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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혈액순환 - 온 몸을 돌며 물질을 운반한다.

minjpm 2010. 3. 31. 10:13

우리 몸에 있는 혈관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약 100,000km(지구 둘레의 두 바퀴 반)에 이르고, 심장을 출발한 혈액이 불과 몇 분 만에 온몸을 한 바퀴 돈다. 심장이 피를 짜내는 기관이고, 심장과 피가 생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알려졌었다. 지금이야 누구나 피가 온몸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4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쉽게 알아낼 수도 있을 법한 혈액순환 이론이 왜 이렇게 뒤늦게야 알려졌는지, 그 과정에 어떤 일이 있었고, 혈액순환의 발견이 이후의 의학 발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17세기 이전 서양사람들은 피가 간에서 끊임없이 생산된다고 믿었다

“피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17세기 이전의 서양사람들이 고민한 흔적은 별로 없다. 당연히 간에서 피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간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간의 색깔이 피의 색과 가장 비슷하고, 혈관이 꽤 발달하여 있기 때문이다. 단위 면적으로 치자면 콩팥에 혈관분포가 더 많고, 피가 수시로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 심장이므로, 콩팥이나 심장에서 피가 생성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간이 피를 생성하는 기관이라는 믿음은 오랫동안 다수가 인정하는 당연한 진리(?)였다.

 

아주 조잡하여 현미경이라 할 것인지 말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면, 현미경을 이용하여 뭔가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말피기(Marcello Malpighi, 1628~1694)∙로버트 훅(Robert Hooke, 1635~1703)∙레이우엔훅(레벤후크, Anton Van Leeuwenhoek, 1632~1723) 등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들은 각자 나름의 방법을 개발하여 현미경을 고안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현미경의 성능과 원리에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누가 먼저 현미경을 개발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한 명을 꼭 집어내기는 쉽지 않다.


 

아무 증거가 없음에도 1628년에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가 혈액이 순환한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전까지 “피는 간에서 만들어진다.”라는 내용이 의학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입으로 섭취한 음식이 소화되고 흡수되면, 이것이 간으로 가서 피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된다고 생각했다. 간이 열심히 피를 만들어내면 이 피가 심장에서부터 온몸으로 보내지는 것이라 믿었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하비의 생각 : 혈액은 순환한다


과학역사학자인 토머스 쿤(Thomas Samuel Kuhn, 1922~1996)은 1962년에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을 통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는 이론적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라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과학 발전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패러다임을 바꾸는 새로운 이론이 제시되고, 이것이 과학이 갑자기 발전하는 계기가 되면서 과학이 점진적이라기보다는 계단식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으로 보면 쉽게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1962년 이전에 이와 같은 생각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학자가 없었다는 것이 특이할 뿐이다.

 


혈액이 온몸을 돌아다닌다는 하비의 주장도 패러다임을 바꾸는 내용이었다. 어른은 분당 60~70회, 어린이는 분당 70~100회 정도 심장이 뛴다는 사실은 하비 이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심장에서 인체 곳곳으로 배출되는 혈액의 양이 너무 많으므로, 음식을 통해 섭취하여 얻은 재료만으로 혈액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할 만도 했다. 그러나 1628년에 하비가 이를 의심하고, 피가 간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순환되면서 재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할 때까지 이를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하비는 [동물의 심장과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라는 책에서 팔을 고무줄로 묶으면 혈관에 피가 모여 혈관이 부풀어오르는 현상, 동물해부를 통한 피의 흐름 관찰, 뱀의 대동맥을 묶으면 심장에 피가 모이지만 대정맥을 묶으면 심장이 비는 현상, 심장에서 배출되는 혈액량이 아주 많다는 사실 등을 기초로, 혈액은 순환하고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스승조차 외면했던, 하비의 혈액순환에 대한 주장

패러다임이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생각이므로 이를 한순간에 바꾸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하비가 여러 가지 정황증거를 내세워 혈액이 순환하고 있음을 주장하였지만, 당시 주류 학자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중에는 그의 스승이자 유명한 해부학자인 파브리키우스(Geronimo Fabricius, 1537~1619)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브리키우스는 하비의 스승이었을 뿐 아니라, 하비가 혈액이 순환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 정맥판(정맥 안쪽에서 혈액의 저류를 방지하는 구조물)을 발견한 학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 채 혈액순환에 대해 지극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일 만큼, 혈액이 온몸을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온다는 이론은 당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1790년에 역사학자 크루크생크(Willium Cumberland Cruikshank, 1745~1800)는 “반대자들이 하비의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하비의 이론이 옳다는 결과만 나타났다. 그러자 하비의 이론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던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하비 외에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 증명되자, 하비의 발견은 의학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는 쓸모없는 발견이라고 태도를 바꾸었다.”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말피기가 발견한 모세혈관, 혈액순환 이론을 완성하다

오늘날 혈액순환 이론에 의하면 심장에서 배출한 피는 대동맥을 통해 동맥으로 점점 더 가는 혈관을 타고 이동하면서, 조직에서 필요로 하는 산소를 전해준다. 그리고 나서 세포에서 생산된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노폐물을 받아서 정맥을 통해 돌아온다. 이 와중에 노폐물은 콩팥의 혈관을 지나가면서 걸러지고, 이산화탄소는 폐에서 산소와 교환된 다음 다시 심장으로 가서 온몸으로 배출된다.

 

 

하비가 혈액순환 이론을 내세우고, 실험적으로 증명하기는 했지만, 심장을 출발한 피가 다시 심장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완전히 밝혀낸 것은 아니었다. 혈관은 말초로 갈수록 굵기가 작아져 동맥의 끝 부분에 이르면 크기가 아주 작은 상태의 모세혈관이 된다. 이는 너무 가늘어서 눈으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산소를 싣고 가는 빨간색의 동맥피와 산소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검푸른 색인 정맥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하비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였다.

 

이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낸 이가 바로 말피기다. 하비가 혈액순환 이론을 발표한 해에 태어난 그는 곤충에서 노폐물을 배출하는 말피기관, 사람 콩팥의 작은 구조물인 말피기소체 등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 학자다. 그는 현미경을 이용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포와 조직을 관찰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발견을 많이 했다. 가장 유명한 것이 1661년에 모세혈관을 발견한 것이다. 1657년, 하비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후 말피기에 의해 모세혈관을 통해 동맥피가 정맥으로 전해진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하비의 혈액순환 이론이 완성되었다.

 

 

오래 전부터 혈액순환에 대한 언급 있었으나, 실험과 관찰 결과까지 제시한 건 하비가 처음

하비보다 앞서서 혈액이 순환한다는 이론을 내세운 사람이 있지는 않았을까? 정답은 “있다”이다. 그러나 하비만 이름을 남긴 것은 하비의 주장이 실험과 관찰 결과가 뒷받침된 믿을 만한 이론이었던 데 반해, 다른 사람들의 주장은 그냥 한번 해본 말에 불과하거나 몸 전체의 혈액순환이 아니라 특정 부위의 순환만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약 2,600년경부터 전해진 지식을 기원전 3세기에 편집한 중국의 [황제내경(黃帝內經)]에 ‘심장은 혈액을 조종하는 기관이며 혈액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으나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므로, 이를 혈액순환 이론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13세기에 이집트에서 활약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긴 이븐 알나피스(Ibn al-Nafis, 1213?~1280?)는 혈액의 폐순환에 대해 처음 기술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교황 클레멘트 8세의 시의였던 체살피노(Andrea Cesalpino, 1519~1603)는 1593년에 혈액에 대하여 순환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으며, 최초로 폐순환(소순환)과 체순환(대순환)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였다.


 

16세기 스페인 신학자이자 의학자인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Villeneuve, 1511~1553)는 자신이 쓴 신학 책에 “폐에서 혈액이 공기를 거르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공기가 혼합되면 혈액의 색이 바뀐다.”라며 혈액이 순환한다는 내용을 최초로 기술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하나님이 쓴 것과 같은 대우를 받던 갈레노스(Claudios Galenos, 129~199)의 책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개혁가였던 캘빈(John Calvin, 1509~1564)에 의해 이단자로 몰려 42세에 화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예병일
예병일 /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저서로는 [내 몸 안의 과학] [의학사의 숨은 이야기] [현대 의학, 그 위대한 도전의 역사] [의사를 꿈꾸는 어린이를 위한 놀라운 의학사] 등이 있다.[내 몸 안의 과학]은 교과부에서 2008년 상반기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되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medicine/2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