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pm(민제이피엠) 의 음악과 함께하는 삶~
SOUL CLAMP

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오케스트라 속의 푸가

minjpm 2010. 6. 2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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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선율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고, 신나는 리듬에 몸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풍성한 화음이 가슴에 와 닿기도 하고 때로는 특정 악기의 음색이 깊이 끌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음악을 좀 오래 듣다 보면 리듬이나 선율, 화성의 단편이나 악기 음색 같은 단순한 요소보다는 좀 더 전체적으로 음악을 듣고 싶은 욕심이 생깁니다. 한 장의 그림이 한 눈에 들어오듯 음악작품도 한 눈에 파악할 수는 없을까요?

 

 

 

음악의 스타일과 의미를 파악해보고 싶다면?

아마도 클래식 음악의 맛을 조금 느끼기 시작한 음악애호가라면 한 번쯤은 음악작품을 전체적으로 파악해 그 의미를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겁니다. 그런 욕심에 어려운 음악해설서를 읽어가며 교향곡의 한 악장을 ‘소나타 형식’이니 ‘제시부’니 ‘재현부’니 하는 용어로 분석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래 지나지 않아 알 수 없는 용어에 싫증을 내고 답답함을 느낍니다. 어떤 작품이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 곡의 제1주제가 무엇인지를 안다고 해서 작품의 의미가 금방 드러나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한 음악작품의 주제 선율이 옛 성가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면, 혹은 특정 시대에 유행하던 춤곡의 리듬으로 된 것을 알아챘다면, 혹은 이 곡이 어떤 특별한 양식의 음악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여러분은 이 주제 선율의 의미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음악작품을 구성하는 부분 부분의 ‘음악양식’, 즉 스타일을 이해하는 것은 음악을 좀 더 깊이 있게 즐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나아가서는 음악작품 전체의 의미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구불구불 얽히고 섥히며 이어지는 선율 - 푸가

황홀한 소리로 즐거움을 주는 오케스트라 음악 역시 여러 가지 음악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관현악의 명곡 가운데는 춤곡으로 된 것도 있고, 옛 성가의 선율을 담은 것도 있으며, 소나타 형식으로 긴장과 이완의 느낌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관현악곡에 나타난 몇 가지 음악양식만 알아도 관현악곡을 듣는 재미는 더 깊어집니다. 단순히 어느 악기가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를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악기들이 연주하고 있는 음악의 스타일과 느낌을 음미할 수 있게 되니까요.

 

17, 18세기의 파이프 오르간 음악을 들어보면 ‘푸가’라는 제목이 붙은 음악이 많다.

 

 

관현악을 이루는 여러 양식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양식은 아마도 ‘푸가 Fuga’가 아닐까 싶습니다. 대개 ‘푸가 ’라고 하면 주로 17, 18세기 건반악기 음악작품이나 일정한 틀을 갖춘 악곡의 형식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음악에서 푸가의 의미는 매우 애매하게 사용됐습니다. ‘푸가’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이 있긴 하지만 ‘푸가’는 악곡의 ‘형식 Form’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음악적 스타일, 즉 음악양식을 뜻한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군요. 아마 ‘푸가’라는 소리만 들어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 전반기의 오르간 작품이나 건반악기 작품 가운데 ‘푸가’라 불리는 작품을 들어보면 구불구불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율들이 얽히고 설켜 대체 어디가 선율의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푸가’라는 이름의 모든 음악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런 푸가를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니, 대체 어떻게? 하지만 푸가의 간단한 원리를 보면 이런 음악이 오히려 관현악곡과 잘 어울린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악기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는 어떤 면에선 여러 성부로 된 푸가를 연주하기에 아주 유리합니다. 갖가지 악기로 연주되는 푸가는 더욱 풍부하고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거든요.

 

 

 

같은 주제가 계속 다른 성부에 의해 모방되는 양식

그래서 지휘자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는 본래 오르간 작품인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d단조]를 관현악용으로 편곡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본격적인 푸가 앞에 자유분방하고 환상적인 ‘토카타’ 부분이 붙어있는 작품인데, 푸가의 기법에 정통했던 바흐의 작곡기법을 엿볼 수 있는 걸작입니다.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d단조] 가운데 푸가 부분을 스토코프스키의 편곡에 의한 관현악 연주로 잠시 들으면서 푸가란 어떤 음악인지 잠시 맛을 볼까요?

 

음악을 들으시면서 혹시 처음 연주된 선율이 다른 성부에 의해 모방되고 있는 것을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군요. 본래 푸가라는 말은 라틴어로 ‘도주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푸가를 들어보면 푸가의 주제와 그를 뒤따르는 다른 성부의 움직임이 마치 도망치고 뒤따르는 추격전 같은 느낌을 줘서 재미있습니다.

 

푸가 양식을 취한 음악에서는 성부가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하나의 일정한 주제가 먼저 한 성부에서 나오면 몇 마디 후에 다른 성부가 응답하면서 그 주제를 똑같이 따라서 연주합니다.


푸가는 같은 주제를 다른 성부가 뒤따라 연주하며 모방하면서 진행된다.

 

그리고 잠시 후엔 또 다시 다른 성부에서 주제를 뒤따라 연주하지요. 이런 식으로 같은 주제가 계속 다른 성부에 의해 모방되는 양식을 ‘모방 기법’이라 하는데, ‘푸가’란 바로 모방기법 이 사용된 음악양식을 가리킵니다. 푸가의 ‘모방 기법’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된 관현악곡으로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7번]의 느린 2악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곡은 장송행진곡 풍의 독특한 음악인데, 먼저 목관악기의 불안정한 화음에 이어 저음 현악기들이 긴 푸가 주제를 연주합니다. 마치 장례행진을 연상시키는 이 음악은 저음현의 어두운 음색 덕분에 침통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그러다 어느새 제2바이올린 파트가 끼어들어 먼저 연주됐던 푸가 주제를 뒤따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모방 기법’이지요. 그 사이 먼저 연주를 시작했던 저음현은 또 다른 선율을 연주하며 제2바이올린과 조화를 이룹니다. 중간에 클라리넷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선율이 잠시의 위안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저음 현악기들은 계속해서 장송음악의 리듬을 강박적으로 반복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no 아티스트/연주  
1 바흐 [토카타와 푸가] d단조 BWV565 /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 Academy of Music, Philadelphia, 1939 듣기
2 베토벤 [교향곡 제7번] 2악장 / 귀도 칸텔리,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56 듣기

 

 

 

화려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된 교향곡 속의 푸가

베토벤이 이처럼 멋진 푸가를 교향곡에 넣을 수 있었던 것도 선배 작곡가 모차르트의 선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바흐를 깊이 존경해 바흐의 작품 연구에 몰두했던 모차르트는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제41번 ‘주피터’의 피날레를 바흐 풍의 압도적인 푸가로 장식했습니다. 그래서 이 교향곡은 푸가 풍의 4악장 덕분에 “푸가가 들어간 교향곡”이라 불리기도 했지요. 이 악장에서 푸가의 기반이 되는 ‘도-레-파-미’의 네 음 모티브는 중세의 옛 그레고리오 성가의 ‘크레도’(Credo, 사도신경)의 선율에서 온 것인데, 모차르트는 이 주제를 마치 신앙고백을 반복하듯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여기에다 다섯 가지의 피날레 주제가 마법처럼 얽히며 전개되는 동안 숨 막히는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베토벤의 교향곡에서처럼 ‘푸가’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기악곡에서 푸가와 같은 방식으로 모방기법이 사용된 부분을 보통 ‘푸가토 Fugatto’라고 부릅니다. 대개 푸가토는 지나가는 식으로 잠깐 나타나고, 교향곡뿐 아니라 협주곡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협주곡에 들어간 푸가토 중에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3악장의 푸가토가 유명합니다. 같은 주제로 계속 되돌아오는 론도 형식의 이 곡에서 베토벤은 중간 부분에 론도 주제를 가지로 재미난 푸가토를 만들어 작곡기법을 과시합니다. 이 푸가토는 론도 주제를 발전시키는 전개부를 마무리하고 독주 피아니스트가 다시 자연스럽게 론도 주제의 선율을 연주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브람스 등은 오케스트라 작품에 푸가를 사용해 뛰어난
작곡기교를 선보였다.

 

no 아티스트/연주  
1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4악장 / 브루노 발터, 컬럼비아 심포니오케스트라, 1960 듣기
2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3악장 / 빌헬름 박하우스, 한스 슈미트 이세르슈테트, 빈 필하모닉, 1958 듣기

 

 

베토벤을 숭배했던 브람스도 젊은 시절에 작곡한 그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3악장에서 베토벤과 비슷한 푸가토를 사용해서 눈길을 끕니다. 이 곡에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과 주제를 배치하는 순서나 방식도 비슷하지만, 푸가토만큼은 브람스답게 좀 더 심각하게 느껴집니다.

 

푸가 양식을 가장 화려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작곡가는 역시 말러가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말러의 [교향곡 제5번]은 그야말로 현란한 푸가의 대향연입니다. 말러는 [교향곡 5번]을 완성하기 한 해 전인 1901년에 바흐의 음악에 깊이 심취했다고 합니다. 그 무렵 말러는 바흐의 악보 전집을 방에 들여놓고 틈이 날 때마다 그것을 들여다보았다고 하는군요. 그 해 여름 내내 바흐의 음악 양식에 몰두한 말러는 이듬해 완성한 [교향곡 5번]의 마지막 5악장의 주요 부분에 무려 다섯 개의 푸가토를 집어넣어 그의 교향곡을 현란하게 장식했습니다.


이렇듯 옛 건반악기 음악에 많이 나타났던 푸가는 18세기 후반 이후 음악의 한 장르로서는 점차 쇠퇴해갔지만, 오래도록 중요한 음악양식으로 살아남아 19, 20세기의 여러 관현악곡과 실내악곡을 풍요로운 소리로 장식했습니다.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영원하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음악에서도 역시 ‘음악양식’(musical style)은 영원한 모양입니다. 케케묵은 옛날 음악인 줄로만 알았던 푸가가 하나의 음악적 스타일로 살아남아 오늘날의 음악애호가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으니 말이에요.

말러는 바흐의 양식을 연구해 교향곡에 현란한 푸가를 사용했다.

 

no 아티스트/연주  
1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3악장 / 줄리우스 카첸, 피에르 몽퇴, 런던 심포니, 1959 듣기
2 말러 [교향곡 제5번] 5악장 / 헤르만 셰르헨,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1952년 듣기

 

 

관련링크 : 통합검색 결과 보기

 

 

  1. 푸가

    형식으로서의 '푸가'는 둘 이상의 성부들로 되어 있으면서 모방기법이 사용된 다성적인 작품을 뜻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푸가'라는 용어의 개념은 모호하게 쓰이고 있어, '푸가'라는 말은 하나의 고정된 음악형식이라기보다는 모방기법이 사용된 음악적 스타일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2. 모방기법

    앞서 제시된 주제 선율을 다른 성부에서 똑같은 형태로 뒤따라 나오게 하거나, 혹은 음높이와 리듬의 축소와 확장을 통해 변형된 형태로 뒤따라 나오게 하는 기법을 뜻한다.

 

 

 

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음원 제공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2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