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TV에서 방송해 준 명작 영화 중에 <25시>가 있었다. 루마니아 출신의 게오르규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는 주연을 맡은 앤서니 퀸의 명연기로 유명하다. 웃는 듯 우는 듯한 그의 마지막 표정은 세상물정 모르던 내 마음속을 온통 휘저어 놓았다. 하지만 개구쟁이의 눈에는 영화가 알리고자 하는 전쟁의 참상은 온데간데 없고, 하루 24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더 많은 <25시>라는 제목만 계속 아른거렸다.
하루가 한 시간 더 길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때야 조금이라도 더 놀고 싶은 생각에 그랬지만, 어른이 되어 일상에 파묻혀 바쁘게 사는 사람더러 흔히 ‘25시를 산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는 하루가 24시간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안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바람과는 상관없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구의 하루는 24시간을 훨씬 넘게 된다. 지구의 자전이 그만큼 느려지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각운동량의 보존과 깊은 관계가 있다.
달에 의해 부풀어 오른 지구의 바닷물이 지구의 자전을 늦춘다
|
각운동량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구-달 시스템이다. 지구와 달은 각자가 자전하면서, 지구 내부에 있는 지구-달의 질량중심을 회전의 중심으로 하여 각각 공전하는 복잡한 시스템이다. 이런 복잡한 시스템이 일으키는 현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조수 간만이다. 지구의 조수 간만을 일으키는 주원인은 달의 인력 때문이다. 달은 지구와 매우 가깝고 또 매우 무거워서 지구에 대한 그 중력의 효과가 태양보다 더 크다. 달의 인력 때문에 지구 표면(주로 수면)은 지구와 달을 잇는 직선을 따라 부풀어 오른다. 이때 달을 바라보는 지구 표면뿐만 아니라 반대편 지구 표면도 똑같이 부푼다. 달의 중력은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그 크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므로, 달에 가까운 지구 표면은 가장 큰 힘을 받으며, 달의 반대쪽 지구 표면은 가장 작은 힘을 받는다. 지구의 중심은 그 중간쯤 되는 힘을 받기 때문에, 지구 중심 입장에서 보면, 마치 두 손으로 얼굴의 양쪽 볼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지구 양쪽 표면을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그런데 문제는 지구가 자전하면서 이렇게 부풀어 오른 면을 끌고 다니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달의 인력에 의해 부풀어 오른 면이 정확히 달을 향하지 않고 지구-달을 잇는 직선에서 약간 벗어나게 된다. | |
|
|
하지만 달의 인력은 이렇게 부풀어 오른 면이 지구-달 축을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당기는 효과를 발휘한다. 그 결과 지구의 자전은 방해를 받게 된다. 말하자면 달이 지구를 자기 쪽으로 부풀어 올려놓아서 이것이 일종의 마찰력처럼 작용하여 지구 자전을 늦춘 셈이다. 이 ‘마찰력’이 지구 자전에 대한 돌림 힘으로 작용해서 지구의 회전을 늦춘다.
달도 지구의 영향을 받아서,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비슷하게 바뀌었다
| |
|
|
지구 입장에서는 지구 외부에 있는 달의 인력 때문에 자신의 회전각속도가 줄어들었다. 달의 기조력 때문에 표면이 부풀어 올랐으니 지구의 회전 관성이 약간 커지는 효과가 있으나 각속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지구의 각운동량은 줄어든다. 하지만, 지구-달 전체 계가 고립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지구와 달의 모든 각운동량은 보존된다. 따라서 줄어든 지구의 각운동량은 어떻게든 지구-달 시스템의 다른 각운동량을 증가시켜야 한다. 한편, 달의 입장에서는 지구의 인력에 의해 지구보다 훨씬 더 큰 기조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달의 자전은 지구보다 훨씬 더 빨리 줄어들 것이다. 달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거의 똑같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를 동주기 자전이라고 부른다. 동주기 자전을 하면 달은 항상 같은 면만 지구를 향하므로 조수 간만이 더는 자전을 방해하는 마찰력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 |
줄어든 자전속도를 보상하기 위해, 공전에 의한 각운동량이 늘어난다
지구나 달 모두 자전하는 회전각속도가 줄어들었으므로 이 때문에 줄어든 각운동량을 벌충하려면 공전에 의한 각운동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각운동량은 지난번 글에서 소개했듯이 아래와 같이 주어진다.
따라서 각운동량을 늘리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지구나 달의 공전주기를 빠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달의 공전주기는 케플러의 제3법칙에 의해 그 궤도반지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케플러 제3법칙: 행성의 공전주기(T)의 제곱은 공전궤도 반지름(r)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따라서 대략 계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수식에 있는 '~' 기호는 비례한다는 뜻으로, 각운동량이 반지름의 제곱근에 비례한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달의 각운동량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그 공전궤도가 커져야만 하고, 다시 케플러 제3법칙에 의해 그만큼 공전주기도 길어진다. 이 결과는 지구의 부풀어 오른 면이 지구 자전을 늦추는 한편으로, 달에는 그 궤도 진행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효과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지구의 부푼 면이 지구 자전으로 지구-달 축을 벗어나면서 달의 진행방향 앞쪽에 있게 되어 이 부분이 달에 대해서는 달의 진행방향으로 중력을 작용시켜 가속한 것이다. 그 결과 달은 보다 높은 궤도로 옮겨간다.
기조력의 마찰 때문에 늘어나는 것은 각운동량뿐만이 아니다. 지구 중력에 대한 달의 포텐셜에너지도 함께 늘어난다. 이는 마치 3층의 물체보다 5층의 물체가 가지는 포텐셜에너지가 더 큰 것과도 같다. 지구의 자전이 느려짐으로 인해 줄어든 운동에너지가 달의 중력 포텐셜에너지의 증가로 옮겨간 것이다. 결과적으로 달은 매년 38mm씩 지구에서 멀어진다. 지구의 자전주기는 매년 백만 분의 17초 정도 느려진다. 지구 자전이 해마다 느려지면 그만큼 하루가 길어진다. 반대로 초기 지구의 하루는 지금보다 더 짧았을 것이다.
공룡이 살던 시기의 하루는 23시간, 1년은 365일보다 많았다
| |
실제로 공룡이 활보하던 중생대에는 지구의 하루가 23시간이었다. 고생물학과 지질학의 도움을 얻으면 실제로 지구 자전의 주기가 느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고생물학자인 존 웰스는 산호 화석의 성장선 개수를 세어 고대에는 하루의 길이가 지금보다 더 짧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확인했다. 산호는 밤과 낮에 따라 그 성장속도가 달라진다. 웰스는 데본기(4억 1천6백만 년 전~ 3억 6천만 년 전) 중기의 산호화석을 조사했다. 산호는 밤과 낮에 따라 생장 속도에 차이가 나기 때문에 화석에는 하루의 변화를 나타내는 성장선이 나타나 있다. 좀 더 넓은 무늬 마루는 일 년의 변화로 이해할 수 있어서 이들 사이의 미세한 성장선(약 50마이크론)을 세면 일 년의 날수를 셀 수 있다. (물론 웰스는 현재의 산호화석에서 약 360개의 성장선을 미리 확인했었다.)
이런 식으로 웰스는 중기 데본기의 일 년이 365일보다 더 많은 400일 정도(샘플에 따라 약 385~410일)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1년이 400일이면 하루의 시간은 약 22시간에 해당한다. (24 × 365/400 = 21.9) | |
|
|
즉, 웰스의 데이터를 이용하면 지금부터 약 4억 년 정도 전에는 하루의 길이가 22시간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밖에도 호주의 조지 윌리엄스는 최근 신 원생대(6억 2천만 년 전) 지층을 조사하여 1년의 날 수가 400±7일임을 밝혔다. 윌리엄스는 자신의 연구 결과 이 당시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지금 거리의 약 96.5%였으며, 달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정도는 연간 2.17±0.31cm로서 지금 멀어지는 정도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2억 천만년 후, 하루는 25시간이 된다
지구의 자전이 매년 백만 분의 17초 느려지면, 약 4백만 년이 지나면 현재보다 1분이 느려진다. 이 비율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산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하루의 길이가 25시간이 되려면, 약 2억 천만 년은 더 흘러야 한다. 물론, 그때까지 우리 인간이 지구상에 계속 살아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 |
- 글 이종필 /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연구원
-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입자물리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등과학원 물리학부의 연구원이다. 저서로는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가 있고, 역서로는 [최종이론의 꿈]이 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