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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말러 - 교향곡 1번

minjpm 2009. 10. 23. 08:39

원문에 들어있는 음악을 들으시려면, 본문 맨 아래 있는 원문가기 링크로 가셔서 들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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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대는 올 것이다.” 구스타프 말러가 생전에 남겼던 예언과도 같은 이 말은 작곡가 탄생 150주년을 바라보는 이 시점(2010년은 말러 탄생 150주년, 2011년은 서거 100주년이다.)에서는 이미 완벽하게 실현된 느낌이다. 예를 들어 그의 [교향곡 1번]은 이제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 등 기존의 어떤 인기 교향곡 레퍼토리와도 동등하게, 어찌 보면 더 자주 연주되는 곡이 되었다. 그러나 말러 생전에 이 곡은 지금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어떠한 징조도 보여주지 못했다. 도대체 이 곡의 어떤 점이 당시 사람들을 당혹케 했으며, 또 지금의 우리를 매혹하는 것일까?

 

 

 

대실패한 초연 - 평생토록 이어졌던 장대한 투쟁의 서막


“말러의 특징적인 모습은 이미 그의 첫 번째 교향곡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후에 만개하게 될 그의 삶의 멜로디, 즉 자연과 죽음에 대한 집착이 이미 이 곡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 아르놀트 쇤베르크

 

말러의 [교향곡 1번]이 언제 착수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1884년이나 1885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구상은 1884년 당시부터였을지 몰라도 실제 작곡은 대부분 1888년 초에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렇게 설이 엇갈리는 이유는 말러의 지인들이 남긴 자료의 내용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교향곡이 1888년 3월에 완성되었다는 사실 외에 분명한 것은 없다. ‘완성’이라고 했지만 이 당시 말러가 내놓은 결과물은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였다. 2부로 구성된 교향시의 형태였고, 악장 수도 다섯 개였다. 1889년 11월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었을 때는 ‘장송 행진곡 풍으로’라고 명명된 4악장(현재는 3악장) 외에는 별다른 표제가 없었지만, 1893년 독일 함부르크 연주 때는 각 악장 앞에 표제와 설명이 붙었는데 이 가운데 표제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말러는 1896년의 베를린 연주 때부터는 ‘블루미네’ 악장을 곡에서 빼버렸고 표제도 지워버렸다. 단순히 일종의 상징으로서만 제목을 달았던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사람이 이 표제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오히려 음악의 이해에 혼란을 빚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훗날 말러는 이러한 표제들은 “음악이 표현하고 있는 바를 적합하게 나타내지 못하며……중요한 것은 오직 음악의 느낌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관현악법은 몇 차례 더 수정되었다.

 

초연은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 말러는 상당 기간 실의에 빠진 채 지내야 했다. 당시 청중과 비평가들은 말러의 음악 어법에 크게 당황하여(곡의 총보를 완성한 직후 말러는 “사람들이 이 곡을 들으면 놀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막상 자신의 예측이 들어맞은데 대해서는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비난을 퍼부었다. “불협화음, 지루한 오르간 포인트, 개개 음 사이의 부조화”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오페라 감독으로서 말러의 거동처럼 불분명하고 모호하다”는 인신 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교향곡에 대한 가장 신랄한 평은 당시 ‘비평의 교황’으로 오스트리아 음악계에 군림했던 에두아르트 한슬리크(Eduard Han slick)에게서 나왔다. “우리 가운데 어느 한쪽이 미쳤음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내 쪽이 아니다.” 한 마디로, 이 곡의 초연은 이후 말러가 평생토록 직면했던 몰이해와의 장대한 투쟁을 알리는 서막이 되었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온 것일까? 그것은 말러가 자신의 첫 교향곡에서 이미 기존 교향곡 체계에서 벗어나려는 대담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각 악장을 상세히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서양 음악사를 바꾼 ‘거인’의 힘찬 첫 발자국

1악장 : 느리게. 질질 끌듯이. 자연의 음향으로 - 처음에는 매우 차분하게
D장조 4/4박자이다. 일단 서주를 지닌 소나타 형식에 가깝지만 엄밀하게 전통적 형식을 따른 것은 아니다. 서주에서는 7도에 걸친 유니즌(같은 음높이를 동시에 울리는 것으로 노래할 때 제창에 해당하는 연주 방식)으로 진행되는 현악기의 오르간 포인트를 배경으로 무대 뒤에서 울리는 트럼펫 소리가 자연을 긴 동면에서 깨운다. 이 서주는 4악장에서 다시 등장하게 된다.

 

제시부의 첼로 주제는 말러의 초기 연가곡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두 번째 곡 ‘오늘 아침 들판을 건너가네’ 선율에 기초한 것이다. 2주제는 등장하지 않으며, 발전부에서 서주가 재등장한 후 호른 선율에 뒤이어 연주되는 첼로의 선율이 일종의 대용품 구실을 한다. 이 첼로 주제가 1주제와 결합-발전하면서 발전부를 구성한다. 재현부에서는 발전부의 내용이 다시 반복된 후, 고함소리와 함께 연주가 끝난다. 이 악장의 특징적 모티브는 목관악기들의 잦은 변화에 찬 4도 도약인데, 초기 말러 학자인 파울 베커의 말에 의하면 이는 뻐꾸기 소리를 상징(모방이 아니라)하는 것이라고 한다.

 

no 아티스트/연주  
1 1분감상 – 1악장 마지막 부분 / 브루노 발터[지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1961, SONY) 듣기

 

 

2악장 : 힘찬 움직임으로,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 트리오. 적당히 편안하게
A장조 3/4박자. 일종의 스케르초로 말러가 자주 애용했던 렌틀러 형식으로 되어 있다. 렌틀러가 교향곡의 정규 악장으로 도입된 것은 이 곡이 처음이다. 왈츠가 도시 중산층의 춤이라면 렌틀러는 시골 서민의 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도 그런 성격은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 거칠고 활기찬 스케르초와 유연하고 사랑스러운 트리오가 좋은 대비를 이룬다.

 

no 아티스트/연주  
1 1분감상 – 2악장 도입부 / 브루노 발터[지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1961, SONY) 듣기

 

 

3악장 : 장중하고 위엄 있게, 너무 끌지 말고
d단조 4/4박자. 팀파니의 희미한 연타에 뒤이어 등장하는 더블베이스 선율은 귀에 익으면서도 낯설다. 유명한 동요 ‘마르틴 형제’(영어권에서는 ‘존 형제’)를 단조로 연주한 것으로 일종의 패러디다. 이 대목과 뒤이어 등장하는 ‘카바레 풍’의 밴드 선율이 당시 평론가와 청중을 얼마나 분노케 했는가는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진지한 음악 장르인 교향곡에서 패러디라니! 게다가 이 저속한 선율은 또 뭐란 말인가!” 3부 형식으로 작곡된 이 악장의 중간부에서 약음기를 낀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선율은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네 번째 곡 ‘그녀의 푸른 두 눈동자’에서 따온 것이다.

 

no 아티스트/연주  
1 1분감상 – 3악장 도입부 / 브루노 발터[지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1961, SONY) 듣기

 

 

4악장 : 폭풍 같은 움직임으로
만약 이 교향곡을 처음 듣는 이가 방심한 채로 3악장의 끝부분까지 들었다면 4악장 첫머리의 포르티시모 총주에서 예외 없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말러의 친구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초연 당시 “근처에 앉은 한 귀부인은 마지막 악장 첫머리에서 너무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것을 전부 떨어뜨렸다”고 한다. 이 악장은 2/2박자로, 비교적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이 ‘폭풍 같은’ 1주제(‘지옥’ 주제)가 서정적인 제2주제와 대비를 이루면서 제시부를 구성하며, 제시부의 끝에서는 1악장의 서주가 회상된다. 발전부에서는 앞의 두 주제가 다시 등장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주제(‘천국’ 주제)가 등장하며 제시부의 끝에서 인용되었던 1악장의 서주가 재등장하는데 말러는 이 부분을 가리켜 ‘영웅의 젊음에 대한 암시’라고 했다. 2주제로 시작되는 재현부의 마지막에서 드디어 ‘천국’ 주제가 개가를 울리며, 이는 그대로 코다(악곡 또는 악장을 끝내는 결미부를 일컫는 말)에서의 영광으로 이어진다.

 

no 아티스트/연주  
1 1분감상 – 4악장 도입부 부분 / 브루노 발터[지휘], 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1961, SONY) 듣기

 

 

음반 가운데는 이 곡에 ‘거인’(Titan)이라고 표제가 붙은 것도 있다. 이 제목은 초연 때 붙은 것으로,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이 썼던 같은 제목의 소설에서 따온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말러는 소설의 내용을 음악으로 옮기려 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교향곡이 지닌 대담함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을 뿐이다. 비록 훗날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다소 미숙한 점도 있지만, 이것이 음악사의 흐름을 바꾼 ‘거인’의 힘찬 첫 발자국에 어울리는 작품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쓸 때 볼프강 슈라이버의 저서 [말러]와 김문경의 [말러]를 참고했다. 말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는 좋은 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황진규 / 음악 컬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콰이어 앤 오르간], [코다], [라 무지카] 등 여러 잡지에 리뷰와 평론, 번역을 기고해 온 음악 컬럼니스트이다.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며, 지휘자 가운데서는 귄터 반트를 특히 존경한다.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1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