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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오페라 극장에 들어와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립니다. 자리에 앉아 프로그램 북을 뒤적이고 있는데, 조명이 어두워지자 어디선가 오케스트라 음악이 들려옵니다. 소리는 앞쪽에서 들려오는 게 분명한데 연주자들의 모습이 전혀 보이질 않네요. 무대와 객석 사이에 파인 지하 공간,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서 연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연주되는 곡이 바로 오페라의 서곡(Overture)입니다. ‘자, 이제부터 공연이 시작됩니다, 다들 집중해주세요’ 하고 관객의 주의를 일깨우는 음악이지요. 그런데 오페라 서곡이 연주되기 시작하면 ‘난 오페라를 보러왔는데 왜 오케스트라 음악만 들려오고 노래가 나오지 않는 거지?’ 하고 궁금해 하는 초심자 관객도 있다고 하네요. 서곡이 끝난 다음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성악가들이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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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마술피리] 서곡 / 제임스 레바인, 빈 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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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 – [빌헬름 텔] 서곡 / 유진 오먼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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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 [운명의 힘] 서곡 / 토스카니니,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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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 [로엔그린] 전주곡 / 볼데마르 넬슨,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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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03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 |
초창기 오페라의 성악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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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이란 하나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관현악 작품으로, 그 규모나 형식 면에서 교향곡의 1악장과 비슷합니다. 오페라, 발레, 연극, 무용조곡 같은 무대용 작품의 ‘막을 여는 음악’입니다. 서곡을 뜻하는 ‘우베르튀르(ouverture)’라는 프랑스 단어 자체에 ‘연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또는 칸타타나 오라토리오 등의 규모가 큰 성악곡에도 서곡이 쓰입니다. 그런가 하면 ‘연주회용 서곡’이라는 명칭으로 별도로 작곡된 곡들도 있죠. 이처럼 서곡은 그 쓰임새가 다양하지만, 오늘은 오페라 서곡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오페라의 탄생기인 16세기 말에는 공연 시작에 앞서 완결된 형태의 서곡 대신 성악 프롤로그나 짧은 서주를 연주했습니다. 초창기 오페라의 대표작인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는 30초가량의 짦은 토카타(Toccata)와 라 무지카(La Musica)의 성악 프롤로그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토카타란 ‘바흐의 토카타’ 같은 특정한 음악형식의 곡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금관악기로 연주하는 팡파르’를 뜻하며, 라 무지카는 ‘음악’을 의인화한 등장인물입니다. 17세기 바로크 오페라에는 본격적인 서곡 대신 신포니아라는 명칭의 짧은 관현악곡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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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개혁한 작곡가 글루크. 글루크는 오페라 내용을 서곡에 담아 서곡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였다. | |
프랑스 서곡과 이탈리아 서곡
17세기 중엽, 베네치아 악파는 처음으로 오페라에 서곡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2박자의 느린 부분과 3박자의 빠른 부분을 갖춘 2부 구조의 서곡이 차츰 이탈리아 오페라에 정착되었답니다. 이를 토대로 프랑스 작곡가 장 바티스트 륄리는 느린 부분에서 점음표(붓점이 붙은 음표)의 리듬을 사용하고 빠른 부분에서는 푸가 스타일의 모방양식을 사용해 프랑스풍 서곡을 만들어냈습니다. 세 부분으로 나뉘는 서곡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첫 부분의 장중한 스타일로 돌아가거나 미뉴엣 또는 가보트 같은 춤곡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 프랑스 서곡의 형식은 이후 관현악 모음곡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륄리의 오페라 [테세우스](1675년)의 서곡은 본격적인 오페라 서곡의 출발점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탈리아에서는 1680년경, 작곡가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가 빠른 부분-느린 부분-빠른 부분(알레그로-아다지오-알레그로)의 3부 구조로 이탈리아풍 서곡을 창시했는데요, 이 형식은 초기 교향곡 3악장 형식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양쪽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프랑스 서곡은 앞뒤가 느리고 중간 부분이 빠른 데 비해, 이탈리아 서곡은 앞뒤가 빠르고 중간 부분이 느립니다.
라이트모티프의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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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개혁한 고전주의 작곡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는 오페라 [알체스테](1767)에서 오페라 서곡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단순히 청중의 집중을 유도하는 이전의 기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서곡이 음악적 테마들을 통해 오페라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는 성격을 띠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오페라 서곡이란 당연히 이런 것이지만, 사실 그 전통은 바로크 시대가 다 지나가고 나서 글루크에 와서야 시작되었답니다.
이어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나 [마술피리] 등을 보면, 오페라에 사용한 선율의 주제들을 서곡에서 이미 맛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음악적 주제를 서곡에서 선보이는 방법은 특히 19세기 독일어권의 오페라에서 두드러집니다. 대표적인 예는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으로, 이 곡은 오페라의 주제가 되는 선악의 싸움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교회음악적인 장중한 선율로 순수하고 성스러운 세계를, 불안하고 극적인 음악으로 악의 유혹과 마법의 탄환 제조과정을 암시하고 있지요. 이런 암시의 모티프들을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유도동기)’라는 개념으로 확립한 리하르트 바그너는 베버의 오페라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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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서곡을 통해 오페라 주제 선율을 미리 선보인다. 그림은 [마탄의 사수] 한 장면을 그린 삽화. | |
전주곡 또는 짧은 도입부 - 서곡 양식의 변화
1800년경에 프랑스 서곡과 이탈리아 서곡의 경계는 허물어집니다. 이때부터 오페라 서곡은 소나타 형식을 따라 작곡되거나 오페라 전체의 주요 음악적 모티프들을 모아놓은 것이 됩니다. 후자는 표제음악의 성격에 접근하게 됩니다. 19세기 초 다니엘 오베르 등의 프랑스 작곡가들은 독일의 베버와 유사하게 오페라 음악의 핵심주제들을 모아 서곡을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서곡은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단순한 기능에 충실한 편이었습니다. 오페라 전체에서 어떤 음악적 주제들이 사용되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19세기 전반에 수많은 희극과 비극 또는 정가극(오페라 세리아)을 작곡한 로시니 그리고 도니체티의 서곡들을 들어보면 의아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음악이 오페라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로시니의 [세미라미데] 서곡,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 서곡 등은 오페라 내용이 상당히 비극적인데도 전체적으로 재기와 활력이 넘치는 화려한 음악입니다. 조성의 측면에서도 비극적인 분위기를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서곡은 형식 면에서 더 자유로운 전주곡(프렐류드)으로 바뀌는 경향을 보입니다. 서곡이 하나의 완결된 관현악곡으로 뚜렷한 종결부를 보이는 것에 비해, 전주곡의 마무리 부분은 대개 1막의 첫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바그너의 [로엔그린] 전주곡 또는 베르디의 [아이다] 전주곡도 비슷한 형태입니다. 베르디의 초기 작품 [나부코]에는 서곡이 붙어있지만 중기 작품인 [리골레토]나 [라 트라비아타]의 도입부는 비교적 길이가 짧은 전주곡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일 트로바토레]는 아예 전주곡도 없이 곧장 극으로 들어갑니다. 바그너는 [탄호이저]에서는 서곡을 사용했지만, [로엔그린]이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는 전주곡 형식으로 옮겨갔습니다. 현대로 접근할수록 전주곡의 생략은 두드러집니다. 푸치니의 [라 보엠], [토스카], [투란도트] 등은 모두 전주곡 없이 곧장 막이 열립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드뷔시, 브리튼 등의 주요 작품도 짧은 도입부를 거쳐 바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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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는 오페라 [아이다]에 서곡이 아닌 전주곡을 붙였다. 현대로 올수록 서곡, 전주곡의 생략이 두드러진다. 사진은 1908년의 [아이다] 공연 포스터
<출처: Kaldari at en.wikipedia.com>
모자라거나 지나친 서곡들
1817년 1월 24일,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는 그 다음날 로마 극장 무대에 올릴 오페라 [신데렐라 La Cenerentola]를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새 오페라의 막이 오르기 오래 전에 작곡이 끝나 있어야 정상이지만, 당시 인기 작곡가가 된 로시니는 늘 일에 떠밀려가며 살았고, 연말에 [오텔로]를 초연하자마자 뒤이어 [신데렐라]를 24일 만에 작곡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초연 날짜에 맞춰 오페라를 완성하지 못하면 엄청난 손해배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밤을 새가며 작곡을 했는데도, 초연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아직도 서곡이 빠져 있었습니다.
로시니는 왜 서곡부터 작곡하지 않았느냐고요? 그건 로시니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오페라 작곡가 대부분이 서곡은 마지막에 작곡하지요. 오페라 전체에서 사용했던 핵심 선율들을 뽑아 서곡을 조합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서곡을 만들지 못한 로시니는 어떻게 했냐고요? 한 해 전에 발표한 자기 오페라 [라 가체타]의 서곡을 슬쩍 갖다 썼습니다. 청중이 몰랐을까요? 녹음된 음반도 없던 시절인데도 기억력이 비상한 오페라 극장의 청중은 자기표절의 선수였던 로시니를 무척 욕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워낙 로시니의 음악이 큰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청중은 그를 용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곡 한 곡을 작곡해 오페라 세 편에 사용하는 일을 로시니는 결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일생 단 한 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베토벤은 로시니와는 정반대의 예입니다. 오페라 소재 고르는 데도 지나치게 결벽증이 있었던 베토벤은 자신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를 위해 서곡을 네 번이나 작곡했습니다. 결국 오늘날 공연 때도 피델리오 서곡과 레오노레 서곡이 함께 연주되곤 합니다. 로시니는 어차피 오페라 내용과 서곡은 별 관련이 없다고 믿었던 것이고, 베토벤은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여주인공의 심리상태를 ‘피델리오 서곡’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려 했던 것이겠지요. | |
- 글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2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