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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 신비로운 과학세계

[스크랩] 시큼한 맛의 주인공 '산'

minjpm 2010. 1. 29. 08:57

일반화학의 산∙염기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 강의를 시작할 때, 뜬금없이 ‘산토끼의 반대는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곤 한다. 뜬금없는 질문에 어리둥절하던 학생 중에서, 강의 제목이라도 한 번 훑어 본 학생은 ‘염기토끼’라고 현명한(?) 대답을 하기도 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화학을 가르치는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염기토끼라고 답을 하는 학생들이 예뻐 보이긴 한다.

 

 

상쾌한 과일, 음료에서 축전지까지 우리 생활과 밀접한 산

산은 종류도 많고 그 쓰임새도 매우 다양하여, 우리 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영어로 산은 acid라 하는데, 본래는 시큼하다는 의미가 있는 'acidus'라는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대표적인 산은 사과나 레몬과 같이 과일에 포함된 것으로, 산이 많이 포함된 과일은 acid의 어원처럼 시큼한 맛이 난다. 상상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레몬∙귤∙석류 등 많은 과일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산은 구연산(citric acid)이다. 이 구연산은 우리 몸의 대사 작용에 관여하며, 구연산 회로(citric acid cycle)를 구성하는 기본 물질이다. 신맛이 나는 탄산음료에는 대부분 구연산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콜라, 사이다와 같은 음료에는 탄산이 포함되어 있다.  탄산은 수용액에 이산화탄소를 녹여서 만들 수 있다. 아미노산(amino acid)은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되며,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은 우리 귀에 익숙한 비타민 C의 본명(?)이다.  옛날에 장기간 항해 하는 선원들이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섭취하지 못해서 죽은 것도 결국은 아스코르브산의 결핍으로 인한 것이다.  괴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아스코르브산을 공급했더라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동차용 납 축전지에 들어 있는 용액은 황산이며, 우리의 위에서 분비되어 소화를 돕고 균을 죽여 건강의 1차 파수꾼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염산이다. 황산은 산업에서 매우 다양하게 이용되며, 특정 국가의 황산 생산량으로 그 나라의 화학 공업의 발달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을 만큼 중요하다.

 

 

산은 크게 무기산과 유기산으로 나눌 수 있다

앞서 설명한 수많은 종류의 산은 크게 유기산과 무기산,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유기산은 탄소를 포함하는 유기화합물 중에서 산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유기산에는 개미산·아세트산·구연산·아스코르브산 등이 있으며, 최근 주가(?)가 많이 올라가고 있으며, 혈관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DHAEPA도 유기산의 한 종류인 지방산(fatty acid)이다. 반면에 황∙인∙질소∙염소와 같이 비금속 원소가 포함된 무기화합물 중에서 산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을 무기산이라 한다. 따라서 황산∙인산∙질산∙염산은 무기산이며, 탄소가 포함되어 있지만 탄산은 예외적으로 무기산으로 분류한다.

 

유기산들은 각종 과일이나 채소는 물론 동물에도 들어 있다.  유기산은 탄소 원자로 구성된 분자 뭉치(R-로 표기)의 말단에 카르복시기(-COO-H+)설폰산(-SO3-H+)기가 연결된 구조로 되어 있다. 가장 간단한 유기산은 개미산(HCOOH)과 아세트산(CH3COOH)이며, 구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알킬기(R-)가 수소와 메틸기이며 카르복시기가 1개 연결되어 있다. 동물이나 식물에 포함된 다양한 지방산도 탄화수소 골격에 카르복시기가 1개 연결되어 있다. 탄화수소 골격에 포함된 이중결합의 종류에 따라 시스 지방산과 트랜스 지방산으로 구분한다. 자연산으로 얻어지는 지방산은 대부분 시스 구조를 포함하는 탄소 뭉치가 달렸다.

 

카르복시기가 1개 이상 연결된 유기산도 많다.  예를 들어 시금치에 많이 들어 있는 옥살산은 단순히 카르복시기만 2개 연결되어 있고, 사과나 석류에 들어 있는 말산(malic acid)은 탄소 2개로 구성된 뭉치에 각 탄소에 카르복시기가 1개씩 연결된 구조를 하고 있다.  구연산은 탄소 3개로 구성된 골격에 탄소마다 카르복시기 한 개씩 모두 3개의 카르복시기가 결합한 구조를 하고 있다. 연결되는 탄소 골격도 다르고, 카르복시기의 개수까지 다른 것을 조합해 보면 유기산의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다.

 

방향족 탄소화합물인 벤젠에 1개의 카르복시기가 연결된 것은 안식향산(benzoic acid)으로, 식품위생법으로 허용되는 방부제 중 하나이다.  샐러드 드레싱, 탄산음료 등과 같은 상품의 성분 설명서에는 안식향산 나트륨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안식향산나트륨은 세균이나 곰팡이 발육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어서 방부제로 사용되며, 안식향산 용액에 수산화나트륨을 첨가하고 물을 증발시키면 형성되는 하얀색 고체가 그것이다. 안식향산나트륨은 샐러드 드레싱, 탄산음료를 비롯한 산성 식품은 물론 심지어 감기약에도 첨가되는 방부제로 사용되며, 안식향산보다 안식향산나트륨이 물에 잘 녹기 때문에, 첨가제로 사용할 때 농도 조절이 쉽다는 장점이 있어 더욱 널리 쓰인다.


 

일반적으로 무기산은 유기산보다 더 강산이며, 유기용매보다는 물에 잘 녹는 특성이 있다.  무기산은 물에 녹아서, 수소이온(H+)을 내 놓는다.  다량의 화학물질을 생산할 때, 산이 필요하다면 보통 무기산을 많이 이용한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아 형성되는 탄산, 폭약제조 혹은 로켓 연료의 산화제로 사용되는 질산, 우리 몸의 위에서 방출되는 염산, 콜라에 들어 있는 인산, 간단한 소독약 혹은 바퀴벌레 퇴치용으로도 사용되는 붕산은 모두 무기산이다. 

 

 

산의 특성은? 수소이온의 개수가 결정한다

산에만 수소이온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순수한 물에도 아주 작은 양의 수소이온이 들어 있다. 따라서 산을 단순히 수용액에 수소이온이 있는 것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순수한 물에 있는 수소이온의 개수보다 더 많은 수소이온을 포함하는 용액을 산성용액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산 용액에 포함된 수소이온의 개수(농도)는 순수한 물에 포함된 수소이온의 개수(농도)보다 훨씬 많다.  물에 존재하는 수소이온은 물 분자와 결합한 형태인 하이드로늄이온(H3O+)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물속에서 수소이온과 하이드로늄이온은 같은 화학종이며, 이름과 표기 방식만 다를 뿐이다.

 

순수한 물은 물 분자들이 서로 반응을 하여 같은 개수의 양이온(하이드로늄이온)과 음이온(수산화이온)이 만들어지므로 물의 자동 이온화 반응(autoionization)이라 부른다.  화학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물의 자동 이온화 반응은 매우 적은 수의 물 분자만이 참여하므로, 생성되는 하이드로늄이온과 수산화이온은 매우 적다.  평상시(25℃, 1기압)에 물의 자동 이온화 반응으로 생성되는 두 이온의 농도는 각각 10-7M(몰농도: mol/L)이다. 용액의 산도(acidity)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pH는 -log[H3O+]식에 하이드로늄이온의 농도, [H3O+]를 대입한 결과 얻어진 숫자를 말한다.  따라서 순수한 물의 자동 이온화 반응으로 형성된 하이드로늄이온의 농도 10-7M을 식에 대입하면 7이 되므로 순수한 물의 pH는 7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교 대상의 용액에서 만약에 pH가 1만큼 차이가 난다면 두 용액에 존재하는 하이드로늄이온의 농도는 10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강산과 약산, 무슨 차이가 있을까? 

강산과 약산의 차이는 무엇인가?  앞에서 말한 무기산 중에서 붕산을 제외한 염산·질산·황산 등은 강산이다.  그러나 아세트산과 같이 카르복시기를 포함한 유기산 대부분은 약산이며, 설폰산기를 포함하는 유기산은 비교적 강산이다.  강산은 용매에 녹아 있는 모든 산 분자들이 수소이온인 양이온과 수소이온을 제외한 분자의 나머지 부분으로 구성된 음이온으로 분리되는(해리, dissociation) 산을 말한다. 반면에 약산은 많은 산 분자들이 분자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일부 분자만 해리되는 산을 말한다. 따라서 강산과 약산의 구분은 산의 농도가 아니라 산 분자의 해리되는 정도로 결정되므로, 농도가 진한 약산 혹은 농도가 묽은 강산도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산인 염산 분자(HCl)의 경우에는 물에서 수소이온(H+)과 염소이온(Cl-)으로 거의 100% 해리된다. 그렇지만 약산인 아세트산 분자(CH3COOH)는 일부의 분자만이 수소이온(H+)과 아세트산이온(CH3COO-)으로 해리되며, 나머지는 해리되지 않은 형태로 존재한다. 

 


해리되는 아세트산 분자의 비율도 아세트산 농도에 따라 다르며, 묽은 아세트산 용액(아세트산+물)에 있는 아세트산 분자들이 더 많이 해리된다.  해리된 상태가 평형에 도달했을 때, 아세트산 이온의 농도와 수소이온의 농도는 같다. 또한 두 화학종의 평형 농도를 곱한 값을 아세트산 분자의 평형 농도 값으로 나누면 일정한 상수가 되는데 이것을 산 해리상수(Acid dissociation constant, Ka)라 부른다.

 

 

약산의 산 해리상수는 산의 종류와 분자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고유한 값이다.  그러므로 해리상수가 큰 약산은 약산 중에서도 비교적 센 약산이 된다.  해리상수가 작은 아세트산은 해리가 잘되지 않는 약산이지만, 빙초산처럼 아세트산의 함량이 매우 높은 물질은 피부나 점막에 손상을 줄 수 있으니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빙초산은 물보다 아세트산이 훨씬 더 많아서 실온에서 고체로 존재하는 진한 아세트산을 말하며, 아세트산의 함량이 30% 이상이 되면 냄새도 고약하고, 증기조차도 해로울 수 있으니 반드시 후드 안에서 다루어야 한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놀러 가서 부엌 찬장에 놓인 음료수 병에 담긴 식초를 음료수인 줄 알고 벌컥 들이켰다가 정말 쓰라렸던 황당한 경험이 있다.  코를 타고 머리까지 치솟는 아세트산의 찌릿하고 시큼한 기억은 오늘날까지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있다. ‘불 같은 성질(?)’을 가진 산이 염기를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지면 관계상 다음 화학산책으로 미루어야 될 것 같다.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를 썼고, [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 번역하였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chemistry/1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