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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암수의 동상 각몽 - 성별과 성

minjpm 2009. 10. 8. 12:18

전적으로 다윈의 진화 이론을 바탕으로 태동한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은 세상에 나오기 무섭게 페미니스트들의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다분히 성급했던 몇몇 초창기 사회생물학자들의 실수가 화근이었다. <일부일처제의 신화>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 등으로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미국 워싱턴 대학 심리학과 교수 버래시(David P. Barash)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이 야외에서 새들의 짝짓기 행동을 관찰하여 얻은 얼마 되지 않은 데이터에 기반하여 수컷의 바람기가 다분히 유전적인 근거를 지닌다는 조금은 경솔하고 상당히 인화성이 높은 발언을 하는 바람에 페미니즘과 사회생물학은 서로 첫 단추를 잘못 꿰는 불행의 역사를 시작하고 말았다.

 

 

수컷도 성적 자제력을 가질만한 생물학적 이유가 있다 

2004년 우리 여성부가 성매매 근절을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을 때 헌법재판소의 여성 판사와 어느 남성 국회의원의 발언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언론 보도만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이들의 견해는 대충 다음과 같았다. 남성들의 성욕은 여성에 비해 본능적으로 훨씬 높은데 그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단속 일변도의 정책은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내게는 전문가의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나는 그들의 발언 배경과 발언의 전문을 알지 않는 한 절대로 아무런 평가를 내리지 않겠다며 완강히 거절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의 발언에 전혀 아무런 의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비록 문맥이 고려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들의 발언에서 일종의 남성 비하를 느꼈다. 남성이라는 동물은 애당초 말초적인 자극의 유혹을 극복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나는 적어도 그 같은 평가만큼은 결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남성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욕망을 자제할 수 있는 이성을 지니고 있으며 거기에는 그럴만한 생물학적 이유가 있다.

 

 

수컷만 바람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암컷)과 남성(수컷)이 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서로 다른 전략을 취하도록 진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언제나 남성의 바람기만 얘기하는 것은 한번쯤 재고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양손이 마주 부딪혀야 소리가 나듯이 남성 혼자 바람을 피울 수는 없다. 우선 숫자 계산이 맞질 않는다. 만일 남성의 바람이 대부분 동성애적 바람이거나 극히 소수의 여성들이 그 많은 남성들을 모두 상대해주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로 성립할 수 없는 계산이다. 여성들도 남성들 못지않게 바람을 피우고 있다.


1980년대 미국 하버드의대의 연구자들은 대학부속병원 중의 한 곳에서 태어난 아기들의 혈액형을 바탕으로 당시 미국 여성들의 바람기를 가늠해보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그 해 그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들의 거의 3분의 1가량이 법적인 남편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병원이 아기의 부모에게 아기의 혈액형을 가르쳐주지 않아도 되는 법이 제정되었다. 병원이 아기의 혈액형 정보를 제공하면 병원에서 너무 자주 부부싸움과 이혼소송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전형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고 알려진 새들도 DNA 지문분석법(DNA fingerprinting technique)을 사용하여 조사해보니 한 둥지에서 자라 날아 나오는 새끼들이 종종 ‘씨 다른’ 즉 아빠가 다른 경우가 속속 발견되었다. 미국 워싱턴대학의 동물행동학자들은 가장 좋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붉은날개지빠귀(red-winged blackbird) 으뜸수컷(alpha-male)을 잡아 거세하여 돌려보내는 실험을 했는데 놀랍게도 그의 영역에 둥지를 튼 암컷들은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알을 낳고 새끼를 길러냈다는 것이다. 암컷들은 모두 변방의 수컷들과 짝짓기는 하되 그 으뜸수컷의 터와 재산을 이용하여 자식을 길러냈다.


성매매에 관하여 남성들이 각성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조건 남성들만 욕망의 노예로 낙인 찍는 것은 불공평해 보인다. 2004년 여성부의 캠페인은 모든 남성을 잠재적인 성범죄자로 가정하고 세워진 정책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성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일인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초적인 욕망을 자제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자제력의 차이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그 차이가 상당 부분 인격의 차이를 만든다. 고도로 조직화한 사회에 사는 동물인 우리 인간에게 욕망의 조절은 대단히 중요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다.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남성은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백악관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탄핵의 위기로 내몰렸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경우만 보더라도 성욕의 자제는 남성의 출세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소설가 이인화는 그의 1992년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서 ‘욕망하는 자아’를 해답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소설가가 그리는 욕망하는 자아의 욕망도 결국 번민하는 즉 절제된 욕망이다. 서양에는 다음과 같은 속담이 전해온다. “사람들은 모두 탐나는 걸 보면 그걸 갖길 원한다. 그래서 법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법이 있기 전에 우선 도덕과 종교가 있고 무엇보다도 생물학이 있다고 생각한다.

 

 

번식에 관한 암수의 전략에는 분명한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

번식에 관한 암수의 전략에는 분명한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 기네스북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자식을 가장 많이 낳은 여자는 27번의 임신을 통해 두쌍둥이, 세쌍둥이, 네쌍둥이 등을 포함하여 평생 69명을 출산한 19세기 러시아의 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기네스북은 이 기록이야말로 절대로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런데 이 기록을 남성의 기록과 비교하면 놀랍도록 하찮아진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식을 낳은 남자로 기네스북은 ‘피에 굶주린 이스마일(Ismail the Bloodthirsty)’이란 별명을 가진 18세기 모로코의 황제를 꼽는다. 기네스북은 그가 무려 888명의 아들딸을 생산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60년간 매년 무려 15명의 자식들을 낳았어야 계산이 되는 이 기록은 사실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문제가 소지가 있지만, 적어도 여성의 기록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역시 확인되지 않았지만 무려 3천명의 궁녀를 거느렸다는 백제 의자왕의 자식들은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검증한 최초의 실험은 1948년 영국의 유전학자 베이트먼(Angus John Bateman)실험이었다. 그는 실험실에서 초파리를 기르며 그들의 짝짓기 행동을 관찰하여 암컷의 번식은 투자한 시간과 에너지의 제한을 받는 반면, 수컷의 번식력은 얼마나 많은 암컷들과 교미할 수 있는가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스마일 황제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후궁들을 거느리며 그들의 몸을 빌려 엄청난 수의 자식을 얻을 수 있었지만 한 네트워크 이론가의 연구에서 가장 큰 할리우드 섹스 네트워크의 허브를 갖고 있다고 알려진 뜻밖의 여배우가 있는데, 그가 아무리 여러 남성과 잠자리를 같이 한다고 해도 낳을 수 있는 자식의 수는 제한되어 있다.

 

 

일부일처제가 많은 남성을 구제하고 있는 셈

2006년 7월 16일 MBC는 자체 제작한 ‘일부일처제’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 과정에 퍽 깊숙이 관여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작진이 내 연구실을 찾아와 다윈의 성선택 이론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눴고 외국 학자들의 상당수를 섭외해주었다. 기어코 나도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하여 거의 한 시간 가량 녹화를 했었는데 정작 방송된 분량은 극히 짧았다. 그것도 앞뒤 문맥이 잘린 상황에서 방영되어 결과적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많이 상하게 하고 말았다. 남성들은 흔히 일부다처제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는데 현실을 직시하고 꿈 깨라는 얘기를 한 게 방영된 것이다. 남성들의 대부분은 마치 일부일처제의 굴레가 벗겨지면 일부다처제의 수혜자가 될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실은 훤칠하고 잘 생긴 친구들이 수백 명의 여성들을 몰아가기 때문에 우리 평범한 남성들에게는 차례가 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수혜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될 확률이 훨씬 높다. 베이트먼의 실험을 시작으로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일부다처제 동물의 경우에 암컷과 짝짓기에 성공하는 수컷은 종종 전체의 5~10%도 되지 않는다. 절대 다수의 수컷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 암컷 근처에도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는 게 자연계의 냉혹한 현실이다. 그나마 일부일처제가 법으로 보장되는 인간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스스로 유전자를 후세에 남길 수 없는 수컷이라는 동물은 어찌 됐든 궁극에는 암컷의 몸을 빌려야 한다. 암컷의 간택이나 허락이 없이는 번식이 불가능하다. 물론 수컷에게는 강간이라는 최후의 수단이 있다. 나는 거의 30년간 미국과 한국의 대학에서 학생들과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 수업을 해왔는데 대단히 흥미롭게도 대학생들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주제는 단연 강간이다. 미국 뉴멕시코 대학의 행동생태학자 쏜힐(Randy Thornhill)은 그의 동료 파머(Craig Palmer)와 함께 2001년에 <강간의 자연사(A Natural History of Rape)>라는 책을 출간했다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쏜힐과 파머는 결코 일부 남성들의 강간 행위를 정당화하지 않았다. 다만 강압적인 교미 행동은 거의 모든 동물에서 관찰되는 자연계의 보편적인 패턴인 만큼 진화적인 설명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시도했을 뿐인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름다움인가 힘인가? 성간선택인가 성내선택인가?


수컷에게는 결국 두 가지 선택지가 존재한다. 우선 어찌 되었든 매력적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아무 걱정이 없다. 브래드 피트(Brad Pitt)처럼만 멋지게 태어난다면 애써 여성들 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내 아를 나 도” 하며 조를 까닭이 없다. 그저 그윽한 눈으로 바라만 보면 된다. 인간의 경우에는 문화적 진화(cultural evolution)가 유기적 진화(organic evolution)를 압도해 버렸지만, 자연계를 둘러 보면 거의 모든 동물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더 아름답고, 노래도 더 잘 하고, 춤도 더 잘 춘다. 그것도 모자라 구애 선물(courtship gift)까치 바치는 수컷들도 있다. 다윈은 이를 그의 성선택 이론의 첫째 메커니즘인 암컷선택(female choice) 또는 성간선택(intersexual selection)으로 설명했다. 짝짓기에 있어서 궁극적인 선택권은 거의 예외 없이 암컷에게 있기 때문에 수컷은 암컷의 선택을 얻어내기 위해 아름답게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짝짓기 과정의 선택권은 번식에 대한 암수간의 투자 차이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경제적인 판단에 따른다.

 

자연계에서 아주 드물게 수컷이 선택권을 행사하는 모르몬귀뚜라미(mormon cricket)의 경우에는 암컷에게 구애 선물로 바치는 정낭(spermatophore) 한 개를 만드는 데 수컷 체중의 거의 27%가 소모된다. 하룻밤에 네 번만 정사를 나누면 그야말로 공중분해를 면치 못하는 엄청난 수컷의 투자가 수컷으로 하여금 선택의 권한을 누리게 한 것이다.

 

우리 주위를 한번 둘러보면 금방 알 수 있듯이 이 세상 모든 수컷이 다 매력적으로 태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미(美)가 받쳐주지 않으면 그 다음으로 기댈 것은 결국 힘 밖에 없는 법이다. 인간 사회를 포함하여 자연계를 두루 둘러보면 허구한 날 대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들은 거의 예외 없이 수컷들이다. 암컷들도 물론 경쟁한다. 하지만 그들의 경쟁은 훨씬 은밀하다. 수컷들은 종종 드러내놓고 경쟁한다. 북방코끼리바다표범(northern elephant seal) 수컷들은 그야말로 온몸에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치열하게 싸운다. 승리한 수컷은 한 해변을 모두 차지하여 그곳에서 자식을 낳아 기르고 싶어하는 암컷 100여 마리와 짝짓기를 할 수 있으니 그 싸움이 어찌 치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윈은 이 과정을 수컷경쟁(male-male competition) 또는 성내선택(intrasexual selection) 메커니즘으로 분석했다.

 

 

수컷은 직접적인 힘겨루기보다 자원의 쟁탈경쟁에 더 자주 매달려

자연계의 수컷들은 직접적인 힘겨루기인 대면경쟁(contest compe tition)을 하기도 하지만 보다 자주 자원을 선점하려는 쟁탈경쟁(scramble competition)에 매달린다. 암컷들이 필요로 하는 좋은 영역을 차지하거나 먹이원 또는 둥지를 지을 수 있는 자리를 선점하느라 때론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한다. 아프리카 꿀잡이새(honeyguide)는 훌륭한 벌통을 선점하여 보호하며 꿀을 좋아하는 암컷들이 찾아오길 기다린다. 인간 사회에서 남성들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그리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시대가 약간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들의 경우에는 출세가 반드시 좋은 결혼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출세는 때로 상대 남성군의 규모를 줄이는 역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에게는 입신양명(立身揚名)이 번식 성공도(reproductive success)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 있다. 남성들이 왜 모든 사람들이 입만 열면 욕을 해대는 정치판을 기웃거리는지 생물학적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수컷경쟁 체제를 택한 수컷들은 자기들끼리 경쟁 과정을 거쳐 순위를 정함으로 해서 암컷의 선택권을 상당 부분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다. 흔하진 않지만 때로는 수컷경쟁을 통해 정해진 ‘내정(default)’ 순위를 거부한 채 버금수컷(beta-male)과 짝짓기를 하는 암컷들이 있다. 데이터의 양이 충분하지 않아 아직 논문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민벌레(Zoraptera) 연구에서 꼭 버금수컷과 짝짓기를 고집하는 암컷들을 추적 관찰한 경험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수컷들간의 경쟁구도가 바뀌었을 때 다른 암컷들처럼 새로 등극한 으뜸수컷과 또 다시 짝짓기를 할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다. 몸길이가 비록 2mm밖에 안 되는 작은 곤충이지만 마치 권력구도의 변화를 예측이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들이 내겐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최재천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 대담>등이 있다. 2000년 제 1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1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