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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피아노라는 악기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의 유명세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초연된 지도 어느 새 150년을 바라보고 있지만, 작품에 대한 애정과 유명세는 점점 더 증폭되어왔지 단 한 번도 줄어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의 이 대곡은 ‘피아니스트’라면 응당 연주할 수 있고, 연주해야만 하며, 이 곡을 통해 비로소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을 정도로 프로 연주자로서의 가능성과 예술성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차이콥스키는 총 세 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지만 이 가운데 1번 협주곡만이 유독 유명하다. 흥분에 들뜬 회상이든, 괴롭고 즐거운 기억에 대한 체념이든 간에 이 곡의 가장 큰 주제는 ‘향수’다. 이 ‘향수’가 바로 러시아 낭만주의를 지탱하는 뿌리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다른 작품에서도 항상 느껴왔듯이, 러시아인이라면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는 능력이 바로 절망 속에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무엇인가를 뽑아내는 능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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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알레그로 논 트로포 에 몰토 마에스토소 / 에밀 길렐스[피아노], 주빈 메타, 뉴욕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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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악장 안단티노 셈플리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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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장 알레그로 콘 푸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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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 |
피아니스트들의 시작이자 끝인 거대한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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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는 절망과 불행한 상황 속에서 이 곡의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엔 감동적이고 성공적인 작품으로 발전되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러시아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철인 3종경기에 맞먹을 만한 강인한 지구력과 원자폭탄과 같은 폭발력, 목가적이고 가요적인 정서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러시아적인 멜랑콜리가 이 곡의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피아니스트의 마법적인 음색과 초인적 비르투오시티를 갖추고 있지 않으면 이 작품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한 만큼 이 곡은 음반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발매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일반적인 경우 다른 음반사나 자사의 레퍼토리와 겹치는 경우 레코딩을 회피하곤 했지만,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상업적 비즈니스의 이해관계와는 상관없이 한 번 이상은 반드시 녹음해야만 할 정도로 융숭한 대접(물론 슈나벨이나 폴리니, 브렌델과 같은 예외의 경우도 있지만)을 받고 있다. CD로 발매된 종류만 해도 무려 150종이 넘는 음반이 발매되었으니(복각되지 않은 LP시대의 녹음까지 합하면 더 많을 듯하다), 단연 최고의 베스트셀러 레퍼토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레코딩이 발명된 이후 셀락이나 왁스를 재료로 한 디스크들이 상업적으로 널리 판매되기 시작했던 1920년대부터 이 작품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전기녹음이 도입되기 이전인 1925년까지는 녹음 기술에 문제가 많았으나 피아니스트 빌헬름 박하우스(Wilhelm Backhaus)가 어쿠스틱 레코딩을 1921년과 1922년에 각각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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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는 러시아적 흙냄새와 호방한 사운드를 조합해 [피아노 협주곡 1번]이라는 걸작을 남겼다. <출처 : Tschaikowski en.wikipedia> | |
그러나 레코딩 테크놀로지의 한계상 이 녹음과 작품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전기녹음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마크 함부르크(Mark Hambourg)의 녹음이 등장했고, 비로소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레코드 필청 레퍼토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함부르크는 리스트와 더불어 19세기 피아노 교육의 양대산맥이었던 레셰티츠키의 제자였다. 그는 러시아 출신다운 화려한 테크닉과 탁월한 힘, 빼어난 지구력을 자랑하는 피아니스트였다. 1926년 함부르크는 HMV 음반사에서 로얄 알버트 홀 오케스트라와 랜던 로날드의 지휘로 지금의 버짓 프라이스에 해당하는 ‘블랙 라벨’로 음반을 녹음했고, 이 음반은 삽시간에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현재 일본 Greendoor 레이블로 발매되어 비교적 어렵지 않게 감상해볼 수 있는데, 극심한 루바토와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불을 뿜는 듯한 테크닉,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터치, 안정된 호흡으로 훌륭한 비르투오시티의 정석을 들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크 함부르크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러시아 낭만주의 시대의 열정과 온기를 고스란히 전달해 주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 전설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등장하고 나서야 차이콥스키의 이 괴물같은 대곡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불멸의 지위를 얻게 된다.
구제불능의 2류 작품이라는 혹평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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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의 얼룩진 삶에 끈질기게 실처럼 따라다녔던 것은 신경쇠약 증세였다. 성공보다는 실패에 더 민감했던 차이콥스키는 그가 음악의 구세주라고 생각했던 모차르트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형식미와 구성력의 부족함을 특히 한탄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항상 비판하고 회의했던 그는 이 [피아노 협주곡 1번]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의 스승이자 당시 러시아 피아니즘의 대부로 손꼽히던 니콜라이 루빈스타인(Nikolay Rubinst ein)에게 이 작품을 보냈고 그의 의견을 기다렸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루빈스타인은 이 작품을 엉뚱하고 기괴하며 거북스럽기 그지 없는, 한마디로 구제불능의 곡이라고 신랄한 평을 서슴치 않았다. 문제는 연주하기에 너무 어렵고 악정들은 너무 잘게 조각 나 있으며 서투르게 취급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이런 2류 작품은 반드시 대대적으로 수정을 해야만 자신이 연주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차이콥스키가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쓴 편지에 대체적으로 정확하게 적혀 있다.
격분한 차이콥스키는 독일의 명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low)에게 이 작품을 헌정했다.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했던 뷜로는 이 곡을 미국 연주회 도중 1875년 10월 25일 벤저민 존슨 랑의 지휘와 함께 보스턴에서 초연했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같은 해 모스크바에서도 연주해 호평을 받게 되었다. 결국 3년 뒤에는 루빈스타인이 직접 화해를 구하게 되었고 두 사람의 우정은 다시 회복되었다고 한다.
이후 차이콥스키는 이 작품에 수정을 가하여 모스크바의 유르겐슨 출판사를 통해 세 개의 판본을 발표했다. 첫 번째는 1875년에 완성한 ‘오케스트라 반주의, 혹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고, 두 번째는 1879년 9월 개정된 판본, 마지막 세 번째는 1889~90년에 개정된 판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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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독일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에게 헌정되었고, 뷜러는 이 작품을 초연했다. <출처 : Tschaikowski en.wikipedia> | |
차이콥스키는 분명 루빈스타인의 비평에 “나는 음표 하나라도 고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시간이 지난 뒤 결국 고치고야 말았다. 차이콥스키는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는 귀를 기울였지만, 이 작품을 최초로 본 루빈스타인의 비판은 무시했다. “진정 하나의 진주와 같은 작품”이라고 극찬한 초연자 뷜로가 어떤 조언을 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1876년 런던 초연의 협연자로 나선 에드워드 댄로이터(Edward Dannreuther)의 수정이 두 번째 판본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댄로이터는 초연 당시 프로그램 노트에 해설을 쓰기도 했다. 1969년 발견된 댄로이터의 가필 판본은 그의 수정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음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특히 차이콥스키는 1876년 댄로이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현명하고 실제적인 제안들’에 감사를 표했고, 재출판될 경우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썼다. 차이콥스키는 루빈스타인의 감정에 찬 비판은 거부한 채, 댄로이터의 건설적인 제안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피아노를 용광로 속으로 밀어넣는 듯한 장대한 스펙터클
최종본에서 가장 창조적인 변화는 바로 1악장 도입부 4분의 3 지점에서 폭발하는 거대하고 자유롭게 낙하하는 ‘화음의 폭포’다. 이는 두 번째 판본까지는 등장하지 않던 대목이다. 이는 리스트의 제자이자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알렉산더 질로티(Alexander Siloti)의 조언이 적극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이 추가된 장대한 화음의 클러스터와 조성은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의 스타일과 비슷한 만큼, 차이콥스키와 막역한 사이였던 질로티의 영향을 배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최종본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피날레 악장의 두 번째 주제인 그란드 몰토 메노 모소(grand molto meno mosso)의 비상하는 에피소드에 앞서 등장하는 두 마디의 이중 옥타브들이다. 첫 번째, 두 번째 판본에서는 이 부분들이 같은 음역대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세 번째 판본에서는 안톤 루빈스타인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의 피날레의 예를 따르면서, 전체적으로 페달을 사용해 피아노를 들끓는 듯한 용광로 속으로 밀어넣는 위험한 효과로 변화시킨 것이다. 이 외에도 차이콥스키가 질로티와 주고받은 편지를 통해 이 최종본의 몇몇 부분을 수정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악장 - 알레그로 논 트로포 에 몰토 마에스토소 웅장하고 풍부한 색채로 시작하는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조성과 전개가 자유로운 편이다. 오히려 환상곡적인 느낌까지는 이 1악장은 오케스트라의 강렬함과 화려하고 육중한 피아노가 서로 대결하는 듯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특징으로서, 장대한 1주제와 낭만적인 2주제의 뚜렷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2악장 - 안단티노 셈플리체 느린 안단테 악장과 스케르초 악장을 뒤섞어놓은 듯한 혁신적인 악장.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잠이 드는 아기의 평온함으로 시작하여, 프레스티시모로 질주하는 환상 속의 동화를 꿈꾸다가 첫 자장가로 돌아오는 모습은 지극히 전원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을 연상시킨다.
3악장 - 알레그로 콘 푸코 피아노 협주곡 역사상 가장 맹렬하고 장대하며 스펙타클한 악장으로 손꼽힌다. 오케스트라의 네 마디 서주 후부터 펼쳐지는 피아노의 굵고 거친 슬라브 무곡풍의 론도 주제와 이어지는 간결한 가요적인 부주제가 잇달아 펼쳐지며 서정과 기교의 긴박감 넘치는 조화와 대비를 이룬다. 특히 마지막 피아노 코다 부분에서의 빠르고 강렬하며 비르투오시티 넘치는 옥타브와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총주의 터질 듯 벅차오르는 사운드는 러시아의 호방함과 저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추천음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장인인 아르투르 토스카니니의 협연에서 느껴지는 힘과 초절기교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강력한 에너지와 흡인력을 담고 있다. 이들은 두 번의 녹음을 남겼는데 1943년 라이브 녹음(RCA)이 가장 대표적인 녹음으로서, 호로비츠의 강력한 힘과 마법적인 색채의 향연,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테크닉과 지구력, 다이내믹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키릴 콘드라신의 협연(Philips)도 실황 특유의 열기에 힘입어 호로비츠에 비견할 만한 스피드와 공격적인 성향이 인상적이다.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연주(EMI)는 협주곡으로서의 고전주의적 견고함과 음표 그 자체에의 몰입이 강렬함을 발산하는 명연으로 손꼽히며, 에밀 길렐스와 주빈 메타와의 실황(SONY)은 길렐스의 여러 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녹음 가운데 가장 시원하고 정력적이며 음질 또한 훌륭하다 | |
- 글 박제성 / 음악 칼럼니스트,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 역자
-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 방송, 저널활동, 음반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3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