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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약용식품 - 양념

minjpm 2010. 4. 8. 09:49

우리는 양념이라 부르는 식품성분이 맛이나 향을 돋구어 주는 기능만을 가진 것으로 취급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생활에 대한 오랜 경험을 통해서 여러 가지 양념을 개발하여 물려준 선조-동서양을 막론하고-를 지나치게 경시하는 생각이다. 양념에 대한 통속적인 관점을 버리고, 과학자들은 양념이 가진 건강에 대한 이로움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양념이 소위 약용식품(medical food)으로서 재평가 받고 있다.

 

양념은 나라와 음식의 종류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된다. 다양한 양념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우리 음식의 자랑인 김치에 들어가는 양념을 중심으로 그 안에 포함된 성분과 약리적인 기능을 살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치에 들어가는 양념의 우수성에 놀랄 따름이다.

 

 

김치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 캡사이신, 천연 진통제로 쓰여

우리 김치의 매운맛은 단연 다른 맛을 압도한다. 그 매운맛은 주로 고추∙마늘∙파∙생강을 사용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다. 이들 양념에 들어 있는 매운맛을 주는 성분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성분이 바로 고추에 들어 있는 것으로 캡사이신류의 화합물이다. 캡사이신의 화학명은 8-메틸-N-바닐릴-6-노넨아미드로 고추의 매운맛을 내주는 성분이며, 김치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 중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화합물이다.

 

캡사이신의 생리적 기능은 놀라울 정도다. 캡사이신이 혀의 수용체에 붙으면 우리 몸은 그 매운맛의 고통을 이기려 엔도르핀을 생산하고, 동시에 인체 신진대사를 활성화한다. 이 때문에 고추를 많이 먹는 사람들은 비만증에 걸린 확률이 적다고 한다. 엔도르핀은 일종의 천연 진통제이기 때문에 고추의 매운맛은 신경통은 물론 편두통의 고통까지 일시적이나마 잊게 해준다.

 

 

 

고추에는 이밖에도 빨간색을 이루는 카로티노이드(비타민 A의 전구체)∙필수 오일∙비타민 C 등이 듬뿍 들어 있다. 카로티노이드와 비타민 C는 항산화제 노릇과 비타민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고추에는 포타슘(K, 칼륨)∙마그네슘(Mg)∙(Fe) 성분 등 무기질도 많이 들어 있다. 고추의 성분이 항암 및 항당뇨 성능을 보여준다는 보고가 많이 발표되었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오기는 임진왜란 때로, 그 이전에는 소위 백김치가 주로 식탁에 올랐던 모양이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점령하고 있던 시절에 아시아와 활발한 교역활동을 벌인 결과, 고추는 인도∙중국∙일본 및 우리나라에 빠르게 전파되었다. 남미 에콰도르 남서부에서는 6000여 년 전에 이미 고추를 재배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또 다른 김치의 주요 양념인 마늘, 항균성과 항진균성이 뛰어나

고추와 함께 김치에 꼭 들어가는 양념으로 마늘이 있다. 서양인들 중에는 마늘 냄새를 매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요즘 상황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생리적으로 우수한 마늘의 여러 가지 기능이 속속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늘의 생리활성 능력을 들어보면, 노화방지 및 질병방지에 마늘만큼 우수한 건강식품이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마늘의 성능이 가장 강조된 건강증진 기능은 항균성∙항바이러스성∙항진균성∙항암성∙혈액점도강하 등이 있다.

 

마늘에는 알리신 등 유기 황화합물(이들의 항균성과 항진균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마늘 특유의 냄새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효소∙미네랄∙단백질∙비타민 B∙사포닌플라보노이드 등 건강에 유익한 성분이 듬뿍 들어 있다. 마늘이 동맥경화∙고콜레스테롤∙고혈압 등 심혈관 질환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일부 보고는 여러 사람에게 커다란 희소식이다.


 

마늘이 감기에도 좋다는 영국 BBC의 방송 내용이 몇 년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도 있다. 마늘을 찬양하는 보고는 아직도 끝이 없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1822-1895)는 1858년에 이미 마늘이 항균성을 지니고 있음을 관찰하였으며, 제1∙2차 세계대전 시 유럽에서는 회저병을 방지하는 소독제로도 사용한 바 있다. 중국에서는 AIDS 치료에 마늘이 효과적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마늘을 언제부터 인류가 먹기 시작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 건축 시 일꾼들에게 마늘을 먹여 체력을 유지하게 시켰다는 기록을 보면, 몇 천 년은 분명히 된 것 같다. 중국에는 서기 500여 년경 마늘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마늘 섭취가 매우 오래 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빨강고추를 김치에 사용하기 전에 소위 백김치나 동치미 등에 마늘을 넣었을 가능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늘 특유의 냄새를 줄이기 위해서는 계피∙정향 등이 효과적이라고 알려졌다.

 

 

아시아에서 먼저 쓰인 양념인 생강, 구토 완화능력이 뛰어나


세 번째 양념으로 생강을 꼽고 싶다. 고추∙마늘과 달리 생강이 양념으로 쓰인 것은 아시아가 먼저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강이 주요 식품으로 사용되기 시작된 지역은 인도로 추정된다. 생강에는 세 가지 생리활성 성분이 들어 있으며, 진저롤(gingerol)∙쇼가올(shogaol) 등 페닐-프로파노이드 유도체가 주성분으로 들어 있으며, 생강을 말릴 때나 익힐 때 진저론(Zingerone)이 생긴다. 생강은 진통∙진정∙해열 능력뿐만 아니라 암환자들이 화학요법에 의한 치료 후 느끼는 메스꺼움∙멀미∙설사 증상을 없애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임신 구토증에 생강을 달여 먹이는 민간요법은 이런 생강의 작용 때문이다. 아직 완전히 밝혀 있지는 못하나 생강의 구토 완화능력은 장기의 운동을 활발하게 해주고, 소염 작용을 하며 신경전달 수용체에 대한 길항작용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생강기름은 쥐 피부암을 방지한다는 보고도 있으며, 난소암을 없앤다는 미국 미시간대 연구결과도 알려졌다. 또 감기와 기침을 막는 민간요법으로 생강차∙생강즙∙생강계란이 많이 사용됐다. 쥐를 실험동물로 사용한 연구에서 당뇨치료에 유용하다는 최근 보고도 있다.

 

 

비타민이 풍부한 파, 생강과 함께 감기의 치료에 쓰인다

김치에 또 들어가는 양념으로 파가 있다. 파의 푸른 잎에는 비타민 A, 흰 부분에는 비타민 B와 C가 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파의 ABC’라는 제목의 글이 인터넷에서 회자되기도 하였다. 무기질도 풍부하여 포타슘(칼륨)∙칼슘(Ca)∙마그네슘이 넉넉히 들어 있고 셀레늄(Se)도 소량 들어 있다. 파의 냄새 성분도 마늘처럼 알릴 황화물이며, 플라보노이드류도 포함하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대장암 발병률이 낮은 것은 중국인들이 파∙마늘류 섭취량이 많기 때문으로 믿고 있다. 중국에서는 파를 식용으로 사용한 지 2,000년이 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민간요법으로 파와 생강을 함께 끓여 먹으면 일반 감기를 치료하며, 코막힘과 목 간지러움(기침)을 완화한다고 알려졌다. 파는 땀을 나게 하고, 배뇨를 도우며, 신경안정효과를 주고, 가래를 삭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배추를 사용하지 않고 파∙마늘∙고추∙생강으로 담근 파김치는 푹 익힐수록 그 맛이 점점 좋아진다. 맛도 맛이려니와, 지금까지 앞에서 얘기한 파김치 성분을 따져보면, 파김치가 훌륭한 건강식임을 알 수 있다.


 

 

천연물을 섭취하면 건강에는 도움이 된다

김치에 포함된 건강에 좋은 성분은 자주 듣는 얘기인 유산균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유산균 이외의 여러 양념도 건강에 좋은 성분들을 지니고 있다. 한국인의 건강의 비밀로 김치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는 김치에 이렇게 다양하고 좋은 약용식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치에 들어간 양념 외에도 좋은 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양념도 많다. 우리 전통적인 양념에는 속하지 않지만, 양파도 여러 가지 생리활성 화합물의 보고로 알려졌다. 또한 계피와 카레도 좋은 약리효과를 많이 가지고 있다.

 

화학의 주요 분야에 속하는 천연물화학∙생리화학∙의약화학 분야에서는 전통적으로 천연물에 들어 있는 생리활성 성분을 분리∙정제 후 각 성분의 생리 또는 병리적 활성을 연구해왔다. 그러나 최근 생체, 특히 인체의 건강유지나 질병치료에는 단일 화합물 복용보다는 여러 화합물의 복용에 따른 상승효과를 중시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또한 천연물 자체 전체를 복용해야 더 유리함을 강조하는 학자들도 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약과 민간요법에 사용하는 천연물 섭취의 건강효과에 관한 합리적 연구가 점점 중요시되는 풍조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치를 찾아낸 우리 조상의 건강 지혜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진정일
진정일 / 고려대 화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화학과 명예교수이며, 국제순수-응용화학연맹(IUPAC) 전 회장이다. 저서로 [교실 밖 화학이야기]등이 있다. 한국과학상, 수당상 등을 수상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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