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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기 성별의 결정

minjpm 2010. 2. 11. 12:07

오랜 여행 끝에 헤라클레스는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 그는 지금 과거의 죄를 씻기 위해 부여된 12가지 과업을 이행 중이었고, 그 과업 중 하나로 아마존 여왕 히폴리테의 허리띠를 얻기 위해 이곳에 발을 디딘 터였다. 이곳의 주민들은 피와 전쟁의 신 아레스를 아버지로 하고 님프인 하르모니아를 어머니로 둔 후손들로, 여성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남자들이란 아이를 얻기 위한 존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아이를 낳으면 남자아이는 버리거나 죽였고 여자아이만을 골라 키웠다. 이들은 아레스의 후손답게 사냥과 전투를 즐겼고, 심지어는 남자를 죽여본 적이 없는 여성은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을 정도였다. 아마존들은 특히나 활쏘기에 능했다. 그들에게 ‘아마존’이라는, 즉 ‘가슴이 없다.’라는 특이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활시위를 당길 때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오른쪽 가슴을 잘라냈기 때문이라니 아마조네스들의  호전성  가히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 그리스 신화 중 ‘헤라클레스의 열두 과업’과 ‘아마존’ 이야기 중에서

 

 

여성국에서는 딸만 낳으면 좋았겠으나…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나라에 대한 전설은 드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에는 여인국에 대한 전설이 내려옵니다. 동해 건너편에는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여인국(女人國)이 존재합니다. 여인들로만 이루어진 나라라도 아이를 낳아야 나라가 유지될 수 있겠지요. 이들이 아이를 가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들이 난파된 배의 어부들을 유혹해 아기를 갖는다는 말도 있고, 특정 시기에 불어오는 남풍(南風)에 의해 임신한다는 등 차이가 좀 있지만, 낳은 아기가 남자아이이면 물에 띄워 보내고 여자아이인 경우에만 거두어 기른다는 이야기는 동일합니다.

 

여인국으로만 이루어진 나라라면 여자아이만 태어나면 문제가 없을 터인데 남자아이도 태어나는 것으로 묘사한 것을 보면, 옛 사람들은 여성들만이 나라는 꾸리고 살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만, 아들 딸을 골라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성별의 선택은 오로지 정자가 결정한다?

사람을 비롯한 포유류는 기본적으로 1쌍의 성염색체에 의해 성이 결정됩니다. 성염색체는 X와 Y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X염색체를 두 개 가지면 여성형, X와 Y를 하나씩 가지면 남성형으로 발달하지요. 여성의 난자는 모두 X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니, X와 Y 중 어떤 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수정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아기의 성별이 결정됩니다. 즉, 태어날 아이가 아들일지 딸일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떤 성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수정에 성공하느냐에 따라 달렸다는 것이죠.

 

여기까지만 보면 여성에게는 아이의 성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반박하는 주장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남성의 정자는 X 염색체를 가진 것과 Y 염색체를 가진 것이 동일한 숫자로 만들어지지만, 실제 태어나는 남녀의 비율은 1:1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실제로 신생아의 남녀 비율은 자연상태에서 106~109:100 정도로 나타납니다. 남아는 유산이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초하여 보면 수정 시의 남녀 비율은 110~114:100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즉, 남성이 여성보다 10% 정도 더 많이 수정된다는 것이죠.

 

 

모체의 선택이 아이의 성별을 결정한다는 새로운 연구


지금까지는 이러한 현상을 Y 염색체 정자가 X 염색체 정자보다 가벼워서 난자에 조금 빨리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와 달리 모체의 선택이 남아를 결정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모체의 테스토스테론 농도에 주목해서 말이죠.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의 발레리 그랜트 교수팀는 모체의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정말 아이의 성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실험을 통해 증명하려 했습니다.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고, 소를 대상으로 한 실험입니다. 연구팀은 암소 다수에게서 난포액(follicular fluid)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측정했습니다. 난포액이란 난자를 둘러싼 주머니, 즉 난포(卵胞) 속에 들어 있던 액체로 배란 시 난포가 찢어지면서 난자와 함께 배출됩니다. 배란 이후에도 난포액의 기능은 끝난 것은 아닙니다. 깜깜한 자궁 안, 정자들은 빛도 소리도 없는 곳에서 난자를 향해 이동하는데, 이때 정자들이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나침반은 난자 주변의 화학물질들입니다. 마치 꽃향기가 곤충을 유혹하고, 맛있는 음식 냄새에 이끌려 발길이 따라가듯 정자들은 이 화학물질에서 풍기는 일종의 ‘냄새’를 인지하고 힘차게 꼬리를 저어가는 것이죠. 기존 연구에 의하면 난포액 속에 포함된 물질들은 정자를 끌어당기는 ‘냄새’를 지니고 있으며, 정자의 운동성과 수정 능력을 향상시키는 물질까지 포함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즉, 난포액은 난자를 찾아가는 정자들을 불러 모으고, 원기를 북돋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난포액에 포함된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성별에 영향을 준다

그랜트 박사의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난포액 속에 포함된 테스토스테론 농도였습니다. 보통 테스토스테론은 대표적인 ‘남성호르몬’이라고 불려서 남자에게서만 나온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여성에게도 남성보다는 적은 양이지만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된답니다. 마찬가지로 남성에게도 적은 양의 ‘여성호르몬’은 분비됩니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암소의 난포액 속 테스토스테론 농도였습니다. 그들은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특징을 만들어주고 태아가 남성으로 분화되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칠 뿐 아니라, 이미 수정 순간부터 관여하리라 생각했던 것이죠.

 

그들이 관찰한 총 177마리의 배아 중 수컷 배아의 난포액 테스토스테론 농도는 122.6nM이었는데 비해, 암컷 배아의 테스토스테론 농도는 90.75nM이었다고 합니다. 특히나 난포액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300nM 이상이었던 20개의 배아 중에서는 단 3개만 제외하고는 모두 수컷이 태어났습니다. X염색체를 가진 정자와 Y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동일한 수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난포액 속 테스토스테론 농도는 태아의 성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랜트 박사팀의 연구는 비록 소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지만, 그들은 이 결과가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고 보고 있답니다.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는 영장류들의 경우, 조직 내 서열이 새끼의 성별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우두머리 암컷의 경우 수컷을, 하층 계급의 암컷의 경우에는 암컷을 낳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었죠. 이는 암수의 생식 전략에 따른 차이 탓입니다. 수컷의 경우, 힘이 세고 운이 좋으면 여러 암컷을 독차지해 유전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 아예 유전자를 존속시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암컷의 경우에는 힘이 약하고 볼품없더라도 최소한 새끼를 못 낳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적어도 후손은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우두머리 암컷일 경우에는 자신의 새끼 역시 힘센 수컷이 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유전자를 퍼뜨리기가 용이한 수컷을, 하층 암컷의 경우에는 유전자의 단절을 막기 위해 안정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 암컷을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테스토스테론은 근육을 강화시키고 호전적인 성향을 나타내게 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우두머리인 암컷일수록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경향이 있는데, 이와 연관된 것일 수도 있겠지요.

 

 

치열한 사회 생활을 하는 여성이 아들을 낳을 확률이 높다?

이런 연구들을 바탕으로 그랜트 박사는 조직 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여성들의 경우 아들을 낳을 경향이 높아진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여성들은 약간이기는 하지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편이고, 이것이 난포액에 반영되어 태아의 성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태아의 성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반드시 어머니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성별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소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아들부잣집, 딸부잣집은 아버지의 영향이 더 크다고 예전에 말한 적이 있었던 것처럼 여러 가지 요소가 개입될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요소들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거나 다른 요소에 비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도 아닙니다. 키가 크다고 반드시 달리기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키가 크면 다리도 길 테니 달리기에서 유리할 수는 있어도,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죠.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유전적 성향이나 어머니의 테스토스테론 수치 역시 그럴 확률을 높여준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연구 결과는 유전적인 조건이 아니라, 환경의 변화가 인체에 영향을 미쳐 이로 인해 태아의 성별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랜트 박사의 말 대로라면, 아마존 왕국의 여성들은 여자아이를 바라는 마음과는 다르게 아들을 많이 낳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냥과 전쟁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아마조네스들은 다른 여성들에 비해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았을 테고, 그랬다면 아들을 더 많이 낳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아마존 왕국이 역사 속에서 사라진 것은 외적의 침입 탓이 아니라, 여자아이들이 더는 태어나지 않아서는 아니었을까요?

 

 

 

이은희 /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등 많은 과학 도서를 저술하였고, 2003년에 과학 기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 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