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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오케스트라 교실 - 오케스트라 연습실의 비밀

minjpm 2010. 1. 4. 17:37

지난 시간에 오케스트라에 관한 일반적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사실은 아직 밝히지 않은 오케스트라의 비밀은 많습니다. 이를테면 튜바 연주자가 연습에 자주 나오지 않는 이유, 현악기 주자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앉아있는 이유 등등. 그래서 오늘은 오케스트라에 대해 궁금하시는 분들을 위해 오케스트라 연습실을 방문했다고 가정하고 오케스트라의 좀 더 깊은 비밀들을 Q&A로 풀어볼까 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습실 구석구석을 구경해 봅시다

오케스트라 연습실에 들어와 보니 몹시 기대가 되는데요! 생각보다 상당히 넓군요.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습하는 공간이니 그렇겠지요? 그런데 팀파니나 큰북 같은 타악기와 더블베이스는 빈 연습실에 그대로 있네요.

 

Q  타악기, 더블베이스는 악기를 가지고 다니지 않나요?

A  대개 그렇지요. 그건 마치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들고 다니지 않는 것과 같아요. 오케스트라 연습실엔 가지고 다니기 힘든 무겁고 큰 악기들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타악기 주자들은 북채 정도만 가지고 다니면 되고 더블베이스 주자들도 활만 갖고 다녀요. 물론 오케스트라 소유의 악기라서 자기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연습실에 올 때 무거운 악기를 들고 올 필요가 없으니 한결 홀가분하겠지요. 아마 첼로나 트롬본, 호른 주자들이 보기엔 가벼운 활 하나만 들고 출근하는 더블베이스 주자들이 좀 얄밉기도 할 겁니다.

 

특히 첼로는 갖고 다니기엔 좀 무겁고 연습실에 두고 다니기엔 조금 작은 악기라서 매번 무거운 악기를 들고 연습실에 나와야 하니까요. 게다가 해외 연주회라도 있을 때면 첼리스트들은 악기를 위해 비행기 좌석을 하나 더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도 크죠. 첼로의 크기가 애매해서 기내의 짐칸에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짐으로 따로 부치려면 악기가 워낙 예민해서 위험하거든요.


 

 

 첼리스트에게 그런 고충이 있었군요. 남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보다는 자기 악기를 연주하는게 좋을 것 같긴 합니다만.

A  그렇긴 하죠. 그래서 까다로운 피아니스트들은 악기가 그렇게 무거운데도 해외 순회공연 때 자신이 쓰던 악기를 연주회장까지 운반해서 연주하기도 합니다. 더블베이스 주자들도 연습 때는 연습실의 악기를 쓰지만 중요한 연주회 때는 자기 악기를 연주 홀까지 가져가서 연주하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늘 쓰던 자기 악기로 연주해야 더 좋은 연주가 될 테니까요.

 


Q  연습실 게시판을 보니 스케줄이 적혀 있네요.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을 연습하는군요. 곡목 밑에 이상한 숫자는 뭔가요? “3 2 2 3 - 2 2 3 0 - tmp.”이라? 대단히 어려운 암호 같이 보이는데요?

A  아, 그건 연습하는 작품에 몇 명의 관악기 주자와 타악기 주자들이 필요한지를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연주하는 작품마다 현악기의 수는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지만 관악기나 타악기 연주자의 수는 작곡가가 써놓은 악보에 분명히 지정돼 있기 때문에 관악기와 타악기 주자들은 이번에 연주할 곡에 자기가 연주를 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체크해야 해요. 출근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니까요.

 

지금 말씀하신 “3 2 2 3 - 2 2 3 0 - tmp.”는 베토벤 [교향곡 제5번]에 나오는 목관악기 주자의 수와 금관악기 주자의 수, 그리고 타악기 주자의 수를 표기한 것입니다. 앞의 네 개의 숫자가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의 필요인원이고, 뒤의 네 개의 수는 ‘호른, 트럼펫, 트롬본, 튜바’ 주자의 수입니다. 타악기는 팀파니의 약자인 ‘tmp.’라는 글자만 써있는 걸로 보아 이 곡엔 팀파니 외의 다른 타악기는 나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 편성표에 따르면 튜바 주자는 아예 연습에 나올 필요도 없고, 호른 주자도 두 명만 나오면 되니 튜바 주자와 몇 명의 호른 주자에겐 휴가가 생길 것 같군요. 관악기나 타악기 주자들은 소 편성 관현악곡을 연습할 때는 이렇게 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현악기 주자들은 꿈도 못 꾸는 일이에요. 현악기는 관현악곡의 기본이라서 편성이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현악기 연주자들은 거의 모든 곡을 거의 빠짐없이 연주해야 하고, 간혹 단원 수가 좀 많은 악단에서나 가끔씩 쉴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정도예요.


 

 

Q  불공평한 것 같군요. 똑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어떤 이는 한 달에 몇 번만 나와도 되고 어떤 이는 매일 나와야 하다니요!

A  그래서 단원들이 농담 삼아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한 달 월급을 자신이 연주하는 음의 수로 나누었을 때, 바이올린 주자가 연주하는 한 음의 가치가 십 원 정도라고 하면 오보에 같은 목관악기는 백 원,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는 천 원, 큰북 같이 아주 가끔 나오는 타악기는 한 십만 원 정도 될 거라고. 농담이긴 하지만 그 말에 어느 정도 일리는 있어요. 현악기 주자들은 같은 악보를 보고 수십 명이 연주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실수가 전체 연주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연주자의 부담이 적은 반면, 관악기나 타악기 주자들은 하나의 악보를 한 사람이 보고 연주하는 데다 소리가 크고 두드러져서 연주에 대한 부담감이 대단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관악기와 타악기의 한 음의 음악적 가치는 현악기보다 더 크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하긴 음악적 비중이 더 중요할 것 같네요. 그럼 관악기는 일종의 독주자, 현악기는 주로 합주만 한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A  일단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관악기 주자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비중이 높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수석주자들이 있는가 하면 음역이 낮고 중간의 화음을 채우는 선율을 연주하는 일반 단원도 있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 음악적 비중은 각기 다르지요. 또 현악기 주자 중에서도 악장, 수석 주자들은 가끔 홀로 독주를 할 때도 있으니 현악기 연주자들이 합주만 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악보를 놓은 보면대와 의자 배치가 좀 이상합니다. 관악기, 타악기 쪽에는 악보 당 의자가 하나씩인데 현악기 쪽에는 악보 당 의자 두 개가 있군요. 현악기 주자는 두 사람이 짝이 되어 악보를 같이 보나요?

A  그렇습니다. 하나의 보면대를 사용하는 두 사람의 현악 연주자는 현악기 섹션의 기본 단위예요. 이를 독일어론 ‘풀트’(pult), 영어로는 ‘스탠드’(stand)라고 합니다. 현악 섹션의 편성을 말할 때는 항상 ‘풀트’를 단위로 말합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에는 목관악기 각 섹션에 2명에서 3명 정도의 인원이 배치되므로, 제1바이올린은 7풀트, 제2바이올린은 6풀트 정도는 되어야 관악과 현악의 음량 밸런스가 잘 맞지요.

 

 

Q  제1바이올린이 7풀트면 14명이 연주에 참여하는 거군요. 꽤 많은 연주자네요. 현악기는 사람이 많아서 두 사람이 하나의 악보를 보는 건가요?

A  글쎄요. 그런 이유도 있겠죠. 많은 사람이 연습을 하려면 보면대 놓을 자리도 부족할 테니까요. 두 사람이 하나의 악보를 같이 보면서 연습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현악기 연주자들이 연주할 음표들이 너무 많아서 악보를 자주 넘겨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관악기 연주자들은 음표가 그 정도로 많지는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이 악보를 넘기면서 충분히 연주할 수 있지만 현악기의 경우는 악보를 그게 좀 힘들어요. 모든 현악기 연주자들이 악보를 동시에 넘기다보면 소리가 끊길 위험이 있거든요. 하지만 두 사람이 하나의 악보를 보고 연주하게 되면 한 사람이 악보를 넘기는 사이 다른 한 사람은 계속 연주할 수 있어서 소리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요.


 

 

Q  그렇군요! 그럼 한 풀트의 구성원 중에서 누가 악보를 넘기게 되나요? 두 사람이 미리 약속을 해서 정하나요?

A  거의 대부분 객석에서 봤을 때 안쪽에 앉은 사람이 악보를 넘기게 됩니다. 악보를 같이 보는 두 사람의 현악기 연주자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존재하는데요, 청중 쪽에 가깝게 앉은 ‘바깥사람’이 안쪽에 앉은 ‘안사람’보다 좀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안사람이 악보를 넘기거나 지휘자의 지시를 받아 적는 일을 하게 되는 거죠.

 

 

Q  호오, 흥미롭군요. 그럼 현악기 연주자들의 자리 배치가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실력이나 연차를 말해주는 건가요?

A  어느 정도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우선 맨 앞줄이나 두 번째 줄에 앉은 사람들은 수석이나 부수석 연주자이고 가끔 독주를 하기도 합니다. 일반 단원들의 자리배치는 오케스트라마다 방침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연주를 좀 더 잘 하거나 오케스트라 생활을 한 지 좀 더 오래된 사람이 앞쪽이나 바깥쪽에 앞에 앉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Q  단원들이 연습실로 들어오고 있군요. 곧 연습을 시작할 모양인데요. 연습이 시작되면 궁금한 것이 더 많아질 것 같아요.

A  예, 아무래도 오케스트라에선 연습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지요. 하지만 오늘은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 정도로 이야기를 마치고, 오케스트라 연습에 관한 궁금증은 다음에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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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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