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학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연과학에도 때로 ‘문제를 문제로 의식하는 눈’을 얻기 전까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성의 문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60년대에 이르러 몇몇 생물학자들이 새삼스레 성, 보다 정확히 말하면 양성이 왜 진화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기 전에는 성이란 ‘종족 보존을 위하여’라는 언뜻 들으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진화적 적응현상으로 간주하였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때론 목숨을 던지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부모의 희생 행동은 물론, 애당초 자식을 낳아 정성을 다해 기르겠다는 번식 결정까지 모두 종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숭고한 행위라는 설명에 참으로 오랫동안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족운동의 위대한 지도자라면 모를까 그 어느 부부가 성관계를 가지며 ‘종족 보존을 위하여!’를 부르짖어 본 일이 있겠는가? 성은 지극히 개체중심적인(individualistic) 행위이다. 최소한 의식 수준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인간의 경우 성(sex)은 일단 자극적 쾌락 때문에, 그리고 다분히 의식적인 차원에서 자식을 낳기 위하여, 즉 내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기 위하여 수행하는 행동이다.
성이 왜 존재하는가는 결코 당연하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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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성의 기원과 진화가 연구 주제가 되지 않았던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인간이 지닌 종 수준의 편향성(provincialism) 때문일 것이다. 인간 종이 속해 있는 포유류는 전부 유성생식(sexual reproduction)을 하는 동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의 경우 기독교의 마리아와 같은 종교설화나 박혁거세를 비롯한 건국설화 등이 있지만 실제로 과학적으로 입증된 단위생식(parthenogenesis)의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헤르메스(Hermes)와 아프로디테(Aphrodite) 사이에서 태어나 풍만한 젖가슴과 남성의 성기를 함께 갖춘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 ditos)의 석상이 전시되어 있다. 실제로 인간 사회에는 태어날 때부터 또는 호르몬 치료나 성형수술을 통해 헤르마프로디토스의 형상을 갖춘 이른바 ‘shemale(여남)’이 있긴 하지만 기능적으로 완벽한 암수한몸(hermaphrodite; 남녀추니 또는 어지자지라고도 부른다)인 경우는 적어도 포유류에서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반드시 기능적이지 않더라도 암수의 성징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상태를 생물학에서는 ‘자웅혼재(gynandromorphy)’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와 늘 함께 살고 있는 대부분의 생물들이 다 유성생식을 한다는 사실도 성의 진화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진핵생물(eukaryotes)의 대표주자들인 식물, 동물, 그리고 균류(fungus)의 절대 다수가 모두 유성생식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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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진화가 생물학의 가장 궁극적인 문제로 떠오른 배경에는 이처럼 온 세상에 성이 화려하게 꽃 피운 것은 사실이나 무성생식(asexual reproduction: 단성생식이라고도 한다.)에 비해 유성생식(양성생식)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불리함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57년 미국의 두 유머작가 써버(James Thurber)와 와이트(Elwyn B. White)가 던진 “성이란 과연 필요한가? (Is sex necessary?)”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마치 진화생물학자라면 누구나 당연히 성의 진화와 존속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야만 하는 것처럼 수많은 저서와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1982년 캐나다의 진화생물학자 벨(Graham Bell)이 단언한 것처럼 성의 문제는 이제 생물학 문제 중 단연 ‘여왕’이 되었다.
성의 기원이 불가사의한 까닭 1 : 두 배의 손실
성의 기원과 진화가 불가사의한 까닭은 몇 년 전에 작고한 영국의 이론유전학자 메이너드 스미스(John Maynard Smith, 1920~2004)가 수학적으로 예증해 보인 이른바 ‘두 배의 손실(twofold cost of sex)’에서 출발한다. 무성생식 또는 단위생식보다 유성생식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두 배의 손실을 감수한다. 가상의 두 가족을 비교해보자. 한 가족은 인간 사회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부부가 유성생식을 통해 가정을 꾸린다. 만일 자식을 둘만 낳는다고 하면 평균적으로 그 중 하나는 딸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들일 것이다. 딸과 아들에 각각 어머니의 유전자가 1/2씩 전달된다. 그들이 각자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하나씩 낳는다면 그 손녀와 손자의 유전자의 1/4이 할머니의 유전자이다.
이제 ‘돌연변이 가족’을 상상해보자. 아내에게 단위생식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남편의 유전자와 결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유전자만으로 자식을 만들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여인이 낳는 두 자식은 모두 딸일 것이다. 또 그들이 결혼하여 각각 딸 둘씩을 낳을 것이다. 세대마다 이 여인의 유전자 증가율은 유성생식을 하는 여인에 비해 각 개체 당 두 배가 된다. 처음에는 아주 희귀하게 시작한 이 돌연변이 유전자는 세대를 거듭하며 급속도로 증가할 것이며 애써 수컷을 낳아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세대를 거듭할수록 적어도 양적으로는 실로 엄청난 유전적 이득을 얻게 된다. | |
성의 기원이 불가사의한 까닭 2 : 값비싼 비용
그동안 제기된 성의 진화에 관한 가설들은 모두 성이 태생적으로 지닌 ‘두 배의 손실’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이들 가설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나는 종종 간과되는 다른 비용을 지적하려 한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성의 생태적 비용(ecological cost of sex)’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생물학자들이 이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성의 생태적 비용은 그동안 적어도 정량적으로는 그리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같은 꽃의 암술과 수술 사이에서 꽃가루받이할 수 있는 현화식물이나 번식기의 대부분 동안 암컷이 암컷을 낳는, 즉 단위생식을 하는 진딧물에 비해 유성생식을 하는 우리 같은 생물들이 마음에 맞는 짝을 찾기 위해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얼마나 소모적인가는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의 체험으로 잘 알고 있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우선 짝짓기 상대를 찾아야 하고, 일단 찾은 다음에는 종종 엄청나게 까다로운 구애 과정을 거쳐야 하고, 서로 맘에 맞아 짝짓기를 시작한 다음에도 실제 번식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할 수많은 단계가 있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은 특수한 화학물질(페로몬)을 생산하여 분비하기도 하고, 수컷은 암컷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온갖 화려한 색과 형태를 갖춰야 하며 때론 목청 높여 노래도 해야 하고 심지어는 현란한 춤도 춰야 한다. 날기조차 불편할 만큼 거추장스러운, 그러나 기가 막히게 화려한 깃털들을 가진 공작새 수컷을 보면 이 비용이 얼마나 엄청날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번식의 이득을 얻기 위해 개발된 형질들은 흔히 생존에 위협이 되기도 한다. 화려한 형질은 암컷뿐 아니라 포식동물의 눈에도 잘 띄기 때문이다. 스스로 움직여 다니며 짝짓기 시도를 할 수 있는 동물과 달리 한 자리에 뿌리를 박고 사는 식물은 훨씬 더 복잡한 문제들이 쌓여 있다. 그래서 많은 현화식물들은 ‘날아다니는 음경(flying penis)’인 곤충·새·박쥐들을 유혹하여 그들에게 자기 대신 사랑하는 연인과 잠자리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칼부림을 해도 시원치 않을 불륜을 애써 간청하며 그도 모자라 고맙다고 꿀과 꽃가루로 보답까지 한다. | |
유성생식의 이득은? 유전적 다양성 + 진화의 속도
하지만 이 같은 유전적 및 생태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자연계에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이 버젓이 잘살고 있다는 사실은 유성생식에 결정적인 진화적 이득이 있음을 의미한다. 유성생식이 주는 이득을 설명하는 가설을 제일 먼저 제안한 사람은 독일의 진화생물학자 바이스만(August Weismann, 1834~1914)이었다. 그는 유성생식은 암수의 유전자(물론 당시에는 유전자의 존재가 밝혀지기 전이라 생식질(germ plasm)이라 불렀다)를 섞는 과정에서 새로운 유전형(genotype)을 만들어내 자연선택으로 하여금 더욱 다양한 변이를 가지고 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바이스만의 설명은 1966년 윌리엄즈(George C. Williams)의 명저 [적응과 자연선택(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에서 집단선택(group selection) 가설에 입각한 설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주춤했으나, 2000년대에 들어와 수행된 실험들에 의해 유성생식에 의한 변이의 다양성은 집단과 유전자 수준 모두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1930년대 초반에는 이론진화생물학자 피셔(Ronald A. Fisher, 1890-1962)와 실험유전학자 멀러(Hermann Joseph Muller, 1890-1967) 등이 진화의 속도를 바탕으로 한 가설들을 내놓았다. 무성생식보다 유성생식이 유리한 돌연변이 조합을 더 용이하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유성생식 개체군은 무성생식 개체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화할 수 있다. 유전적으로 경직되어 있는 무성생식 개체군은 환경의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지 못하여 절멸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일단 만들어진 불리한 돌연변이를 제거할 마땅한 방법을 갖고 있지 않은 반면,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은 유전자의 결함을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 환경 변화에 보다 강력한 저항력을 지닌다.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에게 해로운 돌연변이들이 축적되어 결국에는 삶의 운행을 멈추게 하는 현상을 흔히 ‘멀러의 깔축톱니(Muller’s ratchet)’라고 부르는데, 그에 비하면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DNA 복구 메커니즘(DNA repair mechanism)’을 이용하여 수시로 유전자의 결함을 제거할 수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대로 이 같은 ‘유전자 다양성(genetic diversity)’ 가설들은 처음에는 다분히 집단선택 논리에 그 기반을 두고 개발되었지만, 차츰 개체 수준의 설명으로 다듬어졌다.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만들어내면 그만큼 오랜 기간 진화의 역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시간적’ 가설들과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이 생태적으로 다양한 환경(niche)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공간적’ 가설들이 제기되어 이제는 성의 진화를 설명하는 한 축의 가설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성의 진화에 대한 가장 구체적인 가설 : 기생충 가설
성의 진화에 가장 구체적인 작업가설을 제공한 것은 흥미롭게도 ‘기생충(또는 병원균)—숙주 공진화’의 개념이다. 대부분의 기생생물은 세대가 짧고 무성생식을 하기 때문에 매우 빠른 속도로 새로운 ‘공격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 유성생식을 하는 숙주생물이 이에 맞서는 방법으로 진화한 것이 바로 성이라는 설명이 해밀턴(William D. Hamilton)의 이른바 ‘기생충 가설(parasite hypothesis)’의 핵심이다.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유전적으로 다양한 자손을 생산하면 기생생물의 공격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다. 어느 기생생물이 숙주 개체군에서 가장 흔한 유전형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성생식이 보다 유리한 전략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러면 기생생물은 또 다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 또 다른 특정한 유전형을 공격하고 숙주는 또 새로운 면역력을 갖춘 새로운 유전형을 만들어내곤 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하여 일어나게 된다. 기생생물과 숙주생물은 일종의 ‘진화적 군비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을 벌이는 것이다.
“종족보전을 위하여!“에서 “기생충을 타도하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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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길항적 공진화에 진화생물학자들은 ‘붉은 여왕 가설(The Red Queen hypothesis)’이라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듬뿍 든 매력적인 이름을 붙여주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보면 앨리스가 거울 속의 나라에 들어가 서양장기의 ‘붉은 여왕’에게 손목을 붙들려 뛰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달려도 주위 배경이 변하지 않자 앨리스는 “주위의 모든 것들이 우리와 함께 움직이는 것 같다.”고 의아해하고 이에 붉은 여왕은 “여기서는 제자리에 머물려면 있는 힘을 다해 달려야 한다.”고 답한다.
생물이란 모름지기 항상 다른 생물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공진화한다. 1982년 해밀턴의 기생충 가설 관련 첫 논문이 나왔을 때 “설마 기생충이 우리로 하여금 그 화끈한 섹스를 하도록 만들었을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이제 이 가설은 성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가장 탁월한 설명으로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이제 우리는 사랑하는 이와 성관계를 가질 때 “종족 보존을 위하여!”를 부르짖지는 않아도 “기생충을 타도하자!”라는 구호는 외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
연구에 몸을 바친 위대한 생물학자 해밀턴 교수의 추억
기생충 가설이 빠른 시일 내에 이론생물학과 야외생물학 양 진영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낸 데에는 역시 해밀턴 선생님의 개인적인 매력이 작용했다고 본다. 포괄적응도 이론으로 이미 다윈 이래 가장 위대한 생물학자라는 칭송을 한몸에 받던 그가 내놓은 이론이라 우리 모두 다시 한번 귀를 기울였던 게 사실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선생님이 기생충 논문들을 내놓기 바로 직전에 그를 직접 만나 뵐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1979년 가을 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1982년 알래스카 바닷새들의 몸에 붙어사는 체외기생충의 군집생태에 관하여 석사 논문을 제출했다. 그런 다음 나는 해밀턴 선생님이 계시던 미시건 대학 박사 과정으로 진학하기 위해 지원서를 제출하고 선생님께 편지를 냈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1982년 겨울 거의 일주일 가량이나 선생님 댁에 머물며 꿈 같은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대학에서 여러 다른 교수님들을 만나고 밤에는 선생님 댁의 거실에서 밤이 늦도록 학문을 논했던 그 며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그때 줄기차게 포괄적응도와 사회성 진화에 관하여 질문을 퍼붓는 내게 오히려 내가 한 기생충 연구에 대해 끊임없이 많은 질문을 하셨다. 선생님의 학문적 관심사가 바로 그 무렵 기생충과 성의 진화로 옮겨가고 있었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결국 영국왕립학회에 회원으로 추대되어 옥스퍼드 대학으로 돌아가시는 선생님을 동행하기보다 확실한 지원이 보장된 하버드 대학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내가 만일 그 때 선생님을 따라 옥스퍼드로 갔다면 아마 지금도 오로지 기생충 연구의 외길을 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나는 무슨 운명인지 선생님이 떠나고 없는 미시건 대학에 교수가 되어 부임했다. 그 후 귀국하여 서울대학에 몸담고 있던 시절 내내 안식년을 맞으면 꼭 옥스퍼드로 가서 드디어 선생님과 함께 연구하리라는 꿈을 간직하고 지내던 어느 날 선생님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HIV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해 연구를 하시겠다고 아프리카에서 침팬지 분변을 채집하시다가 급성 말라리아에 걸려 급히 영국으로 후송되었으나 불과 며칠만인 2000년 3월 7일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아홉 살 소년 시절 케네디 대통령 암살 소식에, 그리고 20대 유학생 시절 존 레넌의 죽음 소식에 흘렸던 눈물보다 훨씬 더 많은 눈물이 하염없이 내 두 뺨 위로 흘러내렸다. | |
- 글 최재천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대담] 등이 있다. 2000년 제 1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