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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생상스 - 동물의 사육제

minjpm 2010. 7. 1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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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말에 따르면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듯이 운명처럼 작품을 썼다.”고 하는 카미유 생상스(‘생상’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은데, 작곡가의 후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생상스’로 부르는 게 맞다고 한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즉흥 연주의 대가였고 리스트로부터는 ‘세계 최고의 오르간 주자’라는 찬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작가이자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으며 자연과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베를리오즈는 약간 비꼬는 투로 “생상스는 모든 분야에 뛰어나지만 미경험(未經驗)에 대해서만은 부족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그러나 ‘오늘날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하나’라고 극찬한 적도 있다), 그의 왕성한 탐구심과 근면함(그는 죽기 바로 전날까지도 작곡을 했다)은 여러 장르에 걸쳐 많은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no 아티스트/연주  
1 1곡 서주와 사자왕의 행진 / 필립 앙트르몽[피아노, 지휘] 가비 카자드쉬[피아노], 요요마[첼로] 외 듣기
2 7곡 수족관 듣기
3 10곡 큰 새장 듣기
4 12곡 화석 듣기
5 13곡 백조 듣기
6 14곡 피날레 듣기

7월 15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그의 작품 세계는 크게 바그너와 리스트에 대한 경모(오페라 중 일부와 몇몇 교향시)와 엄격한 형식미를 지닌 고전주의적 작풍이라는, 어느 정도는 모순돼 보이는 두 가지 경향으로 크게 나뉘지만 여기서 소개할 [동물의 사육제]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그 사이에 놓인 유쾌한 막간 정도로 볼 수 있다.

 

 

 

다재다능한 작곡가의 재치와 익살

생상스가 이 곡을 작곡한 것은 1886년의 일로, 당시 그는 쉰한 살이었다. 사실 이 해는 작곡가 입장에서는 [동물의 사육제]보다도 [오르간 교향곡]을 작곡한 해로 기억할 법하다. 웅대한 악상과 놀라울 정도로 치밀한 짜임새를 지닌 대작 교향곡과 이 아기자기하고 기지에 넘친 소품집이 한 해에 나란히 작곡되었다는 사실은 뭔가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이 곡에는 ‘두 대의 피아노,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플루트, 클라리넷, 하모니움(소형 오르간의 일종. 풍금을 생각하면 된다), 실로폰, 첼레스타를 위한 동물학적 환상곡’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여기서 ‘동물학적’이라는 단어는 물론 각 곡이 특정 동물을 묘사한 것임을 암시하지만, 굳이 이런 표현을 쓴 것 자체가 일종의 익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슬쩍 암시된 기지와 해학은 작곡가가 각 곡에서 악기나 악상을 취급하는 방식에서 훨씬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는 각 곡에 대한 설명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이 작품집을 구성하는 열네 곡 가운데 작곡가가 생전에 출판을 허락한 것은 열세 번째 곡인 ‘백조’ 단 하나뿐이다. 그가 왜 이 작품집에 이렇듯 냉담한 반응을 보였는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사육제란 매년 2월 중,하순경에 열리는 대중적 축제다.
생상스는 사육제의 흥겨운 축제에서 [동물의 사육제] 영감을 얻었다. <출처 : NGD>

 

우선 생상스는 자신이 ‘진지한’ 작곡가로 여겨지길 바랐고 이 작품집에서 보여준 것처럼 소탈하고 격의없는 모습을 대중 앞에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이 곡을 사적인 유흥거리로 여겼으며, 무엇보다도 이 곡의 풍자적인 성격이 논란거리가 되는 것을 꺼렸다. 결국 이 곡은 작곡가 사후에야 전곡이 출판되었다.

 

제1곡 ‘서주와 사자왕의 행진’

두 대의 피아노와 현악 5부 편성. 서주에서 피아노의 부산한 연타와 저음현의 위협적인 연주가 크레셴도로 연주된 다음, 피아노가 당당한 행진곡 리듬을 연주하는 가운데 여섯 번째 마디부터 등장하는 묵직한 현악 합주가 사자왕의 등장을 알린다. 이 주제는 위엄을 띠고 있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럽다. 행진곡 리듬의 간주 뒤에 주제가 세 번 반복되면서 셋잇단음 음형이 출현하는데 이것은 사자왕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이다. 이윽고 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반음계의 움직임으로 변하여 위압감을 더해 간다.

 

제2곡 ‘암탉과 수탉’
클라리넷과 두 대의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등으로 편성. 전체 서른다섯 마디에 불과한 소품이다. 이 곡은 18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작곡가였던 라모의 [암탉]의 영향을 강하게 보여준다(생상스보다 거의 50년 뒤에 태어난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가 쓴 모음곡 [새] 중 세 번째 곡도 라모를 본뜬 것이다). 피아노가 수탉을, 클라리넷이 암탉을 묘사하고 있으며 두 마리가 홰를 치며 다투는 듯한 분위기가 잘 살려져 있다.


사자왕의 주제는 위엄 넘치는 행진곡이며 우스꽝스런 기교에서 생상스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출처 : NGD>

 

제3곡 ‘당나귀’
두 대의 피아노로만 연주된다. 여기서 말하는 당나귀는 아시아산 야생 당나귀를 가리키는데, 길들여지지 않은 당나귀의 분방한 움직임이 16분음표만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무궁동풍 악상으로 묘사되었다(‘무궁동’이란 8분음표나 16분음표, 32분음표 등 짧은 음표로 이루어진 선율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느낌을 주는 화려하고 짧은 곡을 가리킨다). 현란한 기교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던 당대의 피아니스트들을 조롱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제4곡 ‘거북이’
1피아노와 현악 5부 편성. 겨우 스물두 마디짜리 소품이다. 시종일관 지속되는 피아노의 약한 셋잇단음표 리듬이 거북의 느린 걸음을 표현하는 가운데 셋째마디부터는 현악기군이 거북의 굼뜨고 태평스런 움직임을 연상케 하는 선율을 연주한다. 이것은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에서 인용한 캉캉 선율로, 원래는 눈이 돌아갈 만큼 빠른 곡이다. 이런 곡을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연주함으로써 색다른 느낌을 자아냈다는 데 생상스의 재치가 엿보인다.

 

5곡 ‘코끼리’
2피아노와 더블베이스로 편성. 거대한 코끼리가 왈츠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이 곡 역시 패러디를 사용하고 있다. 더블베이스가 연주하는 선율은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천벌] 중 ‘바람 요정의 춤’을 비틀어 인용한 것이다. 베를리오즈의 조롱에 대한 나름의 응수였던 것일까?
 
제6곡 ‘캥거루’
두 대의 피아노로만 연주되며, 전체 열아홉 마디이다. 독특한 리듬이 뒷다리로 뛰어다니는 캥거루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으며, 템포와 강약의 변화과 4박자와 3박자의 절묘한 교차가 이 효과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제7곡 ‘수족관’
플루트, 하모니움, 두 대의 피아노, 첼레스타, 현악 4부 편성.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나긋나긋한 움직임이 첼레스타의 영롱한 선율로 묘사된다.

 

첼레스타의 환상적인 음향이 돋보이는 제7곡 수족관
<출처: Zac Wolf at en.wikipedia.com>

 

 

제8곡 ‘귀가 긴 등장인물’
두 대의 바이올린으로 연주한다. 전체 스물여섯 마디이며 템포는 자유롭다. 매우 단순하며 서로 겹치지 않는 두 음형이 고음역과 저음역으로 나뉘어 연주된다. 여기서 말하는 등장인물이란 당나귀(이번에는 집당나귀) 혹은 수탕나귀와 암말의 잡종인 노새를 가리킨다. 원래 이들 동물은 우둔하고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곡 역시 일종의 풍자 내지는 조롱이라고 볼 수 있다.

 

제9곡 ‘숲 속의 뻐꾸기’
두 대의 피아노와 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 피아노의 단순한 화음이 숲의 적막함을 표현하는 가운데 클라리넷이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흉내낸다.

 

제10곡 ‘큰 새장’
플루트와 두 대의 피아노, 현악 5부 편성. 플루트 주자에게 대단히 뛰어난 기량을 요구하는 곡이다. 도입부의 트레몰로가 새들의 날개짓을 묘사한 뒤, 이어지는 고음 선율이 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다. 새들이 지저귀는 모습이나 다른 새의 등장도 암시하면서 화려하게 전개된다. 큰 새장 속에서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을 공간적으로 잘 묘사한 곡이다.

 

제11곡 ‘피아니스트’
두 대의 피아노와 현악 5부. 생상스는 이 곡에 대해 ‘연주자는 초보자가 치는 모양과 그 어색함을 흉내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 피아니스트는 [동물의 사육제]에 등장하는 유일한 인간이지만, 어쨌든 인간도 동물이라면 동물이다.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주 어렸을 때 연습했을 쉬운 음계를 첫머리 부분만 고집스럽게 연주하고 있다.

 

제12곡 ‘화석’
클라리넷과 실로폰, 두 대의 피아노, 현악 5부 편성이다. 전곡 가운데 마디 수로는 ‘피날레’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곡으로, 전곡 가운데 가장 인용이 풍부한 곡이기도 하다. 처음에 실로폰이 연주하는 주제는 생상스 자신이 쓴 교향시 [죽음의 무도]의 주요 주제이며, 계속해서 프랑스 동요 ‘난 좋은 담배를 갖고 있다네’,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모차르트의 변주곡으로 유명하며, 우리나라에는 [반짝반짝 작은 별]로 알려져 있다)를 비롯해 여러 노래가 차례로 인용된다. [죽음의 무도] 주제로 되돌아온 뒤에는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로지나가 부르는 아리아 선율이 등장한다.

 

‘백조’는 [동물의 사육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백조의 우아함을 첼로로 표현했다. <출처 : NGD>

 

 

제13곡 ‘백조’
첼로와 2대의 피아노. 여기서는 앞의 두 곡과는 달리 풍자적인 느낌이 전혀 없고 고전적인 우아함이 넘친다. 앞서 밝혔듯이 전곡 가운데 생상스가 생전에 출판을 허락한 유일한 곡이기도 하다. 빼어난 선율미 때문에 다른 편성으로 편곡해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제14곡 ‘피날레’
플루트, 클라리넷, 하모니움, 실로폰, 두 대의 피아노, 현악 5부 편성으로, 지금까지 사용된 악기 거의 전부가 등장한다. 피아노와 현이 연주했던 서주 악상이 다시 등장한 뒤, 클라리넷이 가볍고 재치 있는 주제를 연주하는데 이것은 오펜바흐 [천국과 지옥]의 피날레 선율이기도 하다. 이어 당나귀, 암탉, 캥거루, 노새 등 지금까지 등장했던 동물 대부분이 연이어 모습을 보이면서 떠들썩하게 전곡을 마무리한다.

 

 

 

음악으로 구현한 사육제의 정신


생상스가 이 곡에 ‘사육제’라는 명칭을 붙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표면적으로는 작곡가가 연주 여행 중에 오스트리아의 어느 시골에서 사육제 행렬을 목격한 데서 이 곡의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겠지만, 사육제란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 축제인가를 모른다면 쉽게 대답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사육제 carnival란 가톨릭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에서 매년 2월 중․하순경에 열리는 대중적 축제를 가리킨다. 엄격히 말하면 공현절(1월 6일. 개신교에서는 주현절이라고 부른다)부터 이른바 ‘기름진 화요일 Mardi gras’까지의 기간을 의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의미가 약간 바뀌어 기간 자체보다는 이 기간에 열리는 다양한 행사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 행사의 내용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일상에서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탈선이 상당한 수준까지 허용된다는 점은 언제나 같다. 즉 사육제를 지배하는 정신은 ‘일체의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라 할 수 있다. 아마 생상스가 이 제목에서, 그리고 이 곡 자체에서 드러내고자 한 것 또한 엄격한 구성이나 형식미와는 무관하게 그저 웃고 즐길 수 있는 소탈한 자유분방함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곡을 들을 때는 귀에 쌍심지를 켜기보다는 다른 어느 곡보다도 더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듣는 것이 오히려 작품과 작곡가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행동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추천음반
사실 [동물의 사육제]에서 굳이 ‘명반’을 논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작곡가 자신부터가 사적인 유흥을 위해 쓴 곡이니 연주에는 대체 어느 정도의 진지함과 치열함을 기대해야 할 것인가. 그럼에도 좋은 연주와 그렇지 않은 연주를 구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생상스가 곡에 부여한 흥겨움과 재치를 얼마나 잘 살려냈느냐를 기준으로 말이다. 이런 기준대로라면, 마르타 아르헤리치/넬손 프레이르/기돈 크레머/미샤 마이스키 등으로 이루어진 올스타팀의 1985년 녹음(Philips/DG)은 빼놓을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모든 연주자가 더할 나위 없이 휘황찬란한 연주를 들려준다. 어쩌면 카퓌송 형제와 에마뉘엘 파위 등이 참여한 녹음(Virgin)이 유쾌함이라는 측면에서 더 앞설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 곡에서는 해설이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연주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음반에 해설이 곁들여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녹음 가운데서는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와 해설을 겸한 뉴욕 필하모닉의 1962년 녹음(Sony)이 단연 최상의 선택이 될 것이다. 멋진 목소리와 재치 있는 해설, 흥겨운 연주가 어우러진 녹음이다. 또 켄트 나가노/리옹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1993년 녹음(Erato)은 해설을 맡아 참여한 조수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색다른 장점이 있다.

 

 

 

황진규
황진규 /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콰이어 앤 오르간>, <코다>, <라 무지카> 등 여러 잡지에 리뷰와 평론, 번역을 기고해 온 음악 칼럼니스트이다.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며, 지휘자 가운데서는 귄터 반트를 특히 존경한다.

음원 제공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3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