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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생체 부동액 - 생물의 월동방법

minjpm 2010. 3. 15. 10:55

혹한의 찬 눈 속에서도 신선한 초록색을 뽐내며 겨우살이를 하는 호밀, 극지방의 얼음물 속에서 더구나 수온이 자기 피의 어는점보다 낮은 환경에서 유영하며 찬 수온을 즐기는 물고기들, -50˚C의 추운 북극 지방의 눈 위를 튀어 다니는 톡토기류 눈벼룩은 도대체 추위를 어떻게 견디며 동사하지 않을까?

 

 

영하의 온도에서도 물이 얼지 않게 해주는 부동액

이들과 알래스카 얼음 길을 달리는 자동차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을까. 답은 부동액이다. 그러나 자동차의 부동액과 척추동물∙무척추동물∙식물∙박테리아∙균류 등 다양한 생명체에서 발견되는 부동액 화합물의 구조와 그 기능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자동차 엔진 냉각액으로 사용되는 부동액에는 흔히 에틸렌글리콜을 사용하며 때때로 프로필렌글리콜도 사용한다. 이 화합물은 물에 섞으면, 물의 어는점이 떨어져 물이 어는 것을 방지한다. 물의 어는점 강하는 부동액 성분을 얼마나 많이 섞는가에 따라 달라지며, 그 정도는 소위 총괄성을 따른다.

 

예를 들어, 물과 부동액을 1:1로 섞은 부동액 용액의 어는점은 -35˚C~-40˚C가 된다. 이런 용액은 물의 끓는점을 높여 주기도 하기 때문에, 부동과 동시에 부비등(끓지 않게 함) 기능도 지닌다. 에틸렌글리콜은 독성이 강한 데 비해 프로필렌글리콜은 독성이 적어, 가정용 물 파이프나 식품 가공 시스템의 부동액으로 사용하고 있다.

 

 

월동 식물의 잎에서는 부동단백질이라는 물질을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생명체계에서 발견되는 부동제는 앞에서 말한 화합물과 일부를 제외하고는 크게 다르다. 예컨대 월동 식물의 잎에서는 분자량 10,000에서 60,000에 이르는 다양한 부동단백질(antifreeze protein: AFP)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식물체 속에 있는 물의 어는점을 총괄성에 의해 낮추기보다는 물이 식물체 속에서 얼어 커다란 얼음결정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화학구조는 다르지만 지금까지 20여 가지 AFP가 식물(겨울호밀∙노박덩굴∙당근∙복숭아 등)에서 추출 보고되었다. 기온이 떨어지면 식물 세포에서는 AFP의 합성을 촉진하는 식물 호르몬-에틸렌 등의 생성이 활발해진다. 이 호르몬의 도움으로 세포 내에서 생긴 부동액 단백질 분자들이 세포벽(아포플라스트) 쪽에 축적되어, 세포막 밖에서 얼음결정이 생기지 못하게 하거나 결정 크기를 매우 작게 한다.

 

일부 AFP를 분리해 물에 녹이고 나서 온도를 낮추면서 얼음결정이 생기는 현상을 관찰하면, 이를 증명할 수 있다. 만약 얼음결정의 생성 및 성장을 막지 못하면, 세포 내 수분이 계속 세포 밖으로 빠져나가 얼음결정을 만들고 키우게 되어 세포는 결국 동사한다.


 

 

곤충이나 절지동물은 부동단백질 뿐만 아니라, 부동기능을 가진 당류도 가지고 있다

곤충 50여 종 및 여러 절지동물에서도 AFP가 발견되었으며, 일부 곤충은 -60˚C 에서도 동사하지 않고 생존한다. 이들이 가지는 AFP도 얼음결정 생성 및 성장 (흔히 재결정이라 부른다.)을 막아주고, 동시에 체액의 과냉상태를 안정화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AFP는 곤충에 따라 그 구조가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한 개체에서 6~12개의 다양한 AFP가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여러 가지 AFP가 서로 협조하여 생체의 동사를 막는 데 이바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곤충의 AFP에서 종종 황(S)을 통해 -S-S- 다리결합을 하는, 다시 말해 단백질 내 시스테인/시스틴 비가 큰 현상이 관찰되는데, 이는 저온에서도 단백질 분자형태가 변하는 것을 막아 그 부동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단백질의 형태는 온도에 민감하며, 형태변화가 그 기능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최근 미국 노트르담 대학과 알래스카 대학팀이 함께 알래스카에 사는 딱정벌레(Upis Ceramboides)에서 단백질류가 아니면서 부동기능을 지닌 당류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이들이 찾은 이 부동제는 만노오스와 크실로오소(자일로오스)가 주축을 이루며 지방산 성분도 붙어 있다. 또 곤충들은 글루코스글리세롤시트르산아스파르트산알라닌 등 저분자량 수용성 대사물질을 만들어 AFP와 함께 부동상태를 유지한다.

 

 

어류도 부동제를 가지고 있지만, 곤충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차가운 해저와 극지방에서 사는 가자미∙삼세기∙한천갈치∙남극암치 등에서 당단백질(AFGP)과 3가지 다른 유형의 AFP가 분리되어 그 구조를 확인하였다. 겨울넙치에서 확인한 바로는, 어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부동액 유전자 가족을 지녀, AFP를 혈액과 상피조직에 공급하며, 이들은 상보적으로 부동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화학구조에도 큰 차이가 있으나 식물과 곤충에서 발견되는 AFP와 같이 얼음결정 표면에 붙어 성장을 방해한다.

 

몇 년 전 캐나다 퀸즈대학 연구팀은 북극 빙하에 사는 겨울넙치에서 새로운 AFP를 분리했으며, 이 AFP는 전에 알려진 AFP보다 분자량이 크며, 물의 어는점 강하에 특별히 좋은 성능을 보여주었다. 이 새로운 AFP가 전에는 왜 발견되지 않았는지 누구든지 의아해할 수 있겠으나, 이 단백질은 매우 적은 양이 생선에 들어 있을 뿐 아니라, 흔히 AFP 정제에 사용하는 실험실 조건(실온과 낮은 pH)에서 속히 그 기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곤충과 어류가 만드는 AFP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곤충의 AFP가 어류의 AFP보다 부동기능을 10~100배나 크게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곤충이 사는 환경이 어류가 사는 극지방의 바닷물보다 훨씬 기온이 낮기 때문이다. 이밖에 극지방에서 번성한 박테리아와 균류에도 여러 종류의 AFP가 확인되었다. 생물체 들이 다양한 AFP를 만들어 자신들을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은 아마도 빙하기를 거치면서 추운 환경에 순응할 수 있게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과학자들은 믿고 있다.

 

 

매우 크고 다양한 부동단백질의 실용성

AFP의 실용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농업∙축산업∙수산업∙제약업∙의료 및 소비자 제품에 이르기까지 그 응용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곡물, 식물의 냉한 저항력을 향상시켜 작물재배를 추운 겨울까지 연장하고, 추운 기후에서도 다양한 어종을 양식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냉동식품의 저장시간을 연장해주고, 이식할 장기의 냉동보관을 도와주며, 아이스크림의 얼음크기를 조절해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는 AFP를 생물계에서 추출해 사용하려면, 그 값이 너무 비싸다. 따라서 AFP의 생산을 담당하는 유전자 이식을 통해, AFP 생산량을 늘리려는 생물공학적 기술이 많이 연구되고 있다. 특히 대장균효모를 이용한 연구가 일부 성공하였다.

 

유전자 이식을 통한 AFP의 자체 생산을 담배∙토마토∙감자 등에서 확인한 바 있다. 연어 등 일부 어류에서도 유전자 이식이 가능함을 보고 있다. 재미있는 일은 성능이 좋은 곤충 AFP 생산유전자를 일부 어종에 이식해 냉해 저항력을 키울 수 있으며, 어류 AFP를 담배 등 식물에 축적시켜 냉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AFP는 냉동저항뿐만 아니라 세포막을 통한 전해질 손실도 막아주기 때문에, 생체 조직의 구조변화를 최소화하며, 냉동 장기의 원형 보존이 더 쉬운 장점도 있다. 동물을 도살하기 전에 AFP를 주사하면, 도살 후 냉동시킬 때 살 속에서 생기는 얼음 크기가 줄어들어 육질의 유지가 쉬워진다는 보고도 있다.

 

 

식품에까지 사용하는 부동단백질, 이제는 독성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AFP 사용이 식품에까지 끼어들게 됨에 따라 이들의 독성에 소비자들이 신경을 쓰게 되었다. 현재까지는 AFP를 만드는 식물이나 어류를 섭취하는 사람들에게서 특별한 부작용이 관찰되지 않으나, 장기적 안정성에 관하여는 조직적 연구가 필요하다.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동상에 걸리지 않고, 양 극지방을 활보하며 혹한을 즐기는 것도 꿈만은 아니게 들린다.

 

 

 

진정일
진정일 / 고려대 화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이며, 국제순수-응용화학연맹(IUPAC) 전 회장이다. 저서로 [교실 밖 화학이야기]등이 있다. 한국과학상, 수당상 등을 수상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chemistry/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