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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양자역학 해석의 마지막 승부 - EPR 패러독스

minjpm 2010. 2. 23. 09:30

20세기 초에 성립된 양자물리학은 원자보다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라는 것이 수많은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처음 양자물리학은 원자와 원자가 내는 스펙트럼을 설명하기 위해 제안되었고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세세한 부분에서 이견이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물리학 내에서는 양자물리학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에 대한 철학적 해석의 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양자물리학과 측정

양자물리학은 한 번의 측정 결과가 어떤 값을 나타낼지를 확률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뿐, 하나의 값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코펜하겐 해석에 의하면 측정값은 양자물리학적으로 허용된 값(고유값)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시 말해, 계는 양자물리학적으로 허용된 여러 가지 고유값을 다 가질 수 있다. 물리계는 여러 가지 고유값을 가지는 서로 다른 상태의 중첩 상태에서 측정에 의해 특정한 고유값을 가지는 상태로 확정된다.

 

양자물리학의 가장 큰 반대자는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연 현상이 확률에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양자물리학이 확률을 포함하는 것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며 알려지지 않은 변수를 찾아내면 확률적인 요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EPR 역설 : 입자의 물리적인 성질은 국소성을 가져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1935년에 발표한 포돌스키(Boris Podolsky, 1896~1966) 그리고 로젠(Nathan Rosen, 1909~1995)과 함께 쓴 ‘물리적 실재에 대한 양자물리학적 기술은 완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양자물리학의 불완전성을 부각시키려고 시도했다. 세 사람의 이른 머리글자를 따서 EPR 패러독스라고 불리는 이 제안은 그 후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이 논문에는 아인슈타인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프린스턴에 있던 고등학술연구소에서 아인슈타인, 로젠과 했던 토론을 바탕으로 포돌스키가 작성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 논문에서 물리적 성질은 국소성(Principle of locality)을 가지고 있어서 시공간의 어떤 점에 국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체계는 동시에 서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고 그런 정보의 전달은 상대성 이론에 의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의 해석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입자에 대한 측정이 다른 입자에 동시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양자물리학은 완전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인슈타인 등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입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숨어 있는 변수를 알지 못하게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이 숨은 변수를 포함하지 않은 양자물리학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얽힘 상태 : 하나의 입자의 상태가 다른 입자의 상태를 결정하는 관계

EPR 역설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얽힘 상태(entanglement)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전자나 양전자와 같은 입자들은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있다. 이 자전에 의한 각운동량을 스핀이라고 한다. 그런데 스핀은 특정한 축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돌거나 좌측으로 도는 두 가지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측으로 도는 것을 스핀 업 상태라고 하고 좌측으로 도는 것을 스핀 다운 상태라고 부르기로 하자. 특정한 전자가 어떤 스핀을 가졌는지는 측정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측정하기 전에는 스핀 업 상태와 스핀 다운 상태가 중첩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측정을 하면 두 가지 스핀 중의 하나로 확정된다. 두 가지 스핀의 중첩 상태에서 하나의 스핀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이제 전체 스핀이 0인 파이온이 붕괴하면서, 전자와 양전자를 생성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처음 파이온의 스핀이 0이었으므로 각운동량 보존 법칙에 의해 전자와 양전자의 스핀을 합한 값도 0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입자가 스핀 업 상태에 있고 어떤 입자가 스핀 다운 상태에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두 입자는 모두 스핀 업 상태와 스핀 다운 상태가 중첩된 상태에 있다. 그러나 만약 두 입자 중 하나의 스핀을 측정해서 스핀 값을 확정하면 다른 입자의 스핀 값은 반대 방향으로 정해져야 한다. 이렇게 하나의 입자가 어떤 물리량을 가지느냐에 따라 다른 입자가 가져야 하는 물리량이 정해지는 두 입자를 얽힘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얽힘 상태는 스핀 상태뿐만 아니라 빛 입자(광자)의 편광 상태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다.  EPR 역설은 바로 이러한 양자적 얽힘 상태 때문에 발생한다.

 

 

EPR역설에 따른 스핀의 측정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입자에는 여러 가지 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임의 방향을 정해 스핀을 측정하면 이와 수직인 축의 스핀은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 z 축을 중심으로 한 스핀 상태를 측정하면 x 축을 중심으로 한 스핀은 정확하게 결정할 수 없다. z 축에 대한 스핀 값과 x 축을 중심으로 한 스핀 값 사이에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z 축을 중심으로 한 스핀을 측정을 통해 확정하면 x 축 방향의 스핀은 업이 될 가능성이 50%, 다운이 될 가능성이 50%인 상태에 있어야 한다.

 

양전자는 전자의 반입자이므로 전하의 부호만 다를 뿐 다른 물리량들은 모두 같다. 전자와 양전자는 에너지로부터 쌍으로 생성되기도 하고, 함께 소멸하여 에너지로 사라지기도 한다. 이것을 쌍생성 또는 쌍소멸이라고 부른다. 이제 파이온이라는 중간자가 붕괴하여 전자와 양전자가 생성되는 반응을 생각해 보자. 전자와 양전자는 생성되고 나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A점과 B점에 도달했다.

 

이제 A점에서 전자의 z 방향 스핀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이 실험으로 전자의 z 방향 스핀 값을 하나로 확정하였다. 따라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양전자의 스핀 값도 하나의 값으로 확정되어야 한다.


 

A점에 있는 전자는 z 방향의 스핀에 대한 측정의 영향을 받아 x 방향의 스핀 값을 정확하게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B점에 있는 양전자에는 z 방향의 스핀 값을 알기 위한 실험을 하지 않았으므로 x 방향의 스핀을 측정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만약 B점에 있는 양전자의 x 방향 스핀 값을 측정을 통해 확정할 수 있다면 이 값으로부터 A점에 있는 전자의 x 방향 스핀 값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결국 z 방향의 스핀과 x 방향의 스핀을 동시에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불확정성 원리는 더는 성립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동료는 이러한 모순이 생기는 것은 양자물리학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으로 보어는 불확정성이 측정 행위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에 발생한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불확정성 원리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벨의 실험 : EPR 역설과 코펜하겐 해석의 한판 승부

아인슈타인 등이 제안한 EPR 이론을 진리가 아닌 역설로 만들어 버린 사람은 북아일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벨(John Stewart Bell, 1928~1990)이었다. 벨은 1964년에 벨의 부등식(Bell’s inequality) 을 제안했다. 이것은 코펜하겐 해석을 바탕으로 하는 양자물리학의 예측과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숨은 변수 이론의 얽힘 상태에 대한 예측이 측정 가능한 정도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을 보여주는 식이었다. 이식으로 인해 과학자들은 어떤 이론이 옳은지를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벨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아주 짧은 거리에서 얽힘 상태를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1997년에는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과 오스트리아 과학 아카데미의 연구자들은 800미터 떨어져 있는 도나우 강의 반대편의 실험실까지 공공 하수구를 통해 광섬유를 연결했다. 그들은 800미터 떨어져 있는 실험실에서 한 실험이 다른 실험실에 있는 얽힘 상태에 있는 입자(여기서는 광자)에 영향을 주는 것을 확인했다. 2003년 6월에 오스트리아의 과학자들은 더 먼 거리에서 실험했다. 그들은 레이저를 바륨 붕산염 결정에 통과시켜 광자 쌍으로 분리했다. 파장이 810nm인 이 얽힌 광자들은 공간을 통해 송신 망원경에서 두 개의 수신 망원경으로 보내졌다. 하나는 150미터 떨어져 있었고 하나는 다뉴브강 건너 500미터 떨어져 있었다. 두 망원경은 직접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 하나의 광자에 어떤 작용을 가하자 다른 광자에 그 효과가 동시에 나타났다. 두 광자는 600미터 떨어져 있으면서도 얽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을 양자 전송이라고 부른다.

 

 

코펜하겐 해석의 완승 :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내버려 두라

아인슈타인과 보어는 이런 실험 결과를 들을 수 없다. 아인슈타인은 1955년에, 그리고 보어는 1962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만약 두 사람이 이런 실험 결과를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인슈타인은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어는 이런 현상을 철학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것과는 관계없이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만으로 만족해할 것이다. 그러면서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납득하지 못한 채로 내버려 두라고 충고할는지도 모른다.

 

 

 

곽영직 / 수원대학교 자연대학장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수원대학교 자연대학장으로 있다. 쓴 책으로는 [과학이야기] [자연과학의 역사] [원자보다 작은 세계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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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2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