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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슈만 - 클라이슬레리아나

minjpm 2009. 11. 16. 11:27

원문에 들어있는 음악을 들으시려면, 본문 맨 아래 있는 원문가기 링크로 가셔서 들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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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슈베르트는 사춘기 시절부터 음울한 주제에 탐닉했고, 어둡고 기괴한 이야기와 소재는 발라드 양식과 결합하여 슈베르트 특유의 어둡고 음울한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슈베르트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슈만 역시 독특한 세계관과 환상, 마법이라는 주제에 심취하였으며, 독특한 소재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그가 작곡했던 수많은 작품들에 나타나고 있다. 이는 낭만주의 음악의 특징이기도 하다. 슈베르트가 시와 음악의 연계를 통하여 예술가곡의 문을 열었다면, 슈만은 음악과 문학과의 결합을 끊임없이 시도해 성격소품(character piece)을 창조해낸 셈이다. 성격소품은 19세기에 크게 유행했으며 주로 A-B-A의 3부 형식의 단순한 구성을 가지고 있고 독일 가곡처럼 표현적인 선율과 화성을 강조했다. [크라이슬레리아나] 역시 3부 형식을 가진,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슈만에게 영향을 미친 영감의 근원은 독일의 시인 하이네, 바이런, 리히터의 작품이었지만, 환상적인 세계를 다루었던 작가 호프만(E.T.A Hoffmann, 1776~1822)의 예술 역시 죽을 때까지 슈만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호프만은 그로테스크한 환상, 광기와 풍자가 넘치는 단편 소설을 발표해 독일 낭만주의의 꽃을 피운 작가였다.

 

 

 

두 개의 음악적 주제를 교차시켜 이중적 자아를 표현

독일의 작가 호프만의 작품 [수코양이 무어의 인생관과 우연히 삽입된 갈피지의, 악장 요하네스 크라이슬러의 단편적 전기](1822)에서 영감을 얻는 작품 [크라이슬레리아나] Op.16는 1838년 단 4일 만에 작곡되어 쇼팽에게 헌정된 곡이다.


총 8개의 소품으로 나누어진 이 환상적인 작품에는 두 개의 자아가 등장한다. 하나는 작가 호프만의 자아가 투영된 ‘카펠마이스터 크라이슬러’이고 또 하나는 슈만 자신의 자아를 투영시킨 ‘크라이슬러’다. [크라이슬레리아나]의 기본적인 조성 역시 두 개의 분리된 자아를 대변하고 있다. 크게 나누어 보면 2곡과 4곡, 6곡은 B♭장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3곡과 5곡, 7곡은 G단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개별 곡 내에서도 각각 ‘플로레스탄’(Florestan)과 ‘오이제비우스’(Eusebius)를 연상시키는 음악적 주제를 교차시킴으로서 조울증적인 기질을 지닌 ‘이중적 크라이슬러’ 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는 슈만 자신의 또 다른 내적 자아이다. 슈만은 명랑하고 열정적인 ‘플로레스탄’과 내성적이고 명상적인 ‘오이제비우스’라는 두 개의 상반된 캐릭터가 자기 안에 공존한다고 생각했고, 음악을 통해 변덕스런 자아의 모습을 표현하곤 했다.


 

호프만의 문학 작품 속에서도 이중성과 모호함이라는 두 개의 주제는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단편적 이야기들이 진행 되는 도중, 문장 중간에서 이야기가 시작하거나 끝난다든지 혹은 이야기 전개가 절정에 도달하는 순간 돌연히 다른 소재의 이야기로 바뀌어 버리는 문학적 장치가 사용되고 있다. 호프만이 의도한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문학적 효과는 [크라이슬레리아나]에서도 음악적 효과로 변환되어 적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제 8곡에서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ppp(아주 여리게, pianississimo)로 인하여 음악이 급격하게 사라지는 느낌은, 소설 속에서 크라이슬러가 사모하는 율리아 공주와 이그나티우스 왕자의 결혼을 알리는 편지의 급작스러운 끝맺음처럼 음악에서도 매우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다. 총 8곡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no 아티스트/연주  
1 1분감상 – 제 1곡 / 발터 기제킹[피아노] (1953, BBC LEGENDS) 듣기
2 1분감상 – 제 2곡 듣기
3 1분감상 – 제 3곡 듣기
4 1분감상 – 제 4곡 듣기

 

 

1. Aussert bewegt (매우 빠르게)
격렬하고 소용돌이치는 음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오른손의 셋잇단음표 리듬과 왼속의 지속적인 당김음 리듬이 겹쳐서 빠르고 긴박한 분위기의 ‘플로레스탄’적 열정을 표현하고 있다. 고뇌하는 예술가 크라이슬러를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2. Sehr innig und zu rasch (충분히 표현하여, 그러나 지나치게 빠르지 않게)
제2곡은 [크라이슬레리아나] 전체 작품들 중 가장 규모가 큰 곡으로 조용하고 행복한 느낌의 노래가 펼쳐진다. 2개의 인터메초(Intermezzo)를 포함하는 A-B-A-C-A의 론도형식을 취한다. 인터메초는 A부분과 다른 분위기를 가지지만 A의 주제요소를 변형시킨 멜로디를 사용하므로 연관성을 지니며 전체적으로 아르페지오와 왼손 당김음의 지속적인 사용으로 잔잔한 선율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다.

 

3. Sehr aufgeregt (매우 촉박하게)
격정적인 분위기가 돋보이는 곡이다. 호프만이 묘사하는 악장 크라이슬러는 음악에 몰두해 자신을 망각하는 충동적인 캐릭터였는데, 이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성격이 잘 표현되어 있다. ‘더 빠르고 생기 있게’라고 지시되어 있는 부분에서는 슈만의 도취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포르티시모(매우 세게, ff)와 스포르찬도(그 음만을 세게, sf), 악센트(accent)가 자주 등장해 광란의 파도를 만들어낸다.

 

4. Sehr Langsam (매우 느리게)
제3곡과 대조되어 조용히 체념한 듯한 아름다운 노래가 펼쳐진다. 느린 템포로 전체 곡 중 가장 짧은 길이를 가지고 있다. 제6곡과 함께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기는 곡이라 할 수 있다. 대위법적 선율이 주인공 크라이슬러의 시적인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5. Sehr lebhaft (매우 생기있게)
경쾌한 스타카토, 하행 점음표(음표의 머리 오른편에 작은 점이 있는 음표) 리듬과 같이 생동감 넘치는 스타일이 외향적 성격을 가진  ‘플로레스탄’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빈번하게 사용되는 레가토와 아르페지오의 대조가 만들어내는 흥겨운 매력이 인상적이다.

 

6. Sehr langsam (아주 느리게)
섬세하고 내면에 깊이 호소하는 듯한, 느긋한 흐름과 시적인 표현력이 대단히 아름다운 곡이다. A-B-A'의 구성으로 A부분은 내성적인 ‘오이제비우스’적 성격을 가진다. 당김음의 사용으로 기괴하면서도 생기있는 분위기 적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7. Sehr rasch (매우 빠르게)
C단조의 곡으로 [크라이슬레리아나] 8곡 중 가장 빠른 곡이다. 크라이슬러의 광기를 대변하는 듯한 격정적인 16분음표의 아르페지오, 악센트가 붙은 화음의 파괴적인 기운은 몽상적인 환상을 고조시키며, 파국으로 치닫는 드라마틱한 기운을 드러낸다.

 

8. Schnell und spielend (빠르게 해학적으로)
크라이슬러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며 증발해버린 듯한 기묘한 뉘앙스가 인상적인 곡으로 이전 곡들의 조성을 모두 재현하고 있다. 중간부의 어두운 정열,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클라이맥스의 아름다움은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전형이다. 끝부분은 공허한 느낌으로 슬며시 끝맺으며,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 크라이슬러의 그림자같은 운명과 격정적 천재성을 대비시키고 있다.

 

 

 

노태헌 /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 칼럼니스트 노태헌은 클래식음악 전문지 [라 뮤지카], [그라모폰 코리아], [코다],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안단테] 등에 클래식 음반 리뷰와 평론을 쓰고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