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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베토벤 - 그 웅장한 사운드의 비밀

minjpm 2009. 11. 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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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관현악곡을 듣다보면 이 곡에 과연 몇 명의 연주자가 연주에 참여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악기들이 사용되는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교실 첫 시간에 오케스트라 연주에 사용되는 악기들 차근차근 살펴보았지만 작품마다 편성되는 악기의 종류와 연주자의 수는 각기 다르기 때문에 관현악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곡가가 그 곡에 편성한 악기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곡가가 악기를 편성하는 것은 마치 화가가 물감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곡에 어떤 악기를 편성하고 선율을 어떤 악기로 연주할 것인지를 정하는 데 따라 음악의 느낌은 너무나 달라지거든요. 예를 들어 베토벤은 어떤 교향곡엔 트롬본을 편성해 소리를 웅장하게 표현했는가 하면 어떤 교향곡엔 트롬본을 넣지 않고 맑고 투명한 음색을 만들어냈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베토벤의 교향곡에 사용된 악기들을 살펴보며 악기편성의 효과를 알아볼까 합니다.

 

 

 

경쾌한 느낌을 강조한 베토벤의 초기 악기편성

베토벤은 모두 9곡의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그 중 초기 작품에 속하는 [교향곡 1번]과 [2번]에서는 선배 작곡가이자 그의 스승이기도 했던 하이든의 영향으로 밝고 명랑하면서도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악기편성도 역시 하이든의 후기 교향곡과 매우 비슷하지요.

 

 

 

 

베토벤의 초기 교향곡엔 목관악기군의 기본이 되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이 각각 두 대씩 편성되어있으니 ‘2관 편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금관악기군은 그보다 더 빈약합니다. 호른 둘, 트럼펫 둘뿐이고 트롬본이나 튜바는 아예 나오지도 않습니다. 호른이 무려 여덟 대나 나오는 19세기 후반의 말러 교향곡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적은 숫자이지요. 사용되는 타악기도 팀파니 한 대 뿐이라 그다지 시끄럽지 않습니다. 현악기의 수는 관악기와 타악기의 수를 감안해서 정해지기 때문에 베토벤의 초기 교향곡을 연주하는 인원은 많아야 60명 정도이고 50명이 조금 넘는 연주자로도 충분히 연주할 수 있습니다.

 

악기 편성 자체가 간단하다보니 오케스트라의 음색은 그다지 무겁지 않고 경쾌해서 베토벤의 초기 교향곡은 하이든 교향곡의 명랑함을 많이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악기를 사용하는 방식에서는 베토벤만의 개성도 엿보입니다. 비록 악기 수는 많지 않아도 관악기들의 선율을 겹쳐 사용해서 관현악의 울림을 최대한 충실하게 표현하거나, [교향곡 1번] 1악장 도입부에서 관악기군의 악보에 의도적으로 으뜸화음에서 벗어난 다른 음표를 그려 넣어 이상한 화음으로 충격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베토벤 음악 특유의 박력있는 사운드와 웅장한 표현은 역시 ‘영웅’이란 표제가 붙어있는 [교향곡 3번] 이후의 작품부터 본격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교향곡 3번]에서부터 베토벤만의 웅장한 사운드가 등장


베토벤은 교향곡 제3번을 작곡할 당시 이 교향곡에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면모를 담고자 했습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자유로운 정신이자 인간 해방의 기수로서 존경하며 새 교향곡의 표제도 ‘보나파르트’로 정해두었지요. 하지만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은 교향곡의 악보 표지에 적어놓았던 ‘보나파르트’란 이름을 거칠게 지워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교향곡 제3번의 자필악보 표지는 구멍이 난 채로 전해지고 있지요.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의 제목을 ‘보나파르트’ 대신 ‘영웅’이라 바꾸었습니다.


비록 이름은 바뀌었지만 [교향곡 3번]에 새로운 이상의 실현을 위해 매진하는 영웅의 초상을 담고자 했던 베토벤의 의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베토벤이 영웅적인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특히 신경을 썼던 악기는 호른입니다.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에선 [교향곡 9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 대의 호른이 사용되지만 ‘영웅’ 교향곡에서만큼은 세 대가 편성됩니다. 본래 사냥할 대 쓰던 뿔피리와 많이 닮은 호른은 음악작품 속에서도 사냥장면을 묘사할 때 종종 사용되곤 하지만, 베토벤의 교향곡에선 영웅적인 악기로 등장해 당당한 음색을 뽐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고 깊고 풍부한 울림을 지닌 호른 세 대가 트럼펫과 함께 힘차게 연주할 때면 당당한 영웅의 이미지가 절로 떠오릅니다.

 

no 아티스트/연주  
1 베토벤 3번 - 1악장 호른 / 푸르트벵글러[지휘] 베를린필[연주] (1952, TAHRA) 듣기

 

 

 

[교향곡 5번] ‘운명’에서는 트롬본이 강력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운명’이라는 표제로 잘 알려진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은 베토벤 교향곡에선 최초로 트롬본이 편성되고 피콜로와 콘트라 바순 같은 특수 목관악기가 들어가서 그런지 더 웅장하고 강한 느낌을 줍니다. 트롬본은 금관악기들 중 가장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이면서 동시에 신성한 느낌의 음색을 표현할 수 있는 신비로운 악기입니다. 베토벤 이전에는 교향곡에 편성되는 일이 거의 없었으나, 베토벤은 [교향곡 5번]에 트롬본 세 대를 편성해 좀 더 강력하고 풍부한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악기를 많이 편성한다고 해서 그 효과가 바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악기의 특성을 고려해서 적절한 선율을 배정해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베토벤 [교향곡 5번]에는 다른 교향곡과 마찬가지로 두 대의 트럼펫이 등장하지만 그 쓰임새는 남다릅니다.

 

운명을 극복하고 승리에 도달하는 4악장에서 베토벤은 트럼펫의 황금빛 음색을 강조해서 벅찬 감동을 유도합니다. 언제 들어도 멋진 이 선율을 만일 다른 악기가 연주했다면 과연 이런 느낌이 나왔을까요?


 

no 아티스트/연주  
1 베토벤 5번 - 4악장 도입 / 푸르트벵글러[지휘], 베를린필[연주] (1943, DG) 듣기
 

  

  

여성적인 느낌을 가진 베토벤의 짝수 번호 교향곡


베토벤의 [교향곡 3번]과 [5번]이 영웅적이고 남성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 그와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교향곡 4번]과 [6번]의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중 짝수 번호의 작품들은 대개 조금은 여성적인 편이라서 베토벤의 짝수 번호 교향곡들을 듣다보면 베토벤 음악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작곡가 슈만이 ‘두  거인 사이에 끼인 그리스 미인'이라 말한 베토벤의 [교향곡 4번]에는 목관악기 중 플루트 섹션에 단 한 대만 편성되고 있으니 [교향곡 1번]보다도 관악기의 수가 더 적은 셈이지만, 이 교향곡에선 투명한 음색과 날렵한 움직임을 더욱 잘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4악장에서 묵직한 저음의 악기 바순과 첼로, 더블베이스가 허둥대듯 재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뚜렷하게 들려서 아주 재미있습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6번]에도 트롬본이 2대만 편성되고 있으니 [교향곡 5번]보다 오케스트라의 사이즈는 조금 줄어듭니다. 하지만 적은 수의 악기로도 구체적인 느낌을 묘사하는 베토벤의 재능은 더욱 빛납니다. 특히 플루트와 오보에, 클라리넷으로 각기 나이팅게일과 메추라기,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표현해낸 2악장 말미의 독특한 묘사는 정말 놀랍지요.

 

no 아티스트/연주  
1 베토벤 4번 - 4악장 베이스 / 푸르트벵글러[지휘], 베를린필[연주] (1952, EMI) 듣기
2 베토벤 6번 - 2악장 새소리 / 푸르트벵글러[지휘], 베를린필[연주] (1944, TAHRA) 듣기

 

 

 

혁명적인 악기편성이 돋보이는 [교향곡 9번] ‘합창’

  

베토벤 교향곡의 혁명적인 악기편성은 역시 [9번 ‘합창’]에서 가장 돋보입니다. 이 교향곡의 4악장엔 인간의 목소리가 편성되어있을 뿐 아니라 팀파니 외에 큰북과 트라이앵글, 심벌즈 등의 타악기가 편성돼 색다른 음향효과가 필요할 때마다 적절하게 사용됩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다채로운 악기편성을 자랑하는 [9번 ‘합창’]은 1악장 도입부로부터 신비로운 음향을 들려줍니다. 마치 광활한 우주를 연상케 하는 울림 속에서 차츰 웅장한 주제가 솟아오르는 모습은 마치 암흑 속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악장에서 팀파니의 활약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팀파니스트가 마치 독주자가 된 양 약동하는 리듬을 표현해내며 음악에 생기를 더해줄 때마다 팀파니를 배워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쉴러의 시에 곡을 붙인 ‘환희의 송가’가 노래되는 4악장에선 온갖 타악기들이 등장해 좀 더 다채로운 음향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만으로 연주되는 4악장 전반부에 이어 독창자와 합창이 가세하는 후반부가 시작되면, 먼저 오케스트라가 듣기에도 괴로운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합니다. 팀파니가 마구 두들겨대고 관악기들은 거친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베이스 독창자가 일어나서 “오 친구이여! 이 소리가 아닙니다. 좀 더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릅시다!”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환희의 송가’ 멜로디를 부르게 되지요.

 

no 아티스트/연주  
1 베토벤 9번 - 2악장 팀파니 / 푸르트벵글러[지휘], 베를린필[연주] (1942, TAHRA) 듣기
2 베토벤 9번 - 4악장 성악 도입부 / 푸르트벵글러[지휘], 베를린필[연주] (1942, TAHRA) 듣기
  

 

먼저 수많은 악기들이 내지르는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서인지 독창자가 노래하는  ‘환희의 송가’ 가 더욱 숭고하고 아름답게 들립니다. 오케스트라의 시끄러운 소리마저 음악적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 적절하게 사용했던 베토벤의 천재성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작곡가에게 있어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은 음식의 재료와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재료를 얼마만큼의 분량으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음식 맛과 음악의 맛은 크게 달라지지요. 이제는 관현악곡을 들을 때 오케스트라의 악기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작곡가들이 사용한 비밀스런 레시피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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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규 / 음악 평론가 ,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