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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 신비로운 과학세계

[스크랩] 최초의 원자로

minjpm 2010. 6. 14. 09:02

1938년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은 독일의 실험실에서 중성자를 이용하여 우라늄 원자핵을 분열시키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세계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줄 중요한 실험이었다. 그 실험의 중요성을 알아차린 사람은 많았다. 그들은 적국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면 적국에 비해 군사적으로 월등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먼저 만들지 못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상대국가에서 원자폭탄 개발과 관련해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원자폭탄 개발 경쟁이 시작되다

1938년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점령한 후 체코슬로바키아의 우라늄 수출을 금지시켰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미국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조치는 독일이 원자폭탄 개발을 시작한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양자물리학의 성립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우라늄 원자핵을 분열시키는데 성공한 오토 한이 독일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독일이 원자폭탄을 개발할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독일에 남아 있던 과학자 중에는 독일이 이미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작업을 시작했다는 메모를 비밀리에 서방 과학자들에게 전해 준 사람도 있었다.


원자폭탄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레오 스릴라드가 앞장서서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루즈벨트 대통령을 설득하는 편지를 쓰도록 한 것을 이 때문이었다. 아인슈타인의 편지는 10월 11일이 되어서야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 아인슈타인의 편지를 읽은 루즈벨트는 그 날 저녁 원자핵 분열을 이용한 폭탄의 가능성을 조사하는 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원자핵 폭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이다. 이 연구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소수의 과학자와 관리들을 제외하고는 이 연구에 대해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부통령이던 해리 트루먼도 이 연구에 대해 알지 못했다. 


핵분열 발견자 중 하나인 오토 한(Otto Hahn,
(1879~1968) <출처: (CC) Eric Findlay>

 

 

원자폭탄을 만드려면 우라늄을 농축해야

원자폭탄 연구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모두 중성자가 우라늄 원자핵을 분열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원자폭탄을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실제로 원자폭탄을 만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연우라늄에 포함된 우라늄 235와 238 중 우라늄 235의 비율을 높인 것을 농축우라늄이라고 한다.
우라늄 235의 농축 비율에 따라 20% 이하는 저농축우라늄, 그 이상은 고농축우라늄이라고 한다.
핵무기용으로는 90% 이상으로 순수하게 분리된 우라늄 235가 사용된다.

 

 

우선 핵분열을 일으킬 충분한 양의 우라늄을 확보하는 것이 문제였다. 92개의 양성자를 가지고 있는 우라늄에는 146개의 중성자를 포함하고 있는 우라늄238과 143개의 중성자를 포함하고 있는 우라늄235가 있다. 우라늄238은 더 안정해 반감기가 46억 년이고, 우라늄235는 반감기가 7억년이다. 따라서 자연에서 발견되는 우라늄은 대부분이 우라늄238이었다. 천연 우라늄 속에 포함되어 있는 우라늄235의 양은 140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원자폭탄을 만들려면 천연 우라늄에서 우라늄235만 분리해 낼 수 있어야 했다.

 

우라늄235와 우라늄238은 화학적 성질이 같으므로 화학적인 방법으로 분리해낼 수 없다. 그러나 우라늄235와 우라늄238은 약간의 질량 차이가 있으므로 이것을 이용하여 물리적인 방법으로 분리해 내야 했다. 이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고,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과 영국의 컬럼비아 대학에서는 우라늄235를 분리해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연쇄반응은 실재로 가능할까?

최초의 원자로의 제작 모습. 흑연과 우라늄을 차례로 쌓은 형태이다.


그러나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서 넘어야 할 또 하나의 산이 있었다. 그것은 연쇄반응이 실제로 가능한지 알아보는 일이었다. 우라늄 원자핵이 중성자에 의해 분열할 때는 두 개 이상의 중성자가 나온다. 이 중성자가 다른 우라늄 원자핵을 분열시킬 수만 있으면 계속적인 원자핵 분열이 가능하게 되어 엄청난 에너지가 나올 수 있다. 스릴라드는 원자핵의 연쇄분열에 의해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지를 실험적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우라늄 원자핵이 분열할 때 나오는 중성자는 빠른중성자이다. 빠른중성자는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서 느린중성자보다 원자핵을 분열시키는데 더 효과적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속도가 빠른 중성자는 원자핵에 포획되지 않고 원자핵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 버려 원자핵을 분열시킬 수 없다. 따라서 연쇄반응이 일어나도록 하려면 원자핵 분열 시에 나온 중성자의 속도를 줄여 다른 원자핵에 쉽게 포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라늄 핵분열 시에 나오는 중성자를 원자핵에 잘 포획될 수 있는 적당한 속도를 가진 중성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중성자를 다른 입자와 충돌시켜 속도를 줄여야 한다. 중성자의 속도를 줄이는데 사용되는 물질을 감속재라고 한다.

 

감속재는 중성자의 속도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성자를 흡수하지 않는 물질이어야 했다. 과학자들은 중성자의 속도를 줄이는 데는 중성자와 질량이 같은 양성자와 충돌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보통의 수소는 중성자와 충돌하면 중성자를 흡수하여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하나로 이루어진 원자핵을 가지는 중수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중성자를 포함하고 있는 중수소가 더 효과적인 감속재가 될 수 있다. 중수소는 보통의 수소와 화학적 성질이 똑같기 때문에 산소와 결하여 물 분자를 형성한다. 이런 물을 중수라고 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원자핵 분열 시에 나오는 중성자를 중수에 통과시켜 중성자의 속도를 줄이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중수를 생산하는 회사에 노르웨이에만 있었다. 노르웨이에서는 자신들이 생산한 중수가 독일의 원자폭탄 생산에 사용될 것을 염려해 생산을 중단했다.

 

미국에서의 원자폭탄 연구를 이끌고 있던 페르미와 스릴라드는 감속재로 사용해야 할 다른 물질을 찾아야 했다. 흑연이 중성자의 속도를 감속시키지만 중성자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감속재로 적당하지 않다고 알려져 있었다. 페르미와 스릴라드는 중성자를 흡수하는 것은 흑연이 아니라 흑연에 소량 포함되어 있는 불순물인 붕소라는 것을 알아냈다. 따라서 불순물이 섞여있지 않은 순수한 흑연은 효과적인 감속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르미와 스릴라드는 붕소와 같은 불순물이 섞여있지 않은 순수한 흑연을 주문했다.

 

 

최초의 원자로 시카고 파일

시카고 대학 운동장 스탠드 아래에 있던 사용되지 않는 스쿼시 코트에 우라늄과 흑연을 차례로 쌓아 핵 파일을 만들어졌다. 시카고 파일(Chicago Pile No.1, CP-1)이라고 불리는 이 파일은 6톤의 우라늄과 50톤의 산화우라늄, 그리고 400톤의 흑연벽돌로 만들어졌다. 흑연 벽돌을 57층으로 쌓아 만든 이 원형 파일은 지름은 7미터 정도였고, 높이도 7m정도나 되어 스쿼시 코트를 가득 채웠다.


1942년 12월 2일에 시카고 파일이 완성되었다. 페르미와 스릴라드를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험이 시작되었다. 만약 반응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면 중성자를 흡수할 수 있는 안전막대를 파일 속으로 집어넣어 연쇄반응을 중지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실험은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오후 2시가 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중성자 계수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계수기는 중성자의 세기가 2분마다 두 배로 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최초의 원자로의 모습을 그린 그림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페르미는 4분 30초를 기다린 후에 안전막대를 파일 속에 집어넣어 핵분열 반응을 중지시키도록 했다. 과학자들은 포도주를 따라 들고 최초의 원자핵 연쇄 핵분열 반응의 성공을 축하했다. 페르미의 시카고 파일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원자로였다. 연쇄반응의 성공은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기술적 장벽을 극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곽영직 /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쓴 책으로는 [과학이야기] [자연과학의 역사] [원자보다 작은 세계 이야기] 등이 있다.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2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