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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클래식의 이해 - 낭만파 음악이란..

minjpm 2010. 7. 22. 11:25

인간은 이성과 감정의 적절한 균형 속에서 살아간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이 이성과 감정 사이를 줄타기하며 균형을 이루어 온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고전주의는 ‘가슴’보다는 ‘머리’에 더 무게중심을 둔 예이다. 고전주의는 한때 이성을 무기 삼아, 온 유럽을 통치하며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압했다. 낭만주의는 어쩌면 이러한 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사람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 낭만주의

본래 낭만주의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체에 걸쳐 유럽에 나타난 문예사조를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문학에 대한 비평용어였지만,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 사이에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주관적, 개성적, 공상적, 상징적, 신비적, 초자연적 특성을 보이는 모든 예술을 가리킨다. 독일의 질풍노도(슈트룸 운트 드랑) 운동에서 그 시발점을 찾는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낭만주의가 발생한 시대적 원인은 산업혁명프랑스 혁명이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생산과 자본주의의 발달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온통 뒤바꿔 놓았다. 또한, 프랑스혁명은 사회적 불안과 혼란으로 이어져, 사람들에게 혁명 자체에 대한 염증과 환멸을 불러일으켰다. 현실이 지긋지긋하면 꿈과 이상,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게 마련이다. 근대화와 도시화, 자본의 축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주류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낭만주의가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은 격정적인 동세와 감정표현을 통해 낭만주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처: Ceoil at en.wikipedia>

 

 

낭만주의에 철학적 바탕을 제공한 것은 계몽주의와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말로 대표되는 루소의 철학이었다. 이는 합리성과 인간의 이성을 신봉하던 기존 철학자들의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루소는 모든 불행과 죄악의 원인이 문명에 있고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선하고 완전하다는 주장을 했다. 대량생산에 의한 자본의 축적과 도시화, 계약에 의한 인간관계 등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고 역설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조금씩 형태가 잡혀가던 낭만주의의 분위기와 딱 맞아 떨어졌다.

 

그럼 낭만파의 클래식 음악은 어땠을까? 고전주의 음악을 가로지르는 음악적 틀에서 벗어난 새롭고 개성 있는 작품들이 늘어났다. 공식을 깨고 색채를 다양화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예술 속에서 음악은 안방마님처럼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기악음악은 더 이상 궁정의 백그라운드 뮤직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았다. 음악은 ‘일반적인 언어처럼 개개의 음절이 명확한 뜻을 지니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음악 자체만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려는’ 음의 ‘언어’로서 파악되게 되었다. 따라서 작곡가는 음악을 통해 시적(문학), 회화적(미술), 설화적(신화), 극적인(연극) 세계와 결부된 감정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잇는 다리 - 베토벤

서양 클래식 음악은 고전주의 끝에 놓인 다리를 건너 낭만주의가 있는 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다리는 다름 아닌 베토벤이었다. 빈 고전파의 거장 베토벤은 고전주의 이전의 음악을 흡수하며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을 완성하고, 나아가 미래의 낭만주의를 잉태하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베토벤 중기와 후기의 작품들은 낭만주의적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되어 왔으며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본보기로 평가되기도 한다.

 

연말마다 한해를 정리하며 연주되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떠올려보자. 마지막 4악장의 ‘환희의 송가’는 실러의 시를 가사로 붙여, 대규모 합창단이 솔리스트들과 함께 연주한다. ‘환희에 부쳐(Ode to Joy)'라는 가사의 의미 또한 낭만적이다. 무한한 것에 대한 동경, 세계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스케일, 그리고 자유를 갈망하는 역동적인 파워가 그러하다. 그렇다면 낭만주의, 낭만은 무슨 뜻일까?


베토벤은 미래의 낭만주의를 잉태하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출처: Kaldari at en.wikipedia>

 

 

 

형식을 벗어나 자유롭게, 열정적으로

낭만은 ‘로만티크 Romantik’라는 독일어 형용사에서 유래했다. 근원을 따지면 중세의 로망스어(훗날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카탈루냐어, 프랑스어 등 유럽의 언어들로 분화됐다)로 씌어진 영웅적인 인물이나 환상적인 사건을 주제로 한 이야기와 시 ‘로망스’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17세기 중엽부터 ‘낭만’이란 단어는 불가사의하고 환상적인 느낌, 멀고 먼 어떤 것에 대한 동경, 현실 세계에서 벗어난 이상세계라는 뜻으로, 문학과 음악의 비평 중에 사용됐다. 우리는 가끔 드라마나 소설에서, 완벽한 조건의 배우자를 거부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라든지, 반대로 아무런 비전도 없는 백수 남자친구를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결혼식에 골인하는 지고지순한 여자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 ‘낭만적이다’라고 느낀다. 낭만은 어쩌면 ‘현실감각이 결여됐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꿈과 환상이 가득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낭만과 통해 있다. 예술은 비루한 일상의 탈출구로서 역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예술은 현실세계, 시간을 초월해 멀고 먼 영원의 세계를 동경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형식과 한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열정적으로 움직이려는 거대한 힘이 존재했다. 고전파 시대처럼 명약관화한 규칙이나 질서에 기초를 둔 표현이 많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개개인에 따라서 음악의 스타일이 달라지는 스펙트럼이 매우 컸으며, 그로 인해서 여러가지 변주와 분화가 생겨났다. 또한 시의 내용이나 그 정경이 자아내는 분위기를 중시하기 시작한 것도 낭만파 음악의 주요 특징이다. 가곡이 클래식 분야의 한 자리로 당당하게 자리 잡았고, 교향곡에 표제와 설명이 부가되어 표제음악이 왕성해진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표제악의 탄생, 음악 스스로 뜻을 표현하다

먼저 표제음악을 보자. 표제음악이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교향곡이 있으니, 바로 작곡가 베를리오즈(1803~1869)의 [환상 교향곡]이다. 5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교향곡의 모든 악장에는 표제와 설명이 붙어 있다. 1악장 ‘꿈과 정열’, 2악장 ‘무도회’,  3악장 ‘전원 풍경’, 4악장 ‘단두대로의 행진’, 5악장 ‘마녀의 경축일 밤의 꿈’이 그것이다. 병적으로 예민한 감성을 타고난 젊은 음악가가 희망이 없는 사랑에 절망해 마약을 먹고 깊은 잠을 자면서 환각에 빠진다는 내용의 [환상교향곡]은, 베를리오즈 자신이 영국 여배우 헤리엣 스미드슨을 짝사랑한 마음을 담아 완성한 것으로, 표제음악의 시금석이 되었다.

 

대표적인 표제음악 [환상 교향곡]을 만든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초상
<출처: Voxhominis at en.wikipedia>

[환상 교향곡]은 환각, 마녀와 같은 소재를 통해 낭만주의 음악의 환상과
격렬한 감정, 파토스를 드러낸다.

 

 

이후 표제음악은 낭만파 음악가들이 좋아하는 장르로 인기를 얻게 된다. 비르투오조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프란츠 리스트(1811~1886)는 단악장으로 이루어진 표제가 붙은 관현악곡을 새로 만들었다. 이를 교향시라고 하는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비롯한 많은 낭만파 작곡가들이 교향시 장르를 자신들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담는 틀로 애용했다.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 시벨리우스의 [투오넬라의 백조] 등이 대표적인 교향시로 손꼽힌다. 물론 낭만주의 시대에도 표제가 붙지 않은 전통적인 교향곡을 써 내려간 작곡가들이 존재한다. 표제음악에 반하는 의미의 ‘절대음악’을 고수한 요제프 브루크너(1824~1896)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가 그들이다. 이들은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과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고전파 음악의 형식을 계승하고 있다. 특히 브람스는 자신의 [교향곡 4번]에서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파사칼리아 양식을 사용하는 등 복고의 경향을 보였는데, 이는 프란츠 리스트나 그의 사위가 된 리하르트 바그너의 나름 진보적인 태도에 여러 모로 대비된다.

 

어떻게 보면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을 각각 보수적인 양식과 급진적인 양식으로 구분해 설명하는 것이 편리할 수 있다. 19세기에는 절대음악과 표제음악 사이에 명확한 한계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보수적인 작곡가들은 고전파 음악에서 물려받은 형식, 구조, 주제, 화성, 관현악법 안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적인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런 보수적 작곡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표제, 설명을 붙였다고 해도 그것은 부수적인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급진적 작곡가들은 음악 외에도 문학 등 타 장르를 통해서도 창조적인 상상력을 끌어들였다. 음악의 영역 밖에서 오는 예술충동은 관습적인 음악 관례를 깨트리는 파격을 발휘했다. 이들은 교향곡에 설명적인 표제, 표제적 주석을 붙여 출판했다. 이는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설명하거나 정당화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마치 가사가 가곡 구상의 일부인 것처럼 표제가 교향곡 구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새로운 생각 때문이었다. 절대음악과 표제음악이 두 개의 상반된 악파로서 대립한 것은 1860년경 이후였다. 브람스에 의해 나타난 ‘낭만주의적 고전주의’와 바그너에 의한 ‘낭만주의적 급진주의’가 대립의 축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 악파의 쟁점이 그리 뚜렷하다고 볼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슈베르트는 본질적으로 고전파를 계승했으나 자기고백적인 낭만적 번민을 탁월하게 형상화했고, 멘델스존은 고전주의적이며 온건한 기질을 가졌지만 낭만주의적 정경을 뛰어나게 묘사하곤 했다. 슈만은 자신 안에서 보수적인 경향과 급진적인 경향으로 분열되어 고민했으나 이 둘을 결부시켜 조화를 이루려고 애썼고, 브루크너와 프랑크의 교향곡에는 보수적인 특징과 급진적인 특징이 혼합되어서 나타나곤 했기 때문이다.

 

 

 

시와 음악의 만남 - 리트

기악에 이어 성악을 살펴보자. 성악에서의 낭만주의는 특히 18세기 말의 독일 가곡 리트(Lied)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노래’를 의미하는 독일어에서 그 명칭이 유래한 리트는, 그때까지 가장 큰 규모라 해도 16마디 정도의 짧은 곡이 대부분이었다. 반복이 많아서 민요적인 성격도 띠고 있었다. 리트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성악곡으로 자리하는 데는 발라드의 영향이 컸다. 발라드는 낭만적인 모험담과 초자연적인 사건 소재를 서술과 대화로 구성한 긴 시를 말하는데,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 서정적인 경향이 짙어졌다. 길이도 더 길어져 주제와 구성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겪었고 전체적인 통일성을 꾀하는 기술도 생겨났다. 분위기의 대조, 이야기의 흐름을 음악으로 포착해 강조하는 수법도 필요했다. 이같은 동시대 발라드의 변화는 리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형식 면에서나 내용의 폭과 힘에 있어서 리트의 개념을 확대시킨 것이다. 피아노 반주는 단순한 리트 반주의 역할에서 성악의 동반자라는 개념으로 격상되었고, 시의 의미를 설명하고 강조하는 일을 성악과 함께 대등하게 나누어 맡게 되었다.

 

리트를 세속에서 유행하는 노래라는 위치에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완성한 작곡가가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였다. ‘가곡의 왕’이라 불렸던 슈베르트의 대표작인 [마왕]이나 [물레잣는 그레첸]을 살펴보자. 이 두 리트의 가사는 독일의 세계적인 문호 괴테의 작품에서 유래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는 리트를 예술작품의 하나로 승화시켰다.
<출처: Greenhorn at en.wikipedia>

 

[마왕]의 돌진적인 셋잇단음표는 이 노래가 지닌 격정적인 충동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셋잇단음표는 말발굽 소리를 나타내며 겁에 질린 아이를 가슴에 안은 채 폭풍이 몰아치는 밤 속으로 말을 달리는 아버지의 불안감을 묘사하고 있다. 슈베르트는 이 가곡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인물(아버지, 마왕, 아이)의 특징을 절묘한 수법으로 묘사했다. 레치타티보에 의한 마지막 선율은 비길 데 없이 극적이며 낭만적인 충동과 긴장을 드러낸다. [물레잣는 그레첸]은 슈베르트가 17세 때 쓴 최초의 리트 가운데 하나이며 그가 남긴 가곡 중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레첸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결탁하는 파우스트 박사에게 사랑을 느끼는 여인이다. 그녀는 믿음이 좋은 가정에서 자란 소시민의 딸이다. 우연히 파우스트를 만난 그레첸은 그와 함께 있던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불길함을 느끼지만 마음이 끌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레첸은 물레를 돌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고 노래를 부른다. 이것이 이 시의 정황이다. 슈베르트의 리트는 노래의 선율에서 그레첸이 사랑에 빠져 중얼거리는 소리를 묘사하고, 피아노 반주부에서는 물레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불길하고 무거운 기분을 표현한다. 아울러 그레첸이 사랑하는 삶에 대한 노래를 부를 때 느끼는 마음의 동요도 암시한다. 여기서 슈베르트는 그레첸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해냈고, 리트 예술의 낭만주의적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슈베르트에 이어 슈만(1810~1856)과 브람스 등 많은 낭만파 음악가들은 리트 분야에서도 수많은 명곡을 만들어냈다. 19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작곡 능력을 발휘하는 수단으로 리트를 작곡하기도 했다.

 

 

 

오페라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끈 베르디와 바그너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언어, 연극, 음악의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는 오페라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탈리아의 주세페 베르디(1813~1901)와 독일의 바그너가 쌍벽을 이룬 오페라 작곡가였다. 떠들썩한 축제장면과 주옥같은 아리아들로 가득한 [라 트라비아타]와 개선행진곡으로 유명한 [아이다] 등 이탈리아 오페라의 걸작들을 남긴 베르디는 50년 동안 이탈리아 음악계에 군림한 대작곡가였다.

 

새로운 작곡 요청이 쇄도하는 베르디를 묘사한 풍자화.
<출처: Jack1956 at en.wikipedia>

바그너의 음악이 귀가 찢어지게 시끄럽다는 내용의 풍자화.
<출처: Cecil at en.wikipedia>

 

 

바그너는 오페라를 종합예술로 한층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그는 악극(Music Drama)이라는 새로운 오페라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바그너는 음악가였을 뿐만 아니라 이론가, 사상가이기도 했으며 [예술과 혁명] 등 수많은 글을 통해 새로운 예술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설파했다. 바그너 예술의 이념적 토대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찾을 수 있다. 순수한 인간적 예술로서 ‘몸짓’과 ‘음악’, ‘문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드라마를 통해 이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년시절 작가가 꿈이었던 바그너는 대본과 가사도 자신이 직접 쓰며 문학과 음악의 긴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냈다. 당시 오페라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가수의 노래와 합창이었고, 대본과 오케스트라는 노래를 뒷받침하는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나 바그너는 드라마의 주제, 오케스트라 반주, 대본도 오페라의 중요한 요소로 여겼고 이를 모두 통합해 총체예술로서의 악극을 새롭게 창안해냈다.

 

바그너의 악극에서 오케스트라 반주는 가수 못지않은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다. 바그너는 주인공의 운명, 이야기의 상징성, 심리적 배경과 복선 등을 설명하는 음악적 모티프(동기)를 악극 전체 속에 심어놓았다. 결과적으로 오케스트라와 드라마는 더욱 견고하게 결합되게 되었다. 그 예로 바그너의 악극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를 살펴보자. 이 작품에 등장하는 40개에 육박하는 음악적 동기는 ‘마이스터징어의 동기’, ‘축제의 동기’, ‘사랑의 동기’ 등으로 불린다. ‘마이스터징어의 동기’는 솔직하고 견고하다. 주인공 한스 작스의 곧은 인물상을 떠올릴 수 있다. ‘축제의 동기’는 트럼펫이나 팀파니 등의 악기로 구성되어 당당하고 빛나는 울림이 있다. ‘사랑의 동기’는 반음계적인(도→레 로 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도→도#으로 움직이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흐르는 듯한 멜로디로 만들어져, 우아하고도 정서적이다. 각각의 동기는 별개의 멜로디를 가지고 스토리와 잘 조합되어서 전개되는 것이다. 바그너의 예술이론과 악극은 20세기 음악가들의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외에도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의 걸작인 로시니(1792~1868)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1875년 파리에서 첫 공연을 가진 비제 (1838~1875)의 [카르멘] 등 걸작 오페라들이 낭만주의 시대에 만들어졌다. [카르멘]은 스페인 남서쪽 안달루시아 지방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19세기 후반에는 이슬람과 동양 냄새를 풍기는 이국적 정서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이국적인 취향은 낭만파 음악의 대표적인 특성인데,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1904년 초연된 [나비부인]은 일본의 나가사키를 무대로 하고 있고, 유작인 [투란도트]는 중국을 무대로 하고 있다. (낭만파 음악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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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 / 전 <객석> 편집장, 음악 칼럼니스트
월간 <객석> 편집장 역임, 현재 (재)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거장들의 옛 음반과 생생한 공연의 현장이 반복되는 삶이 마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다고 생각한다.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3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