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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방수와 통풍 - 등산복의 과학

minjpm 2009. 12. 19. 09:20

흰 눈이 센 바람에 휘몰아치며, 영하 20~40℃를 넘나드는 히말라야 산을 등반하는 산악인들의 인내심과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한발씩 내딛는 용기에는 저절로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게 된다. 특히 자랑스런 한국의 남녀 등반인 이야기라면, 경의를 넘어서 뿌듯한 감동까지 느끼곤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필자는 조금은 다른 면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있었다. 그런 힘든 등반을 하면서 입고 간 옷이 너무 무거웠다거나 보온이 덜 되어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고, 또 통기성이 충분하지 못해 옷이 땀에 흠뻑 젖었다는 불평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문제가 비교적 잘 해결되고 있는 것을 보면, 등반가들이 입은 옷은 무언가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 방수와 통기성이라는 서로 모순인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을 보면, 등산복에 사용하는 특수한 천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특수한 기능을 가진 옷감은 주로 고분자의 화학적, 물리적 특성을 이용해 만든다

이런 옷감들의 제조에는 섬유를 만드는 고분자 재료의 화학 구조는 물론 물리적 구조 또한 매우 중요하다. 방수-통기성 의복에 사용된 천의 과학적 디자인은 바람, 비, 체열 손실로부터 우리 신체를 보호해 준다. 이런 기능뿐만 아니라 입은 특수복이 편하게 느껴져야 함도 필수적이다. 방수와 수분 투과성을 동시에 지니는 직물은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가 고밀도 천, 두 번째가 수지 코팅된 천, 마지막이 필름 적층 천이다.

 

고밀도 천으로 방수와 통기성을 지닌 천을 만들 때는 흔히 면이나 합성섬유의 가는 장섬유를 사용하며, 능직법(綾織法)을 사용한다. 면은 물에 젖으므로 방수력이 폴리에스테르(폴리에스터) 보다는 뒤지지만, 가는 면사를 사용해 능직법으로 짠 천은 물에 젖더라도 면섬유들이 횡축방향으로 팽윤해 천의 세공크기를 줄여 물이 쉽게 투과하지 못해 방수력이 늘어난다. 고밀도 천으로는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맨체스터에서 개발된 벤타일(Ventile®)이 유명하다. 면과 다른 소수성 합성섬유의 경우에는 실의 굵기와 직조법으로 세공크기를 조절하여 방수력을 늘린다.

 

 

고밀도 천과는 다르게, 수지 코팅천은 고분자 물질을 기본 천 표면에 코팅하여 만든다. 코팅하는 막은 미세 동공막 모양을 가지고 있는 소수성 수지나 동공막을 지니지 않는 친수성 막을 사용하는데, 미세 동공의 크기는 수증기 분자는 통과할 수 있으나 아주 작은 물방울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조절한다. 주로 사용되는 코팅 재질은 폴리우레탄이다.

 

마지막으로, 적층 방수-통기성 천은 얇은 막층(최대 두께: 10 µm (1 µm = 10-6 m))이 천 가운데에 있으며, 이 적층이 방수-통기성을 컨트롤한다. 적층으로 사용하는 막에는 마이크로 세공막과 친수성 막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마이크로 세공막의 세공크기는 작은 물방울 크기의 20,000 분의 1 정도로 작아 물방울은 통과하지 못하지만, 수증기 분자는 쉽게 통과한다. 마이크로 세공막으로는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과 폴리플루오르화비닐리덴이라는 플루오린(불소, 플루오르)계 합성수지 박막이 주로 사용되며, 대표적 천으로는 널리 알려진 고어-텍스(Gore-Tex®) 가 있다. 친수성 막으로는 흔히 폴리에스테르나 폴리우레탄 고분자 내부에 친수성이 큰 폴리산화에틸렌을 포함할 수 있도록, 화학적으로 변형을 가해 사용한다.

 

 

 

 

모세관 현상을 통해, 섬유 안쪽의 수증기가 바깥으로 이동할 수 있다

방수-통기성 직물재료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잠깐 중단하고 이제는 직물 내에서 수증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보자. 수분이 직물을 통해 이동하는 메커니즘은 모세관을 타고 액체기둥이 올라가는 모세관 현상과 같은 원리이다. 모세관의 지름과 내면의 표면에너지에 따라 올라가는 액체기둥의 높이가 결정된다. 지름이 작을수록 액체가 모세관을 따라 잘 올라가는데, 직물에서 섬유가닥 사이의 작은 공간이 모세관 노릇을 하기 때문에, 미세 섬유일수록 모세관의 크기가 작아 모세관 현상이 잘 일어난다. 모세관 내부 벽의 표면에너지는 화학구조가 결정하며, 친수성 섬유의 표면은 소수성 섬유 표면보다 표면에너지가 커 수분을 더 쉽게 흡수하지만, 소수성 섬유는 반대로 수분을 흡수하지 않는다.

 

등산복과 같은 기능성 특수복에서 수분의 제거는 체온을 조절하며 근육의 운동을 돕고, 피로를 지연시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면 같은 천연섬유는 운동량이 약할 때에는 적합하지만, 운동량이 클 때는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가 더 좋다. 합성섬유가 면보다 흡습성이 낮지만 오히려 모세관 현상으로 운동할 때 생기는 땀이 쉽게 제거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폴리에스테르의 흡습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섬유 표면이 좀 더 큰 친수성을 띄도록 화학반응을 시키기도 하고, 표면을 친수성으로 코팅하기도 한다. 나일론 섬유는 가볍고 부드러운 촉감을 주며 강도도 커, 기본 천 재료로 많이 사용되며, 특히 폴리우레탄 코팅을 해 널리 사용된다. 나일론을 기초 직물로 한 섬유는 폴리에스테르보다 수분에 더 빨리 젖으며, 극세사로 천을 짜면 공기투과성이 낮아 체온보호 성능이 우수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등산복 보다는 수영복, 사이클링복에 많이 쓰인다. 운동시 생기는 땀을 피부에서 빨리 제거하려면 흡습성이 좋은 면이나 비스코스 레이온 등이 유리해 보이지만, 이들은 수분을 붙들고 있으려는 특성이 강해 잘 마르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양이 잘 변하지 않고, 속히 마르는 합성섬유가 기초 직물로 더 넓게 쓰인다.

 

 

운동복 섬유의 전자 현미경 사진

요즈음의 운동복은 매우 얇고 가벼우면서도 보온력이 뛰어나다. 그 이유는 앞에서 설명한 화학적인 특성을 이용한 점도 있지만, 물리적인 구조에 힘입은 바도 크다. 직물을 전자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직물 내 섬유들의 구성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구조도 옷감이 특수한 기능을 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섬유 속이 비어있는 중공사로 직물을 만들면, 아무리 조밀하게 직조하더라도 중공 때문에 가벼울 뿐만 아니라 공기의 열전도율이 낮으므로 좋은 보온력을 보여준다. 이 특수 섬유는 수용성 폴리에스테르를 중심부로 하고 나일론을 표피 부분이 되게 2성분 장섬유를 방사한 후, 중심부를 알칼리 수용액으로 녹여내어 만든다. Y 형으로 방사한 폴리에스테르 섬유도 있는데, 폴리에스테르가 소수성이므로 Y 형 섬유로 만들면, 소수성 표면적이 커진다. 따라서 섬유 조직 사이의 빈 공간을 통한 모세관 현상이 강해져, 땀의 제거를 빨라지고, 이 때문에 상쾌한 느낌을 준다.

 

이 밖에도 운동복 천 제조에 적합한 천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특수 섬유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중심에 있는 흡습성 고분자를 나일론이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2중 구조 장섬유, 수축력이 우수한 스판덱스 섬유와 부드러운 나일론-66 섬유를 편직한 천(수영복에 특히 적합하다), 폴리에스테르 천을 안감으로 하고 친수성이 더 큰 나일론 천을 겉감으로 한 2성분 천도 운동복 천으로 사용된다. 친수성인 에틸렌-비닐알코올 공중합체와 나일론 섬유를 혼방하고 열처리를 통해 표면에 나일론의 미세 고리가 생기게 한 특수 직물도 있다. 이 특수 직물은 땀 제거가 잘될 뿐 아니라 가볍고, 부드러워 등산복 제조에 적합하다. 또 방수와 통기성을 향상 시키기 위해 피부에 닿는 부분은 굵은 섬유로, 바깥 부분은 미세섬유로 구성된 다층 구조-폴리에스테르 천이 운동복에 인기리에 사용되고 있다.

 

 

고어-텍스 섬유에 사용된 테플론은 섬유 뿐 아니라 프라이팬 코팅에도 쓰인다

끝으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고어-텍스(미국 특허 3953566 (1976), 4194041(1980)) 천의 구조를 알아보자. 가장 바깥은 나일론 혹은 폴리에스테르, 피부와 닿는 내면은 부드러운 폴리우레탄 층으로 되어있다. 다공성 고어-텍스 막은 양면에 성기게 직조한 천 혹은 코팅이 보호한다. 고어-텍스 제조에 사용되는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 (PTFE) 은 흔히 테플론 (미국 듀퐁사의 상품명)으로 알려진 재료로 음식이 들러붙지 않게 프라이팬이나 식기, 피자 배달상자와 전자레인지 팝콘 주머니의 코팅, 자전거 사슬 윤활제 등에 널리 쓰인다. PTFE 는 소수성이 가장 큰 재료 중의 하나이며, 이런 특징 때문에 자동차 차체 코팅에도 일부 사용되고 있다.

 

방수 스프레이에는 보통 퍼플루오로옥탄산 (PFOA, C7F15CO OH) 이라는 플루오린 화합물이 쓰인다.  그러나 PFOA 의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생리활성에 관해서는 염려스러운 보고도 나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비록 화학조성은 같더라도 섬유 및 천의 가공과 디자인에 따라 그 특성과 기능 및 용도에 큰 차이가 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진정일
진정일 / 고려대 화학과 석좌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시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화학과 석좌교수이며, 국제순수-응용화학연맹(IUPAC)과 한국과학문화진흥회 회장이다. 저서로 <교실 밖 화학이야기>등이 있다. 한국과학상, 수당상 등을 수상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chemistry/16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