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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오리바람이 불어오듯 무시무시한 분위기로 시작되는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19세기 관현악 작품들 가운데서도 매우 독창적이고 특별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을 작곡한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남부 키예프의 트라고라프라 불리는 산에서 매년 6월 24일마다 열리는 성 요한제의 전설에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성 요한제의 전날 밤에는 온갖 마녀와 귀신들이 민둥산에 모여 악마를 기쁘게 하는 잔치를 벌어지는데, 그들이 벌이는 기괴한 연회 장면은 무소르그스키의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에 생생하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거칠면서도 흥미진진한 느낌의 이 음악은 재미난 표제와 대담한 표현력을 갖추고 있어 오늘날 오케스트라의 어린이 음악회의 단골 레퍼토리로 연주될 뿐 아니라, 디즈니의 유명한 만화영화 [판타지아]에 사용돼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곡은 작곡의 기원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개정과 편곡 과정을 거치면서 판본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무소르그스키의 원곡판보다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편곡 판이 주로 연주되고 있기에 과연 이 작품을 무소르그스키의 대표적인 관현악곡으로 꼽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점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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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르그스키 –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 프리츠 라이너[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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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 |
작곡 배경에 대한 가설과 여러 개의 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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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을 비롯한 무소르그스키의 많은 작품들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편곡 작업이 없었다면 세상에 알려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5인조를 이루는 민족주의 작곡가들 가운데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악상을 지닌 음악가였음에도 간질병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46세의 이른 나이에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미완성으로 끝나버렸다.
다행히 러시아 5인조의 작곡가 중 관현악 기법에 가장 뛰어났던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무소르그스키가 남긴 작품에 오케스트레이션을 하고 원곡의 의도에 맞게 양심적으로 편곡하여 무소르그스키의 많은 작품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역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깔끔하고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 덕분에 빛을 보게 된 작품이다.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이 어떻게 잉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무소르그스키가 리스트의 [죽음의 무도]를 모델로 하여 1860년경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이라는 형식으로 구상한 것이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의 기원이 되었다는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주장이다. 그러나 초안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또 한 가지 유력한 설에 의하면 1860년에 멘그덴 남작의 희곡 [마녀]를 위한 부수음악을 구상하고 있었던 무소르그스키가 이 희곡 가운데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악마의 연회’ 장면에 대한 음악을 작곡했는데, 이것이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무대 작품은 완성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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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5인조’의 한 명으로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출처: Ilya Repin at en.wikipedia> | |
이후 무소르그스키는 고골리의 희곡 [성 요한제의 전야]에 의한 오페라를 구상하면서 1867년에 드디어 교향시 [민둥산의 성 요한제의 밤]의 첫 번째 판본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작곡가 발라키레프가 이 곡을 심하게 혹평하는 바람에 이 곡은 연주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묻혀버렸고 오페라 역시 완성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871년, 러시아 5인조의 합작 오페라 [믈라다]를 위해 무소르그스키는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을 성악과 피아노용으로 편곡하려 했으나 이 계획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다시 오페라 [소로친스크의 시장]을 작곡하면서 술에 취한 청년의 환각에 사로잡힌 꿈을 묘사하기 위해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악보를 개정해 ‘젊은이의 꿈’이라는 합창 관현악 작품으로 만들었다. 오페라에서 이 곡은 3막의 제1장과 제2장 사이에 삽입된 간주곡이며 극의 이야기와 직접 관계가 없는 꿈 속의 악마의 향연을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무소르그스키가 남긴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의 악보는 결국 서로 다른 이름의 세 가지 판본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발라키레프의 혹평으로 사장된 1867년의 ‘민둥산의 성 요한제의 밤’의 원곡판과 오페라 [믈라다]의 편곡판, 그리고 오페라 [소로친스크의 시장] 중 ‘젊은이의 꿈’이 그것이다. 1881년 무소르그스키의 타계 이후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남아있는 세 개의 판본들 중 “개개의 최상의 부분을 떼어내어” 자기 나름의 교항시로 구성해냈다. 이로써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케스트레이션과 무소르그스키의 악상이 결합된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편곡판은 1889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의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마녀들의 축제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관현악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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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르그스키는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을 구상할 당시 이 작품을 “마녀의 집회와 논의, 사탄의 행렬, 사탄에 의한 저주스런 찬사, 악마의 연회”라는 표제적인 내용에 따라 작품을 계획했기에 1867년의 교향시 원곡판은 이런 순서를 따른다.
그러나 이후 오페라 [소로친스크의 시장]에 삽입된 ‘젊은이의 꿈’의 개정작업을 진행 중 그는 이 작품에 평온한 분위기로 끝맺는 새로운 결말을 덧붙였다.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무소르그스키가 후에 덧붙인 평화로운 결말을 채택해 림스키 코르사코프 편곡에 의한 교향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전개된다.
“지하에서 음산한 소리가 울려나온다. 어둠의 요정들이 등장하고 이어서 어둠의 왕 체르노보그가 나타난다. 마귀들은 체르노보그를 찬미하는 암흑의 미사를 드리고, 마녀들이 안식일의 향연을 벌인다. 이 광란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먼 마을 교회의 종이 울리기 시작하고, 어둠의 요정들은 물러간다. 그리고 날이 밝는다.”
무소르그스키는 마녀들의 축제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교향시의 원곡판에서 현악기군과 관악기군을 대비시켜 긴장감을 만들어 내거나 여러 가지 음향 층으로 분리하는 기법을 자주 사용했는데, 이런 기법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편곡판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 원곡의 느낌을 잘 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무소르그스키의 오케스트레이션이 한결 거칠고 투박해 각종 마귀들의 괴성과 혼란스런 축제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있어 더 효과적인 면도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종종 1867년에 완성된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의 원곡판이 종종 연주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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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민둥산에 모여든 마녀, 악마들의 기괴한 축제를 묘사한 관현악 기법이 뛰어나다. <출처: Hans Baldung Grin at en.wikipedia> | |
- 글 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3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