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pm(민제이피엠) 의 음악과 함께하는 삶~
SOUL CLAMP

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오케스트라 교실 - 오케스트라의 꽃 '교향곡'

minjpm 2010. 2. 16. 16:30

 

 

원문에 들어있는 음악을 들으시려면, 본문 맨 아래 있는 원문가기 링크로 가셔서 들으셔야 합니다.

 

  

==================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팸플릿을 펼쳐보면 연주곡목 소개란에 대개 ‘교향곡’이란 음악이 가장 마지막에 연주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눈치 빠른 분들은 ‘교향곡’ 혹은 ‘심포니’라 불리는 곡이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된 음악 중에 가장 중요하고 긴 음악일 거라고 짐작하시겠지요. 예. 대체로 그렇습니다. 어느 행사나 모임에서나 중요하고 높은 사람은 대개 나중에 등장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교향곡은 대개 음악회가 무르익어 절정에 달하는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며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곤 합니다. 하지만 교향곡이 이렇게 대단한 관현악곡이 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초기 교향곡이 어땠는지 18세기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장 유명한 부르크 극장의 공연 풍경을 잠시 엿볼까요?

 

 

 

18세기 교향곡 연주회장의 풍경과 만하임 오케스트라

오페라 공연이 시작되는 오후 5시가 되니 무대 담당자가 지팡이로 바닥을 세 번 두드리는군요. 공연이 시작될 테니 조용히 하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관람 매너가 엉망이었던 당시 관객들은 지팡이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음식을 먹거나 휘파람을 불어댑니다. 심지어 관람석 사이로 개들이 지나다니기도 하는군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오케스트라가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18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교향곡은 이런 불편한 시점에서 연주되곤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향곡이란 오페라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으로서 일종의 ‘기능음악’이었던 것이지요. 오페라의 막이 오르기 전, 웅성거리는 말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음을 뚫고 교향곡의 첫 음이 울려퍼지면 청중은 비로소 공연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소음이 잦아들고 오케스트라가 홀의 음향에 적응하기까지 오케스트라는 어수선한 상태에서 교향곡 연주를 계속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능적 측면 때문에 교향곡은 청중에게 무척 흥미로운 음악으로 발전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초기 교향곡의 핵심은 ‘크고 웅장한 도입’, 그리고 ‘흥미로운 진행’이었는데, 그 까닭은 오페라가 공연되기 전에 시끄러운 청중을 압도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공연 시 ‘소음 제거’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던 음악이니 만큼 교향곡은 초반에 기선을 제압할 만한 큰 소리로 시작해 흥미로운 선율로 진행하게 됐는데, 그러다보니 교향곡은 점점 더 웅장하고 풍부한 음향으로 청중의 귀를 사로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오페라와는 별도로 교향곡을 작곡해 연주하면서 교향곡을 더욱 흥미롭고, 길고, 복잡한 음악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지요.


 

초기의 교향곡은 이탈리아 오페라 서곡에서 비롯되었기에 이탈리아말로 ‘신포니아’(sinfonia)라고 불렀습니다. 신포니아라는 말은 ‘함께 울리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본래 신포니아라는 음악이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들이 함께 울려서 만들어지는 음악이기도 하니까 신포니아는 그 말의 뜻과 딱 들어맞는 음악인 셈이지요. 후에 신포니아는 독일에서 더 발전하게 되면서 심포니라 불리게 되었고, 특히 독일 만하임에서 발전했습니다.


18세기 중후반 교향곡이 크게 발전한 곳이 독일의 만하임이었던 건 조금은 의외인데요. 당시 만하임이 음악으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음악을 사랑했던 만하임의 선제후 칼 테오도르의 아낌없는 후원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음악을 지극히 사랑해서 세계적인 음악가들을 불러 모아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조직했는데, 당시 만하임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의 연봉은 유럽 최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도 당시 만하임에서 일하기를 원했었다고 하니 당시 만하임의 음악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당대 최고의 오케스트라 만하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악장 슈타미츠는 오케스트라를 돋보이게 하는 교향곡을 많이 작곡했을 뿐 아니라, 교향곡 역사에 있어 중요한 업적 하나를 남겼습니다. 그는 당시까지만 해도 3악장으로 이루어졌던 교향곡에 ‘미뉴에트’(minuet)라는 프랑스 궁정의 춤곡을 삽입해서 교향곡의 4악장 구조를 확립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은 교향곡을 대개 네 개의 악장으로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의 업적과 베토벤

교향곡에 미뉴에트를 넣어 4악장을 만든 것은 슈타미츠이지만 교향곡의 형식을 잘 다듬어낸 음악가는 하이든이었습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은 미완성 작품까지 합해 모두 108곡의 교향곡을 남겼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지요. 하이든은 워낙 많은 수의 교향곡을 남겼기 때문에 작곡된 시기 별로 음악의 성격도 좀 다른데요. 후기에 작곡한 교향곡 일수록 규모가 크고 형식도 잘 갖추어져 있고 음악도 매우 웅장합니다.

 

하이든의 교향곡을 보면 1악장은 대체로 느린 서주로 분위기를 조성한 후에 빠른 부분으로 넘어가서 두 가지 주제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1악장은 흔히 ‘소나타 형식’이라 부르는 전형적인 고전주의 형식을 취하게 되고, 느리고 서정적인 2악장, 3박자의 미뉴에트로 된 3악장, 빠르고 경쾌한 4악장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매우 변화무쌍합니다.

 

하이든이 마련해 놓은 교향곡의 형식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에 의해 계승되면서 더욱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음악으로 진화해갑니다. 특히 베토벤은 그가 완성한 아홉 곡의 교향곡을 통해 인간의 위대한 정신세계를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는데, 그 과정에서 약간의 파격도 시도했습니다. 하이든의 제자이기도 했던 베토벤은 스승이 마련해 놓은 형식의 틀은 어느 정도 유지하되, 악장의 배열을 조금 바꾸거나, 한 악장을 더 추가하거나, 악기를 더 많이 편성하거나, 혹은 교향곡에 사람의 목소리를 넣는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새 시대에 맞는 웅장한 교향곡을 만들어냈습니다.


 

베토벤이 행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으로는 보통은 미뉴에트로 돼 있는 3악장을 스케르초로 바꿔 작곡했다는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 이후의 세대였던 베토벤에게는 루이 14세 시절의 절대왕정을 연상시키는 고리타분한 미뉴에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는 느린 3박자의 정형화된 춤에 어울리는 미뉴에트보다는 빠르고 재치 있는 스케르초의 신선함에 이끌렸지요. 그래서 [교향곡 제2번]부터 3악장에 ‘스케르초’(scherzo)라 적어놓고는 여기에 매우 빠른 3박자의 재기발랄한 음악을 써넣었고, [교향곡 제9번]에선 스케르초의 위치를 2악장으로 바꾸는 파격도 선보였습니다. 본래 ‘스케르초’는 ‘농담’이란 뜻으로, 음악에서는 빠르고 신랄한 면을 지닌 음악을 가리키는데, 베토벤은 스케르초의 본질을 아주 잘 표현해냈던 작곡가였습니다. 그럼 하이든의 미뉴에트와 베토벤의 스케르초를 한번 비교해서 들어볼까요?

 

no 아티스트/연주  
1 하이든 [교향곡 제100번] ‘군대’ 3악장 미뉴에트 / 오토 클렘페러, 뉴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1965년 듣기
2 베토벤 [교향곡 제9번] 2악장 스케르초 /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베를린필, 1942년 듣기

 

 

 

베토벤 이후 교향곡의 발전 방향 – 베를리오즈와 브람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은 두 가지 갈래로 발전해갑니다. 하나는 베토벤이 남긴 교향곡들 중 [제3번 ‘영웅]’이나 [제6번 ‘전원’]처럼 표제가 있는 교향곡에 영향을 받은 표제 교향곡들이 있고, 음악과 관련 없는 어떠한 표제 없이 순수하게 음악적인 교향곡들이 바로 그것이지요. 전자의 경향이 혁신적인데 비해 후자는 조금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건 표제뿐만 아니라 악기를 사용하는 방식이나 편성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혁신파의 대표주자인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는 대개 두 대 이상 편성되지 않는 바순을 무려 네 대나 쓰고, 크고 낮은 소리를 지닌 튜바나 특수악기인 하프도 각각 두 대씩이나 편성해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환상 교향곡]보다 수십 년 뒤에 작곡된 브람스의 교향곡에도 [제2번]을 제외하고는 튜바가 편성되지 않고 하프는 전혀 나오지 않는 점을 생각해보면, 베를리오즈를 비롯한 혁신파 관현악 작곡가들이 악기의 색채감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지요.

 

베를리오즈는 음악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했기에 더 많은 악기와 더 많은 연주자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전원의 정경을 묘사하는 그의 [환상 교향곡] 3악장 마지막 부분에는 천둥소리가 들려오는 부분이 있는데, 베를리오즈는 이 부분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기 위해 무려 네 명의 팀파니 주자가 이 부분을 연주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브람스 등 보수 성향의 작곡가들의 교향곡에서는 있을 수 없는 혁신적인 면이죠. 대개 한 명이면 충분한 팀파니 연주자를 무려 네 명씩이나 쓰다니! 하지만 그만큼 베를리오즈가 묘사한 천둥소리는 매우 그럴 듯하게 들려옵니다. 잉글리시 호른으로 연주하는 목동의 피리소리 사이사이에 들려오는 천둥소리를 들어봅시다.


 

no 아티스트/연주  
1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3악장 중 피리소리와 천둥 묘사 / 샤를 뮌슈, 보스톤 심포니, 1954년 듣기

 

 

베를리오즈보다 30년 후에 태어난 브람스는 베를리오즈보다 오히려 더 보수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오로지 음악 자체의 형식과 구조로써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기 편성을 절제하는 대신 좀 더 효율적으로 악기를 사용하고 주제의 전개방식이나 형식의 짜임새를 더 중시했지요. 브람스가 베토벤을 의식하며 무려 21년에 걸쳐 완성한 [교향곡 제1번] 1악장의 도입부를 들어보면 한 대의 팀파니만으로도 얼마나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집요하게 추적해오는 운명의 발자국 소리처럼 반복되는 팀파니의 강한 연타는 정말 압도적입니다.

 

no 아티스트/연주  
1 브람스 [교향곡 제1번] 1악장 도입부 / 샤를 뮌슈, 파리 오케스트라, 1969년 듣기

 

 

 

낭만주의 교향곡의 전통을 극대화한 말러


순수음악을 지향했던 교향곡과 표제적인 성향의 교향곡은 19세기와 20세기 전환기에 활동했던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에 의해 종합됩니다. 말러는 번호를 붙이지 않은 [대지의 노래]와 미완성으로 끝난 [교향곡 제10번]을 포함해 모두 11곡의 교향곡을 썼는데, 그의 교향곡엔 표제적이면서도 순수음악적인 양식이 개성적인 형식과 기법으로 나타나 있어 말러의 교향곡은 낭만주의 교향곡의 전통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때때로 그의 교향곡은 대규모 악기 편성과 각 악장의 길이를 확대하는 ‘교향곡의 대형화’를 보여주기도 하고, 가곡과 같은 서정성으로 ‘노래하는 교향곡’의 모범을 보여주기도 하며. 매우 섬세하고 실내악적인 울림을 만들어내며 ‘실내악적 교향곡’의 면모도 보여줍니다. 말러의 교향곡은 당대 청중이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다양한 특징이 있어서 당대에는 그의 많은 교향곡들이 외면당했지만 오늘날의 청중은 말러의 교향곡을 무척 좋아합니다.


말러 이후에도 교향곡은 끊임없이 작곡되고 있지만, 현대의 작곡가들은 지나치게 풍성한 오케스트라 음악보다는 몇 대의 악기로 섬세한 음향을 표현해내는 실내악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에 오늘날 교향곡은 조금 구식의 음악장르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콘서트홀에서 베토벤과 말러의 교향곡에 열광하는 청중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교향곡은 클래식 음악 가운데서도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관련링크 : 통합검색 결과 보기

 

 

 

최은규 / 음악 평론가, [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의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하고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부수석 및 기획홍보팀장을 역임했다. 월간 [객석] 및 연합뉴스 등 여러 매체에서 음악평론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의 전당, 부천필, 풍월당 등에서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고 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2029