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시작이 있는가 아니면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가? 이것은 인류의 오래된 의문이었다. 우주의 시초가 있다고 주장하는 빅뱅우주론이 등장하자, 이에 맞서 영원한 우주를 주장하는 정상상태 우주론이 등장하여 상반된 두 우주론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었다.
우주는 영원 불멸 한가, 그렇지 않은가?
인류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믿음과 상상에 바탕을 둔 신화적(종교적) 또는 철학적 우주론이 나타났다. 인류가 내다볼 수 있는 우주의 범위는 시대마다 한정되어 있었지만, 여기에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져서 다양한 우주론이 등장하였다. 유사 이래 인류가 생각해온 우주관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그것은 우주가 영원불멸인가 아니면 기원을 갖는가 하는 것이다.
무한하고 정적인 우주? 이에 반하는 증거의 발견, 우주 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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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중력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등장하면서부터 우주론은 신학이나 철학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은 무한하고 정적인 우주를 선호했다. 하지만 이러한 우주는 ‘벤틀리의 역설(Bentley's paradox)’이나 올버스의 역설(Olbers' paradox)과 부딪히게 된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하자 성직자였던 리처드 벤틀리(Richard Bentley, 1662~1742)는 1692년에 뉴턴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 '만약 중력이 인력으로만 작용한다면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은 서로를 끌어당겨 우주가 붕괴할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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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버스의 역설은 “밤하늘이 왜 어두운가?”라는 의문으로부터 제기된 것으로, 우주가 무한하고 별들이 고르게 분포한다면 어떤 방향으로 봐도 무한히 많은 별들이 보여야 하므로 밤하늘이 어두울 수 없다는 역설이다. 이 두 가지 역설은 수백 년 동안 물리학자와 천문학자들을 괴롭혀 왔다.
1912년 베스토 슬라이퍼(Vesto Slipher, 1875~1969)는 은하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생각했던 것처럼 정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허블(Edwin Powell Hubble, 1889~1953)은 이 문제를 철저히 조사하기로 결심하고 하늘의 24개 은하를 세심하게 관측하여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아가 허블은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V)는 거리(r)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로부터 자연스럽게 나온 진화우주론, 빅뱅이론
우주가 팽창한다는 관측사실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우주론은 우주가 시간에 따라 진화해왔다고 설정하는 진화우주론이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우주의 팽창이 시작된 시점이 있으며 이 점으로부터 우주가 폭발적으로 팽창해왔다고 주장하는 것이 빅뱅이론이다. 가모브(George Gamow, 1904~1968)가 주장한 빅뱅이론은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의 대부분이 수소와 헬륨이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우주에 존재하는 경원소들의 존재량을 정확히 설명하여 주목을 받게 되었다. | |
빅뱅이론은 한동안 고무적이었지만 곧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가모브는 빅뱅 시점에서 수소로부터 모든 원소들이 합성된다고 주장했지만, 원소의 생성은 헬륨단계에서 멈춰버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원소합성의 문제는 빅뱅이론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것은 경쟁 관계에 있는 정상상태 우주론의 문제이기도 했다.)
빅뱅우주론을 위태롭게 만든 문제는 우주의 나이였다. 빅뱅이론은 허블이 발견한 우주의 팽창속도로부터 역산하여 우주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 허블 상수의 역수(1/H)가 우주의 대략적인 나이가 된다. 허블이 관측한 허블 상수 값은 H=500km/s/Mpc (2009년 HST 자료로 추정한 값은 74km/s/Mpc)였고, 이로부터 추정된 우주의 나이는 18억 년이었다. 당시 방사성 연대측정으로 얻어진 지구의 나이는 30억 년이 넘었으므로 우주의 나이가 지구나 별들의 나이보다 적은 모순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당시 허블의 거리 측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 |
빅뱅 이론의 모순을 지적하며 등장한 정상상태 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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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호일(Fred Hoyle, 1915-2001)과 토마스 골드(Thomas Gold, 1920 – 2004)는 정기적으로 헤르만 본디(Hermann Bondi, 1919-2005)의 집에 모여 토론을 벌였다. 그들은 빅뱅이론에 비판적이었는데 우주의 나이가 별들의 나이보다 젊다는 것과 빅뱅이전의 일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빅뱅이론은 흔히 우주의 탄생과 근원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빅뱅이론은 빅뱅이 일어난 직후부터 우주의 진화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지 빅뱅의 순간이나 그 이전을 설명하는 이론은 아니다.)
하지만, 허블이 관측한 우주의 팽창은 명백했으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우주가 팽창한다면 시간이 감에 따라 우주의 밀도는 작아진다. 따라서 진화하면서도 변화하지 않는 우주모델을 생각해야 했다. 토마스 골드는 우주가 팽창함에 따라 은하 사이의 공간에서 새로운 물질이 나타난다는 착상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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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일과 본디는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 여겼지만, 모순이 없을 뿐 아니라 넓은 범위의 천문학적 관측사실과도 부합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동적이며 무한한 우주를 상정한 것이다. 우주가 무한하다면 우주가 2배로 커져도 역시 무한하다. 은하 사이에 물질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우주 전체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이렇게 하여 정상상태이론(Steady State theory, Infinite Universe Theory)이 등장하게 되었다. 정상상태이론은 영원하고 정적인 우주를 수정한 것이다. 우주는 팽창하지만, 영원하고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주를 탐구해오면서 우주원리(cosmological principle)라 부르는 대칭성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이 처음 상정한 우주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모든 천체가 지구주위를 돈다는 지구중심 우주모델이다. 이 모델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 모델의 등장으로 부정되었고 지구는 특별하지 않으며 우주는 공간적으로 등질성을 갖는다는 ‘코페르니쿠스 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이 발견되고 우주의 팽창은 중심이 없으며 모든 은하는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우주에는 특별한 중심이 없고 어떤 방향으로도 동일하다는 ‘우주원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원리는 우리 은하와 주변 환경은 우주의 다른 곳과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으로 우리는 우주의 특별한 장소에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원리는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전체 우주에 적용할 때 적용한 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상상태이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주는 시간적으로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위의 우주가 다른 지역의 우주와 같을 뿐 아니라 우리 시대가 다른 시대와 같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주의 특별한 장소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며 특별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우주원리는 시공간 모두에 대해 대칭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완전우주원리’라 부른다.
그러나, 정상상태 우주론으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존재한다
정상상태이론에서 제기되는 첫 번째 질문은 ‘새로 생성된 물질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것이다. 호일은 새로운 별과 은하가 어디에서 발견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질문은 ‘물질은 어디에서 오는가?’ 라는 것이다. 호일은 C-장(창조장)이 우주 전체에 퍼져 있어서 자발적으로 원자를 창조하고 우주를 같은 상태로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호일은 C-장이 물리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연속적인 창조가 한 번의 전능한 창조보다 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물질은 얼마나 생겨나는가? 호일은 1세제곱 미터의 공간에서 10억 년에 수소 원자 1개 정도가 생성된다고 했다. 이것은 너무 적어서 지구에서 도저히 관측 가능한 양이 아니다.
정상상태우주론과 빅뱅우주론, 어느 우주론이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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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브와 호일은 각각 빅뱅우주론과 정상우주론이 옳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고 논쟁을 벌였다. 두사람 사이에 벌어진 우주론 논쟁은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지만, 어느 우주론이 옳은가는 관측을 통해서 판별할 수밖에 없었다.
빅뱅 우주론과 정상상태 우주론은 서로 전혀 다른 예측을 하고 있었다. 정상상태 우주론에서는 새로운 물질은 우주의 모든 곳에서 만들어지며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은하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초기 은하는 우주 전체에 흩어져 있게 된다. 하지만 빅뱅 우주론에서는 전체 우주가 동시에 창조되었고 모든 것은 비슷한 방법으로 진화해왔다고 주장한다. 모든 은하는 초기은하였던 시기가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성숙해 있다. 따라서 오늘날 초기 은하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먼 곳을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 은하의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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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브와 호일이 활발한 논쟁을 벌이던 1940년대 말~1950년대 초의 관측 장비와 기술로는 초기 은하와 성숙한 은하를 구별할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시로써는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이었다. 다음 표는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사실에 기초하여 두 가지 우주론의 장단점을 비교한 것이다. 두 이론은 실제의 우주를 설명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었지만, 어느 쪽도 과학자들의 절대 다수의 지지를 얻지는 못하고 있었다. 정상상태 우주론은 증명하거나 부정할 관측 사실이 없었던 반면 빅뱅 우주론은 우열이 확실히 갈렸다. 어떤 사실은 긍정적으로 나타난 반면 어떤 것은 부정적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천문학자들 사이에는 빅뱅우주론 보다는 정상우주론이 무리 없는 듯이 비치기도 했다. 빅뱅우주론 앞에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여러 개 놓여있었다. | |
- 글 김충섭 /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동영상으로 보는 우주의 발견> <메톤이 들려주는 달력 이야기> <캘빈이 들려주는 온도 이야기> 등이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1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