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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밀러 - 대지의 노래

minjpm 2010. 8. 25. 12:56

 

원문에 들어있는 음악을 들으시려면, 본문 맨 아래 있는 원문가기 링크로 가셔서 들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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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노래]는 말러의 모든 교향곡 가운데서도 단연 특이한 작품이다. 두 명의 성악가가 한 악장씩 교대로 노래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연가곡과 비슷하고, 이전의 어떤 작품과도 달리 동양적인 정조가 강하게 배어 있다. 하긴 텍스트 자체가 중국의 시를 번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번안)한 것이다. 이런 외적인 요소 외에도, 이 곡에는 이전의 말러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염세적이고 허무에 찬 분위기가 가득하다. 왜 말러가 갑자기 이런 교향곡을 작곡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작곡가 자신이 거의 설명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그를 둘러싼 환경을 근거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곡은 너무나 많은 의문과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기에 지금까지처럼 풀어 쓴다면 너무 길고 지루해질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몇 가지 포인트를 중점으로 간략하게 쓰려고 한다.

 

no 아티스트/연주  
1 현세의 고통에 대한 술 노래 듣기
2 가을에 고독한 자 듣기
3 청춘에 대하여 듣기
4 아름다움에 대하여 듣기
5 봄에 술취한 자 듣기
6 고별 / 모린 포레스터[알토], 리처드 루이스[테너], 프리츠 라이너[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듣기

8월 31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Q  이 곡은 교향곡인가, 연가곡인가?

A  참으로 헷갈리는 질문이다. 일단 외적인 구성 면에서는 교향곡으로 볼 수 있고 말러 자신도 이 작품을 교향곡이라고 했지만, 시를 텍스트로 한 여섯 곡(악장)이 이어져 있는 데다 내용 면에서 긴밀하게 연계된다는 점에서는 연가곡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둘 다 맞다’고 보는 게 가장 나을 것이다.

 

 

Q  말러가 이 곡을 교향곡으로 여겼다면, 왜 유독 이 곡에만 번호가 매겨져 있지 않은가?


A  말러의 아내인 알마의 증언에 따르면, 말러는 ‘어떤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도 ‘9번’을 넘어서지는 못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베토벤 이후에 브루크너(말러는 젊었을 때 그의 강의를 들은 적도 있으며, 평생 그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와 드보르자크에 이르기까지 ‘마의 9번’을 넘어선 작곡가는 없었다. 그러나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심각하게 건강이 나빴다 해서, 이런 징크스를 믿을 만큼 심약한 인물이었을까? 각자 판단해 보기 바란다.

 

 

Q  말러가 이처럼 염세적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말러가 이 곡을 쓰게 된 1907년은 작곡가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운명의 해’였다. 당시 빈 오페라 극장의 총감독이었던 말러는 잦은 공연 여행과 오페라 공연상의 혁신, 그리고 이를 관철하는 과정에서의 고압적이고 철저한 완벽주의 때문에 많은 적을 만들었는데, 결국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 사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직후 큰 딸 마리아가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고, 말러 자신은 심장판막에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알마는 이 세 가지 사건을 말러의 [교향곡 6번] 피날레에 빗대어 ‘말러를 쓰러뜨린 운명의 세 타격’이라 불렀다).


구스타프 말러는 염세적인 교향곡을 많이 남겼다. [대지의 노래] 역시 말러 삶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담고 있다. <출처: mahler at.de.wikipedia>

 

말러는 삶과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터와 가족 그리고 건강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실로 [대지의 노래]는 이 시기의 말러의 삶과 내면이 거의 완벽하게 투영된 작품이며, 말러의 교향곡 가운데서도 특히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곡이 되었다.


 

Q  이 곡은 어떤 과정을 거쳐 작곡되었으며, 초연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A  알마는 이 곡이 1907년 여름에 착수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여러 증거([중국 피리]는 당시 아직 정식으로 출판되지 않았다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로 미루어 1908년 여름에 작곡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작곡가의 자필악보에 적힌 날짜는 2악장이 1908년 7월로 가장 빠르고, 1악장이 같은 해 10월 14일로 가장 늦다(단 5악장에는 날짜가 적혀 있지 않다). 말러는 이 곡을 먼저 피아노 버전으로 작곡한 다음 관현악 편성 작업을 거쳐 마무리했다. 이전까지의 모든 곡과는 달리 이 곡은 말러 자신이 초연하지 못했다. 말러의 친구이자 어떤 면에서는 제자였던 브루노 발터가 초연을 맡아 1911년 11월 20일에 이 작품을 세상에 알렸는데, 쇤베르크의 제자이며 말러를 무척 존경했던 베르크와 베베른은 이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오랜 시간을 여행했다고 한다. 이 공연에서 마지막 악장의 종지음이 사라지고 나서도 발터가 한참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지휘봉을 내려놓을 줄 몰랐다는 이야기는 말러에 대한 발터의 애정을 보여주는 일화로 자주 언급된다.

 

 

Q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할 때 텍스트로 삼은 [중국 피리]라는 시집은 어떤 작품인가?


A  한스 베트게(Hans Bethge, 1876~1946)의 시집 [중국 피리]는 83수의 중국시 번역을 담고 있는데, 실제로는 원전을 독일어로 곧장 옮긴 게 아니라 다른 독일이나 프랑스 사람들이 번역한 것을 다시 옮겨 엮은 것이다. 따라서 번역이 아니라 번안이라 해야 하고, 베트게 자신도 그렇게 표기했다. 어쨌든 이렇게 이중으로 옮겨짐으로 인해 시상은 원시와 상당히 동떨어지게 된 경우가 많고, 심지어 일부 시는 지금까지도 원작자로 지목된 시인의 작품 가운데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말러는 이 시집에 실린 시를 추려내 교향곡의 텍스트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한술 더 떠서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도 바꾸고 자신이 지어낸 시구를 집어넣는가 하면 별개의 시를 한데 묶기도 했다. 말러의 작업이 시집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 [중국 피리]라는 시집은 말러의 교향곡을 통해서만 이름이 전해진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말러는 중국의 시집 [중국 피리]를 텍스트로 삼아 [대지의 노래]를 작곡했다. 위 그림은 송나라 시대 피리를 불고 있는 궁정악사들.
<출처: Gu Hongzhong at en.wikipedia>

 

 

Q  이 곡은 테너-알토 조합 또는 테너-바리톤 조합으로 부를 수 있는데 어느 쪽이 나은가?


A  이 곡은 홀수 악장을 테너가 부르고 짝수 악장은 알토 혹은 바리톤이 맡아 부르게 되어 있다. 말러 자신은 둘 가운데 어느 조합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바리톤이 부를 경우 효과가 많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나온 [대지의 노래] 음반 가운데 십중팔구는 테너-알토(혹은 메조 소프라노) 조합인 걸 보면 발터의 지적에 공감하는 지휘자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성악가가 남자냐 여자냐보다 얼마나 뛰어난 해석을 들려 주느냐이며, 그 빛나는 본보기는 추천음반 코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교향곡의 제목인 ‘Das Lied von der Erde’를 ‘대지의 노래’라고 옮긴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왜 그런가?


A  좀 부차적인 이야기지만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주장은 이 곡의 1악장 제목인 ‘Das Trinklied von Jammer der Erde’는 ‘(대지가 아니라) 현세의 고통에 대한 술 노래’로 해석되어야 더 적절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1악장에 한해서는 옳은 지적이지만, 이를 교향곡의 제목에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볼 경우 6악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랑스런 대지는 봄을 맞이해…’(Die liebe Erde...)라는 구절은 어떻게 번역되어야 하는가? 어차피 양쪽 모두 만족시킬 만한 번역이 없다면 그냥 ‘대지의 노래’로 놔두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제목을 영어로 옮길 경우 ‘The Song of the Earth’로 표기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언어권에서는 ‘Erde’를 ‘대지’의 뜻으로 보고 있다. 물론 여기서 ‘대지’란 자연과 인생 모두를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장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문답은 일단 이 정도로 그치고, 이번에는 각 악장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1악장현세의 고통에 대한 술 노래(Das Trinklied von Jammer der Erde) - 빠르고 무겁게

이백(李白)의 시 ‘비가행 悲歌行’에 기초하고 있다. 3/4박자로 주조성은 A단조이다. 텍스트는 전체 4절이며, 이 가운데 1~2절이 제시부, 3절과 4절이 각각 발전부와 재현부에 해당한다. 내용은 간단히 말해 백 년도 못 살 삶인데 무엇하러 욕심을 부리느냐는 것이다.

 

호른의 호방한 팡파르에 이어 격렬하게 일그러지며 휘몰아치는 현과 금관은 장쾌하면서 동시에 강렬한 비탄을 느끼게 하며, 섬세한 전개부를 거쳐 등장하는 재현부에서는 테너와 관현악 모두 격앙된 태도로 울부짖는다.

 

코다에서는 호른의 팡파르가 다시 울리고 둔하면서도 단호한 트롬본의 저음이 악장을 마무리한다. 이 악장의 각 절을 마무리하는 행, ‘삶은 어둡고 죽음 역시 그러하다 Dunkel ist das Leben, ist der Tod’는 구절은 이백의 원시에서는 찾을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어두운 색채를 띠고 있는데, 말러는 특히 이 구절에 공을 들여 잊을 수 없는 효과를 이끌어냈다.

 

 

2악장가을에 고독한 자(Der Einsame im Herbst) - 천천히 기어가는 것처럼. 지친 듯이


전곡을 교향곡으로 볼 경우 6악장과 더불어 느린 악장에 해당한다. 3/2박자로 D단조이다. 베트게는 원작자를 ‘Tschang-Tsi’로 표기했는데 이것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확실치 않다.


[대지의 노래] 1악장은 이백의 시를 텍스트로 삼아 삶을 노래하고 있다.
<출처: libai at en. wikipedia>

 

당나라 시인 전기(錢起)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의 시 가운데 이와 비슷한 것은 없다고 한다. 고요히 물결치는 바이올린 음형이 지배하는 A섹션과 비교적 온화하고 풍요로운 악상이 등장하는 B섹션이 교대로 이어진다. 가을날 고독 속에 슬피 울면서 눈물을 말려줄 사랑의 태양을 기다리는 남자의 탄식을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이 악장은 남성 성악가가 노래하는 게 더 실감나게 들릴 수 있다. 실내악적으로 대단히 섬세하게 짜인 악상은 매우 애상적이고 쓸쓸하게 들린다.

 

 

3악장 청춘에 대하여(Von der Jugend) - 편안하고 명랑하게


2/2박자 B♭장조. 베트게의 시집에는 제목이 ‘도자기 정자’로 되어 있으며, 작자는 이백이라 하는데 원시는 확인할 수 없다. 시는 전체 7연이며 2-3-2로 나뉘어 3부 형식을 이룬다. 어느 한가로운 날 작은 연못 한 가운데에 있는 정자에 모여 잡담하는 젊은이들을 묘사한 시와 전곡 가운데 가장 가볍고 산뜻한 악상이 잘 어우러진 악장이다.

 

 

4악장 아름다움에 대하여(Von der Schönheit) - 편안하면서 매우 부드럽게


3/4박자, G장조. 역시 3부 형식을 취한다. 3악장과 마찬가지로 5음 음계가 지배적으로 사용되었다. 2~3악장과는 달리 베트게의 텍스트에는 많은 변경이 이루어졌는데 원작자와 원시는 일찍부터 확정되어 왔다(이백의 ‘채련곡 採蓮曲’). 연못가에서 연꽃을 따는 처녀들을 묘사한 다음 말을 타고 못가로 달려온 젊은이들을 비추고 다시 연꽃 따는 처녀로 돌아간다. 여기서는 시상의 추이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악상이 흥미로우며, 음악이 C장조 알레그로로 급변하는 2부는 질주하는 말의 모습이 대단히 박진감 있게 묘사되었다. 이 대목은 지정된 템포를 준수할 경우 어지간한 성악가도 호흡 조절에 애를 먹곤 한다.

 

 

5악장 봄에 술취한 자(Der Trunkene im Frühling) - 알레그로

4/4박자 A장조. 이백의 ‘춘일취기언지 春日醉起言志’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봄이 왔다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술이나 마시련다’라는 내용으로 말하자면 1악장과 마찬가지로 술 노래이다. 조바꿈이 잦고 테너가 ‘저음불가’로 일관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지만 1악장에서 화자가 인생에 대한 무상감에서 술을 마신다면 여기서는 이미 술 자체를 위해 마시는 경지가 되었다. 쉴 새 없이 바뀌는 조성과 각 성부의 혼란스런 교차에서 강한 술기운이 느껴지며 들뜬 악상은 쾌활하다기보다는 차라리 허세로 들린다.

 

 

6악장 - 고별(Der Abschied) - 무겁게


전곡 가운데 가장 긴 악장으로, 거의 30분에 걸쳐 연주된다. 이전 악장을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길이이다. 이렇게 길어진 것은 원래 별개였던 두 시를 말러가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숙업사산방시정대부지 宿業師山房時丁大不至’(베트게는 ‘친구를 기다리며’라고 옮겼다) 또 하나는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699?~759)의 ‘송별 送別’(베트게는 ‘친구와의 이별’로 옮겼다)이다.


5악장은 봄과 술을 노래하며 봄의 정취와 인생 무상감이 표현되어 있다.
<출처: NGD>

 

베트게는 이 두 시가 두 시인이 서로 주고받은 것이라고 단언했고, 말러 역시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분명치 않다. 베트게가, 그리고 말러가 많은 내용을 바꾸거나 첨삭했기에 굳이 원시의 자취를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4/4박자이며 C단조로 시작해 C장조로 이행한다. 외형상 소나타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구성의 긴밀함은 1악장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5악장의 허풍스런 마무리에 이어 등장하는 호른과 더블바순의 저음, 그리고 탐탐의 무거운 울림은 음산하고 불길한 느낌마저 준다. 이어 오보에가 구슬피 노래하고, 첼로의 저음 위로 알토가 노래하기 시작한다. 워낙 긴 악장이기 때문에 악상 전개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말러는 이 악장에서 각 성부 사이에 여백을 많이 둠으로써 실내악적이고 동양적인 느낌을 강조했다는 사실은 지적할 만하다. 내내 C단조로 어둡게 전개되던 악상은 영원한 대지를 찬양하는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C장조로 만개한다. 하프와 첼레스타의 아르페지오가 속세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가운데 독창자가 ‘영원히’(Ewig)를 조용히 되뇌면서 곡이 끝난다. 이 정도면 충분치는 않다 하더라도 [대지의 노래]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는 제공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까다로운 질문 하나가 남았다.

 

 

Q  말러의 전체 교향곡 가운데서 이 곡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A  말러의 교향곡을 삼분하면 1~4번, 5~8번, [대지의 노래]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이렇게 볼 경우 [대지의 노래]는 작곡가의 후기 교향곡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 된다. 베르크는 위대한 작곡가에게는 ‘작곡가의 품위를 결정하는 최후의 시기’가 있다고 말했고, 삶과 죽음 너머로 초월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말러의 후기 교향곡은 베르크의 주장에 대한 완벽한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이 곡은 말러가 [교향곡 8번]에 이르기까지 쌓아올린 모든 것에 대한 부정이지만, 이 부정은 더 큰 긍정으로 통하며 바로 여기에 말러의 위대함이 있다.


말러의 [교향곡 8번]은 교향곡의 역사에서도, 말러 자신의 작품 활동에서도 하나의 정점을 이루는 곡이다. 사랑과 구원을 감동적이고도 압도적인 필치와 탁월한 기교로 노래한 이 대작 교향곡은 말러 생전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둔 유일한 작품이기도 했다. 말러가 여기서 펜을 놓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릴 수 있었을까? 물론 상당히 주목받는 존재로 남기는 했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지위에 오르진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말러를 진정한 거인으로 만들어준 것은 [교향곡 8번]에서 그토록 소리 높여 외친 위대한 긍정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의 제기였으며, 그러한 반성은 [대지의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말러의 음악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와 닿는 이유는 진정한 구도자와도 같은 태도로 이 세상과 삶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려 했던 고뇌에 찬 몸부림 때문이 아닐까.

 

 

추천음반


이 곡을 이야기하면서 브루노 발터를 빼놓을 수 없듯이, 이 곡의 녹음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 발터가 남긴 세 종류의 녹음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일반적으로 가장 자주 추천되는 것은 율리우스 파착과 캐슬린 페리어와 녹음한 1952년의 빈 필 녹음(Decca)이다. 전화 교환수에서 일약 성악가로 발탁된 지 얼마 되지 않아 1953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페리어의 노래는 특히 6악장에서는 귀기마저 서려 있는 듯한 어두움으로 가득하다. 모노 녹음이라는 사실보다도 빈약한 테너가 이 음반의 장애 요소로, 이 이유 때문에 발터의 녹음 가운데서는 1960년 녹음(Sony)을 더 선호하는 이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클렘페러분덜리히, 크리스타 루트비히와 작업한 1964~66년의 필하모니아/뉴 필하모니아 녹음(EMI)은 분덜리히의 미성과 루트비히의 뛰어난 표현력이 돋보인다. 다소 우직하고 밸런스가 특이한 클렘페러의 해석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번스타인/빈 필의 1966년 녹음(Decca/DG)은 바리톤을 기용하더라도 얼마든지 명연을 낳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최상의 증거가 된다. 오랜 세월 동안 바이로이트에서 바그너 가수로 명성을 날린 테너 제임스 킹의 영웅적인 가창도 탁월하지만, 전설의 바리톤 피셔-디스카우가 노래한 짝수 악장, 특히 6악장은 소름이 끼칠 만큼 단어 하나하나에 심오한 의미를 담아 노래했다. 격정과 낭만이 넘치는 번스타인의 해석은 마치 말러 자신과 일체화한 듯하다. 불레즈/빈 필의 1999년 녹음(DG)은 발터의 녹음과 마찬가지로 형편없는 테너(쓸데없이 악을 쓴다)에도 불구하고 이 곡의 녹음사상 가장 정교하고 고운 관현악 때문에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불레즈와 빈 필은 여기서 관현악만으로도 대부분의 다른 녹음이 도달하지 못한 경지를 넘어서는 기적을 연출해냈다. 녹음도 매우 뛰어나다. 고음악 전문가로 이름 높은 헤레베헤가 특이하게도 말러에 손을 댄 1993년 녹음(Harmoni Mundi)은 말러의 교향곡을 실내악 버전으로 편곡한 쇤베르크-린 버전으로 연주했는데, 호기심의 대상을 넘어 독자적인 완성도를 보여준다.

 

 

 

황진규
황진규 /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그라모폰 코리아>에서 기자로 일했다. <객석>,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라 무지카> 등 여러 잡지에 리뷰와 평론, 번역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며, 지휘자 가운데서는 귄터 반트를 특히 존경한다.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3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