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pm(민제이피엠) 의 음악과 함께하는 삶~
SOUL CLAMP

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라주모프스키 4중주

minjpm 2010. 8. 10. 09:37

 

원문에 들어있는 음악을 들으시려면, 본문 맨 아래 있는 원문가기 링크로 가셔서 들으셔야 합니다.

 

  

==================

 

 

 

 

 

 

 

1805년 말, 빈 궁정에 머무르고 있던 러시아 대사 안드레아스 라주모프스키 백작은 베토벤에게 새 작품을 의뢰했다. 그가 원한 작품은 곧 빈에 건립될 그의 화려한 궁전에 어울리는 현악4중주곡이었다. 그러나 베토벤의 라주모프스키 백작을 위해 작곡한 현악4중주 작품59의 세 곡을 들으며 귀족 궁전의 사치스런 살롱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토록 진지한 표현과 견고한 구성을 갖춘 지적인 작품을 과연 귀족들의 여흥을 위한 음악이라 할 수 있을까!

 

no 아티스트/연주  
1 op 59-3번 1악장 - Andante con moto - Allegro vivace / 부다페스트 현악사중주단 듣기
2 op 59-3번 2악장 - Andante con moto quasi allegretto 듣기
3 op 59-3번 3악장 - Menuetto. Grazioso 듣기
4 op 59-3번 4악장 - Allegro molto 듣기

8월 15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교향곡에 맞먹는 큰 스케일 – 실내악의 혁명

1807년에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이 발표된 후 베토벤에게 혹평이 쏟아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내악이란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함께 즐기기 위한 음악이란 인식이 강했던 그 당시, 교향곡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규모의 현악4중주곡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으리라. 그러나 베토벤에게 있어 ‘현악4중주’라는 음악은 더 이상 즐기기 위한 음악이 아니었다. 그에게 현악4중주란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동질적인 음색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가장 지적인 음악이며, 작곡가로서 작곡기법을 시험하는 진지한 음악이었던 것이다.


1800년에 베토벤이 여섯 곡으로 구성된 작품18의 현악4중주를 작곡했을 때만해도 현악4중주는 그에게 그다지 심각한 장르는 아니었다. 작품18의 초기 현악4중주들은 대부분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떠올리게 하는 발랄하고 유쾌한 음악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완성한 작품59의 현악4중주들은 작품18의 현악4중주곡을 작곡했던 동일인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혁명적이다. 6년 사이 베토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이미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귓병의 악화로 인해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큰 변화를 겪은 베토벤은 공포와 분노, 반항심에 불타오르며 그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음악에 쏟아 붇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대중의 취향에 음악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혁신적인 음악을 대중에게 강요했다.


베토벤에게 현악 4중주를 의뢰한 러시아의 대사 라주모프스키
<출처: Andreas razumovsky at en. wikipedia>

 

[라주모프스키 4중주]를 구상할 당시 베토벤의 작곡 스케치북에 적힌 짧은 질문에는 당시 베토벤의 심정이 그대로 나타나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음악으로 영혼을 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은 베토벤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자 현악4중주를 진지한 음악으로 격상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또한 베토벤의 전기 작가 솔로몬의 말대로 18세기 전통의 한계를 넘어선 “교향악적 4중주곡”이다.

 

 

 

“당신을 위한 곡이 아니라 미래의 청중을 위한 곡이오”


이 세 곡의 놀라운 현악4중주곡은 단 시간 내에 완성됐다. 1806년 7월 5일에 작품59의 4중주곡 가운데 제1번을 먼저 완성한 베토벤은 두 달 사이에 나머지 두 곡도 완성했다. 그해 9월 3일에 베토벤이 출판업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에 이미 [라주모프스키 4중주] 작품59의 전 세 곡이 모두 완성됐음을 알 수 있다. 1807년 2월, 마침내 베토벤의 새로운 현악4중주곡이 초연되었다. 그 무렵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저택이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이 작품은 빈의 다른 장소에서 이그나츠 슈판치히 4중주단의 연주로 첫 선을 보였다. 초연 무대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현악4중주곡을 들은 청중들은 당황했다. 초연 당시의 상황에 대해 베토벤의 제자 카를 체르니는 이렇게 기록했다. “슈판치히가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의 첫 곡인 F장조를 연주하자 사람들은 웃기 시작했다. 그들은 베토벤이 농담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것은 당시 사람들이 기대하던 4중주곡이 아니었다.”


놀란 것은 청중뿐 아니었다. 음악가들 역시 베토벤의 새로운 4중주곡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베토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당신은 이 작품에 별로 신경을 안 쓴 게 분명한 것 같군요.” 그러자 베토벤의 대답은 이랬다. “이건 당신을 위한 곡이 아니라 미래의 청중을 위한 곡이오.” 기술적인 어려움 역시 문제가 되었다. 초연 당시 연주를 맡은 슈판치히 4중주단의 연주자 한 사람은 악보가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자 베토벤은 “내가 영감을 받아 작곡을 할 때 내가 그 삑삑거리는 작은 깡깡이 따위를 신경이나 쓰는 줄 아시오?”라 반문했다.

 

 

 

이상하고 새로운 음악에 놀란 청중과 비평가들

베토벤은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을 미래의 청중을 위한 작품이라 말했지만, 이 작품은 오늘날의 청중에게도 결코 쉬운 곡은 아니다. 작품 59의 제1번 F장조의 1악장은 400마디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음악이고, 2악장 스케르초는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신비로운 리듬이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기묘한 음악이며, 3악장 아다지오는 탄식하는 듯한 선율과 느리고 장중한 느낌의 심오한 작품이다. 4악장에는 이 작품의 의뢰인을 배려한 듯 러시아 민요 선율이 주제로 사용돼 친근감을 주지만 4악장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음악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곡에서는 1악장 도입부의 주제를 가장 낮은 음역의 첼로가 연주하는 사이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가 8분음표의 반주 음형을 더 높은 음역에서 연주하는 것이 특이하다. 이는 고전주의 음악에선 드문 일로, 당대 청중에게 이상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라주모프스키 4중주] 중 제2번 e단조 역시 길이나 구성 면에서 만만치 않다. 오늘날 공연 무대에서도 제2번은 자주 연주되는 편은 아닌데, 그것은 이 작품의 연주효과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정적인 표현이 매우 뛰어나 다른 4중주곡에 비해 음악적으로 전혀 뒤지지 않으며 느린 아다지오 악장의 고요한 아름다움은 특별하다. 3악장의 중간 부분에서 베토벤은 다시금 러시아민요 선율을 인용해 이 작품을 의뢰한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경의를 표했는데, 베토벤이 사용한 이 민요는 러시아의 애국적인 송가로 무소르그스키가 그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사용한 선율이기도 하다.


베토벤은 초기 실내악의 유쾌한 구성을 넘어 심각한 실내악으로 변화를 꾀했다.
<출처: beethoven at en. wikipedia>

 

작품59의 제3번은 아마도 라주모프스키 4중주곡 전곡 가운데 가장 연주효과가 뛰어난 작품일 것이다. 특히 마지막 4악장은 전곡 가운데 예술적인 면으로나 기교적으로나 가장 뛰어난 음악으로 평가되고 있다. 베토벤은 이 악장에서 모차르트가 [교향곡 제41번] ‘주피터’의 마지막 악장에 사용했던 화려한 푸가의 기법을 좀 더 밀도 있게 재현해내며 청중을 사로잡는다. 처음에 비올라에 의해 제시되는 주제선율은 제2바이올린과 첼로, 제1바이올린에 의해 차례로 모방되며 긴장감을 쌓아간다. 이 곡에서 푸가의 기법은 단순히 장식적인 차원을 넘어 모든 성부에 원동력을 주는 근원적인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추천음반

베토벤의 현악4중주 작품59 ‘라주모프스키’는 오늘날 많은 현악4중주단들이 즐겨 연주하는 곡이다. 린제이 4중주단(ASV)과 이탈리아 4중주단(필립스), 알반 베르크 4중주단(EMI)의 음반이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 녹음으로는 아르테미스 4중주단(EMI)의 음반도 주목할 만하다.

 

 

 

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3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