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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포의 근원 - 메두사의 힘

minjpm 2009. 12. 19. 09:18

페르세우스는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각오를 하고 온 길이지만, 갈수록 주변에 사람 닮은 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저절로 긴장이 된다. 그가 오늘 이곳을 찾아온 것은 괴물 메두사를 처치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메두사는 여신의 저주를 받아 탐스러운 머리칼이 모두 징그러운 뱀으로 변해버린 인물이었다. 빨간 혀를 날름거리는 뱀 머리칼을 가지게 된 메두사의 모습이 어찌나 흉측하고 무서웠던지, 메두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사람은 엄청난 공포에 돌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지금 페르세우스 곁에 늘어선 돌들은 그렇게 한 때는 인간이었던 이들이 변해버린 것이었다. 얼마나 끔찍했으면 두려움에 돌이 되었을까, 페르세우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방패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방패야말로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물리치는데 가장 중요한 일을 하게 될 터였기 때문이었다.

- 그리스 신화, 메두사와 페르세우스 이야기 중에서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하게 하는 메두사의 공포

뱀이 달린 머리로 유명한 메두사는 얼마나 무서운 얼굴을 지녔는지, 그 얼굴을 정면으로 본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돌이 되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래서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처지하기 위해 거울처럼 반들반들하게 광을 낸 방패를 가져갑니다. 그리고는 메두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않고 방패에 비춰 보며 메두사의 목을 자르는데 성공하지요. 페르세우스는 잘린 메두사의 목을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데, 아테나 여신은 자신의 방패에 메두사의 목을 달아 적을 물리치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돌처럼' 굳게 만드는 공포 반응,  어떻게 일어나나?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메두사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메두사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너무 무서워서 움직이지 못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굳어 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메두사를 보고 돌이 된 사람들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공포나 두려움을 경험할 때 느끼는 반응을 과장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엄청난 공포에 휩싸이게 되면 온 몸에 힘이 빠져서 털썩 주저앉게 되거나 혹은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하게 될 때가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을 '돌처럼' 굳게 만드는 공포 반응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공포(恐怖)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두려움과 무서움(국어사전)' '괴로운 사태가 다가옴을 예기하거나 현실적으로 다가왔을 때 일어나는 불쾌한 감정을 바탕으로 한 정서적 반응(백과사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경우라도, 상황을 견디고 헤쳐나갈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그렇게 생각한다면 공포는 느껴지지 않거나 덜 느껴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괴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과 무서움'을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공포나 두려움은 생존과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연결됩니다. 높은 곳에 올라서면 오금이 저리는 것은 자칫 잘못해서 떨어지면 죽거나 크게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커다란 동물을 맞닥뜨리면 공포감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은 공격을 받으면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의 정도가 가능성에 의해 달라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발 밑은 아찔해도, 마천루의 펜트하우스에서 내다보는 풍경은 아름다운 것이나, 들판에서 마주친 표범은 무서워도 동물원의 호랑이는 신기한 것은 각각 유리창과 철장이라는 안전장치에 의해 보호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포라는 감정과 뇌의 편도체와의 밀접한 연관성


여러 연구를 통해 인간에게 있어 공포라는 감정은 뇌의 편도체(扁挑體, amygdala) 부위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편도체란 뇌의 측두엽(뇌의 옆쪽) 전방 안쪽에 위치하는 부위로 감정과 관계가 있다고 알려졌는데, 그 중에서도 공포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관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 부위가 손상되면 공포 반응이 사라지거나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쥐의 경우, 편도체를 손상시킨 쥐는 겁도 없이 고양이에게 다가간다거나 심지어 고양이에게 기어 올라가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편도체 손상을 동반하는 우르바흐-비테 증후군(Urbach-Wiethe disease)1)을 가진 사람의 경우에서는 공포에 대한 감정 인식이 잘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대로 이 부위에 전기 자극을 가하면 공포와 수반된 반응들이 일어납니다. 편도체에 전기 자극을 가하면 방어행동, 자율신경의 변화, 피부 감각 둔화, 호르몬 분비 등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공포에 대한 반응은 위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준비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편도체에 가한 전기자극만으로도 사람들은 눈동자가 커지고 경계태세를 갖추는 방어행동을 보이며, 자율신경의 변화로 심박수가 빨라지고, 피부의 통증감각이 둔화되어 아픔을 덜 느끼게 되며, 에피네프린과 같은 호르몬의 분비량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 현상들은 모두 공포를 느낄 때에도 나타나는 현상들이며 위기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취하는 본능적인 변화들입니다.

 

 눈동자가 커지는 것은 빛을 더 많이 받아들여 시야를 확보하기 위함이며, 심박이 빨라지는 것은 사지로 가는 혈액량을 증가시켜 근육에 더 많은 산소와 열량을 공급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단 잘 보이고 손발이 잘 움직여야 더 잘 도망갈 수 있을테니까요. 또한 통증의 둔화는 상처의 고통을 이겨내고 피할 수 있게 도와주며, 흔히 아드레날린이라고 불리는 에피네프린은 사지의 근육 부위로 가는 혈류량을 늘려 더 재빨리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극심한 공포에 대한 반응은 주변과의 단절을 만들기도

여기까지 살펴보면 공포에 의한 반응은 위험을 피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왜 공포에 의해 꼼짝을 못하게 되거나 심지어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일까요? 이런 행동은 공포를 유발하는 대상을 피하거나 생존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처럼 보이는데요. 보통 몸이 굳거나 기절을 할 정도의 공포는 공포의 강도가 아주 셀 때 일어납니다. 보통 공포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앞서 말한 것처럼 교감신경의 자극과 에피네프린의 분비로 인해 심박이 빨라지고 혈관이 확장되게 되는데, 이로 인해 혈압이 떨어지게 됩니다.

 

혈압이라는 것이 혈류가 혈관벽에 미치는 압력이므로 혈관이 확장되면 혈압은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혈압의 저하는 심장에서 밀어내는 혈액의 양을 감소시키고, 이는 혈압을 더욱 떨어뜨리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낮아진 혈압은 심장보다 위쪽에 위치하는 뇌로 혈액을 충분히 보낼 수 없게 만듭니다. 따라서 뇌로 가는 혈액이 줄어들게 되고 이는 뇌의 산소 부족으로 인한 실신을 유발하게 되지요. 따라서 공포감이 지나치게 클 경우, 오히려 신체의 반응은 주변과의 단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적당히 무서우면 도망을 치지만, 너무 무서우면 기절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뇌리에 새겨지는 선명한 공포의 기억

이렇듯 편도체와 공포와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데 편도체는 홀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바로 옆에 위치하는 해마나 전전두피질과의 상호작용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해마의 경우 기억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입니다. 따라서 매우 무서운 일을 겪었을 경우, 그 기억은 뇌리에 새긴 듯 선명하게 기억되며 오래도록 지워지지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공포 상황에 대한 기억을 남김으로써 다음에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기억을 바탕으로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진화적 변화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여 특별한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도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들 질환을 치료하는데 있어 인지적인 심리 치료와 함께 공포감과 기억을 완화시키는 약물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이런 증상들에 이러한 신경학적 변화가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약물만으로 이런 증상들을 모두 치료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두려움에 맞설 때 살짝 시선을 달리해 보자

앞서 말한 메두사의 얼굴은 정말로 끔찍했나 봅니다. 사람이 정신을 잃고 두려움이 돌이 될 정도라니 말이에요.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거울같은 방패를 이용해 메두사를 물리치는데 성공합니다. 어쩌면 이 신화에서 말하는 것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마도 페르세우스는 우리에게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라도, 살짝 시선을 달리해 바라보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우르바흐-비테 증후군

우르바흐-비테 증후군(Urbach-Wiethe disease)은 1929년 오스트리아의 의사인 우르바흐(Erich Urbach)와 비테(Camillio Wiethe)에 의해 처음 명명된 질환으로,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는 희귀한 유전질환입니다. 우르바흐-비테 증후군은 지질 대사 이상을 일으켜 주로 피부나 점막에 지방성 물질이 침착되는 현상을 일으키는데, 뇌에서는 편도체의 칼슘 대사에 이상을 일으켜 편도체를 망가뜨리거나 기능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은희 /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등 많은 과학 도서를 저술하였고, 2003년에 과학 기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 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1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