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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3번

minjpm 2010. 1. 25. 09:10

 

 

원문에 들어있는 음악을 들으시려면, 본문 맨 아래 있는 원문가기 링크로 가셔서 들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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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는 강철과 황금으로 만들어진 사람이었다. 강철의 팔과 황금의 심장! 나는 눈물 없이는 전지전능한 그의 존재감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탁월한 예술성을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도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 1945년 5월 16일, 요제프 호프만

 

1873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1943년 미국에서 생을 마감했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는 자기 자신을 작곡가라고 생각했지만, 생의 마지막 30여년 동안에는 자신의 작품을 연주하고 녹음하는 피아니스트라는 두 번째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활하기에 작곡가라는 직업은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세월 동안 그가 보여준 놀라운 피아노 음악의 경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결국 그를 전설적인 피아니스트로 아로새길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no 아티스트/연주  
1 1악장 Allegro ma non tanto / 백건우[피아노], 페도셰예프[지휘],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듣기
2 2악장 Intermezzo. Adagio 듣기
3 3악장 Finale. Alla breve 듣기

 2월 7일까지 무료로 전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정력적이고 외향적이었던 그의 친구,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에 비해 라흐마니노프는 사색적이고 내향적이었는데, 그가 연주를 시작하면 곧 음표가 구조에 달라붙듯이 청동처럼 견고한 건축물로 변화하였다. 한편 호프만이 자연스럽고 다채로운 음색과 변덕스러울 정도로 거침없는 스타일을 구사한 반면, 라흐마니노프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한결같은 음색과 기계적일 정도로 잘 계산되고 정돈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그의 사진에서도 느낄 수 있는 수도승과도 같은 이미지, 즉 삭발에 가까운 머리 스타일과 고정된 시선, 굳게 닫힌 입술에서 느낄 수 있는 엄격함은 곧 그의 연주 및 작곡 스타일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맘모스급 피아노 협주곡의 탄생

러시아의 정서와 작곡가의 시성이 매 순간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라흐마니노프를 있게 한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작품일지는 모르겠지만, [3번 협주곡]이야말로 피아니스트로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 초월적 의지를 반영한 작품이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피아노의, 피아노를 위한, 피아노에 의한 협주곡이다. 오죽하면 작곡가 자신도 이 작품을 “코끼리를 위해 작곡했다”라며 곤혹스러워했을까.

 

1909년 라흐마니노프는 이바노프카의 시골집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면서 자신의 미국 데뷔 무대를 위한 새로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다. 그러니까 이 [3번 협주곡]은 순수하게 미국을 위해 작곡한 곡으로서 작곡가로서는 자신의 기량을 한 번에 쏟아내어 새로운 무대를 휘어잡을 만한 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의 바램대로 피아노 협주곡 역사상 무서우리만큼 가공할 만한 테크닉과 초인적인 지구력, 상상을 뛰어넘는 예술적 감수성과 시적 통찰력을 요구하는 맘모스급 작품이 탄생했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를 미국으로 이끌었을 뿐더러, 예술적 동료로 평생토록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피아니스트 호프만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호프만은 이 작품을 연주하기에는 손이 작았기 때문에 공개석상에서는 한 번도 연주하지 못했다고 한다. 


 

1909년 11월 28일, 이 곡은 월터 담로슈(Walter Damrosch)의 지휘와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되었고 7주 후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의 지휘로 다시 한 번 연주되었다. 작품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은 [피아노 협주곡 2번] 초연 때만큼 뜨거웠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오히려 연주자 라흐마니노프에게 관심이 집중되며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이 날의 성공 덕택에 다음 시즌 연주회를 위한 계약이 쇄도했고,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직책까지 제안받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연주하기가 너무나 힘들 뿐더러 그 정서적 표현 역시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신적인 곡이었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어필하기까지에는 1960년대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가 등장할 때까지 50여년의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1928년 한 젊은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나타나 이 [3번 협주곡]을 말 그대로 ‘삼켜버린’ 사건이 벌어졌다.

 

 

 

라흐마니노프도 놀란 초신성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의 연주

1928년 1월의 어느 날, 뉴욕 카네기 홀 맞은 편에 위치한 스타인웨이 쇼룸에 두 명의 러시아 음악가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시대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라흐마니노프, 다른 한 명은 막 미국에 도착한 스물 다섯 살의 젊은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Horowitz)였다. 1월 12일 지휘자 토머스 비첨과 뉴욕필과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로 전설적인 데뷔 무대를 가진 호로비츠는 여세를 몰아 2월 23일에 라흐마니노프가 [3번 협주곡] 초연시 함께 했던 지휘자 담로슈의 지휘로 [3번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했다. 이 만남은 이 연주회를 위해 작곡가와 연주자가 함께 한 리허설 성격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바로 그 날의 만남이 음악사에 있어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기록되는 이유는 곡의 창조자 라흐마니노프가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에 관한 ‘권위의 봉인’을 호로비츠에게 물려주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 연주를 듣고 너무 놀라 입을 벌린채 넋을 잃었다고 친구에게 말했을 정도로 무한한 신뢰를 보냈는데 특히 후배인 아브람 카신스(Abram Chasins)에게 “호로비츠는 이 작품을 통째로 삼켜버렸네”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 그정도로 [피아노 협주곡 3번]과 호로비츠는 샴 쌍둥이와 같은 운명이었다.


 

이 자리에서 라흐마니노프는 호로비츠의 조언에 따라 1악장과 2악장에서 짧은 삭제 부분을 결정했고(호로비츠는 2악장과 3악장에서 보다 더 삭제된 버전으로 연주, 녹음했다), 1악장의 솔로 카덴차를 보다 짧게 단축시켰으며, 2악장과 3악장의 짧은 피아노 부분들에 대한 두 장 분량의 얼터너티브 솔로 패시지를 과감하게 생략했다. 이러한 수정을 모든 연주자들이 따르게 강제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이유에 의해 이 관습은 작곡가에 대한 가장 정중한 예의이자 호로비츠에 대한 무한한 존경의 표시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낭만주의 러시아 피아니즘의 진정한 적자임을 대변하는 ‘권위의 인장’은 [3번 협주곡]을 통해 라흐마니노프를 거쳐 호로비츠에게 주어지게 된 것이다.

 

1930년 최초로 이 작품을 녹음한 이후 총 여섯 종의 레코딩을 남겼던 호로비츠에게 있어서 이 작품에 대한 진정한 라이벌은 작곡가도 다른 연주자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 작곡가가 서거한 지 40여 년이 지난 1982년, 런던에서 연주회를 가질 당시 호로비츠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위대한 인간이자 위대한 작곡가이며 또한 위대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작곡가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평생토록 가슴 속에 새겨놓았던 호로비츠야말로 이 [3번 협주곡]을 삼킬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제1악장 - 알레그로 마 논 탄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주부에 뒤이어 D단조의 장엄한 테마가 피아노로 연주된다. 피아노가 두 번째 주제를 연주하며 점점 빠르게 진행되며 음악은 힘차고 다이내믹하게 이어진다. 이윽고 걸음이 빨라지면서 변주곡으로 진입하고 곧 카덴차 부분으로 이어지며 장대한 피아노 솔로 카덴차가 나타난다. 그리고 다시금 1주제와 2주제가 제시되며 끝을 맺는다. 이 카덴차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반짝이고 투명한 질감을 가지고 있는 버전, 다른 하나는 화음 위주의 무겁고 힘이 실려있는 버전이다. 비르투오시티를 강조하는 피아니스트들은 주로 앞 버전을 선호한다.

 

제2악장 - 인터메초, 아다지오
오보에의 독주로 멜로디가 연주되며 강렬한 총주로 이어진다. 이 때 불협화음으로 등장하는 피아노 독주는 주단 위를 굴러가는 흑진주 같다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왈츠풍 음형과 여러 단편들이 경쟁적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솔로 피아노의 장대한 스케일과 간결한 오케스트라 총주가 등장하여 3악장으로 음악을 이끌어간다.

 

제3악장 - 피날레. 알라 브레브
한 마디로 비르투오소를 위한 찬가라고 말할 수 있다. 웅대한 힘, 야성적 매력, 정교한 테크닉과 진한 서정성이 뒤엉켜 펼쳐지는 낭만주의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프로코피에프를 연상시키는 듯한 짧은 카덴차 성격을 가진, 피아노가 연주하는 마지막 토카타 패시지가 압권이다. 피아노가 클라이맥스를 주도하며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한 옥타브, 살인적인 분산화음으로 듣는 이의 심장을 10분 넘게 들었다 놓으며 웅장하고 화려하게 마무리된다.

 

사족을 붙이자면, 영화 [샤인]의 주인공인 데이빗 헬프갓이 이 작품을 연주하다가 혼절한다는 스토리는 사실상 음악적 넌센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이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초인적, 거장적, 선천적 재능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현실적 인식에 대한 성공적인 영화적 메타포이기도 하다.

 

 

 

박제성
박제성 / 음악 칼럼니스트,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 역자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 방송, 저널활동, 음반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