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 찾기는 고생물학자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3월 경북 군위에서 척추동물 화석을 찾아나선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학예연구관은 몇 시간째 지표면에 드러난 암석을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땅만 보고 걸어다녔다. 이 지역은 곤충과 어류 화석이 많다고 알려진 곳이다. 벌레와 물고기가 있다면 이를 잡아먹는 척추동물도 있을 터였다. 숨을 돌릴 겸 등산화 끈을 매려고 앉았다 일어나는 순간 바위에서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공룡 발자국인가? 그게 아니어서 낙담하는 순간 “심 봤다!”라는 소리가 터져나올 뻔했다. 믿기지 않을 만큼 큰 익룡의 오른쪽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던 것이다. 무릎에 맥이 풀려 주저앉아 어른 손보다 2배나 큰 발자국을 더듬었다. 약 1억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호숫가 풍경이 눈앞에 떠올랐다. |
1억년 전 동해 열려 일본이 떨어져 나가기 전 호숫가
아직 동해가 열려 일본이 떨어져 나가기 전, 경남·북과 전남 일대는 육지였고 커다란 호수가 여기저기 있었다. 따뜻한 열대기후 속에 소철과 속새가 번성했다. 이들을 먹는 작고 날렵한 초식공룡 힙실로포돈, 거대한 목 긴 공룡인 부경고사우루스, 그리고 이들을 노리는 육식공룡 메갈로사우루스가 호숫가를 어슬렁거렸다. 물속에는 원시악어가 거북과 함께 물고기를 사냥했다. 하늘에는 거대한 익룡이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며 유유히 날아갔다. 중생대 백악기 한반도 남부를 ‘공룡의 낙원’이라고 부른다면, 절반을 빠뜨린 셈이 된다. 당시 하늘을 지배한 익룡은 같은 파충류이지만 공룡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반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종류의 익룡이 서식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 |
임 박사가 군위에서 발견한 익룡의 앞발자국은 길이 35.3cm, 폭 17.3cm로 세계 최대의 화석이다. 3개의 발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발톱 자국이 선명했다. 군위의 익룡 발자국이 발견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익룡 발자국은 전남 해남군 우항리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발자국만으로는 어떤 익룡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임 박사는 “군위와 해남의 익룡은 모두 테로닥틸로이드에 속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케찰코아틀루스라는 거대 익룡의 골격 일부가 미국 텍사스에서 화석으로 발굴됐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이 익룡의 날개 폭이 10~11m, 무게는 70~85㎏에 이르렀을 것으로 짐작한다.
영국 포스머스 대학 고생물학자 마크 위튼과 다렌 나이쉬는 지난해 국제학술지 피엘오스 원(PLoS onE)에 실은 논문에서 우리나라 우항리 발자국의 주인은 날개 폭이 10m가 넘고 키는 3m에 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거대 익룡의 키는 인도코끼리보다 크고 기린의 어깨 높이에 필적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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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도 선수, 네 발로 뛰다 박차고 날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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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폈을 때 F-16 전투기 만한 거대 익룡의 무게가 이 정도에 그친 까닭은 현재의 새처럼 뼈의 내부가 비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어른보다 무거운 몸집으로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 거대 익룡의 날개는 폭이 넓고 짧은 게 특징이다. 알바트로스보다는 콘도르에 가까운 형태이다. 따라서 거대 익룡은 독수리나 황새처럼 상승기류를 옮겨 타며 천천히 이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테로닥틸로이드 익룡의 상당수가 바다에서 먼 내륙에 서식했다는 사실이 새로운 논란을 부른다. 해안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륙할 수 있었을까.
거대 익룡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는 이들의 걷거나 뛰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이는 날개를 접은 익룡이 지상에서 우수꽝스러운 몸짓으로 뒤뚱거리는 이제까지의 상상을 뒤엎는다. 새 이론의 유력한 증거가 바로 우항리의 발자국이다. 우항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443개의 익룡 발자국과, 마찬가지로 세계 기록인 7.3m 길이의 보행렬이 발견됐다. 특히 이곳의 발자국은 익룡이 두 발뿐 아니라 네 발로도 경쾌하게 걸어다녔음을 보여준다. | |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과거엔 익룡이 육상에서 마치 우산을 겨드랑이 끼고 어정쩡하게 걷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우항리 화석을 통해 앞뒷발을 모두 이용해 자연스럽게 걸었음이 분명해졌다”며 “거대 익룡이 헬기가 이륙하듯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음을 발자국 화석에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
황새처럼 물가나 육상 성큼성큼 걸으며 먹이 낚아 채
거대 익룡이 무얼 먹고 살았는지도 논란거리다. 거대 익룡 골격의 특징은 큰 두개골과 이를 지탱하는 길고 뻣뻣한 목뼈이다. 처음엔 이들이 죽은 공룡의 사체를 처분하거나 땅속에서 무척추동물을 잡아먹었다고 생각했다. 이어 턱을 물속에 잠근 채 바다 표면을 날면서 물고기를 잡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근엔 황새처럼 물가나 육상을 성큼성큼 걸으며 먹이사냥을 했을 것이라는 설명이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이들의 메뉴에는 작은 원시 악어나 공룡 새끼가 들어있었을 것이다. | |
임종덕 박사는 “거대 익룡의 발자국이 발견된 군위에서는 크지 않은 공룡 발자국과 물고기, 어패류, 곤충의 화석도 함께 발견되기 때문에 이곳이 익룡의 사냥터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조상이 두 발로 서 인간이 되기까지 400만년이 걸리지 않았지만 익룡은 1억6천만년 동안 지구의 하늘을 지배했다. 그러나 익룡의 마지막 세대인 거대 익룡도 공룡을 몰락시킨 중생대 말의 대멸종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큰 덩치로는 급격한 환경변화를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 |
공룡과는 다른 파충류
하늘을 날았던 최초의 척추동물인 익룡은 공룡의 조상과 갈라져 다른 진화의 길을 걸었다. 흔히 익룡은 하늘을 나는 공룡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공룡과는 다른 파충류이다. 익룡과 공룡은 악어와 공룡 사이 만큼이나 진화의 간격이 벌어져 있다. 최초의 익룡은 중생대 초인 2억2천만년 전 등장했다. 이후 참새 만한 것에서부터 경비행기 크기에 이르는 수백종으로 분화했다. 중생대 초·중반인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의 익룡이 꼬리가 길고 이빨이 달린, 용 비슷한 형태라면 후기인 백악기 익룡은 비행의 균형을 잡아주던 꼬리가 사라지고 대신 날개를 정교하게 조정하는 대형 익룡이 많아진다. 또 턱뼈에서 이빨이 사라져 새의 부리 비슷하게 바뀐 것들도 늘어났다. | |
익룡은 진화과정의 어느 시점에서 온혈동물로 바뀐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에서 발견된 털 달린 익룡의 화석은 보온의 증거이다. 더운 피를 가지면서 익룡의 기동성도 높아졌다. 익룡은 턱의 날카로운 이빨로 물고기나 곤충을 잡기도 하고, 코뿔새처럼 열매를 먹기도 했다. 플라밍고처럼 턱에 난 수백개의 돌기로 물속의 작은 생물을 걸러먹기도 했고 저어새처럼 펄을 써레질하는 종류도 있었다. 북미의 프테라노돈은 바다에서 수백㎞ 거리를 순항하며 먹이를 찾는 떠돌이였다. | |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이 빈 뼈를 지닌 익룡은 좀처럼 화석으로 남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선 2001년 처음으로 경남 하동에서 익룡의 날개 뼈가 발견됐다. 이 익룡은 백악기 초 중국에서 번성했던 충가립테리스(Dsungaripterus)에 가까운 종으로 추정된다.
경북 고령에서는 길이가 7㎝인 대형 익룡의 이빨뼈가 발견됐다. 아시아 최초로 익룡의 발자국이 발견된 전남 해남군 우항리를 비롯해 경남 사천, 하동, 거제시 등에서 백악기의 익룡 발자국이 확인됐으며, 앞으로 더 많은 화석이 발굴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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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룡-새-박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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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룡과 새, 박쥐는 모두 독자적으로 나는 능력을 획득했다. 이들이 지구상에 등장한 시점은 수천만년의 차이가 있지만 앞다리가 변한 길고 가는 팔뼈를 지닌 날개를 공통적으로 갖는다. 그러나 세부적인 구조는 다르다.
새는 손과 손가락뼈가 융합돼 있고 여기서 깃털이 난 반면 박쥐는 길고 가는 4개의 손가락과 짧은 엄지손가락이 피막을 지탱한다. 익룡은 한개의 손가락만 유독 길어져 피막을 지탱하고 나머지 3개의 손가락은 짧다. 긴 손가락과 몸통, 뒷발은 피부가 변한 막으로 덮여있다. 날개를 접고 걸을 때 땅에는 주로 날개 끝에 달린 3개의 짧은 손가락 자국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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