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pm(민제이피엠) 의 음악과 함께하는 삶~
SOUL CLAMP

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오페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minjpm 2009. 9. 15. 12:24

오페라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한 20년 전만 해도, 취미가 오페라 감상이라거나 오페라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거의 외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그게 뭔데?” 또는 “그런 시끄럽고 괴상한 걸 왜 좋아해?”라고 되묻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요. 심지어는 “너, 좀 튀어 보이려고 그러는 거지?” 하며 실눈으로 째려보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지난 20여 년간 클래식 및 오페라 동호회들의 성전(聖戰)에 가까운 선전(善戰)에 힘입어, 이젠 오페라 인구도 꽤 늘었습니다. 음악적 수준이 보장되는 오페라 공연이 있을 때면 티켓이 매진되거나 객석이 거의 다 차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어디선가 공짜표가 생겨 오페라 극장에 오는 관객도 여전히 많지만, 공연 작품을 해설하는 프리뷰 강의를 찾아 듣고 오거나 독학으로 내용을 열심히 예습해 오는 깊이 있는 감상자의 수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실 일단 맛을 들이면 점점 깊이 빠져들어 반드시 중독에 이르고 마는 것이 이 오페라라는 예술이니까요.

 

 

400년이 넘는 유럽 오페라의 초창기부터 이런 오페라 중독자들은 존재해왔습니다. ‘귀족 예술’이라 불리는 오페라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평민이었고, 바로 이들이 오페라극장을 짓게 만들고 희극 오페라를 탄생시키고 오페라를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길러낸 원동력이었지요. 자, 대체 이들에겐 오페라가 왜 그리 재미있었던 걸까요? 이제부터 오페라가 태어난 시대의 유럽으로 차원이동을 해보겠습니다.

 

 

 

상업 오페라 극장이 등장하자 ‘오페라 중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스-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에서 볼 수 있듯 고대 유럽 사람들은 다양한 신들을 섬기는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학과 음악과 춤이 하나로 어우러진 고대 그리스 연극은 이런 신들, 특히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제사이자 인간을 위한 축제였지요.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서유럽을 지배하게 되면서 고대의 신들은 밀려났고, 중세 1000 년(대략 5-15세기) 동안 음악, 미술, 연극 같은 예술은 거의 기독교 유일신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물론 세속적인 예술도 있었지만 교회음악이나 미술에 비하면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죠. 그러나 자연과학과 이성의 발전에 힘입어 예술은 다시 인간을 위한 것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정신과 예술을 되살리려는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었고, 그 절정기에 탄생한 것이 오페라(opera. ‘작품’이라는 뜻)라는 새로운 예술이었습니다.

 

오페라는 1597년에 이탈리아 예술가와 귀족들의 ‘스터디 그룹’에서 태어났습니다. 야코포 페리(Jacopo Peri)의 [다프네]라는 작품인데 기록만 있고 악보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피렌체의 ‘카메라타 ’(camerata. ‘작은 방’이라는 뜻입니다)라는 모임에서 고대 그리스 연극을 복원하려는 사람들이 실험해 본 종합예술이자 총체예술이었지요. 그리스 연극을 모범으로 삼았기 때문에, 극의 내용도 신화와 영웅담에서 가져왔습니다. 자신을 신화 속의 신이나 영웅과 동일시했던 당시 귀족들은 대관식이나 결혼식 축하연의 일부로 오페라를 공연하면서 평민들(성안에 살며 수공업에 종사했던 도시민, 부르주아)까지 궁에 초대해 ‘천부(天賦)’의 신분을 과시했습니다. 이들의 입이 딱 벌어질 만한 화려하고 사치스런 공연을 보여주며, ‘우리(귀족)는 너희(평민)들과는 이처럼 종자가 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신분제도는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평민들을 세뇌했던 것이죠. 악보가 남아 있고 지금도 연주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는 페리의 [에우리디체](1600)로, 당시 유럽 예술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딸 마리아와 프랑스 앙리 4세의 결혼식 축하연을 위해 만든 작품입니다.


 

TV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볼거리에 굶주려 있던 평민들은 귀족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오페라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자 머리 좋은 장사꾼들은 오페라로 떼돈을 벌 가능성을 예감하고, 오페라 극장을 짓기 시작했지요. 귀족의 궁정에 초대받아 가지 않더라도 돈만 내면 얼마든지 오페라를 볼 수 있는 극장들이 탄생한 것입니다. 1637년 베네치아에서 문을 연 최초의 상업 오페라 극장 ‘산 카시아노’는 당시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특수효과를 사용한 오페라 [안드로메다]로 관객을 사로잡았습니다. 이후 오페라 극장은 빠른 속도로 늘어갔습니다.


수공업자들은 다른 도시에 물건을 팔러 간다는 핑계로 집을 떠나서는 오페라 극장 앞에서 새우잠을 자며 연속으로 공연을 보기도 했습니다. 물건 판 돈을 오페라 보는 데 다 써버리면 도박을 해서라도 또 티켓을 사서 공연을 즐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자 ‘오페라 중독자’ 남편을 둔 아내들은(이들은 ‘오페라 과부’라고 불렸습니다) 교황청에 탄원서를 제출했고, 교회로 들어올 돈이 오페라 극장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교황 이노센트 11세는 상업적인 목적의 오페라 공연을 금지한다는 칙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귀족과 시민의 오락이자 중요한 장사가 되어버린 오페라를 막을 도리는 없었습니다.

 

 

 

카스트라토라는 새로운 성악가가 등장한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1600년부터 1750년 사이에 작곡된 작품들을 보통 ‘바로크 오페라’로 분류합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 간의 갈등이 절정에 이른 30년 전쟁이 있었고, 프랑스에서 루이 14세가 절대왕정을 폈던 시기입니다. 영국은 내전을 겪으며 입헌 군주정을 확립해갔고, 유럽 지배자들은 신세계로 눈을 돌리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문학에서는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라신, 세르반테스 등이 출현했고, 베르니니의 조각, 카라바조, 루벤스, 렘브란트, 베르메르의 회화, 베르사유 궁전이 대표하는 시대이자 기술 발전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바로크 시대는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의 시대입니다. ‘세리아’란 진지하고 품격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정가극(正歌劇)’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오페라 형식으로, 레치타티보(recitativo. 음을 붙여 노래하듯 부르는 대사)와 아리아(aria. 노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창이나 합창이 간혹 나오지만 그 비중이 그리 크지 않죠. 소재는 주로 신화나 영웅담에서 가져온 내용들인데, 거세된 성악가인 카스트라토를 주인공으로 한 기교적 오페라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바로크 오페라의 기본 규범, 특히 헨델로 대표되는 18세기 바로크 오페라의 규범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정형화된 연기와 과장된 의상 및 무대장치로 귀족의 신분과 품위를 과시합니다. ‘정형화된 연기’란 춤에서처럼 특정한 동작이 특정한 감정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침작하고 냉정한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귀족의 덕목을 표현한 것입니다.

 

둘째, A-B-A' 형식의 다카포(Da capo) 아리아로 청중의 머릿속에 주요 멜로디를 각인합니다. 아리아의 1절에 등장한 멜로디가 2절에서 새로운 멜로디로 바뀌었다가, 3절에서는 다시 1절의 멜로디로 돌아오는 형식을 말합니다.

 

공연장을 나서면서 청중이 그 멜로디를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아리아에 단순하고 반복적인 멜로디를 사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멜로디가 반복되는 3절에 가서는 기본 멜로디를 화려한 장식음으로 치장해 단조로움을 피하는 방식이죠.

 

셋째, 내용 면에서는 보편적인 정서를 담은 아리아를 작곡해 일반 대중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질투와 분노, 약속, 헤어져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 등, 연인들 사이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뤄서, 청중이 실제 상황에서도 오페라에 쓰였던 아리아들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어야 작품이 인기를 끌게 됩니다. 유럽 각국의 바로크 오페라 대표 작곡가로는 이탈리아의 몬테베르디와 비발디, 프랑스의 륄리와 라모, 그리고 영국의 퍼셀과 헨델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미성과 고음을 자랑하는 ‘남성 알토’의 전통이 쇠퇴할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카스트라토(castrato)’라는 새로운 성악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요. 당시 로마 교황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지역에서는 여성이 성가대에서 노래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변성기 이전의 사내아이를 거세시켜 맑은 고음으로 노래하게 한 카스트라토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로크 시대에는 카스트라토가 주인공 역할을 맡는 오페라 작품이 상당수 작곡되었습니다.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1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