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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헌혈과 수혈 - 꺼져가는 생명을 살린다!!

minjpm 2010. 5. 7. 13:30

거리에서 혈액이 부족하니 피를 구한다는 홍보를 흔히 볼 수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내내 헌혈자를 구한다는 홍보를 볼 수 있으니,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피가 부족함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의학이 발전한다는 것은 과거에는 살려내지 못하던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하지만, 대신 남의 피가 몸에 들어옴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를 더 잘 알게 해 주기도 한다. 따라서 의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헌혈에 부적합한 피는 많아지고, 피만 있으면 살릴 수 있는 생명은 늘어나니 딜레마가 발생하는 것이다.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헌혈

사람의 힘으로 인공혈액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련만,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했다 해도 인공혈액을 상업화하기에 이르지는 못했으므로 수혈이 필요한 환자는 많아지고, 헌혈로 얻을 수 있는 피는 점점 부족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해결 방법은 단 하나, 헌혈자가 늘어나는 것뿐이다.

 

헌혈이란 멀쩡한 사람의 피를 뽑아내는 일이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피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혈관에 상처를 내야 한다. 상처가 생기면 그 부위로 질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이 침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혈관에 상처를 내서 피를 뽑아낸다는 것은 의학 상식으로 바라보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헌혈을 통해 얻은 피를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데 이용하기 때문에, 피를 뽑아내는 행동, 즉 헌혈자의 희생이 개인에게는 조금 고통이나 불편함을 줄 수 있지만, 인간 사회 전체로 보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된다.


헌혈을 통해 얻은 피는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데 사용된다.
그러므로 헌혈은 참으로 고귀한 행동이다.

 

 

두 달 간격으로 헌혈해도 무리가 가지 않는 건, 우리 몸의 조절 능력 때문

헌혈을 50회 또는 100회를 돌파하여 표창받은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매스컴에 가끔 등장하곤 한다. 이럴 때 쉽게 가질 수 있는 의문이 “저렇게 자주 피를 빼내더라도 몸에는 아무 탈이 없을까?”, “저런 분들은 얼마나 자주 헌혈을 할까?”라는 것이다. 헌혈관련 홍보물에서 ”몸에 아무 문제가 없고 건강한 분이라면, 두 달마다 한 번씩 해도 아무 문제 없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적혈구의 수명은 보통 120일 정도이다. 그러므로 무작위로 피를 빼내면 확률적으로 빠져나간 적혈구의 반은 60일 이내에 파괴될 것이지만, 나머지 반은 60일 이상 수명이 남아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헌혈 후 두 달이 지나는 경우 몸 밖으로 빠져나간 적혈구의 반만 회복될 뿐 나머지 반은 보충되지 못한 채 손실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두 달 만에 또 헌혈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몸의 조절 능력 때문이다. 사람의 몸에서 피가 부족해지면 자동으로 보상 과정이 발동되어 생산능력이 증가한다. 그러므로 헌혈을 하였을 때 회복속도가 빨라져 두 달 만에 또 헌혈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질병이 있거나 전염병 지역을 방문한 경우, 헌혈을 제한받을 수 있어

혹시 좋은 뜻으로 헌혈하러 들어갔다가 다음에 오라는 이야기를 들은 분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2007년 봄에 헌혈차에 올라 문진을 하는 과정에서 헌혈 부적합자로 판정되어 두 달 더 있다가 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문제가 된 것은 말라리아 만연지역을 방문한 지 일 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라리아 모기에 물렸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헌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일정기간이 지나 말라리아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난 후에는 헌혈을 할 수 있다.

 

 

말라리아는 모기가 사람을 물 때 모기의 침을 통해 들어온 유충이 적혈구에 기생하면서 자라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그러므로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의 피를 수혈하면 말라리아가 전파될 수 있다. 주로 적도지방에 있는 말라리아 만연국가를 방문하고 나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지 않은 분들은 물론이고, 90년대 중반 이후 휴전선 부근 지역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수시로 발견되는 까닭에 내국인들도 헌혈에 제한을 받는 경우가 있다.

 

영국 등 광우병 유행지역에서 거주했던 사람은 훨씬 더 오랫동안 헌혈을 할 수 없으며, 그 외에도 간염의 원인이 되는 B형과 C형 바이러스를 비롯하여 전염병 매개체가 발견되는 경우는 헌혈한 피를 수혈에 이용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의학지식이 많아질수록 헌혈에 부적합한 피가 많아지므로 헌혈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수혈에 의해 발생하는 사고, 자가수혈을 통해 부작용을 줄일 수 있어

1940년대, 영국의 로열 멜버른 병원에서 헌혈하는 모습. 영국은 역사적으로
수혈을 금하지 않아서, 헌혈과 수혈에 대한 역사가 다른 나라보다 깊다.


헌혈과 수혈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가끔 오염된 혈액을 수혈하는 바람에 질병이 옮겨진다는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좋은 뜻으로 헌혈한 피에 문제가 있다거나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혈을 했는데 다른 질병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는 피를 주는 이나 받는 이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혈액을 관리하시는 분들이야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겠지만, 피를 통해 옮겨지는 모든 문제를 원천적으로 예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피를 통해 전파되는 병원체는 그 수가 워낙 많으므로 다 검사하기는 불가능하고, 미생물이 아니더라도 질병의 원인이 되는 물질이 피 속에 포함될 수 있으므로 최대한 안전한 수혈을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절대로 안전한 피를 수혈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피를 사용할 수 있다. 응급으로 출혈이 생기면 시도할 수 없지만, 큰 수술을 받기 전에 미리 자신의 피를 준비해 놓았다가 수술 후에 자신의 피를 보충하는 것이다. 이를 자가수혈이라 하는데, 항상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므로 수혈이 필요한 경우에는 의료진과 상의하고 나서 시행한다면, 수혈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역사 속 수혈은 너무 비과학적이라서 황당하기만 하다

수혈의 가장 큰 위험은 전염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운반되어 전염병을 옮기는 것과 혈액형이 다른 피가 주입되어 혈액응집반응을 일으킴으로써 사망에 이르는 현상을 들 수가 있다.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이고, ABO식 혈액형이 발견된 것은 20세기가 시작된 후의 일이니 이런 개념이 없던 시절에 수혈한다는 것은 부작용이 사망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지만 호기심과 과감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은 함부로 피를 수혈하곤 했다. 15세기의 법황 이노센트(Innocent) 8세는 젊어지기 위해 소년(일부 기록에는 소녀)의 피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로 두 달 이상 더 살았으니 예상외로 수혈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로 말미암아 소년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1657년에 영국의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은 개의 정맥에 다른 동물의 피는 물론 맥주∙오줌∙침∙약물 등을 주입하여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1665년에 영국의 로우어(Richard Lower, 1631~1691)는 개에서 피를 빼내어 다른 개로 직접 혈액을 옮겨 주는 수혈실험을 했다. 1667년에는 프랑스의 데니스(Jean Baptiste Denis, 1643~1704)가 새끼 양의 피를 사람에게 수혈했고, 그로부터 수개월 후에는 로우어와 데니스가 양의 피를 사람에게 수혈했으나, 다음 해 수혈받은 사람이 죽는 바람에 프랑스 정부가 수혈을 금지하면서 더 이상 실험으로서의 수혈은 오랜 기간 시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수혈 후 죽은 사람의 사망원인은 그의 아내에 의한 독살이었다.


몸에서 나온 피는 쉽게 응고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기계적 받침대는
혈액 주머니를 교대로 기울이는 운동을 시켜줌으로써 혈액 주머니에 들어 있는 혈액응고방지제에 의해 혈액이 응고되지 않도록 한다.

 

 

수혈을 가능하게 한 두 사람

프랑스에서는 수혈이 계속 금지되었지만 영국에서는 금지하지 않고 있었다. 한 세기 반이 지난 1818년, 영국의 블런델(James Blundel, 1791~1878)은 출산 후 출혈이 생긴 산모를 살리기 위해 주사기로 사람의 피를 빼내고 나서 이 산모에게 주입했다. 다른 사람들의 실험을 자세히 검토한 그는 수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빼낸 피를 최대한 빨리 수혈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주사기를 사용하였다. 이때의 시도가 성공인지 아닌지는 불확실하지만, 1829년에 그는 피가 필요한 아내에게 남편의 피를 수혈함으로써 아내를 살려내어 역사상 최초로 사람끼리의 수혈에 성공한 의사로 남게 되었다.

 

몸 밖으로 나온 피는 응고되기 시작하므로 20세기에 들어와 항응고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수혈에 성공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블런델은 첫 성공 이후 사람에게 10회 이상 수혈을 시도하여 5회 이상 성공함으로써, 수혈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최초의 항응고제인 소듐 시트르산(sodium citrate)이 발견된 것은 1914년의 일이며, 이보다 앞선 1901년에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1868-1943)가 ABO식 혈액형을 발견함으로써 수혈의 성공률을 높여 주었다.

 

 

 

예병일
예병일 /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교육과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저서로는 [내 몸 안의 과학] [의학사의 숨은 이야기] [현대 의학, 그 위대한 도전의 역사] [의사를 꿈꾸는 어린이를 위한 놀라운 의학사] 등이 있다.[내 몸 안의 과학]은 교과부에서 2008년 상반기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되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medicine/2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