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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오페라교실 - 모차르트와 베르디의 걸작

minjpm 2009. 10. 5. 08:56

고전주의 시대 – 희극 오페라와 모차르트 걸작의 탄생

상업적인 오페라 극장들이 생겨나고 극장을 찾는 평민 관객 수가 점점 늘어가자 극장 측에서도 이들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화와 영웅담을 소재로 해 귀족계급을 찬양하는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정가극)에 평민들이 하품을 하기 시작하자, 극장 측에서는 평범한 시민계급의 일상을 소재로 한 ‘인테르메초(Intermezzo)’라는 막간극을 만들어 본극 중간에 공연하게 되었답니다. ‘아내가 돈 많이 쓸까봐 무서워서 결혼을 못 하는 구두쇠 노총각 이야기’ 등 당대 사회상을 빗대 웃음을 선사했던 이 막간극은 본극보다 더 인기를 끌어, 나중에는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극오페라)’라는 장르로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1733년에 초연된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의 [마님이 된 하녀 La serva pardona]는 막간극으로 만들어졌다가 큰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희극 오페라로, 계급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새로운 시대를 오페라라는 예술 장르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담아냈는가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모차르트 시대 오페라, 그러니까 18세기 후반의 오페라는 세리아와 부파라는 두 장르를 보다 세련되게 발전시켰습니다. 계몽사상과 프랑스 대혁명기의 자유주의 사상은 오페라에도 영향을 끼쳐 소재의 변화를 가져오게 했지요. 오페라라는 예술이 신화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삶의 온갖 희로애락과 사회비판을 담아내게 된 것입니다. 모차르트와 동시대 작곡가들인 파이지엘로, 치마로사, 살리에리 등은 음악형식에 있어 모차르트와 대단히 비슷한 오페라들을 작곡했지만, 모차르트는 그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파격으로 다음 세기의 오페라에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최고 걸작들인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는 그의 짧은 생애(36년) 말년에 탄생했고, 이 작품들은 모두 걸출한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와 함께 작업한 이탈리아어 오페라들입니다.


18세기 후반에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벗어나 자기 나라 언어로 오페라를 만들려는 민족주의적 예술의 움직임이 유럽 각국에서 나타났습니다. 독일에서는 독일어로 부르는 징슈필(Singspiel: 노래극)이 발전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오페라 코미크(opera comique: 희가극)라는 장르가 출현했지요. 이탈리아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아리아(완결된 노래)와 레치타티보(대사에 음정을 붙인 것)로 이루어지는데, 징슈필이나 오페라 코미크에서는 (연극에서처럼) 말로 하는 대사가 이에 덧붙여집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는 바로 이 징슈필을 대표하는 오페라입니다.   

 

 

 

낭만주의 시대 – 기교를 총동원해 노래하는 벨칸토 오페라


‘벨칸토(bel canto: 아름다운(bel)+노래(canto))란 18세기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이탈리아 오페라에 쓰였던 화려하고 기교적인 창법을 뜻합니다. 1810~1850년 사이에 초연된 로시니, 벨리니, 도니제티의 작품들이 벨칸토 전성기 오페라의 대표작들이지요([세비야의 이발사], [노르마],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등). 그저 우아하고 서정적으로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성악가가 발휘할 수 있는 극한의 기교를 총동원해 노래 부르는 것으로, 때로는 인간의 목소리로 악기들의 기교와 겨루는 시도가 이루어집니다. 소재 면에서는 낭만주의 시대의 특성상, 환상적이거나 기괴한 이야기들 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비극이 많지요.


하지만 즐거운 희극적 소재를 다룬 벨칸토 오페라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의 희극 오페라에서는 평민 주인공들의 약진이 두드러집니다.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에 등장하는 이발사 피가로,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약장수 둘카마라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벨칸토 창법의 관건은 유연한 레가토(legato)를 구사하는 데 있습니다. 가수는 음계를 빠르게 오르내리면서도 그 음들 사이를 명료하고 매끄럽게 연결해야 하는데, 이것이 진정한 레가토입니다. 벨리니와 도니제티의 거의 잊혀졌던 벨칸토 오페라들을 역사 속에 부활시킨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는 ‘목소리를 악기처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제어하는 기법’이라고 벨칸토를 정의했습니다. 조안 서덜랜드, 에디타 그루베로바,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의 성악가들이 탁월한 기교로 칼라스의 뒤를 이어 벨칸토 레퍼토리들을 노래했지요. 19세기 후반부터 극장 규모가 점점 커지고 오페라 소재 및 작곡방식이 차츰 극적으로 변화하면서 벨칸토 창법은 쇠퇴하고, 무게감과 큰 음량을 요구하는 창법이 벨칸토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베르디 - 절규와 환호성이 살아있는 새 시대의 오페라

문학, 음악, 연극, 미술, 무용, 기술 등의 여러 분야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오페라라는 예술 장르에서 각 분야에 어느 정도로 비중을 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논의되어왔습니다. 물론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음악이지만, 언어와 음악이 결합하는 방식이나 무대 연기의 비중을 놓고 작곡가와 대본작가 또는 연출가 사이에 다양한 갈등이 빚어졌던 것이지요. 1813년 이탈리아 부세토에서 태어나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26편의 오페라를 발표했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는 그 어떤 오페라 작곡가보다도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바로크 시대 오페라는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극의 갈등 구조보다는 성악가 개개인의 음악적 재능과 테크닉에 의존했기 때문에, 관객의 환호를 얻는 인기 가수를 무대에 세우기만 하면 흥행이 보장되었습니다. 모차르트를 거쳐 로시니의 시대에 이르는 동안 오페라에서 차츰 대본과 연기의 비중이 커져가긴 했지만, 성악가의 목소리와 기교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요. 1842년에 베르디가 오페라 [나부코]로 첫 번째 대성공을 거두었을 때만 해도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는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의 벨칸토 작품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를 기점으로 베르디는 음악 못지않게 연극적 요소들이 중시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베르디와 같은 해에 태어나 동시대에 그와 쌍벽을 이뤘던 독일 작곡가 바그너는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장르를 개척해 신개념 오페라를 내놓았지만, 베르디는 혁신적인 방식 대신 1600년에 ‘오르페우스’ 이야기로 시작된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을 계승하고 집대성했습니다. 스스로 소재를 재구성하고 대본을 쓰며 오랜 세월 일관된 주제에 집중했던 바그너와는 달리 베르디는 끊임없이 새롭고 다양한 소재를 추구하며 수없이 많은 고전 문학작품과 동시대 작품들을 읽었습니다. 셰익스피어(맥베스, 오텔로), 쉴러(루이자 밀러, 돈 카를로), 빅토르 위고(리골레토), 알렉상드르 뒤마 2세(라 트라비아타),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스(일 트로바토레) 등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문호들의 걸작이 베르디의 오페라로 새롭게 태어났고, 고대 이집트(아이다), 기원전 바빌로니아(나부코), 중세의 마녀사냥(일 트로바토레), 파리 부르주아 사교계(라 트라비아타) 등 다양한 역사적 배경이 베르디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문학작품을 영화화할 때 생기는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베르디 역시 원작 훼손에 대한 비난에 맞서야 했습니다. 당시의 문학작품이란 우리가 오늘날 소설이라고 알고 있는 작품들까지도 운문 형태로 쓰인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베르디는 오페라의 연극적인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를 일상어에 가까운 산문 형태로 바꾸고 등장인물 간의 대화에 역점을 두려 했던 것입니다.

 

 

 

[아이다]를 작곡할 때 베르디는 “오페라의 내용과 주제가 요구하는 바를 음악으로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원작의 리듬, 운율, 시행 따위는 당장 내다버릴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페인 국민문학을 오페라(일 트로바토레)로 망쳐놓았다고 욕을 먹었을 때는 “오페라 대본에는 환호성과 한숨, 고통의 외침과 분노의 절규가 필요하다. 음표를 달아 노래로 부르면 결국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복잡하고 골치 아픈 단어와 문장들이 대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라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또 맥베스 부인 역할을 위해 맑고 고운 목소리 대신 표현력 있고 목이 쉰 듯한 음성의 가수를 찾아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지요. ‘등장인물의 성격, 감정, 갈등은 추상적이고 관조적인 언어가 아니라 바로 음악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던 베르디였기에 ‘문학작품을 훼손한다’는 비난은 별 의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회에는 독일 바그너의 음악극, 프랑스 오페라와 러시아 오페라,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와 푸치니, 현대 오페라 등,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오페라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이화여대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현재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 국립오페라단 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무지크바움, 성남아트센터 등에서 오페라 및 클래식 강좌 진행, PBC [음악공감]에서 매주 수요일 오페라 해설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지상에 핀 천상의 음악], [춤에 빠져들다]가 있다.


이미지 TOPIC/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