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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와 기악반주로 이루어집니다. 노래 중간에 연극처럼 대사가 나오는 징슈필(Singspiel) 같은 장르도 있지만,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솔로 악기나 오케스트라가 전주(前奏), 후주(後奏) 또는 반주를 맡게 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합창이나 중창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긴장하게 되는 대목이죠. 혹시 오케스트라가 실수로 반주를 빼먹은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오페라에도 무반주 합창, 그러니까 ‘아카펠라(a cappella)가 쓰이니까요. |
베르디의 [맥베스] 1막에서 덩컨 왕이 맥베스에게 살해당한 뒤 왕의 수행원들과 맥베스 성 안 사람들은 한자리에 모여 ‘지옥이여, 입을 벌려라(Schiudi, inferno, la bocca)’라는 장엄한 합창을 노래합니다. 처음에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반주로 시작하지만 ‘저희에게 진실을 알려 주소서’ 하며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부분은 반주 없는 아카펠라 합창으로 이어집니다.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4막에서 적의 포로가 된 연인 만리코를 구하러 온 여주인공 레오노라는 연인이 갇힌 탑 아래서 ‘가라, 서글픈 한숨이여, 사랑의 장밋빛 날개를 타고’라는 아리아를 부릅니다.
그 노래가 끝나자마자 ‘곧 이 세상을 떠날 영혼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Miserere...)’라고 기도하는 수도사들의 합창이 들려옵니다. 이 부분 역시 무반주로 부르는 아카펠라 합창입니다. 베르디의 [돈 카를로]에서 주인공 돈 카를로 왕자와 로드리고 후작이 영원한 우정을 맹세하는 이중창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Dio, che nell' alma infondere)’를 성당 안에서 부를 때도 중간에 수도사들이 입장하며 부르는 아카펠라 합창이 삽입됩니다. 이렇게 오페라에도 가끔 등장하는 아카펠라는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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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경 아카펠라로 노래하는 수도승들의 모습 | |
가장 아름다운 악기 - 사람의 목소리
이탈리아어로 ‘카펠라’는 원래 ‘소(小)성당’ 또는 ‘성당 안의 기도실’을 뜻합니다. 이탈리아의 큰 성당 안에 들어가면 전면에 제대가 있고 양쪽 옆으로 작은 방들이 있지요. 작은 제대와 성상(聖像)들이 있고 철문을 통해 안을 볼 수 있는 그 공간들을 카펠라라고 부릅니다(과거 이탈리아에서는 특정 귀족 가문들이 성당에 거액의 봉헌금을 바치고 그 대가로 성전 내부에 이런 가족 전용 기도실을 둘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카펠라는 ‘교회전례를 위한 합창단이나 성가대’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고, 후에는 교회전례의 합창이나 독창을 반주하는 오케스트라를 가리키는 단어로도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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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a)’는 이탈리아어의 ‘알라(alla)’와 같은 의미로, ‘~으로’ 또는 ‘~풍으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카펠라(a cappella)라는 말은 '성당 풍으로' 또는 ‘성가대 풍으로’라는 뜻이 되겠지요. 16세기 유럽의 교회와 성당에서 불렀던 악기 반주 없는 합창곡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무반주 합창곡들을 작곡했던 까닭은 악기의 소리를 배제하고 목소리만을 취해 신에 대한 찬미를 더욱 순수하고 경건하게 하려 했던 것이겠지요. 사람의 목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악기는 없으니까요. 100곡이 넘는 미사곡을 작곡했던 이탈리아 작곡가 조반니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1594)의 다성(폴리포니) 합창곡이 이 무반주 교회음악을 대표하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역시 수많은 미사곡과 모테트를 작곡했던 그레고리오 알레그리(Gregorio Allegri, 1582-1652)의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Miserere mei, Deus]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해마다 성주간에 성가대가 불렀던 대표적 5성부 아카펠라 합창곡입니다.
그러나 아카펠라라는 개념이 무조건 악기 반주를 뺀 합창으로 공인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1732년 요한 고트프리트 발터가 펴낸 음악사전에는 아카펠라의 뜻이 “성악 및 기악 성부가 동시에 같은 음을 연주하는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1851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출판된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에서는 “옛 교회음악에서, 성악부가 기악반주 없이 연주되거나 기악부가 성악부와 똑같은 선율과 리듬으로 반주하는 것”을 아카펠라라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다만 발터의 음악사전은 한 가지 예외를 설명합니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교황 미사곡을 연주할 때는 파이프 오르간이나 다른 어떤 악기도 사용하지 말고 목소리로만 노래하라는 지침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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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바티칸 성당 안의 ‘카펠라’ | |
사실 ‘아카펠라’라는 명칭이 나타난 것이 16세기경일 뿐, 이런 형태의 무반주 합창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세계 곳곳에 존재했습니다. 고대의 종교음악이나 여러 나라의 민속음악을 보면 알 수 있지요. 르네상스 시대의 세속 마드리갈도 아카펠라 형식을 취한 경우가 많습니다. 정통 아카펠라라고 할 때는 이처럼 교회음악으로 쓰인 무반주 합창곡들만을 가리킵니다. 과거의 음악학자들은 1600년 이전의 합창음악을 모두 아카펠라로 알고 있기도 했지만, 1600년 이전에도 합창에 반주악기가 비중을 차지했다는 사실이 최근의 연구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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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리 -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 루이자 켈리[소프라노], 케임브릿지 트리니티 칼리지 합창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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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 |
클래식 아카펠라와 대중음악의 아카펠라
그러나 오늘날 아카펠라의 영역은 상당히 확장되었습니다. 19세기부터는 교회음악이 아니더라도 악기 반주가 없는 합창곡은 다 아카펠라라고 부르고 있으니까요. 이런 의미의 변화가 생긴 것은 19세기에 옛 합창 음악들이 새롭게 발굴되고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였습니다. 합창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성악가들이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합창단들이 속속 생겨났는데, 바로 이런 이 비전문가 합창단을 ‘아카펠라’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했답니다. 어쨌든 이처럼 의미의 오해가 생기면서부터, 악기 반주가 없는 합창을 모두 아카펠라로 칭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 이후에도 클래식 음악에서 아카펠라라는 개념은 여전히 ‘무반주 합창음악’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16세기 또는 바로크 시대의 공연 관행을 연구하는 오늘날의 클래식 연주자들은 과거의 전통을 되살려, 아카펠라 합창 공연에 악기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아카펠라’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아마도 16~17세기의 팔레스트리나나 알레그리가 아닌 전혀 다른 이름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군요. 킹스 싱어즈(The King's Singers)나 리얼 그룹(The Real Group), 심지어는 동방신기 같은 이름 말입니다. 무반주 또는 최소한의 악기 반주로 화음을 이루어 노래하는 대중적인 보컬 앙상블의 음악 역시 아카펠라라고 부르니까요. 대중음악 분야의 아카펠라는 20세기 초부터 다양한 발전을 보였습니다. 1909년에는 미국에서 예일 위펜푸프스(The Yale Whiffenpoofs) 같은 보컬그룹이 탄생하면서 바버샵(Barbershop) 스타일이 생겨났고, 1927년에는 미국의 모델을 응용해 독일에서 ‘코미디언 하모니스트’ 그룹이 만들어졌습니다. 1950년대에는 아카펠라 음악이 두왑(Doo Wop) 을 도입해 더욱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답니다.
오늘날 대중음악의 아카펠라는 더 이상 합창의 개념이 아니고, 대개 4~6명으로 구성된 앙상블의 중창을 의미합니다. 남성 그룹이 압도적으로 많고 혼성 그룹이 더러 있지만, 여성 그룹(Aquabella, Mediz, Niniwe 등)은 드문 편입니다. 이런 그룹들은 팝이나 록 음악 가운데 유명한 곡들을 아카펠라 버전으로 편곡해 부르기도 하고, 아카펠라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곡들을 작곡해 부르기도 하지요. 그룹 구성원 각자가 비슷한 비중으로 텍스트와 멜로디를 나누어 소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리드 보컬을 맡고 나머지 구성원은 ‘둠둠둠~ 두비두비둠~’ 하는 식으로 코러스를 넣는 경우도 많습니다. 각각의 목소리가 특정 악기소리를 내기도 하는데요, 특히 드럼 소리를 내는 목소리가 인기를 끕니다. 요약해보면, 아카펠라는 16세기, 19세기, 20세기를 거쳐 오면서 몇 차례 의미의 변화를 겪었죠? 어쨌든 크게 보면, 악기 반주가 없거나 최소한의 반주가 딸린 중창 또는 합창음악을 가리키는 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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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버샵 하모니(Barbershop Harmony)
20세기 초 미국 이발소는 일종의 클럽 같은 분위기로 사람들이 모여 합창과 합주를 했고, 그로부터 ‘바버샵 하모니’라는 경음악 용어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태어난 화성이 후에 흑인영가나 재즈에도 도입되었다.
- 두왑(Doo Wop)
리듬 앤 블루스(R&B)의 일종. 솔로 싱어가 노래하는 배경에 허밍 풍으로 리드미컬한 코러스를 깔아주는 합창
- 글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음원 제공 소니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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