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재물을 목표 위치에서 목표 속도로 분리해줌으로써 탑재물이 계획된 우주임무를 무사히 실행할 수 있도록 그에 필요한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 발사체의 임무이다.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로켓이라고 볼 수 있는 각 단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만든 다단형 발사체는 추진제를 모두 소모해 ‘쓸모가 없어진’ 단을 상단 부분과 분리함으로써 발사체의 무게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음은 물론, 위성 투입 등 발사체 임무 완수에 필요한 속도(속도증분)를 각 단의 능력에 맞추어 적절히 배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3단형 발사체라면 단분리 후 계속 비행하는 상단부분의 엔진을 새롭게 점화함으로써 단분리 이전보다 높은 속도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두 번 사용할 수 있는 셈이고, 각 단에서 얻는 속도의 증가분은 비행 중에 계속 누적된다. 즉, 아래 식에서처럼 N개의 단으로 구성된 발사체가 갖는 총 속도증분(ΔVtotal)은 각 단의 추진기관에 의해 얻어지는 속도증분을 모두 합한 값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얼핏 생각하기에 발사체의 단 수가 많아질수록 발사체 개발이 쉬워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노련한 로켓과학자들은 단 수가 많아지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발사체 구성이 복잡해져 전체 시스템의 고장 확률도 높아지게 되고, 특히 발사체 실패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단 분리’의 위험을 필요이상으로 감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발사체의 단 수는 임무 요구, 기술적 조건, 각 단의 낙하지점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결정하게 된다. 결국, 힘 좋은 추진기관과 가볍고 튼튼한 구조체를 만들 수 있는 능력만 된다면 각 단에 엔진 1기씩을 장착한 2단형 로켓이 가장 말썽적은 ‘착한 로켓’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SSTO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면 말이다.
발사체는 어느 정도로 빨리 날아가야 할까?

도대체 발사체는 어느 정도로 빨리 날아가야 할까? 로켓엔진의 추진력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로켓의 ‘요구속도’를 꼭 벌어와야 할 ‘월급’이라고 생각해보자. 발사체가 목표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속도를 ‘궤도요구속도’라고 하는데, 이는 집안 살림으로 보자면 ‘꼭 필요한 생활비’에 비유될 수 있다. 살림을 하다 보면 필요 생활비 외에 여기저기 돈 들어갈 일이 생기듯 로켓도 비행하는 동안 이런저런 속도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또 어쩌다 보면 월급 외의 수입이 생기기도 하는 것처럼 로켓도 어떻게 잘 쏘면 지구의 자전 덕분에 ‘관성속도이득’이라는 속도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할 때 발사체에 요구되는 속도는 다음 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궤도요구속도 Vinj는 다음 식과 같이 출발 행성(즉, 지구)과 투입궤도의 특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위 식에서 μEarth는 중력계수로 만유인력상수와 출발행성, 즉 지구의 질량을 곱한 값이고, r은 궤도진입시의 반경으로 지구 중심으로부터 위성이 위치해야 할 곳까지의 거리이며, a는 타원궤도의 장축 반경 (semi-major axis)이다. 원궤도의 경우는 당연히 a=r이다.
위 식을 이용해서 고도 700km의 원궤도에 대한 궤도요구속도를 구해보자. 공식의 r 값에 고도에다 지구반지름을 더한 값을 넣어주면 된다.

이 정도면 꽤 어마어마한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비행 중에 발생하는 이런저런 속도손실이나 이득까지 고려해주면 발사체 요구속도가 정해질 것이고, 이로부터 앞에서 말한 여러 다른 조건들을 고려해서 발사체 단 수도 결정하고 각 단에 필요한 속도증분도 할당하게 된다. 참고로 발사체가 비행 중에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속도 보너스인 ‘관성속도이득’은 발사장 위치와 발사 방향에 따라 결정되는데, 지구의 자전운동에 의해서 발사장 자체가 갖게 되는 속도에 의해 얻어지는 이득이다 보니 적도에서 동쪽으로 발사할 때 0.465km/s 정도의 가장 큰 보너스를 받게 된다.
지구는 로켓의 비행에 방해만 되나?

모처럼 날아오른 발사체의 속도를 떨어뜨리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존재는 바로,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지구이다. 지구에 보이지 않는, 계속 늘어날 수 있는 팔이 있어서 우주비행선을 잡아당기고 있고, 우주선이 지구 중심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팔에 힘이 빠진다고 상상해보자. 지구가 우주선을 더 이상 잡아당기지 못하고 ‘놓아주는’ 위치는 지구 중심으로부터 약 1,000,000km나 떨어진 곳으로, 지구 중심에서 달 중심까지의 거리(384,400km)의 세 배 가까이나 된다. (물론 지구만 우주선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주선이 여기까지 날아갔다고 해서 갑자기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미약하나마 이 지점에서도 중력은 존재한다. 다만 이쯤 멀어지면 지구의 영향력이 태양이나 달에 의한 인력 수준으로 줄어들 뿐이다.)
이렇게나 긴 팔을 가진 지구이고 보니, 고작 수백~수천km 상공까지 날아갈 뿐인 발사체는 당연히 지구 중력에 의한 속도손실, 즉 중력손실(gravity loss)을 톡톡히 입게 된다. 중력손실은 목표궤도의 특성이나 발사체의 가속특성에 따라 달라지는데, 고도 300~600km 정도의 지구저궤도까지 날아간다고 하면 대략 1.2~2.0km/s 정도의 속도손실이 발생한다고 보면 된다. 이 정도면 앞서 계산해보았던 궤도요구속도와 비교하더라도 상당히 위협적인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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