면 70~80년대에 밀라노 라 스칼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런던 코벤트가든 등 대표적인 오페라 극장에서 제작된 영상을 감상하는 것도 좋습니다. 파바로티, 도밍고를 비롯한 명가수들의 젊은 시절 싱싱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최신 영상물의 영화적인 재미

그러나 평소에 영화를 많이 보고 장면 편집이나 화질에 민감한 경우라면 1990년 이후에 나온 영상물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2000년 이후에 제작된 영상물에는 대체로 배역에 맞는 외모를 지닌 가수들이 등장해 리얼한 연기를 펼치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훨씬 쉬워지고 과거보다 훨씬 재미있게 오페라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오페라 영상물의 자막

오페라 DVD에는 기본적으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의 자막이 있고, 요즘은 중국어나 일본어 자막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한글자막 타이틀도 속속 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작품을 처음 감상할 때는 DVD에 한글 자막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외국어 독해력이 뛰어난 경우에는 문제가 없지만, 대개는 내용을 파악하려고 영어 자막을 따라가다가 화면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두 번 보아서 내용을 알고 있는 오페라라면 그 다음부터는 영어 자막으로 보아도 거의 문제가 없습니다. 오페라 DVD에는 자막이 있는 대신 리브레토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 Tip : 박종호 저 [불멸의 오페라], 안동림 저 [이 한 장의 명반-오페라] 등에는 오페라 명음반 및 최고의 영상물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런 책들을 참고하거나 인터넷 음반 사이트에서 구매자들의 견해를 참고하면 훌륭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공연 선택 - 대극장과 소극장의 경우

아는 오페라부터 본다

난생 처음 오페라 극장에 갈 때는 누구나 조금은 긴장합니다. 어떤 옷을 입고 가는 게 좋을까? 박수는 언제 쳐야 하나? 예습을 하고 가야 하는 걸까? 외국어로 부르는 노랫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 북을 꼭 사야 할까? 등등 생각이 많죠. 우선, 오페라 공연을 처음 볼 때는 음반이나 영상물로 이미 접해본 작품을 보는 것이 수월합니다. 요즈음은 오페라 공연에 반드시 자막이 있기 때문에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줄거리를 전혀 모르고 본다면 자막에 집착하느라 무대를 제대로 보기 어려울 테니까요.

고성능 망원경 지참

서울의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처럼 규모가 큰 극장에서는 좌석에 따라 무대가 아득히 멀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망원경을 지참하도록 합니다. 극을 실감나게 감상하려면 가수들의 표정이나 연기까지 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오페라 극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작고 우아하게 생긴 오페라 글래스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배율이 높은 커다란 망원경을 들고 가면 3층이나 4층 꼭대기의 저렴한 좌석에서도 아주 생생한 공연을 즐길 수 있습니다. 정말 멋진 공연일 때는 망원경을 계속 들고 있느라 팔이 아파오는 것도 못 느낄 정도랍니다.

 

소극장 오페라의 감동

오페라에 입문하는 초심자에게 특히 권하고 싶은 것은 소극장 공연입니다. 1백~6백 석 규모의 작은 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하면 거의 모든 좌석에서 무대가 아주 잘 보입니다. 가수들이 연기를 하면서 무대 바닥에 떨어뜨리는 땀방울까지 볼 수 있습니다. 무대 장치는 대극장만큼 근사하지 않지만, 이런 공간에서 듣는 가수들의 목소리와 드라마틱한 연기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남깁니다. 특히 소극장에서는 모차르트나 로시니의 희극 오페라가 자주 공연되기 때문에, 신나게 웃으면서 오페라와 친해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여러 음악대학 성악과에서 학생들이 열정을 기울여 제작하는 대학 오페라도 초심자에게 권할 만합니다. 무엇보다도 소극장 오페라는 입장료가 낮은 편이어서 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페라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몇 가지 Tip

연출을 비교해 본다

오페라 공연을 볼 때 영상물로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한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원작의 시대는 18세기인데, 연출무대는 21세기로 바뀌어 우리 시대를 다루는 경우도 흔합니다. 오페라를 DVD로 보든 공연장에서 보든, 원작과 비교할 때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시대 배경을 바꿀 때는 어떤 요소들을 함께 바꿔야 하는지 등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훨씬 재미있습니다.


노래만 듣지 말고 오케스트라 음악을 함께 듣는다

성악과 기악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오페라입니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성악가의 멜로디만 따라가지 말고,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반주하는지도 주의 깊게 들어보면 음악을 훨씬 풍요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내가 무대작품을 만든다면...’ 하고 상상하며 본다

주인공 성악가의 외모가 역에 어울리지 않아 약간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내가 캐스팅한다면 주역은 이러이러한 인물(영화배우를 대입해보아도 좋습니다)로, 의상은 저런 스타일이 아니라 이렇게, 무대 배경은 이렇게, 소품은 이런 것을 쓰고......’ 등등 자신이 제작한 오페라를 상상하면서 봅니다.

 

관련링크 : 통합검색 결과 보기

 

 

 

이용숙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워너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