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pm(민제이피엠) 의 음악과 함께하는 삶~
SOUL CLAMP

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오페라 교실 - 바그너 음악극과 현대 오페라

minjpm 2009. 10. 23. 08:41

베르디와 바그너는 ‘19세기 오페라의 양대산맥’으로 불립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1813년에 태어났고, 서로에게 은근히 신경을 쓰며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각기 이탈리아와 독일을 대표해 활동했습니다. 두 사람 인생의 전반에는 베르디가 훨씬 큰 성과를 거두며 유럽 오페라계를 지배했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바그너의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신개념이 ‘오페라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정말 어려울까?

오페라 한 편을 만들 때는 우선 대본가와 작곡가가 함께 의논해서 소재(소설이나 희곡)를 구해 그것을 토대로 대본을 쓴 다음, 그 대본 가사에 곡을 붙이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일찍부터 철학과 문학에 열정을 기울였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 r, 1813-1883)는 대본쓰기와 작곡을 모두 혼자 했습니다. 본격적인 명성을 얻기 전에 바그너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지만, 런던을 거쳐 한동안 파리에 살면서 작곡가 리스트, 마이어베어, 오베르, 그리고 프랑스의 작가 스크리브알레비 등의 영향을 받아 음악적, 문학적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 사실주의, 등장인물들의 열정과 격렬한 갈등, 그리고 스펙터클한 군중 장면과 오케스트라 효과가 관객의 흥미를 끌고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배웠지요. 뿐만 아니라 이 빈곤한 시기에 바그너는 무정부주의자 프루동의 [사유재산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사유재산은 곧 도둑질’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으며, 이런 생각은 후에 그의 대작 [니벨룽의 반지](환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의 원조)를 구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베토벤을 특별히 존경했던 바그너는 1846년에는 [교향곡 9번]을 지휘하기도 했지요. 1849년, 드레스덴에서 일어난 5월 혁명(바쿠닌 봉기)에 가담한 바그너는 지명수배 되고, 스위스 취리히로 망명합니다. 이 시기에 바그너는 “웅변가, 장사꾼, 도둑들의 수호신인 머큐리(헤르메스) 신이 현대문화를 지배하고 있으며 예술은 그의 시녀”라고 말했습니다.


 

예술의 본질은 돈 버는 산업이고 그 목적은 지루해하는 인간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므로, 예술은 ‘타락의 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탄호이저], [로엔그린]에 이르기까지 바그너는 스스로의 작품들을 ‘낭만적 오페라’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망명지에서 은인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면서 탄생시킨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기점으로 그 이후 작품들은 ‘음악극’으로 분류됩니다.

 

뛰어난 극작(劇作) 감각을 지녔던 바그너는 무엇보다도 언어의 문제에 매달려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적할 독일 오페라의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독일인의 성대 구조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노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탈리아어 말고는 다른 어떤 언어도 모음을 사용해 그토록 감각적인 쾌락을 만들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 바그너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기본 구조로 삼았던 ‘아리아/레치타티보’의 구분을 없애고, ‘유도동기(Leitmotiv. 특정 인물이나 특정 장면이 되풀이해서 나타날 때 그 인물이나 장면을 상징하는 선율이나 화성을 다시 써서 감상자의 기억을 일깨우는 기법)’와 ‘무한선율(중간 마무리로 멜로디를 끊지 않고 휴식 없이 계속 끌어나가는 것)’을 발전시켰습니다. 결국 성악에 적합하지 않은 독일어의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 바그너가 새롭게 개발한 형식이 음악극인 셈입니다. 이 명칭은 극과 음악의 절대적인 일치를 꿈꾼 바그너의 이상을 단적으로 표현합니다.

 

 

 

바그너 오페라를 보통 무척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오히려 이해하기 쉬운 것이 바그너 작품들입니다. TV연속극을 보면 남녀 주인공이 고민할 때마다 또는 기뻐할 때마다 흘러나오는 ‘민우의 테마’ 혹은 ‘영서의 테마’같은 음악들이 있지요. 이것이 바로 바그너의 ‘유도동기’와 같은 것입니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없다 하더라도 시청자는 이 음악이 나오기만 하면 ‘아, 이제 주인공이 또 혼자 고민하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가 있죠. 헐리웃 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클래식음악이 다름 아닌 바그너 음악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바그너 오페라는 음악적인 면보다 연극적인 면에 초점을 두어 감상한다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오페라의 관능미, 러시아 오페라의 비장미


구노의 [파우스트], 비제의 [카르멘], 생상스의 [삼손과 델릴라], 마스네의 [마농]. 19세기 후반 프랑스 오페라의 관능미를 대표하는 작품들입니다. [파우스트]를 제외하면 모두 팜 파탈(femme fatale)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죠. 탄탄한 원작을 소재로 문학성 뛰어난 대본가들이 유려한 시구를 엮어냈고, 작곡가들은 명암의 대비가 뚜렷하고 색채감이 넘치는 프랑스 특유의 음악을 거기에 입혔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브게니 오네긴]을 작곡한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해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러시아 작곡가들은 광활한 러시아의 대평원을 연상시키는 묵직하고 비장미 가득한 오페라 작품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러시아의 바그너’로 불리는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언어의 리듬을 살린 독창적 작곡법으로 [보리스 고두노프] 등의 스케일 큰 역사극을 작곡했지요. 거칠고 원시적인 생명력을 지닌 무소르그스키의 작품들은 같은 국민음악파에 속했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편곡으로 유럽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여과 없는 고통과 절망의 비명 - 베리스모 오페라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은 예술 전반에 있어서 일대 변혁의 시대였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는 사실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자연주의가 ‘베리스모(verismo)’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지요. 이 시대의 오페라 작곡가들은 작품 속에서 현실보다 더욱 적나라하게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드러냈습니다. 고통과 절망은 더 이상 벨칸토 스타일의 아름다운 멜로디로 전환되지 않고 여과 없이 비명으로 토해져 나왔습니다. 치정 살인을 소재로 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는 베리스모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품으로, 전 세계 무대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등의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는 베리스모 시대에 활동했으면서도, 낭만적인 선율과 이국정취를 작품에 사용해 대중적으로 널리 인기를 모았습니다.

 

 

 

전통을 벗어난 파격적 방향 전환 – 현대 오페라


비슷한 시기에 삶의 방식 변화 및 인간을 둘러싼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나타난 모더니즘 예술은 전통을 벗어난 파격적 방향전환을 보여주었습니다. 음악에서는 이 새로운 경향이 무엇보다도 아놀트 쇤베르크와 그의 제자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의 무조음악에서 뚜렷하게 발견됩니다. 서양음악의 구조적 기본 틀을 이뤘던 조성체계가 바그너 시대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기능과 의미를 잃고 아예 붕괴해버린 것입니다. “조성은 영원한 법칙이 아니며 음악 형식의 성취를 위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쇤베르크는 불협화음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본격적인 무조음악을 작곡했습니다. ‘도레미파솔라시’라는 7음에 다섯 개의 반음을 합친 12음이 자유롭게 나타나는 무조음악은 전통적 화성과 대위법 등 작곡법 자체를 해체하기에 이릅니다.

 

 

 

현대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피에르 불레즈는 “베르크의 [보체크Wozzeck] 이후로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오페라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표현주의의 폭발”, “무조음악을 사용한 최초의 극장용(한 작품으로 저녁 공연 시간을 채울 수 있다는 의미) 오페라”, “진정하고 유일한 사회주의 오페라” 등의 수식어를 단 채 [보체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품으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세기 전환기에 미술 및 예술 각 분야에서 이루어진 표현주의 운동은 감정의 분출과 폭발로 인간의 내면을 노출하고, 익숙한 형식과 형태를 왜곡하는 방법을 취했고, 오페라 역시 같은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오페라 작곡가들 중에는 약간 다른 방향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현대적 시도를 하거나(벨라 바르토크), 모더니즘을 좀더 발전시키고 변화시킨 작곡가(리하르트 슈트라우스)들이 있지요. 또 양식전환을 시도해 신고전주의의 길을 가거나(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반낭만주의적인 신바로크주의의 길(파울 힌데미트)을 택하기도 했고, 재즈를 수용(쿠르트 바일)하는 경우도 보입니다. 오페라의 역사는 이번으로 마치고, 다음 회에는 ‘오페라 가수들의 음역’을 소개해드립니다.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이화여대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현재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국립오페라단 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무지크바움, 성남아트센터 등에서 오페라 및 클래식 강좌 진행, PBC [음악공감]에서 매주 수요일 오페라 해설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지상에 핀 천상의 음악], [춤에 빠져들다]가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1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