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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케스트라 교실 - 오케스트라 리허설의 비밀

minjpm 2010. 1. 22. 09:24

오케스트라 연주의 성공 여부는 리허설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정된 리허설 시간동안 연주할 곡을 잘 다듬어내야 음악회 무대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은 오케스트라에 대해 궁금하시는 분들을 위해 오케스트라 연습실을 방문했다고 가정하고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대한 궁금증을 Q&A로 풀어볼까 합니다.

 

 

Q  악장님이 조율을 지시하는 걸 보니 이제 연습이 시작될 모양입니다. 오늘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부터 연습하나보군요. 연주회에선 협주곡이 먼저 연주되는 게 보통인데 연습 때는 대개 교향곡부터 시작하나보죠?

A  연습 순서는 지휘자가 정하기 나름이지만 교향곡을 먼저 연습하는 데 여러 모로 장점이 많지요. 아무래도 오케스트라에겐 협주곡보다는 교향곡에 연습할 부분이 많고 잘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집중이 잘 되는 연습 초반에 먼저 다뤄주는 게 더 낫습니다. 또 교향곡에는 협주곡에 비해 악기가 더 많이 나오니까 협주곡을 연주하지 않는 단원들은 먼저 연습을 끝내고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지요. 오늘 연습하는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에는 트롬본 3대가 필요하지만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에는 트롬본이 편성되어 있지 않으니 아마 트롬본 주자들은 교향곡 연습 후에는 개인 연습을 할 수 있겠군요.

 

 

Q  그런데 트롬본 주자들의 모습이 안보이네요? 베토벤 ‘운명’에는 트롬본 연주자 3명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트롬본 주자들이 왜 안 나왔죠?

아, 그건 트롬본이 4악장에만 나오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연습은 1악장부터 시작하니까 트롬본 주자들이 굳이 1악장에서부터 자리에 앉아있을 필요는 없지요. 아마 이따가 4악장 연습이 시작되면 트롬본 주자들이 들어올 겁니다. 트롬본 주자들은 기다리는 데 익숙해요. 어마어마한 대 편성 관현악곡이 아닌 이상 트롬본은 그리 자주 연주하지 않거든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만 해도 그래요. 트롬본 주자들은 서곡에서 몇 번 ‘빵빵’ 불고는 아주 오랫동안 쉬어야 해요. 다행히 오페라 공연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무대 밑에 있는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연주를 하니까 트롬본 주자들이 서곡을 연주한 후 분장실로 빠져나가 편히 쉴 수 있지만 교향곡은 환한 조명이 켜져 있는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하니까 그러지도 못해요. 베토벤 ‘운명’을 연주할 때 무대 위의 트롬본 주자들이 1, 2, 3악장 내내 꼼짝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끔 안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연주를 안 하면서 무대 위에 앉아 있는 것도 참 힘든 일인 것 같네요. 그래도 연주를 안 하는 동안 트롬본 주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연주를 들으며 무대 위에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으니 나름 재미도 있을 것 같은데요?

A  한 악장을 완전히 쉴 때는 긴장을 풀고 음악 감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연주를 하던 도중에 오래 쉬는 부분에선 바짝 긴장을 해야 해요. 정신을 놓고 있다간 연주할 부분을 놓쳐서 지휘자의 눈총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트롬본 주자들은 연주가 진행 중일 때도 소리를 내지 않고 기다리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마디를 세는 데는 선수예요. 트롬본 주자들은 몇 마디 연주한 후에 100마디 넘게 쉬기도 하는데, 그 많은 마디수를 정확하게 센 후 나와야 할 부분에서 연주를 시작하는 걸 보면 정말 감탄스럽다니까요. 마디 수를 세다보면 가끔 헷갈리기도 할 텐데 어떻게 그렇게 정확하게 세는지! 그에 비해 거의 쉴 틈 없이 연주하는 데 익숙한 바이올린 주자들은 악보에 몇 마디 쉬라는 표시가 나오면 갑자기 당황해서 몇 마디 안 되는 것도 제대로 못 세고 실수하기 일쑤죠.

 

 

Q  재미있군요. 직업이 사람을 변화시키듯, 연주하는 악기에 따라 성격도 달라질 것 같네요. 아! 이제 1악장 연습을 시작하는군요. 그런데 지휘자가 처음부터 뭔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네요. 저 같은 문외한이 듣기에도 그 유명한 ‘따따따딴~’하는 주제가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아마 그것 때문인가 봐요.

A  ‘운명’의 테마는 너무나 유명하지만 잘 맞춰서 연주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운명’ 교향곡]은 지휘자에게나 단원들에게나 매우 부담되는 곡이지요. 1악장 처음에 짧은 8분 쉼표 후에 8분 음표 세 개가 정확하게 나와야 하는데, 수많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머릿속으로 똑같은 템포를 상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 곡을 연주할 때는 지휘자와 모든 단원들이 첫 부분부터 초긴장 상태로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연주하기가 어려워요. 자칫 잘못하다간 ‘따따따딴~’이 아니라 ‘따따따따딴~‘이 되기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거든요.

 

 

저런! 베토벤 선생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면 지하에서도 벌떡 일어나시겠는 걸요! 그럼 지휘자 대신 메트로놈으로 박자를 맞춰주면 단원들이 더 정확하게 맞출 수 있지 않을까요?

A  글쎄요. 그럼 연주가 너무 기계적이 돼서 별로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군요. 지휘자를 단순히 박자만 맞추는 사람으로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지휘자는 단순한 ‘박자기’가 아니라 일종의 ‘해석자’입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다름없지요.


 

작곡가가 남겨놓은 악보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템포만 해도 그래요. 빠르게 연주하라는 뜻의 ‘알레그로’(Allegro)라는 말이 악보에 써있다고 해도 대체 얼마만큼 빠르게 해야 하는지는 정확하지가 않지요. 결국 템포를 정하는 것이라든가 음량이나 음색을 표현하는 일, 어떤 악기의 선율을 강조할 것인지 등등의 일은 지휘자가 그 음악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어보면 같은 악단이 같은 곡을 연주하는데도 지휘자가 다르면 그 느낌이 매우 달라지는 것이지요. 지휘자는 비록 연주 중에 아무 소리를 내지 않지만 마치 군대의 작전 지휘관처럼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에요.

 

 

Q  지휘자가 그렇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군요. 그럼 지휘자가 리허설 중에 자기 생각을 전달하면서 연습을 시키려면 그 방법이 중요할 것 같네요. 예를 들어 같은 부분을 자꾸만 반복시키는 지휘자는 단원들이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은데...

발전을 위한 반복 연습이라면 상관없지만 별 의미 없이 반복만 한다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자꾸 반복만 한다고 연주가 더 좋아지는 건 아니죠. 어디를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를 단원들에게 제대로 전달해내야 연습도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잘 전달해내는 것이야말로 지휘자가 갖추어야할 가장 중요한 능력입니다. 때로는 지휘자의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눈짓이나 손짓이 단원들에게 더 강한 영향을 미치기도 해요. 노련한 지휘자일수록 말을 별로 안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단원들에게 잘 전달해냅니다.

 

 

이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 앞에 앉는군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5번을 연습하려나 봐요. 그런데 아까 지휘자가 템포나 음악적인 표현 등을 지시한다고 하셨는데, 협연자가 있는 협주곡에서도 지휘자가 템포를 정하나요?

A  협주곡에선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협연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대개는 지휘자가 협연자의 템포에 맞춰줍니다. 협연자가 기량을 잘 발휘해야 협주곡의 연주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케스트라와의 조화도 중요하니까 지휘자와 협연자가 연습 중에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협력해야 성공적인 연주를 해낼 수 있겠지요. 간혹 경험이 부족한 지휘자와 노련한 협연자가 함께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가 협연자의 연주를 따라가지 못하는 바람에 협연자가 오케스트라에 맞춰주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렇게 되면 음악적 긴장감이 떨어져서 연주가 별로 좋지 않아요. 좋은 지휘자일수록 협연자의 템포나 음악적 표현을 미리 예측하고 오케스트라에게 신속하게 지시를 내려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어냅니다 어찌 보면 지휘자에게 더 부담이 되는 곡은 교향곡이 아니라 협주곡이나 오페라일 지도 몰라요. 교향곡은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음악이니까 무대에 올라가서도 미리 연습한대로 연주가 진행되지만, 협주곡과 오페라에선 협연자나 성악가의 당일 컨디션이 연주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연주 중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지휘자는 상황에 맞게 재빨리 대처해나가야 하지요.

 

 

Q  그러고 보면 수십 명의 음악가들이 함께 하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만만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A  이제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실 때 한 번의 연주회를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리허설에 기울이는 정성과 노력을 생각해주세요. 그러면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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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