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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성(SEX)의 진화

minjpm 2009. 9. 11. 11:38

생명 현상의 메커니즘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해낸 다윈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다윈이 숙고했던 문제가 어디 한둘이었으랴마는 그 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특별히 두 가지가 가장 두드러진다. 그 중 하나는 벌이나 개미와 같은 사회성 곤충에서 일벌 또는 일개미가 보이는 자기 희생 즉 이타성(altruism)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왜 같은 종 내에 암수가 따로 존재해야 하며 왜 그리도 달라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전자에 관해서는 다음 회에 상세하게 논의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른바 성적 차이 또는 성적 이형성(sexual dimorphism)에 관한 다윈의 고민과 해결안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다윈의 고민 – 이타성과 성(性)적 차이

 

요즘엔 시내 한복판의 조그만 야산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꿩의 경우 암컷인 까투리는 바로 곁에 있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평범한 색을 띠는 반면 수컷인 장끼는 새소리라기보다는 그야말로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어 자신의 존재를 온 세상에 알리는가 하면 보호색은커녕 주변과 확연하게 드러나는 화려한 색깔의 깃털을 지니고 있다. 까투리와 장끼는 꿩의 암컷과 수컷으로서 분명히 같은 종의 개체이건만 왜 이리도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 것일까?

 

꿩보다 더 깃털이 화려한 새인 공작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대개 공작 하면 으레 수컷(peacock)만 떠올릴 뿐 공작새 암컷(peahen)을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암컷 공작은 사실 다른 많은 새들의 암컷들과 비교할 때 퍽 아름다운 깃털을 지녔다. 너무도 잘 알려진 수컷 공작의 화려함에 빛을 발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여러 해 전에 공작의 짝짓기 행동을 연구하는 일본의 동료 학자 하세가와 부부(Mariko & Toshikazu Hasegawa)를 따라 그들이 연구하는 야생 공작을 보러 간 적이 있다.

 

폭이 족히 2~3백 미터는 돼 보이는 계곡 건너편에서 꼬리 깃털을 펼쳐 보이는 수컷의 공연(?)을 지켜보며 내가 만일 포식동물이라면 저처럼 쉬운 목표물이 이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 싶었다. 그야말로 백주 대낮에 “날 잡아 잡수” 하며 대대적인 광고를 하는 꼴이었다. 어쩌자고 수컷들은 이렇게도 어리석게 자신의 존재와 위치를 온 세상에 광고하며 스스로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일까?


 

다윈은 1859년 <종의 기원>을 통해 자연선택 이론을 내놓았으나 앞에서 언급한 이타성과 더불어 이 문제 역시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으로는 사실상 설명이 불가능했다. 이타성 문제에 관해서 다윈은 여러 차례를 설명을 시도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숨을 거뒀지만, 성의 진화에 관한 수수께끼는 <종의 기원>을 출간한 지 12년 후인 1871년에 내놓은 <인간의 유래(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에서 자연선택에 덧붙여 성선택(sexual selection)>에서 전혀 새로운 선택 메커니즘을 제안하며 말끔하게 해결했다.

 


생존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나 번식에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형질이 있다

 

 생물의 형질에는 생존(survival)을 돕는 게 있는가 하면, 생존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지만 번식(reproduction)에는 결정적으로 유리한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상당히 상반되는 이미지를 지닌 미국의 두 남자 배우를 대비하여 설명해보자. 미스터 유니버스 출신의 근육질 배우로 출발하여 지금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지사가 되어 정치계로 진출한 아널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와 왜소한 체구를 지녔지만 지적인 이미지로 주옥 같은 영화들을 만들어낸 탁월한 배우이자 감독인 우디 앨런(Woody Allen)은 참으로 대조적인 두 남성이다.

 

 

 

이 두 남성 중에서 생존의 차원에서는 아무래도 슈워제네거가 앨런보다 우월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그는 사실 여성들에게 그리 인기가 많은 배우가 아니었다. 다행히 케네디 가문의 한 여성이 그와 결혼해주었기 때문에 가정도 꾸리고 정계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되었지만,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총각 시절 그는 주로 여성들에게 접근하여 일방적으로 추근댔을 뿐 그를 좋아한 여성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언뜻 보아 남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은 분명히 아닌 것 같은 우디 앨런의 주변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끊이지 않는다. 만일 그 어느 여인도 슈워제네거에게 한번도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그는 비록 생존에는 다분히 유리한 형질을 지녔지만 그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는 일에는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선택이 중요한 이유이다. 늘 생존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수컷이라도 궁극적으로 번식에 성공하면 아무리 건강하게 오래 살았어도 후세를 남기기 못한 수컷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유전자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진화는 결국 번식이 좌우한다. 마약 복용과 무절제한 생활로 2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천재 기타 연주가 지미 헨드릭스는 분명히 생존의 관점에서는 실패한 남성이지만, 그를 따라 다니던 그 많은 여성 팬들 중 적어도 수백 명과 잠자리를 같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상에 알려진 자식만 해도 미국, 독일, 그리고 스웨덴에 적어도 세 명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건강과 장수는 번식을 돕는 한도 내에서만 진화적 의미를 지닌다.

 


자연선택과 성선택은 별개인가? 하나인가?

 

이처럼 생물의 형질은 대부분 생존과 번식 중 어느 하나에만 관련하여 진화하는 게 보통이지만 어떤 형질은 그를 소유하고 있는 개체로 하여금 생존과 번식 모두에서 탁월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공작과 꿩의 수컷은 명백하게 생존에는 불리하더라도 번식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처럼 화려한 깃털을 갖도록 진화했지만, 숫사슴의 뿔은 생존과 번식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크고 강력한 뿔은 다른 수컷들과 경쟁하거나 심지어는 포식동물의 공격을 받을 때 자신을 성공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생존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특별히 가지도 무성하고 우람한 뿔을 가진 수컷이 암컷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인다면 짝짓기 과정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므로 번식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후세의 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두고 둘이 전혀 다른 메커니즘 또는 체제인지 아니면 결국 성선택이 자연선택의 일부인지를 두고 끝없는 공방을 벌여왔다. 다윈 자신은 둘을 별개의 체제로 본 것 같다. 하지만 생존과 번식이 서로 완벽하게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자연선택과 성선택을 완벽하게 다른 체제로 보는 견해에도 어느 정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이 둘을 한데 묶어 ‘사회선택(social selection)’으로 규정한 세계적인 말벌 연구가이자 탁월한 진화이론가인 매리 제인 웨스트에버하드(Mary Jane West-Eberhard)의 분류를 선호한다. 그에 따르면 자연선택은 주로 먹이, 은신처, 영역 등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고 성선택은 배우자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회적 맥락이냐에 따라 자연선택과 성선택은 같은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전혀 반대 방향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배우자를 두고 하는 경쟁의 결과는 궁극적으로 암컷의 선택에 의해 이뤄진다

 


바로 이 배우자를 두고 경쟁하는 후자의 경우 그 대상이자 목표는 거의 언제나 암컷이며 경쟁의 주체는 주로 수컷이라는 점을 일깨워준 사람이 바로 다윈이다. 더구나 그 경쟁의 결과가 궁극적으로는 암컷의 선택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선택권의 소재는 결국 투자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 이른바 ‘개미 투자자’라고 불리는 소액주주가 대주주를 제치고 선택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래서 소액주주들이 힘을 모아 주주총회에서 대주주의 전횡을 막아보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유성생식을 하는 모든 생물에서 정자 즉 수컷의 배우자(gamete)가 암컷의 배우자 즉 난자보다 큰 경우는 절대로 없다. 만일 그런 경우가 발견된다면 그것이 최초의 발견으로 평가 받을 게 아니라 그 생물에서는 암수의 역할이 바뀌었거나 아예 암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 암수의 정의에 따르면,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정자라는 운반체에 실어 암컷에게 전달하는 쪽이고 암컷은 그 유전자를 받아 자신의 유전자와 섞어 새로운 생명체로 키워내는 초기 발생을 임부를 띠고 있는 존재이다. 이 세상 모든 생물에서 전혀 예외 없이 정자는 난자에 비해 엄청나게 작다.

 

이 세상 대부분의 생물은 우리 인간처럼 자식을 돌보지 않는다. 수정란을 방치하는 그런 생물에서도 배우자 즉 정자와 난자 자체만 보더라도 암컷의 투자가 수컷의 투자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 이 같은 투자의 불균형은 우리 인간을 비롯한 포유동물에서 절정에 이른다. 암컷은 수정란을 상당 기간 몸 속에 간직한 채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다가 출산하고 난 다음에도 오랜 기간 동안 젖을 먹여 키우며 온갖 정성을 다 쏟는다. 짝짓기와 번식에 관한 한 인간 남성이 조금이라도 할 말이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다윈의 성선택론은 이제 동물행동학과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다윈의 성선택론은 이제 동물행동학과 진화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매년 발표되는 이 분야의 논문의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1871년 당시 <인간의 유래>가 처음 출간되었을 당시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던 1859년과 같은 열렬한 호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열렬한 호응은커녕 거의 반응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자연선택 이론을 함께 주창했던 월리스와 벌인 논쟁을 제외하고는 신기할 정도로 조용한 반응이었다. 모든 학자들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무반응이 실제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끔찍한 사건일수록 우리는 종종 그 사건이 아예 일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은폐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당시의 학계가 암묵적으로 혹은 어쩌면 조직적으로 <인간의 유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작업을 벌인 건 아닐까 의심해본다. 영어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다윈의 성선택론을 “양탄자 밑으로 쓸어 넣어버린(swept under the carpet)” 셈이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 영국 남성들에게는 차라리 우리가 원숭이와 공통조상을 지녔다는 것은 받아들일 용의가 있어도 침대 위의 결정권이 여성들에게 있다는 주장은 생각하기조차 싫었던 모양이다. 그 당시의 생물학자들은 동물들의 구애 행동이 엄청나게 길고 복잡한 까닭이 선천적으로 수컷의 손길을 두려워하는 암컷을 안심시키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정도였다. 우리는 이제 그것이 암컷의 간택을 얻어내기 위한 수컷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다윈의 성선택론 덕분에.

 

 

<종의 기원>은 출간과 동시에 엄청난 사회 충격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인간의 유래>에서 소개된 성선택론은 거의 100년의 동면기를 거친 다음 1960~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1960~1970년대가 어떤 시기인가? 바로 여성운동이 새로운 전기를 맞던 시기가 아니던가? 여성의 인권 신장과 성선택론의 부활이 절묘한 합주를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천하의 나폴레옹도 마지막 순간에는 조세핀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호혜성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 이론으로 유명한 로버트 트리버즈(Robert Trivers)는 1980년대 초 미국 터프츠 대학(Tufts University)에서 한 강의에서 내게 매우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각의를 시작하기 전에 그는 칠판에 큼지막한 글씨로 ‘자식(offspring)’, ‘암컷(female)’, 그리고 ‘수컷(male)’이라는 세 단어를 적었다. 그런데 글자의 위치가 절묘했다. 그는 ‘자식’이라는 단어를 칠판 한가운데 맨 위에 대문짝만하게 적은 다음 바로 그 밑에 ‘암컷’을 적었다. 그리곤 ‘수컷’이라는 단어를 한참 아래로 뚝 떼어서 조그맣게 적었다. 이어서 트리버즈는 “이것이 바로 다윈이 본 세계 질서입니다”라는 말로 그의 강의를 시작했다. 생물의 삶이란 어차피 후세에 유전자를 남기는 과정이므로 자식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은 너무도 당연하며 그 목표를 달성하게 해주는 장본인인 암컷이 자식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일종의 행위 예술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수컷의 지위이다. 수컷의 최대 약점은 바로 스스로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겪어본 여성이라면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하겠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는 것일진대 그러자면 이 세상 모든 수컷은 결국 암컷의 몸을 빌려야 한다. 천하의 나폴레옹도 마지막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조세핀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성경의 창세기에는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베레스를 낳고…”라고 적고 있지만 남자가 자식을 낳으면 그는 더 이상 남성이 아니다. 자식을 낳는 자, 그가 곧 암컷이다.

 

 

성(sex)의 진화는 계속 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우리를 비롯한 자연계의 많은 생물들은 모두 암수를 따로 갖도록 진화했고 그 모든 생물의 암수는 제가끔 크고 작은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암수 또는 남녀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수많은 가설 중에 다윈의 성선택 이론만큼 일괄적이고 보편적인, 그리고 검증 가능한 이론은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윈의 두 선택 이론 중에서 성선택 이론이 우리 삶의 보다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2003년에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다분히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출간하며 다윈의 성선택론이 호주제의 모순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복잡한 남녀 관계에 얼마나 명확한 해답을 제공하는지에 대해 논한 바 있다. 제프리 밀러(Geoffrey Miller)의 <연애(The Mating Mind)>도 함께 읽기 바란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볼 때 남녀의 관계가 언제나 지금과 같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성(sex)의 진화는 계속 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1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