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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슈뢰딩거 방정식 - 양자론의 완성

minjpm 2009. 10. 5. 09:04

뉴턴역학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식은 뉴턴의 F=ma라는 식으로 나타내지는 운동 방정식이다. 역학을 공부하다 보면 많은 식들이 등장하지만 이러한 식들은 모두 뉴턴의 운동 방정식에서 유도된 것들이다. 전자기학에서는 네 개의 방정식으로 나타내지는 맥스웰 방정식이 중심이 되는 식이다. 양자화 되어 있는 물리량을 다루는 양자물리학에도 이 식들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방정식이 있다. 이 식이 바로 슈뢰딩거 방정식이다. 따라서 양자물리학 이야기에서 슈뢰딩거 방정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뉴턴 역학에 운동방정식이 있다면, 양자 물리학에는 슈뢰딩거 방정식이 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제안하여 양자물리학을 완성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슈뢰딩거(Ervin Schrödinger, 1887~1961)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1887년에 태어났다. 1914년에 빈(Wien)대학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슈뢰딩거는 1914년부터 1918년 사이에는 장교로 오스트리아 포병부대에 근무하기도 했다.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슈트트가르트, 브레스라우, 취리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계속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표한 것은 취리히 대학에 근무하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물리량이 양자화 되어 있다는 것과 빛이나 전자와 같은 입자들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가진다는 것이 물리학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물리학자들 중에는 양자화 된 물리량을 가지는 입자들을 파동으로 다루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입자가 가지는 에너지와 운동량은 연속된 값이어야 하지만 파동은 띄엄띄엄한 값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슈뢰딩거, 전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를 구하는 방정식을 찾다

슈뢰딩거는 전자를 파동으로 다루어 전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를 구할 수 있는 방정식을 찾아내기로 했다. 이 연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된 1926년 1월에 슈뢰딩거는 물리학 연대기에 발표된 「고유값 문제의 양자화」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슈뢰딩거 방정식을 제안했다. 그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 얻어낸 파동함수가 수소형 원자의 에너지 고유값을 정확하게 나타낸다는 것을 밝혀냈다.

  


첫 번째 논문을 발표하고 4주 후에 그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새롭게 유도한 두 번째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조화진동의 문제와 이원자 분자의 문제를 양자 역학적으로 다루었다. 

 

이 때 이미 독일의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을 이용하여 양자화된 물리량을 다루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슈뢰딩거는 1926년 5월에 발표된 세 번째 논문에서 자신의 방법이 하이젠베르크의 방법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스펙트럼이 전기장에서 나누어지는 슈타르크(Stark’s effect) 효과를 양자 역학적으로 설명했다. 네 번째 논문에서는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을 설명했다. 이 논문들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의 하나가 되었고,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양자 혁명이 가능하게 했다. 이 논문들로 인해 슈뢰딩거는 193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의 모습은?

현대 물리학이 양자 물리학의 기초 위에 성립되었고, 양자 물리학의 핵심이 슈뢰딩거 방정식이라면 양자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슈뢰딩거 방정식은 미분 방정식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미분과 적분을 배우지만 본격적으로 미분 방정식을 배우지는 않는다. 따라서 식으로 나타낸 슈뢰딩거 방정식을 보고 그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슈뢰딩거 방정식을 써서 보여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슈뢰딩거 방정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살펴보고 넘어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전자와 같은 입자들이 가지는 물리량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파동함수를 구할 수 있는 미분 방정식이다. 어떤 조건 하에서 전자가 운동하고 있을 때 슈뢰딩거 방정식에 이 조건을 대입하여 해를 구하면 전자가 어떤 물리량을 가지고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파동함수를 구할 수 있다.

 

 

슈뢰딩거 방정식이 나타내는 파동함수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런데 슈뢰딩거 방정식은 뉴턴의 운동 방정식과는 매우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 뉴턴의 운동 방정식에 초기 조건을 대입하여 해를 구하면 단 하나의 해가 구해진다. 물론 해를 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해를 구하는 수학적 능력의 문제이지 방정식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따라서 해를 구하기만 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슈뢰딩거 방정식에 초기조건을 대입하여 방정식을 풀면 하나의 해가 아니라 여러 개의 해가 구해진다. 이런 해들은 각각 다른 물리량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원자 속에 들어 있는 전자의 파동함수를 구하면 서로 다른 에너지를 가지는 여러 가지 파동함수를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전자가 이런 에너지 중의 한 에너지를 가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에너지 중의 어떤 에너지를 가질는지를 알 수는 없다.

 

  

 

그렇다면 파동함수가 나타내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따라서  양자 물리학에서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해를 구하는 것보다도 구한 해를 해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만들어 양자 물리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던 슈뢰딩거가 양자 물리학에 등을 돌리게 된 것은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구한 파동함수의 해석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슈뢰딩거 방정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 : 확률 파동 함수

슈뢰딩거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구한 파동함수는 말 그대로 전자의 파동을 나타내는 파동함수라고 생각했다. 전자가 파동의 성질도 가지고 있다면 전자 파동을 나타내는 파동함수가 있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독일의 보른(Max Born, 1882~1970)은 1926년 10월 파동함수를 확률함수라고 새롭게 해석했다. 확률함수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 ε1이라는 에너지를 가지는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 Ψ1, ε2의 에너지 상태를 나타내는 파동함수 Ψ2등의 해를 구할 수 있다고 하자. 슈뢰딩거는 Ψ1은 ε1의 에너지를 가지는 전자의 파동을, 그리고 Ψ2는 ε2의 에너지를 가지는 전자의 파동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른은 Ψ1은 전자가 ε1의 에너지를 가질 확률을 나타내고, Ψ2는 전자가 ε2의 에너지를 가질 확률을 나타내는 확률함수라고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보른에 해석에 의하면 전자가 어떤 에너지를 가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에너지를 가질 확률이 얼마인지는 알 수 있게 된다.


 

 

슈뢰딩거, 끝내 파동함수의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슈뢰딩거는 파동함수에 대한 이러한 확률적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연법칙이 확률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보른을 비롯한 주류 양자물리학자들의 해석이 실험결과와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도 슈뢰딩거는 확률적으로 해석하는 양자물리학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슈뢰딩거는 1935년에 아인슈타인과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의논한 끝에 주류 양자 물리학자들의 해석을 반박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다룰 생각이다. 


이렇게 해서 슈뢰딩거도 플랑크(M. Planck), 아인슈타인과 함께 양자 물리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으면서도 양자 물리학을 반대해 현대 물리학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과학자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양자 물리학의 중심인물이었던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와 양자물리학의 새로운 해석을 반대했던 아인슈타인 사이에 있었던 논쟁에 대해서는 다음 이야기에서 자세하게 다룰 예정이다. 

 

 

슈뢰딩거의 삶과 연구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표한 직후인 1927년에 슈뢰딩거는 막스 플랑크의 뒤를 이어 독일 베를린 대학의 교수가 되어 독일로 갔었지만, 나치가 정권을 잡자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갔다. 그러나 사생활이 문제가 되어 영국에 정착할 수 없었다. 그는 두 아내와 같은 집에 살면서 두 아내가 낳은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했지만 영국 사회는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미국의 프린스턴으로 가려던 계획도 같은 이유로 포기해야 했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후 곧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나치와 화해하려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해임된 그는 오스트리아를 탈출해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가 그곳에서 17년간 살았다. 아일랜드에 사는 동안에도 그는 아내가 아닌 두 여인으로부터 두 아이를 낳기도 했다.


더블린에 사는 동안 슈뢰딩거는 통일장의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고, 1944년에는 「생명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는 복잡한 분자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DNA분자 구조를 밝혀내 노벨상을 받은 제임스 왓슨프란시스 크릭은 이 책을 읽고 DNA의 구조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회고록에 기록해 놓았다. 1956년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슈뢰딩거는 1961년 죽을 때까지 오스트리아에 살았다.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