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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거세된 가수 - 카스트라토

minjpm 2010. 6. 1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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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가수가 오페라 무대에 나와 여성 같은 고음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놀라서 입을 딱 벌리거나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관객이 적지 않습니다. 카운터테너(countertenor) 가수의 노래를 처음 들어보는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리거나 몹시 언짢다는 표정을 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드레아스 숄, 데이비드 대니얼스, 브라이언 아사와, 메라 요시카즈, 필립 자루스키, 첸치치 등 대중음악 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세계적인 카운터테너들 덕분에 이런 목소리에 대한 이해도가 점차 높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티없이 맑고 높은 미성(美聲)은 천사의 목소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중세 교회음악에서 크게 사랑 받았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영국에서는 이런 중세의 전통을 계승해 세속가요를 부를 때도 고음의 미성(남성 알토)을 선호했지요.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를 소화하는 데는 중후한 목소리보다 고음의 미성이 잘 어울린다는 이유였답니다.

 

no 아티스트/연주  
1 바흐 : 아리아 –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BWV 248 "Bereite dich, Zion" / 다니엘 테일러 [카운터테너] 듣기

6월 29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기교의 쾌락을 추구한 바로크 오페라의 그늘

르네상스 시대 폴리포니 음악(다성음악)에서 모든 음역의 기준이 되는 것은 ‘테너(tenor)’였습니다. 그 바로 위에 놓인 성부(聲部)는 콘트라테너(contratenor)로 불렸고, 여기서 현대의 카운터테너라는 단어가 파생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러니까 카운터테너란 ‘테너의 상대음역 또는 반대음역’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가성(假聲, 팔세토)을 사용하는 영국의 ‘남성 알토’ 전통은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들린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어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 이런 알토가 쇠퇴할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카스트라토(castrato)’라는 새로운 성악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교회 공동체의 집회에서 여자들은 침묵해야 한다”라는 성 바울로(성 파울루스)의 언급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이유로, 당시 교회에서 여성은 설교할 자격이 없었을 뿐 아니라 노래도 부를 수 없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1688년 교황 클레멘스 9세는 ‘여성은 가수로 일할 목적으로 음악공부를 할 수 없다’는 금지령을 발표합니다. 당시 교회 성가대원은 모두 남자 어린이와 어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로마 교황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지역에서는 성가대뿐만 아니라 오페라 무대에서도 여성이 노래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변성기 이전의 사내아이를 거세시켜 맑은 고음으로 노래하게 한 카스트라토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랍니다.

 

엄청난 성공과 명예를 얻었던 파리넬리.

당대의 유명한 카스트라토였던 세네지오.

 

 

카스트라토를 만드는 거세 수술은 남근을 절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입니다. 남성 호르몬을 억제해 변성기에 목소리가 어른스럽게 변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죠. 어떤 사내아이라도 자신의 보이 소프라노 음성을 보존하기 위해 스스로 이런 수술을 받고 싶어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남자로서의 삶을 완전히 포기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탈리아의 부모들은 아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이런 잔인한 일을 감행합니다. 특히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카스트라토가 양산되었습니다. 일단 카스트라토 가수로 성공하기만 하면 엄청난 부와 제왕 같은 명예가 따라왔으니까요.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적인 록스타 같은 인기와 지위를 누린 카스트라토들은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진 파리넬리, 카파렐리, 세네지오 등 열 손가락에 꼽을 만한 소수의 인물이었습니다. 이 수술을 받은 수만 명의 카스트라토 가운데 ‘성공한’ 카스트라토는 1퍼센트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나머지 카스트라토들은 화려한 오페라 무대에 한 번 서보지도 못한 채 비참한 삶을 꾸려가거나, 한을 품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거세되고 나면 수염도 나지 않았고 들판에서 힘든 노동을 하며 살아갈 근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천문학적 출연료, 소수의 독점체제

17세기 카스트라토들은 고음역의 단성음악을 노래했지만, 18세기에 훨씬 많은 수의 카스트라토가 공급되고 양성학교가 늘어나면서 바로크 오페라는 이들에 의해 눈부신 기교적 예술의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카스트라토 수술을 받은 다수의 사내아이들은 대개 보통사람들보다 웃자랐고 손발도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파리넬리를 비롯한 유명 카스트라토들의 옛 캐리커처를 보면, 남자 주인공보다 훨씬 키가 크고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지닌 카스트라토 가수가 여성 의상을 입은 채 남자 주인공을 내려다보고 있곤 합니다.

 

당시 헨델 오페라에 등장한 거구의 카스트라토를 스케치한 18세기의 삽화.

여성 분장을 한 파리넬리를 그린 캐리커쳐.

 

 

무대 위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남녀 주인공의 이런 신체 비례가 바로크 시대의 관객들에게는 어떻게 비쳤을까요? 놀랍게도 당시 관객들은 이런 부자연스러움에 대해 상당히 쿨했다고 합니다. 가수들이 현란한 기교를 구사하며 악기보다 더 빠르고 유연하게 고음을 내기만 하면, 관객은 오페라의 줄거리가 사실적인지 황당무계한지, 구성이 논리적인지 아닌지 등을 전혀 따지려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 역을 부르는 일에 대해서도 별 거부감이 없었다니 놀랍죠? 물론 카스트라토가 오페라 무대에서 여성 역할만을 한 것은 아닙니다. 왕이나 장군 역할도 상당 수 카스트라토들을 위해 작곡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녀 주인공의 역할을 두 사람의 카스트라토가 연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당시 유명 카스트라토들은 한 번 무대에 설 때마다 천문학적인 출연료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성이 무대에 설 수 있는 지역이라 해도 카스트라토는 인기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여성 가수보다 훨씬 많은 개런티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문에 여성 가수들이 남장을 하고 카스트라토인 척하며 무대에 서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하는군요. 카사노바의 회고록에도 오페라 극장에서 카스트라토인 척하는 여성가수를 사귄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남성 역할을 부르는 여성 가수 ‘바지역’

그러나 18세기 후반이 되면 오페라 관객들은 카스트라토의 기교 위주 창법에 흥미를 잃고,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목소리와 무대를 원하게 됩니다. 그래서 카스트라토 시대는 막을 내리고 근대 오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나폴레옹 군대는 1799년 시칠리아를 점령하면서 카스트라토 양성학교를 문닫게 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자신은 크레셴티니라는 카스트라토에게 반해 그를 황실 음악교사로 파리에 초빙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카스트라토가 사라지면서 그 시대에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된 수많은 오페라 배역을 여성가수들이 불렀고, 후대에는 일반적인 남성의 역할을 여성 가수들이 부르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배역을 '바지역(trouser role)'이라고 부릅니다. 여성가수가 긴 드레스 대신 바지를 입고 나온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습니다. 헨델의 [리날도]와 [줄리오 체자레](줄리어스 시저)의 타이틀 롤,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오르페오 역, 모차르트의 오페라 세리아 [이도메네오] 가운데 이다만테 왕자 역,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의 시동인 10대 미소년 케루비노 역, 로시니의 [세미라미데] 중 아르사체 역,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중 오스카르 역, 구노의 [파우스트] 가운데 시에벨 역 등이 대표적인 바지역입니다. 바로크 오페라의 장군이나 왕자 역을 가장 단골로 부른 여성 가수는 알토 마릴린 혼이었죠.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바지역’으로 등장하는 케루비노. 여성이 바지를 입고 나온다고 해서 ‘바지역’이라고 한다.

 

 

음색과 창법의 자연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고전주의 시대의 모차르트나 로시니는 카스트라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위의 배역들을 여성 배역으로 작곡했습니다. 아직 완전히 성인이 되지 않은 10대 소년의 연약함과 사랑스러움을 여성의 외모와 목소리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카스트라토가 거의 사라져버린 베르디나 구노 시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관객들은 남성의 배역을 여성이 부르는 것에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날은 저음의 여성가수 대신 흉성과 두성의 훈련에 의해 고음을 낼 수 있는 현대의 카운터테너들이 이런 역을 맡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르네상스 이후에 쇠퇴한 남성 알토의 전통은 지방 교회들을 통해 미약하나마 전승되었고, 카스트라토 시대가 쇠퇴하면서 19세기에 와서 다시 전통을 회복하게 되었답니다. 카운터테너의 목소리는 남성적인 파워와 여성적인 고음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한편으로는 천상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미적, 감각적 쾌감으로 청중을 매혹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거세된 가수들이 아닙니다. 노래 부를 때는 고음을 내도, 이야기 나눌 때는 부드러운 바리톤 음색으로 내려가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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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음원 제공 소니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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