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pm(민제이피엠) 의 음악과 함께하는 삶~
SOUL CLAMP

오디오 입문가이드

[스크랩] 오디오 입문 가이드(1)

minjpm 2010. 2. 2. 11:13

새해를 얼마 남기지 않은 한강변의 한 토속 음식점. 초저녁부터 모여든 사람들은 어느새 30명 가까이 헤아리고 있었다. 방을 두 개 터서 길게 만든 공간 한편에는 상 위에 펼쳐진 술과 음식들이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크고 작은 박스에 물체들을 나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노래방 기계? 그런 것 정도는 원래 이곳에도 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들이 가져온 것은 신발상자 만한 작은 스피커들, 그리고 앰프와 CD플레이어들이 보인다. 아… 오디오? 왜 이런 곳에까지?

 

 

 

왜 오밤중까지 극성을 떠나, 오디오가 뭐길래?

여하튼 이들이 가져다 쌓아놓은 스피커와 앰프, CD플레이어가 연결되자 고혹적인 기타와 바이올린 이중주가 흘러나온다. 슈베르트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이들은 좀더 심각한 표정이 된다. 그렇다. 이들은 소위 ‘오디오 동호회원’들이다. 남녀노소까지는 아니지만, 20대부터 60대에 까지 폭넓은 연령층에 걸쳐 학생, 교수, 회사원, 자영업자 등 직업도 다양하다. 사는 곳 또한 전국 각지를 비롯해서, 미국, 호주, 남아공에까지 이르는 가히 전세계적인 모임이다.

 

이들은 벌써 몇 년째 주기적으로 이런 시청회를 겸한 모임을 갖고 있다. 이번 주제는 LS3/5a라고 하는 특이한 이름의 스피커인데, 제조사와 제조시기가 다른 네 종류의 모델을 비교하기 위해 각자 자신의 스피커와 장비들을 들고 불원천리 모여든 것이다. 이 스피커는 오디오 역사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정확히 들려주는 스피커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스피커가 소리가 다르면 얼마나 다르길래 날이 새도록 이런 극성을 떨까? 오디오가 대체 뭐길래?


 

 

 

음악을 들려주는 기계, 오디오

‘오디오’란 음악을 들려주는 기계다. 약 130년에 걸친 역사 속에서 오디오는, 몇 차례의 거대한 물결을 타고 다가왔다. 그 첫 번째 물결은 최초의 오디오, 에디슨의 ‘축음기’에서 시작되었다. 깡통 같이 생긴 스핀들의 표면을 바늘로 긁어서 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녹음을 해서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세월은 흘러 이 축음기는 날개를 달게 된다. ‘전기’를 만난 축음기는 ‘전축’으로 훌쩍 도약하며 인간의 손을 자유롭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더 크고 또렷한 소리를 들려주게 되었다. 그 핵심은 ‘진공관’이었는데, 증폭소자 ‘진공관’은 오디오에서 두 번째 물결을 출렁이며 가정음악실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하지만 발전의 역사 속에서 진공관 또한 어느덧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고, 드디어 세 번째 물결인 트랜지스터가 등장하게 되었다. 진공관보다 높은 효율성과 손톱만한 사이즈, 그리고 열도 나지 않는 ‘마법의 돌’이 탄생한 것이다. 트랜지스터가 가져온 세 번째 물결은 산업전반에 걸쳐 해일처럼 퍼져나갔는데, 제품들의 사이즈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기 때문에 디자인혁명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도시락 두께 정도의 날씬한 앰프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아예 들고 다닐 수 있는 제품들의 출현으로까지 이어졌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핫팬츠차림에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후끈한 언니들로 상징되던 ‘워크맨’의 등장도 트랜지스터의 공로이다. 80년대의 아이콘이 되었던 이 워크맨은 훗날 MP3 플레이어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된다.

 

 

 

연주자가 실제로 눈 앞에 있는 듯한, 환상의 세계를 펼치는 오디오

증폭소자가 발전을 거듭하는 한편, 현장음을 구현시키기 위한 다른 차원의 발전이 있었는데, 바로 모노에서 스테레오, 멀티채널로 이어지는 입체음향을 향한 힘찬 도약이다. 멀티채널 음향은 지금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교과서 같은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스테레오’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눈 앞에 사람이 있는 듯한 느낌을 가져본 적이 있었는가? ‘매직아이’ 정도의 어설픈 느낌이 아니라 실제 크기를 갖고 전후 좌우로 움직이며, 손을 뻗으면 그 촉감마저 느껴질 것 같은 아주 생생한 존재감 말이다. 꿈을 꾼다거나 환각작용 등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는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진짜 같은 느낌이 바로 스테레오가 부리는 마술이다.

 

필자가 오디오 초보 시절의 일이다. 어느 날 황병기 선생님의 [미궁]이란 앨범을 듣고 있었다. 그의 [춘설]을 듣고 새삼 가야금이란 악기에 꽂혀 있었는데 마침 이 날 듣고 있던 스피커가 이 글의 도입부에 언급했던 LS3/5a였다. 하지만, 사전정보 없이 집어 들었던 [미궁]은 [춘설]과는 조금 달랐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주문을 외우고 있었을까?


 

무용가 홍신자 선생님의 음산한 목소리는 시작 때부터 뭔가 차갑고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더니만 점점 공포감으로 변해갔다. 허공에서 자꾸 사람의 얼굴 같은 무언가가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얼굴을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오디오를 하다 보면 이런 경이로운 홀로그래픽의 순간은 종종 마주치게 된다. 카펜터스의 카렌 카펜터의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침을 삼키는 순간을 느낄 수 있고, 바이로이트에 가본 적 없어도 바그너의 무대가 얼마나 깊고 넓은 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오디오에 무심한 사람이라도 만약 서두의 청음회에 모아놓았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리스]의 주제가, 백지영의 ‘잊지 말아요’를 듣게 된다면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에 휘감길 것이다. 자, 이제 똑같은 스피커를 네 가지나 들고 많은 사람들이 밤길을 달려온 이유에 대해 슬슬 감이 오지 않을까 싶다.

 

 

 

생활의 기쁨이 되는 오디오

흔히 오디오는 돈도 많이 들고, 중독성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낚시든 골프든 사진이든 자전거든 마찬가지다. 상대를 미치게 하는 힘이 없다면 이미 취미의 생명력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일단 미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소간의 비용이 따른다. 그래도 오디오는 나중에 되팔 때 들어간 돈을 70~80%이상을 회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끔은 살 때보다 가격이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오디오의 가장 큰 매력은 그 구현 세계가 음악, 즉 예술의 영역이라는 사실이다. 작곡자나 연주자가 애초에 의도한 대로 음악을 아름답고, 거칠고, 기쁘고, 슬프게 들려주는 것에 오디오의 본질이 있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음악 듣는데 충분하다’고 했던 사람들도 어느 날 그토록 오랫동안 들어왔던 음악이 새롭게 들리는 것에 충격을 받고 오디오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오디오는 사용자의 노력에 따라 무궁무진한 소리를 만들어 낼 수가 있어서, 잘만 하면 연주회장보다 더 좋은 소리를 방안에 펼쳐줄 수도 있다. 


 

 

 

가슴을 태우는 오디오의 마력

하지만, 오디오는 맘처럼 쉽지만은 않은 무한도전의 세계이다. 다른 집에서 들은 소리가 너무 좋아, 똑같은 기기를 사다 놓고 들어보면 결코 같은 소리가 나지 않는 이상한 조화를 부리는 게 오디오이다. 덧붙여서 자신의 공간을 빛내주는 공예품과 같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 오디오는 또 다른 생활의 기쁨이 될 것이다. 귀에서 그치지 않고 눈까지도 즐겁게 해줄 때 오디오의 가치는 한 단계 더 올라간다. 그런데, 나도 모양 예쁘고 스테레오 잘 잡히는 그럭저럭 쓸만한 오디오가 있는데 그런 환상 느껴본 적 없다고? 왜 그런지 이제 부터 알아보자.

 

 

 

오승영 / 오디오 평론가, 전 스테레오뮤직 편집장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폴리그램, EMI, 소니뮤직, 유니버설 뮤직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했으며, 스테레오뮤직 발행인 겸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연세대학교 미디어아트 연구소 객원연구원 및 강사이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audioguide/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