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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음력 - 연휴의 최대 변수!

minjpm 2010. 1. 29. 08:55

고대로부터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달력은 대단히 중요한 도구였다. 특히 자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농사에 달력은 없어서는 안 될 도구였다. 고대의 어느 문명권이든 날짜를 헤아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천문현상을 이용하는 것이었고, 그 가운데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달의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달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을 거쳐 다시 완전히 사라지는 주기적인 현상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달의 주기는 평균 29.53일 정도로 날짜가 딱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달의 주기를 이용한 음력은 한 달의 길이로 29일과 30일을 번갈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달을 보고 만든 달력, 음력

순수하게 달의 주기만을 이용한 달력을 순태음력이라 하는데, 이런 달력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가 아는 1년의 길이는 대체로 365일쯤 된다. 음력을 여기에 맞추려면 30일과 29일을 번갈아 사용하여 총 12달을 만들면 되는데, 이렇게 하면 365-6×(30+29)=11일의 차이가 생긴다.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곳이라면 몰라도, 이런 달력을 계속 쓰게 되면 화사한 봄꽃 피는 계절에 태어난 아이의 10살 생일 축하 파티를 폭설 속에서 하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생일 정도는 그럴 수도 있다 쳐도, 농사와 관련된 일정이 뒤죽박죽이 되는 건 큰일이다. 참고로 중동에서 사용하는 이슬람력은 순태음력으로 되어 있어, 우리가 보통 쓰는 달력에 비해 1년의 일수가 짧다. 그 덕분에 이슬람력을 사용하는 지역에는 노인들의 수명이 길어지는 효과(?)가 있다.

 

 

 

음력 윤달은 19년에 7번 있다

순태음력이 계절과 맞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모자라는 11일을 적당히 채워넣는 것이다. 무작정 11일을 덧붙여서는 달의 주기와 어긋나니, 이 둘을 조화롭게 설정하려면 3년 동안 생기는 33일의 오차를 새로운 한 달로 해결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도 사흘 정도의 오차는 여전히 있으므로, 좀 더 정밀한 방법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은 19년 동안 7번의 윤달을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약 365.24일이므로, 365.24(일)×19(년)-(19×12+7)(월)×29.53(일) = 0.01 이 되어 두 달력이 거의 맞아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극히 드문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만 19세가 되는 양력 생일과 음력 생일이 일치하게 된다. 이 19년이라는 기간은 예로부터 대단히 중요하게 취급되어, 동양에서는 이 방법을 장법(章法)이라 불렀고, 서양에서는 발견자의 이름을 따 메톤(Meton)의 주기라 불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동양이 이 주기를 발견한 것은 춘추시대인 BC600년 경으로, 서양에 비해 150년 이상 앞선다. 이처럼 순태음력을 보완하여 계절의 변화와 맞춘 달력을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라고 한다.

 


음력의 약점을 보완하는 양력 요소, 24절기

이런저런 방법으로 순태음력을 보완하여 고대인들은 달력과 계절의 변화를 맞춘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ar)을 만들어내었지만, 19년 동안은 태양의 변화와 미묘하게 어긋나는 일이 매년 반복된다. 이래서야 농사를 짓는 데에 불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대인들은 “절기(節氣)”라는 절묘한 기법을 생각해내었다. 태양의 움직임이 대략 360일 정도로 반복되므로, 이것을 24등분 하여 약 15일마다 마디(節)를 만드는 것이다. 즉, 달력 자체는 음력을 사용하여 달의 모양만으로 날짜를 짐작할 수 있게 하면서, 이와 별도로 약 15일을 단위로 돌아가는 달력을 하나 덧붙인 셈이다. 지금은 날짜와 시간을 알기 위해 하늘을 보는 대신 달력과 시계를 보는 세상이 되었기에, 음력을 사용할 일이 드물지만, 옛날 사람들에게 날짜는 달을 보고 알고, 농사는 정해진 절기를 따르면 되는 체계는 대단히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24절기는 다시 12개의 절기(節氣)와 12개의 중기(中氣)로 다음과 같이 나뉘어, 12절기와 12중기가 교대로 온다. 24절기 안에 12절기가 또 있으니 용어가 조금 혼란스러울 텐데, 이 글에는 절기라고 하면 24절기를 의미하며, 12절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12절기라고 구분하여 표시할 테니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24절기가 태양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춘분, 하지, 추분, 동지라는 이름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날이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있고, 여름에는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 있고, 겨울에는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볼 수 있는 질문 가운데, 설과 추석은 달력에서 매년 날짜가 바뀌는데 왜 24절기는 양력으로 거의 일정한 날짜에 나오느냐고 묻는 질문이 적지 않다. 절기라는 것이 태양의 움직임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니,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태양력인 그레고리력에서 일정한 날짜에 절기가 반복되는 것이 당연하다. 뒤집어 말하면, 음력을 사용하던 조선 시대에 네이버 지식인이 있었다면, “서당 숙젠데요. 왜 설과 추석은 일정한 날짜에 반복되는데, 24절기는 달력에서 매년 날짜가 바뀌나요?”라는 질문이 많았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가끔 24절기가 음력인지 양력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있다.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반영하다는 점에서 양력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고, 24절기가 사용되는 역법 자체는 음력, 정확히는 태음태양력에서 사용되고 있으므로 음력에서 사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24절기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에서 사용되는 양력 요소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윤달도 24절기를 기준으로 들어간다, 무중치윤법


앞서 음력은 19년 동안 7번의 윤달을 둔다고 하였는데, 윤달을 결정하는 데에 바로 이 24절기가 사용된다. 24절기를 보면,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데에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의 네 중기가 가장 중요하고, 다시 그 사이사이를 3등분 한 여덟 개의 중기가 중요하다. 한 중기와 그다음 중기 사이가 대체로 30일 정도 되므로, 음력의 한 달(29일 또는 30일)과 비슷한 기간이다. 만약 음력 한 달에 중기가 들면, 그것으로 한 달의 이름을 결정한다. 우수가 든 달은 1월, 춘분이 든 달은 2월, 곡우가 든 달은 3월이 된다. 우리가 음력 11월을 흔히 동짓달이라 부르는 것도 11번째 중기가 동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기와 중기 사이가 음력 한 달보다 조금 길기 때문에, 중기가 없는 달이 가끔 나타난다. 바로 이런 달을 윤달로 삼는 규칙을 무중치윤법(無中置閏法)이라 한다. 중기가 없는 달을 윤달로 삼는다는 뜻이다.

 

2010년 올해는 윤달이 없으므로, 작년 2009년 달력을 예로 들어 보자. 2009년의 음력 5월은 양력 5월24일에 시작된다. 이달이 음력 5월인 이유는 이달에 다섯 번째 중기인 하지(양력 6월21일)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음력 5월은 30일짜리 달로, 양력 6월22일에 끝나고, 양력 6월23일부터 음력으로 새로운 달이 시작된다. 이달은 양력 6월23일부터 양력 7월21일까지 29일짜리 달이다. 그런데 여섯 번째 중기인 대서는 양력 7월23일이어서 음력 5월 다음 달에는 중기가 없다. 이달을 “윤5월”이라 한다.

 

 

 

앞서 19년마다 7번의 윤달을 둔다고 했는데, 무중치윤법이 이런 효과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기와 중기 사이가 거의 30일이고, 음력 한 달은 그보다 약간 짧기 때문에, 음력 관점에서는 중기가 나타나는 날짜가 점점 뒤로 밀려난다. 이러다가 완전히 한 달 정도로 밀려나면, 그 순간 윤달을 도입하여 맞추자는 것이 바로 무중치윤법이다. 19년마다 양력과 음력이 일치하고, 그 차이가 음력으로 약 일곱 달 차이가 나므로, 바꾸어 말하면, 무중치윤법이 적용되는 달이 19년 동안 7번 정도의 비율로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무중치윤법이 아니라 무절치윤법으로 윤달을 도입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다만 태양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데에 12절기보다는 12중기가 더 중요하기에 중기가 기준으로 사용되는 것뿐이다.

 

실제로는 음력 한 달의 날짜는 물론이고, 중기와 중기 사이의 날짜도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일이 많이 생기지만, 무중치윤법은 태양의 움직임과 비교하여, 한 달 차이가 났으니 윤달을 도입한다는 단순하지만 절묘한 아이디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빚은 윤동지에 갚겠다”는 떼 먹겠다는 소리

절기는 1년을 24등분 한 것이므로, 절기와 절기 사이의 간격은 약 365.2422/24=15.218425 일이다. 따라서 절기를 정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기준일(보통 동지)로부터 15.218425 일이 지날 때마다 새로운 절기로 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평기법(平期法)이라 한다. 글자 그대로 평균적으로 기간을 정한 것이다. 그런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궤도는 원이 아니라 타원 모양이어서, 계절에 따라 공전 속도가 달라진다. 북반구가 여름일 때에는 지구가 태양에서 멀어지는 대신 공전 속도는 느려지고, 북반구가 겨울일 때에는 지구가 태양에 가까워지는 대신 공전 속도는 빨라진다. 속도의 차이가 있지만, 같은 기간에 공전궤도면을 휩쓸고 지나가는 넓이는 항상 일정하다는 것이 유명한 케플러(Kepler)의 제2법칙이다. 이런 사실을 반영하면, 단순히 15.218425 일마다 절기를 반복하는 대신, 공전 궤도를 15°씩 나누는 것이 계절 변화에 더 잘 맞다. 이와 같은 방법을 정기법(定期法)이라 한다.


 공전 속도가 느린 여름에는 15°를 지나는 데 15.218425 일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공전 속도가 빠른 겨울에는 15°를 지나는 데 15.218425 일보다 조금 짧은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하면 여름의 절기 사이가 겨울의 절기 사이보다 길어진다. 실제로 2009년의 하지, 소서, 대서의 간격은 16일이어서, 다섯 번째 중기인 하지와 여섯 번째 중기인 대서의 간격이 32일이 된다. 반면 동지, 소한, 대한의 간격은 15일이어서 열한 번째 중기인 동지와 마지막 중기인 대한의 간격은 30일이다. 이처럼 여름의 중기 사이가 길기에, 윤달은 겨울보다는 여름에 나타날 확률이 높다. “윤동지에 빚 갚는다.”는 말도 윤11월이 극히 드물기에 생긴 농담이다. 그러나 중국에서 정기법을 도입한 것이 1645년에 청나라 때 만든 시헌력에서 처음이었고, 그 이전의 역법에서는 평기법을 썼으니, 윤동지라는 우스갯소리의 역사도 알고 보면 4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현대는 음력을 쓸 일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고, 심지어 비과학적이라는 편견까지 있지만, 사실 음력은 수많은 천문학적 현상과 수학적 원리가 어우러져 있는 놀라운 역법이다. 정확한 음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고대인들의 노고와 그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해한다면, 음력이 얼마나 정밀하면서도 멋진 역법인지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현대에 음력의 원리를 이해하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게다가 연휴의 최대 변수이지 않은가.

 

 

 

박부성 / 경남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수학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등과학원 연구원을 거쳐 현재 경남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재미있는 영재들의 수학퍼즐 1,2]와 [천재들의 수학노트]가 있다.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math/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