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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가 계속 목청을 높여 노래할 때면 저러다가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서 너무 걱정돼요.” 클래식 음악의 성악 발성에 익숙지 않은 오페라 관객이나 음반 청취자들은 가끔 이런 우려 섞인 감상을 털어놓곤 합니다. 보통 투란도트나 비올레타([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역을 맡은 소프라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난 후의 반응이지요. 하지만,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소프라노 가수가 노래를 부르다가 목소리가 꺾여 노래를 중단하는 사고는 있어도, 숨이 막혀 죽는 일은 없으니까요.
오페라의 가장 높은 목소리 - 소프라노
남성과 여성의 모든 음역 중 가장 높은 음역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소프라노(soprano)’는 소프라(sopra. 위 또는 ~위에)라는 부사이자 전치사에서 비롯되어 1400년경에 처음 쓰인 용어입니다.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디스칸투스(discantus)라는 라틴어 명칭이 주로 쓰이다가, 17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성악에서 ‘소프라노’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오랫동안 트레블(trebl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라틴어로는 'suprema vox'라고 하며, 어느 경우든 ‘가장 높은 목소리’라는 뜻입니다.
오페라에서 소프라노는 가장 돋보이는 음역이죠. 메조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베이스가 다 함께 중창을 노래할 때나 합창단까지 가세해 커다란 음량을 만들어낼 때도 소프라노의 고음은 모두의 노랫소리를 뚫고 날카롭게 솟아오르니까요. (베르디의 [맥베스]나 [아이다]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소리만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외모나 의상도 단연 눈에 띕니다. 주역을 맡는 소프라노 가수를 보통 프리마돈나(prima donna)라고 부르는데요, 프리마는 ‘첫째’, 돈나는 ‘여성’이라는 뜻이니 모든 등장인물 가운데 첫손 꼽히는 여주인공이라는 뜻이 되겠지요.
소프라노의 ‘테시투라(tessitura. 무리 없이 편안하게 낼 수 있는 음역)’는 합창 음악의 경우 ‘가운데 도(C4)’부터 ‘한 옥타브 지난 다음의 라(A5)’, 오페라 전문가수의 경우 ‘가운데 도(C4)’부터 ‘두 옥타브 위의 도(C6)’ 정도로 보고 있으며, 오페라 가수 중에는 위와 아래로 두 음 정도를 더 내리거나 높일 수 있는 예외도 있습니다. 가운데 도부터 시작해서 도-레-미-파-솔-라-시-도...로 올라가면서 자신의 음역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해 볼 수도 있겠지요? (숫자는 옥타브 수를 가리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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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는 성악에서 가장 높은 음역으로, 오페라 무대에서는 돋보이는 소리뿐 아니라 눈에 띄는 외모와 의상으로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다. | |
음색과 배역에 따라 구분되는 소프라노의 유형
오페라는 희극보다 비극이 훨씬 많고, 바리톤이나 메조소프라노가 주인공 역을 맡기도 하는 희극과는 달리 비극의 주인공은 십중팔구 ‘청순가련형’의 소프라노입니다. 목소리가 높고 가늘고 맑을수록 순수하고 여성적인 인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프라노 가수라고 해서 모두 ‘꾀꼬리 같은’ 또는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듯한’ 음색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오페라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성의 유형이 등장하기 때문에 한 가지 음색으로 그 많은 주인공들의 성격을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음색에 따라 소프라노는 그 유형이 다양하게 나뉘는데요, 여러 가지 분류가 있지만 크게 나누면 우선 19세기의 분류에 따라 리리코, 드라마티코, 콜로라투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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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리리코 / [라 보엠] 미미 - 내 이름은 미미 Mi chiamano Mim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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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드라마티코 /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졸데 - 부드럽고 온화하게 Mild und lei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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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콜로라투라 / [마술피리] 밤의 여왕 - 지옥의 복수가 내 맘을 불타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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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 |
1. 소프라노 리리코 (soprano lirico)
소프라노 가수들 중 가장 많은 수가 소프라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리리코(리릭 소프라노)’에 해당합니다. 부드럽고 서정적이며 밝은 음색을 지닌 청아한 소프라노죠. 리리코의 대표적인 배역은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파미나, 푸치니 [라 보엠]의 미미, 비제 [카르멘]의 미카엘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여주인공 소피 등입니다.
2. 소프라노 드라마티코 (soprano drammatico)
열정, 분노, 절망 같은 다양하고 폭넓은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약간 무겁고 어두운 빛깔의 목소리입니다. 보통 ‘드라마틱 소프라노’라고 부르며 리리코에 비하면 수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베토벤 [피델리오]의 레오노레, 베르디 [아이다]의 여주인공, [맥베스]의 레이디 맥베스,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졸데, [발퀴레]의 브륀힐데, 푸치니 [투란도트]의 투란도트 등에게 필요한 음성입니다.
3. 소프라노 콜로라투라 (soprano coloratura)
‘콜로라투라’란 ‘채색한’, ‘색을 입힌’이라는 뜻입니다. 복잡한 장식음을 정확한 기교로 소화해내는 화려한 음색의 소프라노를 말하죠. 이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는 다시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와 ‘드라마틱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나뉩니다. 일반적으로 희극적인 배역에는 ‘리릭 콜로라투라’(오펜바흐의 [호프만 이야기]에 나오는 기계인형 올림피아,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중 체르비네타,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 역 등),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배역에는 ‘드라마틱 콜로라투라’(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 베르디 [나부코]의 아비가일레 역 등)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희극와 비극을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고 ‘밤의 여왕’ 역을 ‘드라마틱 콜로라투라’, 루치아 역을 '리릭 콜로라투라'로 분류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 |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는 현란한 기교와 음색으로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을 노래하는 ‘드라마틱 콜로라투라’의 대표적인 예다.
성악가는 배역에 따라 여러 유형의 소프라노를 소화
이 밖에도 다음과 같이 좀 더 세분화된 분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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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브레트 / [돈 조반니] 체를리나 - Batti, batti, o bel Maset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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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리리코 스핀토 / [토스카] 토스카 -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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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 |
1. 수브레트 (soubrette)
원래는 프랑스어로 ‘하녀’를 가리키는 단어였지만 현재는 극장용어(공연 관련용어)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17-18세기 연극이나 희극 오페라에서 크게 인기를 끌게 된 하녀 역에 어울리는 음색으로, 명랑하고 짓궂으며 재치가 넘치는 성격을 나타냅니다. 오페라에서 이 배역은 고귀한 신분을 지닌 여주인공(대개 청아한 리릭 소프라노) 역과 대조를 이루는 역할로 나타납니다. ‘소프라노 콜로라투라’와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수브레트는 콜로라투라보다 음색이 더 가볍고 음량이 더 작은 편입니다. 음역 면에서도 콜로라투라가 ‘파(F6)’까지 올라가는 데 비해 수브레트는 ‘도(C6)’까지로 충분합니다.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코지 판 투테]의 데스피나, [돈 조반니]의 체를리나, 베버 [마탄의 사수]의 엔혠 등 하녀 주인공이나 여주인공의 친구 역할인 경우가 많고, 요한 수트라우스 [박쥐]의 아델레 등 오페레타 여주인공도 수브레트가 많습니다.
2. 소프라노 레제로 (soprano leggiero)
‘레제로’는 가볍다는 뜻. 가볍고 우아하게 노래하는 소프라노를 이렇게 부릅니다. 베르디의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Gilda)가 대표적이며(질다 역은 리릭 콜로라투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리릭 콜로라투라’나 ‘수브레트’와 혼용되기도 합니다.
3. 소프라노 리리코 스핀토 (soprano lirico spinto)
이탈리아어에서 ‘스핀토’란 ‘찌르다’, ‘밀어붙이다’라는 뜻입니다. 보통의 리릭 소프라노보다는 더 힘이 느껴지며 드라마틱한 요소가 깃든 음성을 이렇게 부릅니다.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의 레오노라, 베버 [마탄의 사수]의 여주인공 아가테, 푸치니 [토스카]의 토스카 등이 이에 속합니다. ‘리리코 스핀토’는 ‘소프라노 드라마티코’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4. 보이 소프라노
변성기 이전 소년의 소프라노 음역에 해당하는 목소리를 보이 소프라노라고 부릅니다. 오페라에서 이런 음역과 음색이 필요한 경우는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세 소년,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의 이뇰드 역 등입니다. 보이 소프라노 음역을 노래할 수 있는 카운터테너 가수들은 팔세토(가성)를 쓰거나 두성 테크닉을 사용하지만, 미국 가수 마이클 마니아치처럼 어른이 된 후에도 자연스럽게 소프라노 음역을 계속 낼 수 있는 경우가 있어 ‘메일 소프라노(male soprano)'라는 명칭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소프라노 가수들을 리릭 소프라노 또는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위의 구분 중 하나의 틀에 한 사람의 성악가를 맞춰 넣기는 어렵습니다. 배역에 따라 어떤 때는 스핀토 리리코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드라마티코가 되며, 수브레트 역을 주로 부르는 가수가 콜로라투라 배역을 함께 노래하기도 하니까요. 또 마리아 칼라스처럼 리릭, 드라마틱, 수브레트 등 거의 모든 배역을 다 소화한 가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분류는 어렵습니다. (이번 '소프라노' 편을 시작으로, 앞으로 메조소프라노/콘트랄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등 오페라 가수의 음역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알려 드릴 예정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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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음원 제공 소니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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