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pm(민제이피엠) 의 음악과 함께하는 삶~
SOUL CLAMP

우주 & 신비로운 과학세계

[스크랩] 처녀생식 - 난자만으로 번식

minjpm 2010. 3. 15. 10:57

헤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질투심에 휩싸여 있었다. 조금 전, 그녀의 남편 제우스의 머리에서 아테나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헤라는 이를 자신에 대한 엄청난 모욕으로 여겼다. 자연의 섭리는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의 의무와 권리를 부여했으며, 더군다나 그녀는 가정과 결혼과 출산을 주관하는 여신이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남편은 여성의, 특히나 헤라의 주관 영역이라 일컬어지는 임신과 출산에까지 관여하고 있었고, 이는 여러모로 보나 그녀를 무시하는 처사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헤라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준 남편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복수란 남편이 임신과 출산에서 그녀를 배제했듯 남편을 배제한 채 아이를 낳는 것이었다. 헤라의 집념은 불덩어리가 되어 그녀가 남편인 제우스는 물론이고 그 어떤 남자 혹은 남신과의 관계없이 혼자서 아이를 가지게 하였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였다.

- 그리스 신화 중에서 ‘혼자서 아이를 낳은 헤라’

 

 

혼자서 아이를 낳은 헤라 여신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와 헤라는 사랑했던 기억 따위는 잊어버린 채 늘 싸워대기만 하는 권태기의 부부처럼 그려집니다. 제우스의 끊임없는 바람기에 맞서는 헤라의 복수는 수없이 많은 희생자-두 사람 사이의 부부 싸움 덕에 이오는 소가 되었고 칼리스토는 곰으로 변했으며, 레토는 쌍둥이 신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임신한 몸으로 아이를 낳을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녀야 했고, 헤라클레스는 태어나자마자 두 마리 뱀의 습격을 받았더랬죠-를 낳았지만, 여전히 제우스는 헤라의 눈을 피해 바람을 피웠고 헤라는 그런 제우스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곤 했지요.

 

제우스는 정식 아내인 헤라를 두고도 여러 여인과 염문을 뿌려 그녀에게 비참함을 안기는데, 제우스의 일련의 행동 중에서 가장 그녀를 충격에 빠뜨렸던 것은 제우스가 머리에서 아테나를 낳은 일이었지요. 하지만, 사실 제우스가 여성의 도움 없이 아테나를 임신한 것은 아니에요. 제우스는 메티스가 낳은 아이의 아이에게, 즉 메티스와 제우스의 피를 받은 손자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습니다.


 

스스로 아버지를 밀어내고 왕좌에 오른 전적이 있는 제우스는-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또 그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지요-자신에게도 똑같은 운명이 닥칠 것이 두려워진 나머지 메티스를 통째로 삼켜버리고 맙니다. 그녀가 없다면 아이가 태어날 일도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메티스는 제우스에게 삼켜지던 때 이미 임신을 한 상태였기에 달이 차자 어머니의 태내에서 나온 아이가 어머니를 삼킨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고 태어났던 것이었죠. 사실 아테나는 제우스가 낳은 것이 아니라 메티스가 낳은 것이고, 다만 제우스가 메티스를 삼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몸을 뚫고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거에요.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헤라가 보기에 아테나는 제우스가 낳은 것처럼 보였고, 이에 자존심이 상한 헤라는 홀몸으로 아이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는데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였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아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혼자 힘으로는 벅찼던지 매우 못 생기고 '완벽한' 신(神)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좀 멀었다고 합니다.

 

 

처녀 생식, 난자만으로 번식하는 것

비록 정자와 난자의 존재는 몰랐지만, 옛 사람들도 새로운 생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남녀 모두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이후에 이어지는 임신과 출산은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과정이었기에 여성의 생식력을 더욱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남성은 홀로 아이를 만들어낼 수 없지만, 여성은 드물지만 혼자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헤라의 경우처럼 말이지요. 이렇듯 생식에서 정자의 도움 없이 난자만을 이용해 번식하는 것을 처녀생식(處女生植, parthenogenesis)이라고 합니다.

 

자연의 세계에서 처녀생식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닙니다. 물론 암수의 구분이 없는 세균이나 단세포 생물들은 스스로 분열하여 개체 수를 늘립니다. 하지만 암수의 구분이 있을 때는 대개 암수 짝짓기를 통한 유성생식으로 번식하지요. 그런데 동물 중에는 분명히 암수 구분이 있는데도 처녀생식을 일상적으로 실시하는 동물들이 있지요. 대표적인 동물들이 사회성 곤충인 벌과 개미입니다.

 

 

개미와 벌 - 처녀 생식을 하면 수컷이 태어난다

개미의 예를 들어 봅시다. 한 무리의 개미 사회는 종족을 번식시키는 여왕개미와 이를 보좌하는 일개미, 그리고 여왕에게 정자를 제공하는 수개미들이 모여 철저히 분업화된 조직사회를 이루어 살아갑니다. 여왕개미는 단 한 차례의 혼인 비행을 통해 수개미에게서 정자를 제공받은 뒤, 이를 몸 속에 마련된 저정낭에 보관합니다. 이렇게 보관된 정자는 여왕개미가 평생 낳을 일개미들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여왕개미는 유성생식과 처녀생식을 모두 해낼 수 있습니다. 여왕개미가 자신의 난자와 저정낭에 보관해 둔 정자를 수정시켜 수정란을 만들면 일개미가 태어납니다(유성생식). 반면 수정 없이 난자만을 그대로 발생시키면 수개미가 태어납니다(처녀생식). 벌도 마찬가지고요. 얼핏 생각하기에 수정 없이 난자만을 발생시키면 암컷이 태어날 법한데 개미나 벌에 있어서의 처녀생식의 결과로는 수컷이 태어난답니다. 흥미로운 것은 신화에서도 제우스가 낳은-엄밀히 말하면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테나는 딸이었던데 반해, 헤라 혼자 힘으로 낳은 헤파이스토스는 아들이었다는 것이죠.

 

 

 

진딧물 - 날씨가 따듯하면 처녀 생식, 추우면 유성생식

개미의 경우, 처녀생식은 새로운 여왕을 낳아 분가시킬 필요가 있을 때 행해집니다. 즉, 집단을 늘리기 위한 사전 준비인 셈이죠. 그런데 어떤 동물에 있어서 처녀생식은 환경의 변화, 그중에서도 기온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농작물에 번식하여 농부와 원예가들의 '공공의 적'으로 치부되는 진딧물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진딧물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날씨가 따뜻한 시절에는 처녀생식을 통해 번식합니다. 이 경우 태어나는 새끼는 모두 암컷인데, 몸속에서 난자를 발생시켜 처녀생식을 하기 때문에 알이 아닌 새끼를 낳는 것이 특징입니다.

 

즉, 봄에서 가을까지 진딧물 암컷들은 자신을 꼭 닮은 '미니미(mini-me)'들을 낳는 것이죠. 그러다가 늦가을이 되면 암컷 뿐만 아니라 수컷도 태어나고, 이렇게 태어난 암컷과  수컷 진딧물은 짝짓기를 통해 알을 낳습니다. 알은 성체에 비해 위에 강하므로, 알 상태로 겨울을 넘기기 위해서 번식 형태를 바꾼 것이죠. 이렇게 알 상태로 겨울을 넘긴 진딧물을 이듬해 봄에 깨어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다시 처녀생식을 하여야 하므로 모두 암컷으로 태어나게 된답니다. 기온의 하강은 진딧물에게 이제 알을 낳을 시기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합니다. 사시사철 따뜻한 온실 안에서 사는 진딧물들은 일년 내내 처녀생식을 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식으로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처녀생식과 유성생식을 번갈아 시도하는 동물들의 리스트에는 진딧물뿐 아니라 기생벌, 윤충, 깍지벌레, 물벼룩 등에서 흔히 일어나며, 성게나 미꾸라지, 코모도왕도마뱀이나 귀상어에서도 관찰된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처녀 생식을 연구하는 이유


처녀생식은 단성(單性) 생식으로 유전자의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불리한 방법입니다. 생물체가 유성생식을 하게 된 이유가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상기해 본다면 말이죠. 따라서 생물 발달 계통에서 척추동물로 나아갈수록 처녀생식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이 통례입니다. 하지만 지난 3월 5일,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는 '생명윤리 및 안전한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의 개정안 초안을 공개하면서 난자만을 이용한 처녀생식, 즉 단성생식 연구에 대한 근거 규정을 명시한 바 있습니다. 이는 인간에게 있어 생식 분야에서는 처녀생식이 큰 의미가 없을지는 몰라도 의학 연구에서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줄기세포(stem cell) 연구에 있어서 말이죠.

 

잘 알려진 바대로 줄기세포는 신체의 다른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입니다. 특히나 발생 중인 배아에서 추출한 배아 줄기세포는 신체를 구성하는 어떤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어, 장기나 조직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때 이를 대체하는 신체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보고(寶庫)로 주목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조직 배양의 경우, 발생 중인 배아, 즉 자궁에 이식시키면 하나의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는 배아를 파괴해야 하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어 논란이 많았습니다. 하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또 하나의 생명을 파괴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던 것이죠.

 

 

처녀생식,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대안

이에 난자만을 사용한 처녀 생식은 이런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습니다. 난자만을 이용하여 처녀생식을 시도하는 경우, 정상적인 배아로 자라날 가능성은 작으면서도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지난 2004년 황우석 박사의 연구 과정에서 인간의 난자 역시 처녀 생식이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모 생명공학 연구소에서 몇 년 전부터 이를 시도하여 일부 성공한 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습니다.

 

신화는 상상하지만, 과학은 이를 현실화시켜 줍니다. 옛 사람들은 헤라의 분노와 질투가 헤파이스토스를 탄생시켰다고 상상했지만, 현대인들은 과학의 힘으로 처녀생식의 원리를 밝히고 스스로에게 시도하고 있지요. 여담이지만,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문득 궁금해지네요. 보통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처녀생식은 난자에 전기 충격 등의 자극을 주거나 난자 2개를 결합시키거나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헤라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처녀 생식을 한 것일까요? 여신(女神)의 권능은 단성 생식을 가능케 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을까요? 혹시나 남편이 잠든 사이에 제우스의 번개를 슬쩍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은희 /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등 많은 과학 도서를 저술하였고, 2003년에 과학 기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 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2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