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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Georg Friedrich Händel,1685-1759)은 독일인이지만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로서, 특히 런던에서 크게 성공했다. 그의 오페라 작품은 약 50곡이 현재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이 고대(古代)나 중세의 영웅을 주인공으로 삼은 아리아를 나열(羅列)한 오페라 세리아이며 또 카스트라토(castrato=거세 가수)를 주역으로 한 작품이 많기 때문에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공연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제2차 대전 이후에 헨델 오페라 협회가 설립되고 작품 연구가 진척되면서, 헨델이 죽은 뒤 백 년이 되는 해인 1959년 이후 적극적인 부활 공연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대부분의 오페라가 전곡 녹음되었고 아울러 수많은 헨델 아리아 집이 나오게 되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자연 발셩(發聲)에 가까운 유능한 카운터테너(countertenor)가 계속 생겨났기 때문에 의욕적인 우수한 공연이나 녹음이 눈에 띈다.
부활한 헨델의 오페라
페르샤의 대왕 크세르크세스(Xerxes) 1세(세르세)를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 세리아이며 세르세와 동생 아르사메네 역은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했으나 지금은 남장(男裝)한 여성 가수나 카운터 테너가 맡는다. 작품은 전3막이며 N, 미나토(Nicolo Minato)의 대본을 스탐필리아(Silvio Stampiglia)가 개정하고 작곡가가 직접 가필(加筆)했다.
기원 전 5세기 경, 페르샤의 왕 세르세는 로밀다에 반해 궁정(宮廷)에 끌어 들이려 한다. 그러나 그녀는 왕의 동생인 아르사메네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로밀다의 여동생 아탈란타도 아르사메네에게 은근히 연정(戀情)을 품고 있어 언니와 아르사메네 사이를 갈라놓을 궁리를 하고 있다. 왕은 그런 동생을 해외로 추방한다. 아르사메네는 로밀다에게 보내는 편지를 하인에게 맡긴다. 그 편지를 받은 아탈란타는 왕에게 제출하며 아르사메네가 자기 앞으로 보낸 연애편지라고 제 멋대로 설명한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개통식에 출석한 아르사메네는 왕에게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로밀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왕은 로밀다에게 구혼(求婚)하지만 그녀는 이미 왕의 동생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듯한 암시를 풍긴다. 다른 나라의 공주이며 세르세 왕의 약혼자로 결정되어 있던 아마스트레는 남자 차림으로 페르샤 군에 들어가 왕의 변절(變節)을 직접 보고 들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쯤에서 정체를 밝히고 왕의 부덕(不德)을 나무란다. 세르세 왕도 그만 뉘우치고 아마스트레와 맺어 지고 왕의 동생 아르사메네도 로밀다와 짝이 된다.
오페라 [세르세]의 장면. [세르세]는 원래는 카스트라토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곡이다. 현대에서는 카운터테너 혹은 여성이 배역을 맡는다.
헨델의 라르고 Ombra mai fu / 프리츠 분더리히(테너) 등
8월 26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워너뮤직코리아
Handel, [Serse] 'Ombra mai fu'
Frondi tenere e belle del mio platano amato, per voi risplenda il fato. Tuoni, lampi e procelle non v'oltraggino mai la cara pace, nè giunga a profanarvi austro rapace.
Ombra mai fu di vegetabile cara ed amabile, soave più
헨델, [세르세] ‘옴브라 마이 후’
나의 사랑하는 플라타나스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무성한 잎이여, 그대를 위해 운명은 반짝인다. 천둥, 번개, 태풍이라 할지라도 그대의 아늑한 평화를 범하지 말라, 사나운 갈바람(南風)도 다가와 그대를 욕하지 말라.
그립고 사랑스러운 나무 그늘도, 지난 날 이렇듯 아늑하지는 않았다.
헨델의 ‘라르고’로 알려진 노래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는 플라타나스 나무를 찬양하는 짧은 레치타티보(recitativo=서창敍唱. 보통 이야기 하는 식 또는 연설이나 낭창朗唱을 모방하거나 강조하도록 만든 노래)와 가사(歌辭)로는 더 이상 짧을 수가 없는 아리아로 제1막을 연다. 노래는 본래 카스트라토의 앨토 역인 페르샤 왕 세르세가 이 아리아를 부른 뒤 폭군다운 횡포를 부리거나 남에게 골탕을 먹거나 하면서 예상 밖의 행동을 하며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계속된다. 가사는 나무(vegetabile)의 그늘(ombra)이 결코....없다(mai....fu)이며 나무 그늘을 그리운(cara)과 사랑스러운(amabile)의 두 가지 형용사로 수식하고 ”결코....없었다”와 합쳐서 서술부를 이루지만, 이 노래기 끝나면서 후렴처럼 계속되는 어지러운 이 저 구(句)가 뒤 섞여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통에 무엇이 무엇을 수식, 서술하는지 알 수 없어 어지럽기만 하다. “그립고 사랑스러운 나무 그늘도...”(옴부라 마이 후)는 그 달콤한 선율 때문에 흔히 ’헨델의 라르고(largo=매우 느린 속도로)’(실제로는 라르게토)[larghetto=라르고 보다 약간 빠르게]로 알려져 기악곡으로도 편곡되었다. 미국의 흑인 가수 배틀(Kathleen Battle)이 TV의 CM 송으로 불러 유명해졌다.
추천 CD와 DVD
[CD] 크리스티 지휘, 레 자르 훌로리쌍(Les Arts Florissants) 관현악단/합창단(2003) 안네 조휘 폰 오터(Ms) Virgin Classics
2003년 11월 빠리 샹젤리제 극장 공연 실황 녹음이다. 미국 지휘자 크리스티(William Christie, 1944-)는 하바드 대학에서 ‘예술사’를 배웠고 이어 예일 음악대학에서 하프시코드와 음악학을 배웠다. 1971년 이후 잠시 다트머스에서 강사를 하다가 빠리로 옮겨가 여러 고음악 악단에서 하프시코드 주자로 활약했다. 이윽고 바로크 시대의 성악전문 집단 ‘레 자르 훌로라쌍’(Les Arts Florissants)을 창설했다. 주로 룰리(Lully), 라모(Rameau), 퍼셀(Purcell), 샤르빵띠에(Marc-Antoine Charpentier), 헨델 등의 곡을 주 레퍼토리로 삼고 있다. 이 지휘자에 못지않은 주역 가수가 폰 오터(Anne Sofie von Otter,1955-)이다. 스웨덴 출신의 메쪼 소프라노이며 1982년 스위스의 바젤 가극장에서 하이든의 “오를란도 파라디노”(Orlando Paradino) 중 알치나 역을 노래해 데뷔하고 이어 [휘가로의 결혼](피가로의 결혼, 모짜르트)의 케르비노와 [장미의 기사](R.슈트라우스)의 옥타비안 등 소위 남자 역으로 전 세계의 오페라 극장을 석권(席捲)하여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특히 이 헨델을 비롯해 하이든, 모짜르트의 오페라가 본래는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된 역할이므로 소중한 존재로 활약하고 있다. 그렇다고 결코 학구적인 목소리로 치우치지 않고 오히려 넘치는 인간성을 느끼게 해주는 점이 다시없는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무대의 모습도 우아히여 지성의 빛이 서려 있다고나 할까 하여 인기가 높다. 또 로밀다 역의 소프라노 슐쯔(Elizabeth Norberg-Schulz)는 스웨덴 오슬로 출신이며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배우고 89년에 스칼라 극장에 데뷔하여 [여동생을 사랑한 오빠](페르고레지)의 반넬라를 맡았고 93년에 잘쯔부르크의 이스터 음악제, 여름의 음악제 등에서 [활스타후(Falstaff, 팔스타프)]의 난네타 역을 맡아 절찬을 받았다. 그 후 유럽을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그녀 노래의 남다른 아름다운 음색이 호평을 얻고 있다.
[CD] [위대한 헨델](Great Handel) 비케트 지휘, 계몽주의 시대 관현악단(2007) 보스트리지(T), EMI 헨델의 명 아리아집이다. [세르세]를 포함하여 전 16곡의 헨델 아리아를 오늘 날 최고라는 높은 평가를 받는 보스트리지(Ian Bostridge,1964)가 부른 곡 집이다. 보스트리지는 1990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역사)를 취득하고 그대로 학구 생활을 계속하여 97년에는 [1650년부터 1750년에 걸친 마법(魔法)과 그 변천(變遷)]이라는 연구서를 옥스퍼드 대학 출판국에서 출판했다. 가수로 활동을 하게 된 것은 1995년부터이다. 오페라 데뷔는 그 전해, 오스트레일리아 오페라와 에딘버러 음악제에서 브리튼의 [한 여름 밤의 꿈]중 리이샌더를 노래한 뒤부터였다. 1995년에 [살로메](R.슈트라우스)로 로열 가극장에서 데뷔한 뒤에 96년에는 [요술 피리](모짜르트)의 타미노 역으로 잉글리쉬 내셔널 가극장에, 98년에 [포페아의 대관식](몬테베르디)의 네로네 역으로 뮌헨 음악제에 출연한 뒤 온 세계의 오페라 극장에서 계속 초청을 받고 있다. 가곡이나 종교 음악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보스트리지는 오페라에서도 몬테베르디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불가능함이 없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적인 속에 일말(一抹)의 쓸쓸한 표정이 감도는 그의 노래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독특한 것이며 가장 현대적인 테너라고 평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사람이다.
[DVD] 마케라스 지휘, 잉글리쉬 내셔널 가극단 관현악단/합창단(1988) 머레이(Ms), 하이트너 연출 Philips 잉글리쉬 내셔널 가극단은 자기 나라 언어(영어)로 번역한 공연을 원칙으로 한다. 주잉공 세르세 역으로는 메쪼 소프라노 머레이(Ann Murray)가 맡고 동생 역을 카운터테너 로브손(Christopher Robson)이며 이 드라마는 시각적인 면 보다는 분위기로 감싼다. 때와 장소를 가끔 무시하여 옛날과 오늘이 함께 존재하며 등장인물들의 솔직한 감정 발산과 패로디 정신을 교묘하게 결부시켜 가는 하이트너(Nicholas Hytner)의 연출이 즐겁다. 배역도 남자 역의 머레이 이하의 여러 역할을 맡은 가수들이 제 몫을 다한 노래로 빈틈이 없다. 음악 학자로 정평이 있는 마케라스(Charles Mackerras)의 지휘는 양식을 따르면서도 현대 감각으로 극을 펼쳐 나가는 솜씨가 뛰어나다.
[DVD] 루쎄 지휘, 레 딸랑 리리끄 악단/루트비히샤후너 극장 합창단(2000) 라즈무쎈(Alt) 함페 연출 EuroArts 드레스덴의 유명한 젬퍼 가극장에서 2000년 6월에 열렸던 오페라 [세르세] 전곡의 실황 녹화이다. 바로크 음악의 전문 지휘자인 루쎄(Christoph Rouset)는 W. 크리스티와 마찬가지로, 불란서의 하프시코드 명연주가답게 안정되고 정확한 연주를 돋보인다. 곡의 주역인 세르세는 카스트라토이지만 오늘날 그런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는 카운터테너나 알토 가수가 맡는다. 뛰어난 여성 알토인 라스무쎈(Paula Rasmussen)이 남성을 능가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와 연기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할렌버그(Ann Hallenberg)의 왕의 동생 아르사메네 역, 왕의 약혼녀 아마스트레 역의 바르돈(Patricia Bardon), 왕의 동생 아르사메네의 연인 로밀다 역의 바이라크다리안(Isabel Bayrakdarian) 등 주요 가수들도 고른 노래 솜씨와 연기를 보이고 있다. 고대 페르샤에서 18세기의 한 궁정으로 오페라의 배경을 옮겨 놓은 함페(Michael Hampe)의 무대는 화려하면서도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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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동림 / 전 교수, [이 한 장의 명반 오페라]의 저자
전 청주대 영문학과 교수이며, 다수의 저서를 출간한 작가이자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 평론가이다. 저서로는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안동림의 불멸의 지휘자], [장자], [벽암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